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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록의 나뭇잎들이 짙푸른 색을 띠기 시작했다. 지금쯤 그곳의 갈대들은 오동통 물이 올라 짙은 풀내음을 풍길 것이다. 새벽녘이면 이슬에 놀란 풀 개구리들이 오줌을 지리며 달아나겠지. 대 굵은 갈대들은 피어오른 안개 속에 밑둥치를 담그고 제 몸을 말려줄 햇살을 기다릴 테지. 언제였던가? 이슬 내리던 그곳에서 소령은 처음으로 희랑의 입술을 만져 보았었다. 선명하고 도톰했던 그 입술을 소령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으로 더듬었었다.

"이게 내 입술에 닿으면 어떤 기분일까?"

소령의 철없는 그 물음에 희랑은 붉어진 얼굴로 다가와 그녀의 입술을 더듬었었지. 그 보드랍고 촉촉했던 입술, 풀 냄새 가득 배어나오던 희랑의 어린 입술을 그 갈밭에 가면 지금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잠시의 상념을 깨듯 열려진 중문 너머 사랑채 마당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노복들이 보였다. 다시 다급하게 달려가는 동이 아범이 보이고, 노랗게 질린 얼굴의 동이 어멈도 보였다. 안채로 들어오던 동이 어멈은 연못가에 앉아 있는 소령을 보자 도망치듯 되돌아 나가 버렸다. 무슨 일일까? 그녀를 불러 물어보려 했지만 동이 어멈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퍼진 어수선한 분위기는 가라앉은 공기에 섞여 온 집 안으로 퍼져 들여다보는 사람이 극히 드문 안채까지 온전히 덮여 버린 것 같았다. 소령은 알 수 없는 불안에 마당을 서성거렸다. 연못 속에서 붉은 색을 띤 이름 모를 물고기가 꼬리를 치며 뛰어올랐다. 줄지어 유영하던 것들이 그 사나운 기운에 순식간에 길을 잃고 흩어져 달아났다.

- 본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