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신영은 인혁의 숨이 고르게 변하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눈을 감고 한쪽에 누워 있었다. 드디어 그가 잠에 빠졌는지 고른 숨을 내쉬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근육질의 단단한 등을 보이며 누워 있는 인혁을 흘끗 보고는 작게 부스럭 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인혁이 혹시나 깨지나 않을까 조심하며 그가 벗겨 놓은 옷가지들을 끌어 모았다. 언제나 자신이 오피스텔에 들어서자마자 성급하게 옷부터 벗기는 그인지라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옷가지들을 수습하여 침실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거실 한 켠 에서 옷가지를 꿰고 있자니 왜 그런지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신영 너 지금 뭐하는 거냐? 훗…….”'갑자기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역겨운 곳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수습하고 고급스러운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1월의 차가운 새벽공기에 금방 볼이 얼어붙었다. 신영은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따뜻하면서도 달달한 택시 특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나고 있었다. 신영은 흔들리는 택시의 시트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낡고 초라한 자신의 아파트로 가면서 인혁과 자신이 이런 관계로 전락하게 된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 '석 달 전 그들은 오랜만에 기업합병이 무사히 끝난 걸 축하하며 회식을 했다. 술자리가 몇 번인가 바뀌고 나이트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고급 나이트의 룸을 잡고 술을 마시고 있는데 한동안 하유리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사장이 화장실을 다녀오는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신영의 옆자리에 앉았다. 사장 최인혁의 은은한 남성용 향수 냄새를 맡으며 신영은 급격히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비서실에서 근무한지 벌써 3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사장의 잘생긴 얼굴을 보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박동수가 맘대로 춤춰대고는 하였다. 그런 신영의 이상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은 자연스럽게 술병을 들어 신영의 잔에 따라주었다. 신영은 엉겁결에 술을 받으며 안쪽 자리에서 이쪽을 째려보고 있는 하유리의 얼굴을 발견하였다. 회식 내내 하유리가 사장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는 것을 모두들 눈치 채고 있었다. 아직 비서실에서 근무한지 1년 밖에 안 된 하유리는 모델 같은 몸매에 눈에 확 띄게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은근히 사장과 어떻게든 엮이기를 꿈꾸고 있었다. 반면에 신영은 회사에 입사한지 3년차로 비서실에 있기에 썩 어울리는 외모는 아니었다. 나이가 스물일곱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여전히 젖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볼살이 오동통 했으며 몸매 또한 통통하여 귀엽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었으나 신영 자신은 더 이상 귀엽고 싶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한 외모 하는 비서실 사람들과는 많은 차이가 나고 있었다.'신영은 하유리의 표정을 살피고 술잔을 따라주고도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사장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 사장님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 가셔야죠.”'인혁은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곳을 돌아보았다. 하유리가 쀼루퉁한 얼굴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낯빛으로 신영을 조용히 쳐다보며 물었다.'“신영 씨 나랑 일한지 얼마나 됐죠?”'“3년입니다.”'“벌써 그렇게 됐나? 내가 처음 상무로 발령 났을 때 민 실장 밑으로 들어왔었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