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1. 재회 2006년 5월''''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숙제가 열댓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엉클어 놓은 풀래야 풀 수도 없는 실 뭉치를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아득하기만 했다.'“저 여자야? 저 따위 여자 때문에 날 물 먹이겠다는 거야?”'“시끄러워. 조용히 해.”'“뭐, 조용? 이 개자식아, 너 같으면 이 상황에 조용할 수 있겠냐? 멋있는 척, 젠틀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이기영 너도 별 볼일 없는 자식이구나?”'“다른데서 얘기하자.”'“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해? 내가 저년 머리채라도 잡아뜯을까봐 겁나니?”'남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오고 가는 중에도 멀찍이 서 있던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인 양 태연하게만 보였다.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는 조각상처럼 서 있던 그녀가 테이블에 놓인 카탈로그와 다른 몇 가지 파일들을 챙기더니 두 사람 앞으로 다가섰다.'“서지연 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 저 남자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까우시면 서지연 씨 가지세요. 그럼.”'짧은 인사만을 남긴 채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기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연은 황당함에 덧붙인 질투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프롤로그2. 인연의 불씨. 2001년 5월.''''아침이라고도 하기에는 이른 일요일 새벽, 대부분 상점들의 셔터가 내려가 있는 시내 중심가 한 웨딩숍 안에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열 평정도의 샵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쪽으로 서너 명의 여자들이 물건을 찾아 분주히 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여자들이 얌전한 얼굴로 전면 거울이 달린 의자에 앉아 앞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 한 여자의 뒤에 서 있던 여자가 앉아 있던 여자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컵을 내밀었다.'“이게 뭐예요?”'“혜정 씨 오늘, 아침도 못 먹고 나왔죠?”'“네. 어젯밤 잠을 들 수가 없어서 뒤척이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덕분에 주현 씨만 일찍 나와서 마사지 해주신다고 고생하셨죠, 뭐.”'원래 신부마사지는 드레스를 대여한 웨딩숍에서 해주는 것으로 결혼식 3주일 전부터 일주일에 1번씩 토털 3회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마사지를 더 받고 싶어 할 경우는 따로 회당 경비를 추가로 내야만 했다.'“제가 해드리고 싶은 일이었으니 그렇게 미안한 얼굴 하지 마세요.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에 쿨쿨 편히 잠들 수 있는 신부님들이 몇이나 되려구요.”'“하하하. 주현 씨 말이 맞네요.”'컵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린 여자가 주현을 향해 거울을 보며 웃어보였다.'“잘 마실게요.”'그때 주현의 뒤로 작은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 선생이 다가섰다.'“주현 씨 이렇게 자주 보다가 정들겠어. 다른 웨딩플래너들은 두주에 한번 볼까 말까인데 말이야. 하하하.”'“조 선생님도, 참. 쉰 소리 마시고 우리 혜정 씨나 예쁘게 메이크업 해주세요. 원래 예쁘신 분이지만, 오늘은 더 예쁘게 해주셔야 해요.”'주현의 말에 혜정의 볼이 발갛게 물들어 갔다.'“어, 어. 메이크업 안 해도 되겠네. 벌써 신부님 얼굴이 화장한 것처럼 화사해지셨는데?”'유쾌한 웃음이 신부를 시작으로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혜정 씨 피부가 좋아서 짙은 화장 안하면 더 좋을 텐데, 야외 결혼식이라 안타까워요.”'주현의 말에 의아해 하는 혜정을 보며 조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