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좁고 낡은 집에 아름다운 소년과 여인이 있었다. 소년과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여인은 소년을 바라보지 않았고, 소년은 여인을 바라보지 않았다. 여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무심한 얼굴로 좁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소년은 여인의 발치 아래 한쪽 무릎을 굽힌 채 낡은 마룻바닥에 앉아있었다. 그의 앞에는 모서리가 해진 동화책이 펼쳐져 있었다. 소년은 골똘히 삽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잠이 든 공주님에게 왕자님이 키스하는 모습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해.”'소년은 동화책을 덮고 가만히 표지의 제목을 들여다보았다.''찔레꽃 공주.''소년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표지를 열었다.'어느 왕국에 임금님과 왕비님이 살고 있었단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던 두 사람에게 딸아이가 태어났고, 왕궁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여 공주님의 생일 파티를 열었고 요정들이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마녀가 화를 품어 공주에게 저주를 걸었고, 다행스럽게도 요정이 저주를 약화시켜주어 공주는 죽지 않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대신 공주는 열여섯 살이 되면 물레에 손이 찔려 깊은 잠에 빠질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열여섯의 나이가 된 공주는 결국 물레에 찔려 잠에 빠졌고, 그로부터 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왕자님이 나타나 공주님에게 키스를 했고, 공주님은 저주에서 풀려나 잠에서 깨어났다. 공주님은 왕자님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단다.'소년은 잠에서 깨어난 공주님이 왕자님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삽화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행복한 걸까.'어차피 공주는 성에 갇힌 신세. 잠에서 깨어나도 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 성에 갇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공주가 행복할 리가 없다. 그러니 이 왕자는 ‘가짜’다. 공주를 구하지 못한 ‘엉터리’다. '소년은 고개를 들고 흔들의자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찔레의 성에 갇힌 찔레꽃 공주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하나만을 바라본다. 이윽고 찔레는 공주의 마음을 할퀴고, 공주는 사랑하는 자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준비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비극 뿐.'소년은 동화책을 덮고 가만히 품에 안았다. '좁고 낡은 성에 갇힌 찔레꽃 공주에게는 왕자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러나 ‘가짜 왕자’는 필요 없다. 함께 불행해질 거라면 차라리 구원받지 않는 편이 옳으리라. '소년은 고개를 들어 여인이 바라보고 있는 낡은 격자창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지나치게 작았지만, 손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보였다. 그러나 그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었다. '소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 번만,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 좁고 낡은 성에서 달아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소년의 팔은 너무나 짧고, 저 하늘은 너무나 멀다.'아아, 너는 어디 있니.'나를 구해줄 너는 어디에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