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지만 내 말이 맞았다. '야쿠자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놈은 누군가를 패고 싶어서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뺨이라도 갈겨야할 판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스스로의 몸을 희생하시겠다 쫓아오기까지 하는 희생의 불량학생들, 그 희생정신도 숭고하지만 효율면으로 생각해봐도 덩치로 봤을 때 팰 데가 얼마나 많은가! 이는 마치 사채 끌어다 써 돈에 목마른 부동산 업자에게 대출규제가 풀렸으니 30일 무이자 행사를 한다는 전단지가 날아드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뒷골목을 한 바퀴 돌아 뒷길의 세차장, 비로 인해 문을 닫은 세차장 덕에 널찍한 공간이 비어있는 곳에 닿자 야쿠자는 걸음을 멈췄다. '“존나 잘 도망간다?”'물색 모르는 마른 고목나무가 말했다. 저놈의 존나, 아주 존나게 패주고 싶어진다. 어느 샌가 두 명이 늘어 불량 청소년들은 다섯 명이 되어있었다.'앞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고개를 좌우로 한 번 풀어준 야쿠자의 얼굴은 지극히도 무표정했다. 고개를 풀어주는 동작도 무식해보였던 아까의 마른 고목나무의 것과는 천지 차이로 최종무기 그 자체였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쟤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내가 겁을 먹는 건 종로 조폭들을 아작 낸 야쿠자의 사진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이던가? 확실한 건 불량 청소년 5명은 전혀 겁을 먹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내리는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는데 나도 그랬지만 눈앞의 6명도 우산 없이 그 비를 다 맞고 있었다. 한결 비장해 보이긴 했지만 사고 나기에도 좋아 보였다. 그냥 미끄러져 머리라도 부딪친다면……. 나는 골목길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시대가 시대인지라 핸드폰도 없어 경찰을 부를 수도 없고 준현 선배를 부를 수도 없다. 하기야 핸드폰이 있다고 해도 경찰을 부르면 학교에 알려질 테니 그럴 수 없고 준현 선배는…… 준현 선배를 부르면 아마 ‘야쿠자가 팰 수 있는 다섯 명’을 ‘야쿠자가 팰 수 있는 여섯 명’으로 늘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닐 지도 모르니 부를 수 없다. '아이고, 모르겠다. 비 때문인가 머리가 돌지 않는다. 게다가 어둑하니 가라앉던 해가 완전히 산 너머로 넘어가버려 시야는 끔찍하도록 좁았다. 시야가 나빠지자 배수가 안 좋은지 바닥 물이 고여 움직일 때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남자들은 왜 그럴까, 싸우는 걸 무슨 남자다움의 증명처럼 생각한다. 때리면 맞은 사람이 아플 테고 맞으면 내가 아플 텐데 서로가 아프기만 한 걸 왜 하려고 저 난리들인지 정말 모르겠다.'먼저 움직인 건 5명이라는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몹시도 말이 많았던 불량집단이었다. 건들거리거나 침을 찍찍 내뱉는 등 추잡스러운 짓은 다 하고 있었으니 포스는 개싸움 포스였다. 대개 자신 없을수록 말이 많고 설명이 복잡한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량한 것들은 비겁하기까지 하여 한 놈이 슬슬 도는 척 하더니 갑자기 몸을 휙 날려 야쿠자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야쿠자가 가볍게 뻗어준 발에 걸려 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구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그는 실패했으되 그 떡대의 비극을 신호로 남은 4명이 개떼처럼 덤벼들었으니까.'퍽.'깔끔하고 탄력 있는 소리.'처음 야쿠자가 운동장에서 은혜 갚는 까치를 쥐어 패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야쿠자는 참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깔끔한 동작은 비디오로 찍는다면 격투기의 교본으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정확했다. 패는 법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다. 긴 팔다리를 십분 활용해 비용대비 최대 효과를 누리는데 타고난 것도 타고난 것이지만 꽤 오랜 기간의 연구과정을 거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과학적이었다. 물리의 법칙 역시 알고 쓰는 건지 모르고 쓰는 건지 같은 힘으로 최대 충격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저게 본능이라면 저놈은 괴물이다. 그뿐인가? 지략도 있었으니 주변 지형을 이용하는 현명함, 물이 고인 바닥을 차 올려 불량 청소년들의 시선을 가리고 신나게 주먹질을 할 때는 감탄사까지 나올 정도였다.'물론 야쿠자도 안 맞은 건 아니다. 자기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5명이 덤벼드는데 한 대도 안 맞겠는가? 문제는 사람이 맞으면 아프다는 티를 내주는 것이 예의이거늘 이 야쿠자는 맷집이 좋은 건지 참을성이 좋은 건지 맞아도 ‘아야’는 커녕 묵묵히 곧바로 세배쯤 응전해주었다. 그렇다보니 그것은 때리는 놈으로 하여금 혹시나 내 주먹에 맞을까 두려워하게 만드는 기묘한 기술로 작용하고 있었다.'말했지만 난 폭력을 싫어했다. 그리고 미래의 나도 폭력을 싫어한다. '그러나 머리를 세게 맞았는지 이성을 잃은 불량학생이 듣도 보도 못한 방언 같은 화려한 욕설을 내뱉으며 세차장 한편에 세워져있던 타이어를 집어 들어 던졌을 때, 그리고 다른 놈을 쥐어 패느라 미처 날아오는 타이어를 확인하지 못했던 야쿠자가 그 타이어에 정면으로 맞고 비틀거렸을 때 나는 폭력을 조금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으로 야쿠자가 저놈에게 폭력을 사용해주길 바라게 되었다. '꽤나 둔탁한 소리가 난 후, 그 여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야쿠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여전히 패고 있던 놈의 멱살을 쥔 채로 남은 손으로 이마를 훔쳤다. 피가 나고 있었다. 빗물 사이로 피가 섞여드는데 순간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내가 뛰쳐나가 타이어를 들고 있는 불량 떡대의 멱살을 잡지 않았던 건 순전히 몸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야쿠자의 표정이 조금 흔들렸다고 생각했다.'지독히도 열 받은 것 같은 움직임 치고 표정은 담담했다.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야쿠자는 멱살을 쥐고 있던 아이가 버둥거리는 걸 무시하고 차 밑바닥을 청소하기 위해 파놓은 홀에 아이를 집어 던졌다. 모르긴 해도 어디 하나 안 부러졌으면 꽤나 아플 것이다. 무슨 곡소리 같은 것이 직사각형의 구멍 안에서 새어나왔다.'눈치도 몹시도 없는 타이어 던진 놈은 여전히 겁도 없이 욕설을 내뱉다가 자신을 향해 엄습하는 흉포한 기색에 흠칫 놀라 몸을 돌리다가 잡혔다. 그리고 작살나게 얻어맞았다. 차라리 어디 하나 부러뜨려버리는 게 더 자비로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젖어서 새까맣게 보이는 머리에서 물방울이 흩날렸다. '“아!”'야쿠자가 한 놈을 패는데 집중하던 틈을 타서 뒤로 접근했던 다른 놈 하나가 야쿠자를 각목으로 내려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신음소리를 낸 것과 동시에 야쿠자는 뒤를 돌아봤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저 놈의 야생성이라면 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목은 부러졌고 각목을 들고 다가왔던 놈도 어딘가 부러졌다. 그리고 야쿠자는 다시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때리는 놈은 쌩쌩한데 맞는 놈은 손끝하나 움직일 힘도 없어질 정도로 팬 야쿠자는 그놈을 빗물이 흐르는 바닥에 내팽개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들 기절한 건 아닐 텐데도 다들 기절한 척 하고 있었다. 구멍 안에 들어간 놈까지도 더 맞지 않았으니 정신 말짱할 텐데 스스로 자해라도 한 것인지 죽은 듯 잠잠했다. '머리를 쓸어 올리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부족한지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린 야쿠자는 숨을 죽이고 엎드려있던 불량 청소년 하나의 머리채를 잡았다. 나에게 통돼지니, 우냐느니 이죽거렸던 놈이었다. 그놈은 맞은 데 또 맞았다. '사람이란 정말 이상하다. 처음에 나는 야쿠자가 싫었고 그리고 조금 좋아하게 되었으며 방금 야쿠자가 맞는 걸 보았을 때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다시, 너무나 선명한 힘의 우위를 확인하는 순간, 젖은 빨랫감처럼 너부러져 있는 불량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꼭 저래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과정을 내가 보았음에도. 내가 10년 후 볼 야쿠자의 만행이 겹쳐져서일지도 모르지만. 복잡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