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잭은 여전히 눈가에 웃음을 달고 있는 진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열심히 닦던 그는 별안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수건을 코에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진이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이상한 냄새라도 나요?”'잭은 말없이 의혹의 눈으로 진을 쳐다보았다. '“말해 봐요, 뭔데 그리 뜸을 들여요? 혹시 그때처럼 인간 여자 냄새가 안 난다고 할 건가요?”'잭은 배시시 웃으며 농담을 하는 진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외려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한 어조로 진에게 말했다. '“그래, 근데 그때보다 더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의 얼굴은 빠르게 변화해 갔다. 핏기가 쏙 빠져 하얗게 질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피가 위로 솟구쳐 올라 순식간에 빨갛게 변했다. 아마 지금 뺨에 종이를 갖다 대면 불타오를지도 몰랐다. 너무 화가 난 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되는대로 내뱉었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단 한 번도 냄새가 지독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요. 정말이지 당신은…….”'“냄새가 지독하다고 말한 적은 없어. 단지 내가 알던 냄새와는 다르단 말이었어.”'“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한테 뭐, 동물 냄새라도 난단 말이에요?”'잭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알고 진도 아는 것은 그의 침묵은 긍정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말에 매우 화가 날 때 속어로 머리 뚜껑이 열렸다고 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정서인지 영어에도 그런 표현이 있다. 지금 진의 감정은 바로 그 세계인이 공통으로 느끼는 상태였다. 안에서 뭔가 펑하고 터지더니 머리 뚜껑이 홱 열렸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잭에게 한발 다가갔다. '“맹세하건대……, 잭 울프,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피곤한 남자라고?”'목소리까지 벌벌 떠는 진의 말을 잭은 무 자르듯 덜컹 잘라 버렸다. '“그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워. 그러니 웬만하면 다른 것으로 바꿔 주지 그래?”'덤으로 붙인 유들대는 말로 화르르 타오르는 불 위에 기름까지 부었다. 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무 얄미워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눈앞에 서 있는 커다란 남자가 그 첫 번째가 될 듯싶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아요?”'진은 정말로 때릴 듯, 잭의 바로 코앞에 서서 주먹을 휘저었다. '“당신 냄새는 지독해요. 얼마나 지독한지 한 번 맡으면 절대 잊히지 않을 정도예요. 난 당신 생각만 해도 그 냄새가 떠올라서 소름이 끼쳐요. 오죽하면 밤에 그 냄새가 떠올라 잠도 오지 않을까!”'“……나도 그래.”'얼마나 흥분했는지 발까지 동동 구르며 소리 질렀던 그녀는 잭의 낮은 속삭임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라고요?”'“나도 그렇다고.” '잭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당신 체취를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젠장 맞게도!”'욕설 섞인 외침을 끝으로, 둘의 시선은 젤리처럼 진득하게 엉켜 붙었다.'사람은 입이 아니라 눈으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둘은 오로지 서로에게로만 고정된 눈동자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고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았다. '설렘, 두려움, 유혹, 열망, 걱정, 갈망, 근심, 고혹……. 눈으로 스쳐 지나간 그 많은 느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말은 인간 허영의 산물이자, 거추장스러운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다. 진심은 눈동자 속에 있다. 잭은 그렇게 확신하며 진을 덥석 안았다. '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품에 안아 놀랄 만도 한데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가만있었다. 아마도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의 고동이 아니었다면, 잭은 그녀가 너무 놀라 기절이라도 한 줄 알았을 것이다. 쿵쿵쿵! 가슴에 맞닿은 진의 심장이 힘차게 요동쳤다. 잭은 기뻤다. 자신뿐 아니라 그녀 역시 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진.”'낮은 한숨과 함께 잭의 목소리가 진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진은 눈을 감았다. 한 번만, 단 한 번만 더 그가 자신의 이름을 속삭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아……, 진…….”'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다가왔다. 그의 속삭임을 들을 때면 으레 그렇듯 진은 최면에 걸린 듯 나른해졌다. 하지만 축축한 혀가 귓불을 감아올리자 너무 놀란 진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러자 잭은 조금의 거부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 움찔하는 어깨를 크고 단호한 두 손으로 내리 억눌러 꼼짝 못하게 한 후, 또 한 번 혀로 귀를 핥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는 서두르지도 않고 느긋하게, 그리고 규칙적으로 귀를 핥았다. 진의 입에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잭…….”'이것을 신호로 잭은 더 적극적으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혀로 귓바퀴를 쓸어 담고, 입으로 귓불을 잘근잘근 물고, 목덜미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아아…….”'진은 자궁이 옥죄어 견딜 수 없어 저도 모르게 애타는 신음을 내뱉으며 잭의 탄탄한 팔뚝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러자 잭이 거센 기세로 뒤에 있는 나무 기둥 쪽으로 밀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이 압착하듯 온몸을 내리눌렀다. '제일 먼저 반응한 감각은 후각이었다. 콧속으로 그의 체취가 물밀듯 밀려들어 왔다. 세상에 어떤 냄새도 이토록 음란하지는 않으리라. 후각에 전해진 미약과 같은 그의 체취 때문에 그녀는 또다시 몽롱해졌고, 미칠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잭의 다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오고 동시에 딱딱한 남성이 아랫배를 찌르자, 등줄기로 섬뜩한 기운이 짜르르 흘러 내려갔다. 갑자기 겁이 난 진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고, 그 사이로 기다렸다는 듯 미끈하고 뜨거운 잭의 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홍수에 터진 제방 사이로 흘러나오는 물줄기와 같았다. '모든 것을 휩쓸듯 세차고 무서운 속도로 혀와 혀가 얽혔고, 몸과 몸이 설켰으며, 신음과 신음이 꼬였다. 몸속의 피는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보슬비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며 증발하기 시작했다. 뜨겁고 또 뜨거웠다. 이상한 건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었고, 더 이상한 것은 키스할 때마다 들려오곤 했던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거친 욕지거리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키스는 천국의 언어다.’'진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잭과 키스하는 동안 그녀는 정말로 천국에 온 것처럼 붕 떠올랐고, 부끄러움도 없었다. 평상시라면 생각지도 못할, 아니, 상상조차 못 할 모든 행동을 다 했고, 온갖 색스러운 소리를 다 내뱉었어도 창피하지 않았다. '그가 또 천국의 언어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리 좀 더 부드러웠다. 어르듯, 눈치 보는 듯 혀를 가볍게 쓸었다 놓았다. 기분 좋은 떨림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샘처럼 솟아 나오고 또 솟아 나왔다. 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거세지기 시작했다. '“아…….”'진은 발작적으로 신음을 내뱉으며 몸서리를 쳤다. 그가 혀를 뿌리째 뽑아낼 듯 세게 빨 때마다 자궁벽이 손톱으로 긁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가 지금보다 좀 더 세게, 온몸이 부서지도록 아프게 안아 주었으면 했다. 잭의 뒷머리 속에 손을 찔러 넣고 숱 많은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쓰다듬고, 흐트러뜨리고, 넓은 등 여기저기를 쓸어내리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이진,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금처럼 짧았던 순간도 없었지만, 길었던 순간도 없었다. 그것은 길이를 알 수 없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