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1년간의 회사생활에 이제 서서히 익숙해 질만도 했다. 하지만 쫓기는 마감시간에 입술이 절로 툭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부술 듯 자판만 두드리고 있었다. 이 끝도 없는 수정작업은 다름 아닌 보도 국장과 나란히 앉아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고 있는 저 기획실장 때문이었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기사를 벌써 5번째 퇴짜 맞고 수정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인내심 강한 사람일지라도 문뜩문뜩 화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그녀의 인생에 있어 이런 악연은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꽃 같은 14살. 그와의 악연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옆집에 이사 왔다는 남자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엄마와 언니 때문에 아주 쉽게 알 수 있었다. 영화배우 만만치 않다는 그 얼굴을 보기 위해 호기심이 생긴 것은 일생일대의 최악의 호기심이었다. 늘 하는 늦은 후회는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일을 계기로 그와 계속해서 알고 지내왔다. 그러던 중 유학을 갔다고 해서 제발 그곳에서 뿌리내려라 하고 혼자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떡 하니 기획 실장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거의 졸도에 가까운 현기증까지 일으켰다.'철천지원수라고 생각했던 그 인물을 출근할 때 집 앞에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회사에서도 허구한 날 얼굴을 마주쳐야 하니 정말 이건 산 고문이 따로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를 몇 번이라도 때려치우고 옮기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불경기에 넙죽 엎드리며 어서 오십시오, 할 곳도 없었거니와 그토록 취직하고 싶었던 이 회사를 단 한순간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관둘 수는 없었다.'한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부질없는 착각이었다. 또다시 기획실장의 엄청난 구박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획실장이 손에 쥐고 있던 기획안을 그녀가 보는 앞에서 책상 위에 내리쳤을 때부터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울면 안 된다, 절대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눈치 없는 눈물은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지금……울어?”'“네! 도대체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십니까? 급하게 치다 보면 오타 하나, 수정할 곳도 나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에겐 친절하면서 왜 저한테만 그러십니까? 류승하 실장님!”'“강지원 씨.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하는 갓난아깁니까? 기사의 생명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정확성입니다. 그 정도는 대학에서도 배웠으니 잘 알겠죠. 수정할 곳? 지금 이게 제대로 된 기사라고 생각합니까? 연예인 기사 하나 제대로 못 쓰면서 어떻게 사회부 기자가 되겠다는 겁니까? 정말 이 기사를 결재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강지원 기자님?”'지원의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더욱 쏟아지고 있었다. 따뜻한 위로를 바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 성격에 그럴 리는 없을 테니까. 그저 앞으로 조금 더 열심히 해보라는 말 한 마디라도 좋았다. 지난 12년간 이웃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봐주는 정도는 아니지만 차별대우는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으며 여전히 그녀를 끝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