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무사 6
§ 차례 §
날지 못하는 학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
오, 하늘이여!
차가운 분노
운명의 길목에서
마지막 날갯짓
혈루 속에 꽃핀 신화
갈 곳 잃은 늑대들
전설의 이름
날지 못하는 학
묵경루(默景樓)라는 이름의 주점은 전혀 고요하지 않았다.
조용할 수가 없는 것이, 번화가에서 ‘고요한 경치’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화창한 날씨까지 곁들여지자 인파가 몰려서 주루는 미어터질 듯했다.
여기저기서 손님이 점소이를 부르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대화, 주문받은 점소이들의 경쾌한 재창까지 곁들여지자 이곳이 음식점인지 시장통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손님께선 뭘 주문하시겠습니까요?”
주점 경력 칠 년이 넘는 으뜸 점소이 오정달은 직감적으로 똥 씹은 표정의 이 손님을 잘못 건드리면 골치 아파질 거란 느낌이 왔기에 여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주문을 받으려 했다. 근자에 들어 이렇게 예의 차리고 손님을 맞이한 건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야야, 시끄러우니까 저리로 가. 음식 안 먹고 자리만 축내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 말고.”
빠직.
그렇게 최선을 다해 대했거늘 돌아오는 대답이 고작해야 이따위란 말인가.
대부분의 점소이들이 그러하듯 오정달도 소싯적에 힘깨나 썼던 인물이다. 아직도 시장통의 뒷골목에 가면 어느 정도 대접을 받는다.
성깔은 더러워 보이지만 무인 티는 자라 발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놈이 어디서 감히 이따위로 말을 해 대는가.
오정달은 점소이들 중에서도 장급에 속하기에 다른 녀석들이 봤을까 걱정되어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쪽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봐요, 손님.”
잔뜩 불량기 어린 목소리로 오정달이 불손한 손님을 불렀다.
이 정도의 위압감이면 웬만한 장한들이라도 지레 겁을 먹고 고분고분해진다. 그의 커다란 덩치와 험악한 인상도 무시할 수 없는 자산 가운데 하나였다.
턱을 괴고 탁자를 응시하던 손님이 고개를 들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는데…….”
엄청 내리깐 음성에서 뒷골목 특유의 음습한 내음이 짙게 배어 나왔다.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손님은 눈이 동그래졌고, 오정달의 입가엔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곧 손님은 꼬리를 말고 대충 음식을 주문해서 급히 먹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은 오정달을 불렀다.
“이봐, 점소이.”
“옙!”
패기 있게 대답한 오정달은 손님의 다음 말에 핏기가 싹 가신 얼굴이 되었다.
“죽을래?”
“뭐요…… 헉!”
엉겨 보려 눈살을 찌푸리려던 그는 손님의 눈가에 어린 스산한 살기를 보고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무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저자는 진짜였다. 덩치나 외모로 한몫해 보려는 얼치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다. 저런 사람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가라. 오늘 기분 더러우니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란 말이다.”
“예옙!”
눈썹이 휘날리도록 도망가는 점소이의 뒷등을 멍청히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 내는 손님은 다름 아닌 장추삼이었다.
방금 전에 그가 말한 대로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태라 평소에 즐기지 않는 낮술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 중일 정도였으니 그 상태가 짐작 가는 바였다.
“빌어먹을 영감쟁이…….”
아침에 어찌어찌 일어나 모여 앉은 일행은 간단한 탕 한 그릇을 비우며 어떻게 움직일까 상의를 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쪽에서 결정이 나게 되었고 각자 맡은 임무가 하나하나 정해졌다.
“그럼 긴 머리 너는 무룡숙 주변의 매복 사항이라든가 하는 주변적인 상황을 검토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네 기도가 눈에 띄므로 절대 무룡숙 근처 십 장 내로는 접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옹의 말에 북궁단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생강이 맵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박옹은 모두의 특성에 맞는 일을 제시해 주었고, 일행도 군소리 없이 따르는 것이 암묵적으로 그의 식견을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하운이라고 했던가? 너는 긴 머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그 안쪽에서 무룡숙의 경비 형태와 교대 시간 등을 알아보아라. 너는 묻히기 쉬운 외양과 드러나지 않는 기도를 가지고 있으니 큰 문제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다.”
“알겠습니다, 노선배님.”
모두의 표정에 비장함이 넘쳐흘렀고 덩달아 고무된 장추삼도 괜히 젓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바야흐로 무언가 벌어지려 하는 것이다.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제 곧 보게 될 것이다.
“나와 남궁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단리가의 아이는 우리와 같이 다닐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해라.”
“예.”
“그럼 이만 일어나자. 벌써 해가 중천이다. 야심한 시각에는 그들도 경계를 늦추지 않을지도 모르니 가급적이면 빠른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하는 게 낫다.”
“어? 나는?”
장추삼이 자신을 가리키며 황당해했다.
“엥? 네 녀석이 있었구나?”
‘엥, 네 녀석이 있었구나? 이 노인네가 사람을 뭐로 보고 이러는 거야!’
늙으면 사람이 이렇게 잊어버리는 게 많다니까 하면서 박옹이 장추삼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도 할 일이 없어서 박옹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박옹이 목뒤를 손으로 두어 번 꾹꾹 누르고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많이 피곤했으리라.
“말을 해요, 말을! 난 뭐 하냐고요!”
“가만 좀 있어 봐, 이 녀석아. 생각하잖아.”
번뜩!
위의 말을 볼 때 애당초 박옹은 그를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는 거다. 좀생이 같은 노인네가 분명 어제 일을 담아 두었다가 지금 분풀이하는 게 틀림없었다. 동글동글한 것은 액면만이고 마음속은 삐죽삐죽 날이 서 있을 것이다.
정의의 응징을 위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박옹이 한마디 했다.
“너, 뭐 잘하냐?”
“엥?”
“뭐 잘하냐고 묻잖느냐.”
“으음…….”
“매복? 은신? 아니면 어디 큰 세가에서라도 지내봐서 전체적인 상황이라도 잘 파악하냐?”
“으윽…….”
“말귀를 못 알아듣나? 뭘 잘하냐고 묻잖아?”
“그, 그게…….”
헹 하고 코웃음을 치며 박옹이 실실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워서 멋지게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할 말이 없다. 원통하고 절통한 일이지만 현실은 지독히도 냉정한 것이었다.
단리혜가 입을 가리고 웃는 게 보여서 얼굴까지 빨개졌지만 박옹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어제 당한 수모를 이자까지 쳐서 받겠다는 의지가 뚜렷이 보였다.
“쌈질 좀 하나 본데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거든. 뭐, 말발이 좋다면 정탐이라도 시키겠지만 시비 거는 거 외엔 별 볼일 없는 주둥이 같고. 문젤세, 문제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적당히 놀렸다고 생각했는지, 참혹하게 인상을 구기고 있는 장추삼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박옹이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목소리와 내용은 전혀 다른 색깔이었다. 그래서 장추삼은 더 슬펐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바쁘게 일을 하는데 네 녀석 혼자서 객방을 지키라고 하긴 뭐하니 무엇이든 해야겠지. 지금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너는 무룡숙 근처 아무 주루―되도록 큰 곳이면 좋겠지―에 가서 하루 종일 죽치며 사람들이 그곳에 관해 뭐라고들 하나 청취하거라. 본래 여론 수렴처럼 중요한 일도 없는 법. 적을 알고 나를 알면 필승이라고 하였으니 근처 사람들이 평하는 무룡숙을 알아 두는 것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끄응.”
말이 좋아 여론 수렴이고 적을 아는 것이지, 이건 하루 종일 주루에 멀거니 앉아 있으란 말 아닌가. 너무 기가 막혔지만 도대체가 할 말이 없다. 완패다.
“자, 그럼 각자 맡은 일을 하러 가자고!”
다섯 명이 힘차게 일어섰고 강시 비스무리한 것 하나가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끈 떨어진 연이 따로 없네. 젠장!’
참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장추삼은 어떻게든 인격체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잠깐 흥분해서 덩치 큰 점소이 녀석을 갈궈 주었지만 천천히 냉정을 찾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온 신경을 청력에 집중시켜 오가는 말속에서 무룡숙이라는 말을 잡아내어 보았다.
흥분하기 잘하는 장추삼의 성격을 고려하여 주변 업무에서 제외시킨 박옹의 배려였건만 ―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는 곧이곧대로 믿고 어쨌든 시킨 일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그리고 반 시진 후.
‘젠장!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말이 여기저기서 엉키고 먼 곳에서 떠드는 인간들과 가까이 있는 인간들의 소리가 섞이니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나! 자리를 바꾸든가 해야지, 원.’
그는 아까 기죽인 덩치를 불러서 주루의 중앙에 위치한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또 반 시진 후.
‘으아아악! 아예 이놈 말과 저놈 말이 합쳐지잖아! 됐어! 안 해! 애초에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업무를 내린 늙은이의 잘못이야. 난 최선을 다했다고!’
머리를 쥐어뜯던 장추삼은 퀭한 눈으로 점소이를 불러서 화주에 간단한 안주를 시켰다. 술이라도 붓지 않고서는 날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을 성싶었다.
낮술을 금기시하는 그였으나 이번만은 예외다. 열통이 터져서 죽겠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주루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순 없다.
그러나 막상 술이 나오자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낮술에 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압도적인 공포에 관해 잘 알 것이다. 하루 종일 시체가 됨은 물론 빠개지도록 아파 오는 머리며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술 냄새에, 잘못 걸리면 다음 날까지도 발목이 잡힌다. 숙취의 해소 방법은 오로지 잠일 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의 낮술.
청빈로에서 한창 힘주고 다닐 무렵의 장추삼 역시 객기로 한번 먹었다가 된통 걸려 본 경험이 있기에 금기시하여 여태껏 ‘낮술은 세 잔만’의 신조를 잘 지켜 왔던 터였다. 그래서 눈앞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술병이 못 미더운 것이리라.
‘에이, 이거 어쩌지? 확 먹고 퍼져 잘까? 아냐, 괜히 그랬다가 내일까지 해롱거리면 그 무슨 망신이겠어.’
일 시켜 놓았더니 술이나 먹었다고 방방 뜰 박옹이 떠올라 더 손이 안 간다. 그렇다고 안 먹자니 너무 맹숭맹숭하다. 할 일이 없으니 괜스레 한 잔 따라 놓고 여기저기 눈동자를 굴리게 된다.
많은 수의 사람들은 그만큼의 색을 가지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내음을 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침울했던 장추삼의 입매에도 어느새 힘없는 미소가 어렸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에겐 저마다 가지는 고유의 모양새와 그 각자의 느낌이 있고 숨기려 해도 자연적으로 드러나지 않는가.
‘재미있군. 구경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이 동종에의 관찰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아주 제대로가 아닌가. 에라, 느긋하게 관전자나 되어 볼까나?’
그런데 그도 모르는 게 있었다. 관전자의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그 위치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들을 바라보는 지금에도 누군가가 똑같은 입장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 했던가?
다행히 장추삼은 눈치가 빠르다. 아주 빠르다. 그래서 그를 응시하는 어떤 시선이 있음을 곧 잡아내었다.
‘뭐야? 어떤 놈이 감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눈치 하면 청빈로 칠공토혈! 어디서도 틈을 주지 않는 장추삼이었다.
어디서 감히 그를 훔쳐보고 있다는 건가!
눈길을 잡아내는 데는 두 번의 목 움직임이 필요 없었다. 오른손잡이의 특성상 좌측으로 한 번 좌중을 훑었던 그의 고개가 우측으로 이동하자마자 바로 시선의 주인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언가 사건을 기대했던 장추삼은 맥이 다 빠졌다.
그곳엔 파리하고도 여린 사내가 하운만큼이나 맑은 미소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사건? 솔직히 말해서 시비를 바랐던 것이다. 제대로 한번 어우러지길 바랐다. 기분도 꿀꿀한데 몸 한번 풀면 기분 좋게 땀도 흘리고 마음속까지 상쾌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뒷골목 시절 자신보다 약자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철칙이었지만, 먼저 시비를 거는 놈들에게는 관대히 예외를 베풀어 몸소 지도를 내려 주곤 했다. 그나마 자신이 손봐 주면 병신은 만들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저런 얼굴엔 인상도 쓰기 어렵다. 악의라곤 찾아보기도 어려운데 어디서 시비인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으며 잔까지 쳐드는 사내에게 바보처럼 마주 잔을 드는 장추삼의 입에서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오늘 일진? 보기 드문 최악의 날 중에 하나이리라.
그러고 보니 저 사내는 병약해 보이면서 무슨 놈의 낮술인가? 의원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주워들은 것도 있고 안색만으로도 판단한 상태가 느껴지기에 잔을 든 사내가 결코 정상이 아니란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저 저런 사람은 술을 마셔선 안 된다. 아니, 술을 좋아한다면 몸이 약한 사람이라도 조금씩 즐기는 건 뭐라고 할 맘이 없다. 그런데 천하의 장추삼마저 꺼리는 낮술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낮술이 왜 그리 인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가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장추삼 본인의 경우나 수많은 주변 사람의 경험담으로 미루어 볼 때 밤에 즐기는 그것보다 더 효과적(?)임에는 틀림없다.
남의 일이라고 무시하려 해도 그가 보여 주었던 맑은 미소가 왠지 마음에 걸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유기(遺棄)하고 바삐 제 갈 길을 가다가 찜찜해서 목뒤가 따끔거리는 느낌이랄까?
‘남이야 대들보로 이를 쑤시든 뭘 하든 내가 무슨 상관이람? 거기다 성인 아닌가? 다 큰 아저씨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관둬라, 관둬. 또 쓸데없이 끼어들었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라고 무시하고 한 잔을 주욱 들이켜니 식도를 타고 내려간 액체는 용암이 되어 배에서 치고 올라와 전신을 싸하니 감싸고 돈다. 빈속도 아닌데 즉각적인 효력이 나타나는 한 방! 과연 낮술이라 하겠다.
한 잔을 더 들이켜니 알딸딸한 것이 기분은 좋은데 머릿속에서 벌써 신호가 들어온다.
주사가 없다고 장추삼이 취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술을 끊어서 마실 줄 알고 자제를 한다는 것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
‘어이쿠, 이거 아니다. 한 방 더 맞았다가는 그대로 주저앉겠다. 역시 낮술이다!’
목을 한번 소리 나게 꺾고 정신을 가다듬은 장추삼의 눈이 자연스럽게 뒷자리의 남자를 향했다.
온화한 청년은 장추삼이 계속 자신을 힐끔거려도 여전히 웃음으로 마주해 주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말이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남자가 자신을 계속 주시하면 시비를 걸려는 경향이 있다. 그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한 장추삼이기에 청년의 반응은 분명 의외였다.
가슴팍에 새겨진 학 문양처럼 고고한 품성이 있는 건지, 아니면 바보인지. 모자라다 보기 어려운 생김새와 분위기를 종합한다면 바보는 아닌데.
“쿨럭! 쿨럭!”
웃던 청년이 갑자기 격한 기침을 토해 내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온 울음처럼 그의 기침은 격렬하고 근원적인 무엇이 있었다.
쨍그랑.
청년의 손이 온몸의 진동을 버티지 못하고 들고 있던 잔을 놓쳤기에 바닥에 부딪친 그의 취옥색 술잔이 산산이 깨졌다.
그 순간 장추삼은 자신의 무언가가 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런 기분을 분석할 여유도 없이 어느새 청년의 등을 어루만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반사적으로 움직인 몸과 마음이기에 생각이고 뭐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