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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9권 (완결)
딸기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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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9권 (완결)
지은이/ 딸기모카
발행인/ 박성인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
주소/ 서울시 강북구 도봉로 180, 광희빌딩 4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an_gul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6959-707-4 (05810)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의 서면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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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38.
39.
40.
외전. (1)
외전. (2)
38.
갑작스럽게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는 아주 컴컴한 밤이었다. 조용히 몸을 일으키자, 구석진 곳에 대충 침구를 깔고 잠든 제논과 사무엘이 보였다.
침대 귀퉁이에는 모리와 지고르가 잠들기 전과 마찬가지로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신기한 건, 그들 역시 곤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나의 기척에 누구 하나 눈을 뜰 법도 한데, 사위는 적막하기만 했다.
“그…….”
누구라도 깨워야 하나 싶어 입술을 뗐던 나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이 고요함에서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건 그러니까…….
“페브린 수도원.”
한밤중에 찾아왔던 유령을 만날 때 느꼈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설마 이번에도 유령이 튀어나온 걸까? 벨라디아 성은 버려진 지 오래된 곳이니 유령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침대를 빠져나와 잠든 이들을 둘러본 내가 슬쩍 바깥으로 나왔다.
한밤이긴 해도 달이 밝고 구름이 없어서 둘러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문 옆에는 나다브가 있었는데, 다른 듀라한들과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누구 있어?”
혹시나 해 허공에 불쑥 말을 걸어 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가 너무 과민했나? 그냥 들어가서 못다 잔 잠이나 잘까?’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고민하던 내가 의미 없이 시선을 돌렸다. 텅 빈 내성 정경을 별생각 없이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소아나는?’
듀라한들이 전부 내 눈 닿는 곳에 있는데, 소아나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소아나는 매니까 어느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을 수도 있겠으나…….
‘모두 여기 있는데 혼자 따로 떨어져 있을 만한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소아나의 부재를 깨닫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잠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습관처럼 팔찌를 매만진 내가 잠시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내성은 좁으니까 한 바퀴 돌아보는 데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달빛에 의지해 메마른 땅을 둘러보며 걸었으나 어디에서도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그냥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건가?’
주탑을 끼고 주변을 빙글 돌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손에서 화끈거리는 느낌이 났다.
“권능?”
숙직실 문을 열고 나올 때는 멀쩡했던 나의 손에서 찬란한 녹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명확했다.
“소아나!”
적막한 내성 뒤뜰에 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소아나! 어디 있어?”
머리를 되찾은 소아나가 이 근처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안식을 주어야 한다는 듯 일렁거리는 이 힘이 그걸 증명했다.
어두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리던 나의 시선이 구석진 곳에 닿았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검은 그림자였는데, 눈에 힘을 주고 응시하자 그것이 작은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열려 있는 문 너머는 어둠뿐이었으나, 본능적으로 저 너머에 무언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주변을 살핀 내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서니 건물의 외형이 더 잘 보였다. 평범한 마구간이나 병사들의 숙소는 아니었다.
“예배당?”
비록 일반적인 예배당과 세밀한 장식이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예배당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아나는 본래 탄생의 성직자였다고 했지.’
더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안쪽으로 발을 내디디자 밑에서 무언가 빠득,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발밑으로 어스름하게 보이는 것은 부서진 나무 의자였다.
내 발밑만 어지러운 게 아니었다. 예배당 내부는 누가 난동이라도 부린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혹시 여기에서 전투라도 있었던 건가?’
외성에서도 홉고블린들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내성이라고 무언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혹시 탄생이 무언가를 숨겨 두었던 건 아닐까?’
부서진 나무 조각을 만지작거리던 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 직후, 나는 정면에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발견했다.
달빛이 가득 들어와서 색색의 유리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우뚝 걸음을 멈춘 내가 가만히 정면을 응시했다.
“……소아나?”
스테인드글라드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앉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저건 소아나였다.
“대체 언제 머리를 되찾은 거야.”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앉아 있던 소아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니 좁은 예배당 내부의 공기가 출렁거렸다.
밤이라서 잘 티가 나지 않고 있던 검은 연기가 소아나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나뭇결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아마 이 예배당 내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원흉이 바로 저것이었던 모양이다.
저것은 이제껏 머리를 찾은 듀라한들에게서 꼬박꼬박 보였던 검은 기운이었다.
‘이 정도로 짙은 기운이라니.’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머리를 되찾고 얼마나 지난 거지?
“대장님.”
“너 괜찮아?”
“물론 괜찮습니다. 보시기에는 조금…… 불안정해 보이시겠지만요.”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불안정해 보이는데.
그러나 나에게 건네는 목소리만큼은 아주 차분하고 침착했다.
“머리를 되찾았으면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서 나를 깨웠어야지.”
“저는 성직자로서 오랜 시간 훈련받은 몸입니다. 기다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소아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둠 속에 선 그녀는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깊은 눈매를 가진 나이 지긋한 여성이었다.
다만 곧게 편 자세나 고아한 얼굴이 나이를 잊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오히려 제 예상보다 빨리 오셨습니다.”
“다른 듀라한들은 네가 머리를 되찾았다는 걸 알아? 인사는 한 거야?”
“그들은 모릅니다.”
“어째서 알리지 않았어?”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소아나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빙그레 웃기만 했다.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스테인드글라스를 돌아보았다.
“저는 대장님의 곁을 지키지 않았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지요. 자리를 이탈해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저의 뒤로, 배신자의 검이 날아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저런 소리를 하는 까닭은, 본인의 죄를 고해하고자 함인가? 내가 그 행동을 질타해 주기라도 바란 거라면 단단히 잘못 짚었다.
“글쎄.”
말끝을 늘이며 입술을 삐뚜름하게 만든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생각에 과거의 대장에 너에게 바란 의무는 자길 지켜 달라는 게 아니었을 것 같은데.”
나의 말이 의외였는지, 소아나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혹시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아니.”
내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다. 몇몇 장소나 상황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동화되지만, 금세 남의 일처럼 관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가령 이곳에서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관찰자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 트리스탄의 죽음을 목도하고 눈물 흘릴 때와는 정반대였다.
“기억은 안 나지만 과거의 대장이 너를 거둔 까닭은 다른 기사들을 돌보기 위해서니까. 네 의무 또한 당연히 그와 연관되었을 거라고 추측했을 뿐이야.”
나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던 소아나가 눈매를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마치 총명한 학생을 보는 선생님의 얼굴 같았다.
그녀는 잠시 나에게 두었던 시선을 다시 옮겼다.
“이 예배당이 지어질 때 가장 공들인 부분은 저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달빛을 가득 머금은 스테인드글라스였다. 기도하고 있는 여성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는데, 이 낡고 오래된 예배당에서 유일하게 세월의 흔적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래 보이네.”
“대장님이 손수 설계하셨지요.”
그 과거의 대장은 참 재주도 많았던 모양이지. 온 세상천지의 생명들을 자유롭게 해방해 주기도 모자라 이런 작은 예배당 하나 지을 때도 손을 거들다니.
“그리 신경 써서 지으셨는데, 정작 예배당을 방문할 때는 꼬박꼬박 제게 먼저 방문 의사를 전해 오셨어요. 행여 문이 닫혀 있으면 노크를 하셨지요. 예배당에 노크를 하고 들어오다니, 참 귀여운 행동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노크를 하고 들어올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걸 바란 적은 없으니까요.”
낮게 웃음을 흘리던 소아나가 한숨 같은 중얼거림을 뱉었다.
“이 예배당은 신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오직 저를 위한 공간이지요.”
“사실상 거처였다는 소리네.”
“다른 누구도 이런 공간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의 출신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다른 기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에는 부족한 몸이라서 이런 개인적인 공간을 마련해 주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일견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소아나가 본래 탄생을 섬기던 성직자였으니,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배려를 가장해 따로 떼어 놓은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