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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5권
딸기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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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5권
지은이/ 딸기모카
발행인/ 박성인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
주소/ 서울시 강북구 도봉로 180, 광희빌딩 4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an_gul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6959-703-6 (05810)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의 서면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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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0. (2)
21.
22.
23.
24. (1)
20. (2)
굉장히 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따져 물으려는 찰나, 제논이 외마디 탄성을 뱉는 게 들렸다.
“앗!”
사람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있던 제논이 용케 나를 발견하고 후다닥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릴리아에게 냉소적으로 비웃던 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한껏 불퉁한 표정이 평소 내가 알던 제논이었다.
꼴만 보아서는 그가 릴리아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성싶었다. 한껏 목소리를 죽인 그가 빠르게 속삭였다.
“춤 다 추셨으면 부르시지! 제가 저 무시무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위기에 봉착했었는지 아십니까?”
위기는 모르겠고 한 방 먹이는 건 봤지.
그렇게 대꾸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울상을 짓고 선 제논의 표정은 정말로 고초를 겪어 지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릴리아의 앞에서는 기세 좋게 굴었어도 속으로 힘들었을 수 있으니까.’
평소 제논의 심약함을 반추해 보면, 확실히 그에게는 이런 자리가 꽤 큰 스트레스일 터.
생각해 보면 그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에도, 내 정체를 알면서 모른 척 하려 했었다.
또, 그의 형 문제 때문에라도 황가에 좋은 감정을 가지긴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의 제논이 측은해 보였다. 그의 선택이라고는 하나 원치 않은 자리에 끌려와 있는 셈이니 나라도 잘 챙겨 주어야겠다.
“대체 언제까지 있어야 합니까?”
“오래 있진 않을 거야. 어차피 연회는 내일도 있을 예정이니.”
“내일 또 참석합니까?”
제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총 3일간 열릴 예정이라고 시종들에게 듣지 못했어?”
사실 평소 열리는 연회 기간은 이보다 길다.
지금의 ‘3일’은 어디까지나 축하 연회가 두 번이나 무산되고 난 뒤, 다시 날짜를 잡는 과정에서 기존에 정해진 황실 일정을 빼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저를 놀리려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죠.”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비효율적이라고 중얼거린 그가 입술을 삐죽이며 작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3일 내내 저 황자와 입장하시는 겁니까? 저는 저 무서운 사람들 틈에서 이렇게 혼자 덜렁 다녀야 하고?”
“그야…….”
곧 황궁을 나갈 테니 마지막으로 하인리에게 힘을 실어 주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대답하려는데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세상에, 다급하게 어디를 가시나 했는데. 설마 참석하시기 전에 협박이라도 받은 건 아니시죠, 마법사님?”
눈치를 보는 다른 참석자들과 달리, 거침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오는 이는 릴리아였다.
그 뒤를 졸졸 따라붙던 릴리아의 추종자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멈춰 섰다.
‘도대체 나에 관해서 무슨 소문을 퍼뜨렸기에 반응이 저래?’
언데드와는 눈만 마주쳐도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언데드에게 물리면 살이 썩는다는 소리는 들어 봤지만……. 설마 내가 자기들을 물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떨떠름하게 추종자들을 훑어보는 사이 릴리아가 내 앞까지 다가왔다. 그녀는 조금 전의 대화 때문인지, 곱지 않은 눈초리로 제논을 응시했다.
“연회장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면 연구에 협조하지 않겠다던가. 뭐, 그런 협박이요.”
상냥하게 말려 올라간 입매와 달리 릴리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은 다소 날카로웠다.
“작은 언니, 손님의 관심을 독점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다른 분들께도 기회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나와 릴리아의 악연을 아는 이들은 눈을 빛내며 우리의 대화를 주목했다. 내가 몬스터일까 봐 말도 못 거는 주제에 호기심은 버리지 못하고 있나 보다.
“관심을 받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언니의 성격은 그대로구나. 옛날 생각이 나서 그리워지네.”
릴리아는 당당했다. 황태자의 약혼녀가 가지기에는 좋은 자신감이었다.
그 자신감이 불러온 결과도 책임질 줄 알아야 할 텐데.
“네 말은 두 가지나 잘못되었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내가 심드렁한 눈으로 릴리아를 응시했다.
“첫 번째로 이 연회는 나를 위한 것이니 내가 관심을 받고자 노력할 까닭이 없어. 두 번째로 너는 옛날이 그립지 않을 거야.”
나의 단정에 릴리아가 반박하려는 듯 입술을 뗐다. 그러나 그녀보다 내가 먼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무리 네가 멍청하기로서니, 와인이나 뒤집어쓰던 옛날을 그리워할 리가 없잖아?”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지금 우리의 대화는 상당히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당시의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 역시 수두룩하고 말이다.
“아니면 벌써 잊었니?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약혼녀 있는 남자의 파트너를 자처하던 그 시절을?”
“하, 지금 무슨……!”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너는 그때 ‘내 약혼자인 남자’의 파트너로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고 다녔었어.”
릴리아는 다급하게 눈을 굴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마 막셀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곤란할 때 막셀은 언제나 나서서 황태자의 권위를 내세워 주었으니까.
막셀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릴리아와 내가 대치 중인 것을 보고선 황급히 이쪽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끼어들지는 못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제논과 사무엘이 동시에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시켰기 때문이다.
‘은근히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릴리아는 내 미소를 비웃음이라고 이해했는지, 사납게 미간을 찌푸렸다.
“작은 언니. 언니가 황궁에 온 뒤로 얼마나 많은 분란이 일어났는지 알아?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이렇게 화려한 연회도 열고, 모두가 노력하고 있잖아. 그런데 어쩜 언니는 그들의 노력을 비웃을 수 있어?”
앞뒤 인과성도 따지지 않은 채 자극적인 말만 끌어와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릴리아의 화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런 면에서는 얘가 참 발전이 없어.’
아침의 신은 자기 대리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걸 좋아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분노한 듀라한이나 흉포한 와이번을 막아 낸 기억은 있을지언정 분란을 일으킨 기억은 없는데. 그보다 너야말로 좀 조심하는 게 어떨까?”
그러고는 긴 숨을 내쉬며 힐끗, 주변을 둘러보았다. 목소리를 조금 낮출 필요가 있었다.
“오죽하면 네 소문이 내가 있는 궁에까지 들려오겠어.”
“……내 소문?”
릴리아의 얼굴에 미미한 불안감이 스쳤다.
하인리는 막셀이 보고 있는 앞에서 황제에게 ‘릴리아의 수상함’을 보고했다고 했다.
그러나 릴리아가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걸 보니, 막셀이 아직 릴리아를 다그치거나 추궁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도 헛소리를 하기에 릴리아를 버리기로 한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지.’
하기야 막셀은 릴리아의 선한 마음씨를 무척이나 신뢰했다. 그러니 오히려 하인리의 말을 믿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렇다면 둘이 사이좋게 손잡고 추락하라지, 뭐. 그런 생각을 하자, 그제야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방 출신인 너의 상식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릴리아. 고귀한 황궁의 일원이 되려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단다. 문란한 과거는 빨리 정리해야 마땅하고.”
‘문란하다’는 나의 말에 릴리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문란하게 남자들과 놀아났던 건 작은 언니잖아. 아린 경이 언니의 부정을 고백했던 걸 잊은 거야?”
“아, 주인을 해치고 감옥에 갔다는 그 ‘아린 토슨’? 충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기사였으니 그의 말 또한 신뢰할 수 없지 않겠어?”
조소하며 되묻자 릴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껏 혀를 찼다.
“신의 대리자로서 잘못된 길로 가는 신의 자식을 어찌 두고 볼 수 있을까. 하물며 잘못된 길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때였다.
뺨에 닿는 시선이 따가운 느낌에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음악이 흐르고 있음에도 춤추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신에 아까보다 더 많은 인파가 우리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었다.
대놓고 이쪽을 구경하던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아.
나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이거 놔! 나는 로암의 공녀다! 감히 나를 이렇게 취급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황궁의 기사들에게 포박되어 재판장에 끌려온 날, 당시 재판을 참관하러 온 이들이 나를 저런 표정으로 보았다.
추락한 나를 보며 희열을 느끼고, 비웃고, 호기심을 느끼고, 재미있는 사건으로 여겨 구경하던 사람들.
그들은 이곳에 서 있는 저들이기도 했다.
‘저들의 다음 구경거리는 릴리아구나.’
기껏 끌어 올렸던 투쟁적인 감정이 물 먹은 모닥불처럼 단숨에 자취를 감추었다.
“기껏 신의 축복으로 잠잠해진 황궁이, 부정적인 기운에 다시 물들까 걱정이구나.”
무심하게 중얼거린 내가 몸을 돌렸다. 릴리아가 뭐라고 말을 걸어왔으나 더는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구역질이 치밀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 * *
첫날의 연회를 어영부영 보낸 뒤, 둘째 날은 불참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연회의 주인공이 불참한다는 건 연회를 주최해 준 이에게 굉장한 무례를 저지르는 행동이었지만, 황실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의 불참은 갑작스러웠기에 다른 참석자들은 연회장에서나 소식을 전해 들을 것이다. 그러나 하인리와 사무엘, 그리고 제논에게는 미리 전했다.
하인리야 당연히 홀로 연회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사무엘은 참석하기 싫은 눈치였으나 사제들 때문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듯했다.
그리고 제논은…….
“이렇게나 평화로운걸!”
저렇게 바크의 새장 옆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바크를 무서워하는 거 아니었어?”
“어제의 그 끔찍한 눈초리들과 비교하면, 차라리 듀라한이 낫습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엄살을 부리는 그를 힐끗 본 내가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아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긴 의자를 가져다 둔 덕에 몸이 편했다.
“와,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제논의 말대로였다. 얼마나 규모가 큰 연회인지, 소음이 아련하게나마 들려왔다. 제논에게 들리는지 모르겠는데, 내 귀에는 음악까지 구분될 정도였다.
“도대체 저런 게 뭐가 재밌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