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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4권
딸기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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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4권
지은이/ 딸기모카
발행인/ 박성인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
주소/ 서울시 강북구 도봉로 180, 광희빌딩 4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an_gul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6959-702-9 (05810)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의 서면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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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6.
17.
18.
19.
20. (1)
16.
그 어떤 워프 게이트도 이렇게 빨리 사람을 이동시키지 못한다.
심지어 마력석도 없이, 마법진도 없이,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수식만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제논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몇 번이나 양탄자를 더듬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바로 눈앞에서 일어났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네시! 아넬리 님의 냄새를 찾아!”
네시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문으로 뛰어나갔다. 네시를 내보낸 제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 유령! 여기 있지? 당장 나타나!”
허공에 대고 소리쳤으나, 유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논은 신경질적으로 지하실을 빠르게 훑어봤다. 먼지 쌓인 가구들에서는 어떠한 이상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놓치는 게 있을까 싶어서 책상 아래며 서랍장 뒤며 마구 뒤지는데, 우두커니 굳어 있던 사무엘이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안 계실 거다.”
“뭐?”
사무엘은 그 어느 때보다 창백한 안색이었다. 그는 제논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양탄자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도 황궁에 계시겠지.”
“황궁?”
“그곳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얼떨떨하게 사무엘을 보던 제논이 양탄자를 돌아보았다. 저 양탄자에서 발동한 워프 게이트가 황궁과 연결되어 있다고?
뜻밖의 장소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제논은 이내 다른 의문을 깨닫고 퍼뜩 고개를 돌렸다.
“댁이 그걸 어떻게 알아?”
어두운 얼굴로 침묵하던 사무엘이 이내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제 정말 발을 뺄 때군. 더는 네가 개입할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뱉은 사무엘이 지하실을 나가려는 듯 몸을 돌렸다. 제논이 그런 그를 다급하게 불러세웠다.
“잠깐!”
“너는 이제 너의 일상으로 돌아가라.”
명백히 선을 긋는 사무엘의 말에 제논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댁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고.”
“여기서 갈라지지. 내가 나가는 길까지 안내해 줄 필요는 없겠지?”
“기다려!”
문가까지 간 사무엘이 무심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이를 악문 채 그를 노려보던 제논이 미심쩍은 음성으로 물었다.
“아넬리 님이 황궁에 계시다는 건, 일단 안전하시다는 소리야? 조금 전의 마법으로 다치거나, 그런 일은 안 일어났다는 거지?”
“그래.”
그 대답을 끝으로, 사무엘은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제논은 망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서 있던 제논이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내 끼고 있던 반지가 두세 갈래로 갈라지더니, 완전히 쪼개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동강 난 반지 조각을 내려다보던 제논이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다. 그동안 옴짝달싹 않던 마력이 꿈틀거리다가 그의 손끝으로 치솟는 게 느껴졌다.
“하, 씨. 이래서 불법 마도구는 안 쓰려고 한 건데. 빌어먹을 데킨.”
마력이 풀리려면 진작 풀렸어야지.
허탈한 표정을 한 제논이 반지 조각을 발로 툭 쳤다. 모든 게 다 끝났는데 마력이 풀려 봐야 어쩔 거야.
제논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사무엘은 곧장 이곳을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넬리와 그녀의 듀라한들까지 더해져 무척 소란스럽던 일상이었다.
순식간에 그 모든 게 깨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적막한 수도원 풍경을 둘러보던 제논이 입술을 깨물었다.
때마침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온 네시가 제논에게 다가왔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네시와 단둘이 다니던 게 제논의 본래 일상이었다.
지금은 그냥 짧은 동행이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이다. 돌아왔을 뿐인데…….
“네시, 네가 생각해도 너무 조용하지?”
네시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호응했다. 그런 네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제논이 가방에서 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반짝거리며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스승이 벼락같이 호통쳤다.
―이 녀석! 잘도 그동안……!
“지금 돌아갑니다.”
당장 질타를 늘어놓으려던 스승이 멈칫했다.
―뭐?
“돌아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러기야 했다만.
찜찜함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의 스승이 제논을 의심스럽게 보았다.
“저 그럼 말씀하신 시험 다 통과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 있는 거냐? 풍경이 왜 그래?
“이제 귀환하면 공식적으로 스승님 후계자 되는 거 맞죠?”
―제논.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눈을 가늘게 뜬 스승의 물음에 제논이 말없이 입술을 다물었다. 복잡한 눈으로 스승을 응시하던 그가 깊게 심호흡했다.
“스승님, 차기 마탑주에게는 황제도 함부로 못 한다는 말씀 사실입니까?”
―그야 당연하지! 마탑이 점잖게 굴고 있어서 네가 잘 모르는 것이지, 사실 얼마나 위상이 높고…….
“그럼 됐습니다.”
덤덤하게 스승의 말을 자른 제논이 손끝으로 마력을 모았다.
“바로 가겠습니다.”
통신구 너머에서 이 광경을 본 스승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경악성을 뱉었다.
―너 마력 봉인은 어떻게 푼 게야!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 한껏 마력을 끌어 올리던 그가 낮게 탄성을 뱉었다. 태연하게 스승을 돌아본 제논이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었다.
“아, 어쩌다 보니.”
잔소리는 마탑에 돌아가서 들을 작정이었다.
* * *
「꿈에서라도 경이 보고 싶은 모습을 꾸며낸 것인지도.」
일전에 꿈을 꾸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날.
아넬리의 대답을 들었을 때 사무엘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자신이 아넬리에게 가진 이 감정이 묘하게 비틀려 있다는 걸.
또한 그 근원이 생각보다 더 먼 옛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누군가에게 쫓기듯 수도원을 빠져나왔으나,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사무엘은 걸음을 멈추었다.
초조함으로 인해 손바닥에서는 땀이 찼으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고 깨끗했다.
눈앞에서 아넬리가 사라지는 순간 들었던 음성이 떠올랐다.
《멈춘 시간은 운명의 실로 말미암아 흐를 터이니, 끝내지 못한 의무를 행하기 위함이라.》
아넬리는 순식간에 반투명하게 흐려졌다. 그녀를 휘감은 눈부신 빛은 점점 더 강해졌고,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 또한 선명했다.
음성을 듣자 영문 모를 꿈의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깨달음은 벼락과도 같았다.
고대 성지에 서 있는 아넬리의 모습, 유독 구체적으로 떠오르던 수도원 정경, 그에게 웃어 주던 여인.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그 여인을 향한 사심까지.
《이는 배신자의 눈물로 기록되었으매, 그는 참회의 언약을 이행했노라.》
휘날리던 머리카락, 놀란 얼굴, 그를 똑바로 응시하던 눈빛.
사무엘은 그 얼굴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녀는 사무엘의 영혼에 새겨져 있던 사람이었다.
몇 번이나 이 세계를 떠돌며 찾아 헤맸던, 제발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던.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무엘은 무심코 자신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매끈하고 아무 흉터도 없는 살결이었다.
당연하다. 그의 목에 흉터가 남을 까닭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먼 옛날 누구였든, 그는 죽고 없다.
절실한 기억이 영혼에 새겨져 있다 한들 이러한 사실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사무엘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긴 잠에 빠져 일평생 단 한 사람을 기다려 온 다른 기사들과 달리, 그는 숱한 일생을 사는 인간의 영혼이 되었다. 그녀 또한 그렇게 되었고.
이 기억도 그가 마지막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여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를 논하는 건 다시 만나서 해도 늦지 않다. 일단…….’
혼란스러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사무엘이 일단 품에서 통신용 마석을 꺼냈다. 아넬리와 동행하고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던 직통 연락망이었다.
오랜만의 연락임에도 상대는 곧장 응답했다.
―사무엘 경!
“보고가 늦었습니다, 대사제님.”
―도대체 그간 무슨…… 아니, 그보다 경. 이제까지 부활자님을 모시고 있었다는 게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덤덤한 사무엘의 목소리와 달리 대사제는 잔뜩 흥분한 음성이었다.
―어찌 그 중요한 사실을 신전에 알리지도 않고……!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
“네. 부활자님을 인도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계시에 따르느라 잠시 연락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에 대사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평소 순도 높은 신성력을 타고난 사무엘을 두고 종종 신의 계시를 받았느냐 물어온 대사제였다.
언제든 계시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대우했기에 대사제는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심각한 목소리로 다른 화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