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00002.html
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3권
딸기모카







Section00003.html
부활한 악녀를 찾지 마세요 3권
지은이/ 딸기모카
발행인/ 박성인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
주소/ 서울시 강북구 도봉로 180, 광희빌딩 4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an_gul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6959-701-2 (05810)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의 서면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Section00004.html
목차
11. (2)
12.
13.
14.
15.
11. (2)
제논을 앞장세워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자리한 늪지였다.
우거진 수초가 제법 운치 있는 정경을 만들어 내었는데, 팔리데스는 물을 보자 또 뱃놀이가 하고 싶어졌는지 주변을 열심히 돌아보고 다녔다.
“어지간한 행사는 중앙 광장에서 이루어져서, 상대적으로 그 외 곳들이 한산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제논의 설명대로 늪은 한산했다. 물론 한산하다는 게 조용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늪지에는 새떼가 곳곳에서 조잘대고 있었다. 듬성듬성한 수초 사이에 동동 떠 있는 오리 몇 마리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제논이 불렀다.
적당히 평평한 바닥에 망토를 깔고 앉은 그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드실래요?”
그가 내민 건 반투명한 병이었다. 내부로 노란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게 보였다.
“축제 때만 파는 특산주라는데, 독하진 않답니다. 애들도 마실 수 있을 정도래요. 하도 맛있다고 강조해 대서 몇 병 샀는데 타이밍이 좋았네요. 아, 여기 앉으세요.”
뚜껑을 열어 보니 달콤한 냄새가 났다. 술이라는 걸 듣지 않았다면 과일 주스 정도로 생각했을 것 같다.
받아들긴 했으나 마시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자, 제논이 보란 듯 먼저 자기 몫의 병을 열어 들이켰다. 내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무심코 질문했다.
“취하면 밀어 버리려고?”
“컥, 쿨럭! 그런 농담 재미없거든요?”
마시다 말고 격렬하게 잔기침을 하던 제논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의했다.
하기야, 팔리데스도 함께 왔으니 급습은 불가능하겠지. 게다가 정의로운 늑대 네시가 곁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내가 주변을 가늠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제논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서렸다.
“저랑 하루이틀 다닌 것도 아닌데, 그렇게 못 미더우십니까?”
“농담이었어.”
“완전 진담이셨던 거 알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이럴 땐 눈치가 빠르네.
더는 발뺌하길 포기한 나는 대답 대신 술을 마셨다. 병째 들이켜는 건 처음이라 좀 어색했지만, 주둥이가 매끄러워 마시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한 모금 머금자 사과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술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살짝 차갑기도 해서 딱 좋았다. 예상보다 더 맛있는 술을 마신 덕분인지 기분이 나아졌다.
“그냥 주스 같죠? 이 정도로는 취하지도 않을 겁니다.”
풀어진 내 표정을 본 제논이 투덜거리며 다시 술을 홀짝였다. 나는 그가 깔아 놓은 망토 끄트머리에 앉으며 덤덤하게 대꾸했다.
“몇 번 당해 본 적이 있어서 그래.”
“예?”
“황궁에 인공 연못이 있거든.”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못이다. 현 황제 폐하의 대관식을 기념해 만들어졌다든가.
중앙에는 분수도 설치되어 있고, 의외로 깊어서 잉어도 키우고 있었다.
“아름다워서 연회 때면 많이들 찾는 장소지.”
또한 연인들이 은밀히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릴리아와 막셀도 그랬다. 특히 릴리아는 연못의 잉어들에게 밥 주는 걸 좋아했다.
릴리아가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직은 내 영향력이 제법 컸을 때.
그때 나를 추종하는 영애 몇이 릴리아를 연못에 밀어 버리려다 실패했던 적이 있다.
릴리아를 소중하게 여기던 이들은 내가 사주했다며 분노했다.
그들은 나에게 복수하려 한 것 같다. 내 장신구를 연못에 던지고, 내가 연못 근처를 기웃거릴 때 나를 밀어 버리려는 계획을 꾸몄다.
다행히 그들의 꿍꿍이는 너무도 뻔하고 투명하여 모를 수 없었다. 나는 그 장신구를 연못에 버린 셈 쳤다.
그들은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술 취한 내가 발을 헛디디길 바란 듯했다. 그들이 몰랐던 건, 생각보다 나의 주량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다.
두 번의 실패 후에 나는 이 일이 어영부영 마무리되었다고 여겼다. 그러던 와중…….
글쎄, 나는 기어이 그 연못에 빠질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물이 아주 차가운 연못이야.”
막셀이 릴리아에게 황후 폐하의 장신구를 선물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장신구를 뺏으려 했고, 그렇게 연못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아름답게 틀어 올렸던 릴리아의 머리가 온통 풀어 헤쳐졌던 게 기억난다.
릴리아에게서 나를 떼어놓은 게 막셀이었다. 그 과정에서 거칠게 밀쳐진 나는 장신구를 쥔 채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곧장 시종들이 나를 구했고, 물에 흠뻑 젖은 것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외상이 없었다. 당황한 막셀이 외투를 벗어 나에게 걸쳐 주었다.
「이럴 의도는 아니었어.」
어처구니없는 건 그 찰나 내가 느낀 기쁨이다.
그가 나를 걱정하고 신경 쓴다는 사실이 좋아서 순간적으로나마 모든 굴욕감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 장신구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실 줄은 몰랐어요, 공녀님.」
릴리아가 내 손에 들린 장신구를 가리키며 가냘프게 말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죄송해요. 공녀님께서 제게 설명해 주셨다면 드렸을 텐데 다짜고짜 화를 내셔서 당황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릴리아는 우는 와중에도 크고 또렷하게 말했다. 막셀은 그제야 내 손에 들린 장신구를 보았다. 이내 걱정과 미안으로 가득하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겨우 이런 것 때문에 괴롭히고 있던 거야?」
장신구 때문이 아니었다.
「저급한 여자들이나 할 짓을 네가 하다니.」
장신구에 담긴 막셀의 마음 때문이었다.
“아넬리 님.”
“응.”
늪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쓸데없이 감성적으로 변하려 한다. 그게 거추장스러워,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술병으로 관심을 돌렸다.
병을 크게 기울여 단숨에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제논이 주섬주섬 가방에서 또 웬 봉투를 꺼내 주었다.
“아무리 약한 술이라고 해도 빈속에 마시면 큰일 납니다.”
“이 정도로는 취하지도 않을 거라며.”
“그래도요.”
봉투 안에는 말린 과일이 들어 있었다. 아마 술을 살 때 같이 산 모양이다. 주름이 자글자글 진 과일은 필요 이상으로 달고 생각보다 질겼다.
“맛없어.”
“오늘 아니면 이런 걸 언제 먹어 보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건 사지 마. 그대 요리가 더 맛있어.”
무심하게 대꾸하며 말린 과일을 질겅질겅 씹는데 곁이 조용했다.
힐끗 옆을 보았다가 금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농담인 줄 아나?
“이건 진담이야.”
“……손목 주세요.”
엉뚱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말린 과일을 쥔 채로 얼떨결에 손목을 내밀자, 그가 가방에 들고 다니던 약을 꺼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상처가 아니야.”
“크든 작든 상처는 상처죠.”
“두면 나아.”
“흉터 남습니다.”
“기껏해야 살갗 조금 긁힌 거야. 흉터는 무슨.”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리자 내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던 제논이 눈만 들어서 나를 보았다.
“안 보여도 남습니다. 다친 걸 치료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처음과 같아집니까?”
그렇게 말하는 음성이 단호했다. 팔찌를 위로 밀어내고 과하게 약을 치덕치덕 바른 그가 손수건을 꺼내 묶었다.
팔찌에 손수건까지 감자 손목 꼴이 아주 괴상하게 되었다.
“과해.”
“좀 과하면 어때서요.”
리본 모양으로 예쁘게 매듭까지 만든 그가 뿌듯한 얼굴로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았다.
일전에 내 목에 리본을 매어 줄 때 느끼긴 했는데, 제논은 은근히 손재주가 좋은 것 같다.
“다쳤는데 좀 과하게 보살필 수도 있는 거죠.”
“다쳤는데 술 마시는 건 괜찮고?”
“에이, 그게 술입니까?”
술이니까 빈속에 먹으면 안 된다고 맛없는 말린 과일을 꺼낸 게 누군데.
도통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임에도 저렇게 고집스럽게 주장하니 반박할 마음도 나지 않았다.
헛웃음을 흘린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먹다 만 말린 과일을 우물거렸다. 너무 달아 혀가 얼얼해지다 못해, 점점 무뎌지는 느낌이 났다.
“그대는 방어구를 새로 산 거야?”
“어라? 알아보시네요?”
“당연하지. 지금 망토를 벗고 있잖아.”
제논의 몸에 팔목 보호대 같은 세세한 종류의 방어구가 늘어난 상태였다. 늘 망토로 꽁꽁 싸맨 차림이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 새삼 체격이 좋다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도구에 방어구까지 무슨 일이야? 사무엘 경이랑 싸우기로 했어?”
체격이 아무리 좋아도 사무엘에겐 힘으로 밀릴 것 같은데.
속으로 무심코 그런 품평을 하며, 나는 제논의 팔뚝을 힐끔거렸다. 제논은 나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그 인간이랑은 이런 거 없이도 싸우고 있습니다.”
“그야 그렇지만.”
“보통 로브에 가려져서 안 보이긴 하는데, 마법사들도 다 방어구 착용합니다. 기사들이 갑옷 착용하는 것처럼요. 공격용 마법 같은 건 시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어서요.”
“그 반지가 그렇게나 강한 공격용 마도구야?”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설명을 이어 가던 제논이 멈칫했다. 자신의 은반지를 떨떠름하게 내려다보던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마력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 착용 중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