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돌 03권
신의 아이돌 03권
신의 아이돌
03
박굘
신의 아이돌 03권
차례
Chapter 01. Take on me - 2
Chapter 02. 그리고 그다음 타자
Chapter 03. 제5 원소
Chapter 04. 빛과 그림자 - 1
신의 아이돌 03권
Chapter 01. Take on me - 2
동인천역 부근의 중학교 교문 앞으로 낡은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여기 이 학교 같은데? 맞지? 휘경아?”
백동원이 운전석 너머 중학교 운동장을 살피며 물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휘경도 중학교 건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요?”
“으음. 꼬맹이가 벌써 중학생이라니 세월 참 빠르구나.”
“그러니까요.”
휘경이 백미러로 보이는 강우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자, 그럼 나가서 기다려 보자.”
백동원이 먼저 운전석에서 내렸다. 강우와 휘경도 백동원을 따라 승용차에서 내렸다.
“강우야, 예진이 얼굴 기억하지?”
“네. 기억하고 있어요.”
“그럼 다행이다. 예진이가 나는 기억할까 모르겠어.”
휘경이 조금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강우 일행은 승용차에 기대어 예진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마침내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중학교 건물에서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학생들이 교문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강우와 휘경을 발견한 중학생 소녀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소란과 함께 중학생 소녀들이 강우와 휘경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
순식간에 소녀들 무리에 둘러싸인 강우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휘경은 그런 강우를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형?”
“그냥 옛날에 수경이 데리러 자주 갔었던 기억이 나서. 수경이는 잘 있지?”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 컸다고 많이 까불기는 하지만.”
“그래?”
휘경이 강우의 동생 수경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사이 강우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대부분 무리를 이뤄서 하교를 하고 있는 소녀들과 다르게, 작은 체구의 소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혼자 교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예진이지?”
휘경도 금방 작은 체구의 소녀를 알아보았다.
“그런 거 같아요. 형.”
강우가 소녀에게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강우가 몰려들어 있는 소녀들을 내려다보았다.
“잠깐만 비켜 줄래?”
강우의 부탁에 소녀 무리가 몽롱한 표정을 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좌우로 갈라져 길을 터 주었다.
“예진이 데리고 와요. 형.”
“알았어.”
휘경이 소녀들 사이를 헤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예진을 향해 중학생 소년 몇 명이 달라붙었다.
“야! 꽃거지! 오늘도 동사무소 가서 쌀 타냐?”
“…….”
놀리는 소년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예진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툭, 그러다 예진의 머리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
은은한 커피 향기가 느껴지자 예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내 어둡던 예진의 얼굴에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어렸다.
“오빠? 휘경이 오빠?”
“그래. 잘 지냈지? 아, 잠깐만.”
휘경이 예진의 손을 잡았다. 그러곤 예진을 괴롭히던 소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휘경의 시선에 소년들이 잔뜩 긴장했다.
“예진이가 좋으면 남자답게 잘해 줘. 이렇게 놀리지 말고. 알았니?”
잔뜩 혼을 낼 줄 알았던 휘경이 당부를 하자 소년들의 긴장이 풀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소년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강우는 달랐다. 어느새 다가온 강우가 잔뜩 겁을 먹은 소년들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얼굴로 경고했다.
“앞으로 예진이 또 건드리면 제대로 맞는다.”
딱 한마디였다.
“네, 네, 형.”
대장 격인 소년이 벌벌 떨며 대답했다. 한 차례 소년들을 쏘아본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내내 싸늘하던 강우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꼬맹이. 잘 지냈어?”
“강우 오빠!”
예진이 강우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강우의 품에 안겨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강우도 말없이 예진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강우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본데요?”
“그랬을 거다. 대진이보다 강우를 더 따랐던 아이였으니까.”
백동원이 강우의 품에 안겨 있는 예진을 보며 말했다.
* * *
“진짜 꿈만 같아요. 강우 오빠도 있고, 휘경 오빠도 있고, 또 실장 아저씨도 있고.”
낡은 승용차 안에서 예진의 수다가 계속 펼쳐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보았을 때만 해도 얼굴 가득 그늘이 져 있던 아이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예진아, 벌써 중학교 1학년이야?”
“네! 저 많이 컸어요.”
“확실해?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꼬맹이인데?”
“사실 조금밖에는 안 컸어요.”
휘경이 일부러 슬쩍 장난을 쳤고, 예진도 헤헤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예진이 백동원을 쳐다보았다.
“실장 아저씨, 그러면 삼총사가 다시 뭉치는 거예요?”
무심코 말을 내뱉은 예진이 멈칫거렸다.
“삼총사라….”
삼총사라는 단어에 백동원이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강우와 휘경을 살폈다. 그리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우 옆에 대진이만 있으면 딱인데 말이야.”
말을 마친 백동원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예진을 살폈다.
강우와 휘경을 만난 직후부터 내내 밝은 얼굴을 하고 있던 예진이 막상 친오빠인 대진의 이야기가 나오자 침울해하고 있었다.
“예진아.”
“…네. 아저씨.”
“음.”
입을 열려던 백동원이 백미러를 통해 강우에게 눈짓을 했다. 아무래도 강우가 직접 묻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동원의 의중을 알아차린 강우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진아.”
“응. 강우 오빠.”
“…대진이, 지금 어디에 있어?”
“…오빠요?”
예진이 말끝을 흐렸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대진의 부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예진이 고개를 돌려 강우와 휘경을 살폈다. 어린 시절부터 오빠 대진과는 각별한 우정을 쌓아 왔던 오빠들이었다. 또한 예진에게도 강우나 휘경은 친오빠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이었다.
“…오빠가요.”
예진이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사이 낡은 승용차가 연립 다세대 주택 앞에 멈추어 섰다.
“여기… 구나.”
“…….”
은색 안경 너머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휘경의 눈가가 살짝 굳어졌고, 무표정하던 강우의 얼굴에도 균열이 갔다.
“후우. 대진이 이 녀석.”
백동원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대진이 처해 있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쓰러져 가는 연립 주택 곳곳에 철거 예정이라는 팻말들이 붙어 있었다.
* * *
“대진아, 왜 아까부터 말이 없냐? 어디 아프냐?”
“…….”
금요일 오후 8시까지 이어진 잔업이 끝이 났다. 권중선이 대진의 눈치를 살폈다. 점심시간 이후 대진은 한마디 말도 없이 일만 했다.
권중선이 걱정 가득한 얼굴을 했다. 반면 대진은 말없이 작업복과 안전화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내 러닝셔츠 줘? 새거다, 새거.”
“…….”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진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에는 작업복과 안전화를 가방에 챙기고는 탈의실을 나섰다.
“대, 대진아!”
권중선이 급히 대진을 따라 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집에 뭔 일 있는 거여?”
“집에 무슨 일이야 늘 있는 거고,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요.”
“생각할 거? 그게 뭐여? 이 아저씨한테 다 말해 봐라. 대진아.”
“아저씨가 뭔데요?”
대진이 대뜸 툭 말을 던졌다. 평소에 거칠기는 해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권중선도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말이여. 내가 걱정이 돼서.”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세요.”
“그건 그거고, 내가 걱정이 돼서 안 되겠다.”
권중선이 계속해서 대진의 걸음을 붙잡았다.
대진이 권중선의 눈동자를 슥 쳐다보았다. 검게 타고 주름진 권중선의 얼굴에 진심이 어려 있었다. 순간 격하게 흔들리고 있던 마음속 풍랑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딸내미랑 백화점 가신다면서요? 버스 끊어지기 전에 빨리 가세요.”
“정말 괜찮겠냐? 아저씨가 가지 말까? 모처럼 술이나 한잔.”
“아뇨. 됐어요.”
대진이 권중선의 말을 끊었다. 그러곤 먼저 걸음을 옮겼다.
탈의실을 나오자마자 대진이 담배를 꼬나물었다. 여기저기에서 퇴근을 서두르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지만,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대진의 눈에 박혀 들었다.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