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8권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8권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8
도출식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8권
차례
Chapter 01. 필력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 2
Chapter 02. 홈 그라운드
Chapter 03. 게임, 좋아하세요?
Chapter 04. 평론가들이 너무 유능했다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8권
Chapter 01. 필력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 2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
승무원들의 입꼬리가 올라간 채 고정돼 있다.
…저러다 입에 쥐 나는 거 아니야?
아무튼, 꽤 부담스러운 인사를 받으며 기내에서 내렸다. 멀찍이 뒤에서 클레망틴이 따라서 내린다. 아마 나랑 조금이라도 붙어있는 게 싫은 거겠지.
‘……나도 싫다 인마.’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내렸다.
활주로를 가로질러 공항 내부에 들어온 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와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데?
제이미 피셔.
이번 로커스 시상식에서 나와 같이 다닐, 어쩌면 인류 최고의 드라마 작가. 고개를 돌려 그를 찾고 있는데…… 설마, 저건가? 에이 아니겠지. 그래도 드라마 작가로서의 품위? 권위? 뭐 그런 게 있는데.
설마 저런 꼴로 있겠어?
남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지만…….
“강현 씨―! 여깁니다, 여기―!!”
“…….”
진짜 맞구나, 제이미 피셔.
피셔는 밝은 형광색의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었다. 옷에는 파인애플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저건 또 뭐야. 작은 우쿨렐레 모양의 장난감을 매고 있다.
환장하겠네, 진짜.
저게 시상식 가는 복장이야, 아니면 휴양지 가는 복장이야.
로커스 시상식이 파티 분위기인 건 알지만, 정말 드레스 코드가 저 모양이란 말인가. 설마 나도 저렇게 입어야 하나?
수많은 걱정을 하며 제이미 피셔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네요.”
“하하!”
제이미 피셔가 짙게 선팅된 선글라스를 슬쩍 올리며 눈을 찡긋했다.
“안녕하세요, 서강현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드라마를 안 쓰셔서 제가 많이 서운합니다.”
“하하…….”
나 어차피 이번에 『우주선』을 원작으로 드라마 쓰는데?
이걸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나중에 알게 되는 것보단 내가 직접 말해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우호적인 인터뷰를 해주기도 했고, 매번 먼저 연락해주는 좋은 친구니까.
“사실, 이번에 드라마 제작할 것 같습니다. 제가 쓴 소설 원작의 드라마요.”
“오? 그러면…….”
쿵―!
내가 말을 끝마치고, 이내 제이미 피셔가 대답하려고 할 때.
뒤에서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와 제이미 피셔의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
클레망틴 작가가 멍하니 서 있었다.
공항 바닥에는 텀블러 하나가 떨어져 있고, 물이 질질 새어나오는 중이었다.
……왜 저래?
클레망틴은 괜히 나를 한번 흘겨보더니, 텀블러를 줍고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그걸 본 제이미 피셔가 웃었다.
“하하. 아무래도 드라마를 만드는 건 서강현 작가님만이 아닌 모양이네요.”
“아.”
설마…… 클레망틴 작가도 드라마 만드는 건가? 그것도 자기 소설을 원작으로?
‘어째 나랑 자꾸 엮이네.’
아무리 그래도 물건 떨어뜨릴 정도로 충격받을 이유가 있나…?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밖에서 택시를 잡았다.
제이미 피셔와 함께 로커스 시상식이 열리는 호텔로 들어갔다. 택시가 멈추자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차 뒷문을 열어준다. 좀 부담스럽다. 로비로 들어가 체크인을 한 뒤, 캐리어를 맡기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 저는 여기서 내려야 해서.”
“예. 좀 이따 봬요.”
“그래요. 아, 맞다. 이거 받으시고.”
“?”
제이미 피셔가 내게 불투명한 비닐 포장지를 건네고 먼저 내렸다.
나 또한 그 다음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벗어났다.
�煉�
카드를 대고 내 객실 문을 열었다.
과연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 위에 몸을 풀썩 던졌다.
“후우…….”
아까 미리 모바일로 배부받은 일정표를 봤다.
수, 목, 금, 토.
4일간의 일정이다.
역시 수상자 발표는 토요일에 있다.
제길. 그냥 오늘 해주지. 사람 살 떨리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제일 기대되는 걸 가장 마지막에 배치하는 건 기본 아니겠는가.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낭독회와 독자들 Q&A가 있다.
“…….”
옆에는 아까 제이미 피셔가 건넨 비닐이 있다.
꼭 택배 포장지처럼 생긴……게 아니라, 진짜 택배 포장지네? 발송택까지 붙어있잖아?
‘뭐지…?’
궁금증에 비닐을 뜯어보자,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건…….
“…진짜냐, 이거?”
이곳의 드레스 코드에 맞는 하와이안 셔츠였다.
* * *
“하하! 잘 어울리십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
다시 로커스 시상식이 있는 홀로 내려왔다.
옆에서 제이미 피셔가 자꾸 웃으며 말을 붙인다. 내가 입을 하와이안 셔츠를 쳐다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띤다.
“역시 로커스 시상식은 이래야죠. 자, 다른 사람들 입은 것 좀 보세요.”
“…확실히.”
다른 사람들도 편안하고, 어딘가 좀 튀는 옷을 입고 있었다.
동물 잠옷을 입은 사람도 있다.
누가누가 더 괴짜처럼 입나 대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이 시상식의 전통이라는데 뭐…… 나도 대충 분위기 맞춰줘야지.
그렇게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저편에서 클레망틴 작가도 보였다.
“…….”
혼자만 고고하게 드레스 차림을 고수했다.
하긴.
저 성격에 남들 웃기려고 하겠어? 어떻게든 튀려고, 주인공인 것처럼 하겠지. 게다가 이거 방송에도 나가니까. 자기가 이상한 옷 입은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리라.
나 원 참.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이내 어떤 여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클레망틴은 아닌데…… 누구지?
게다가, 웃고 있는 눈에서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졌다. 나에 대한 적개심이라고 해야 할까?
뭐야, 대체?
그 여자가 내 발치까지 다가와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 안녕하세요, 서강현 작가님.”
“……뉘신지?”
“…….”
빠직,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자가 좀 열 받은 것처럼 보인다.
아니… 당신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옆에 서 있던 제이미 피셔는 웃음을 참느라 몸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다. 대체 이 여자가 누구길래?
여자의 입꼬리 경련하며 올라갔다.
“하, 하하…… 농담도 잘하시네요. 같은 업계였으면서. 저 케일라 노바예요.”
“아.”
케일라 노바.
얼굴은 모르지만, 분명 얼마 전 민정민 대표의 입에서 들었던 이름이다.
미국의 꽤 유명한 드라마 작가고, 히트작도 여럿 보유 중이라고…….
나는 뒤늦게 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서강현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이번에 제 요청 까버린, 그 서강현 작가님이시잖아요.”
“…….”
웃고 있었지만, 어째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녀가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며 은근히 말했다.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서강현 작가님 대본 쓴 지 꽤 되셨을 텐데. 드라마 판 요즘 쉽지 않아요. 혹시 지금이라도 다른 작가님께 맡기시는 게?”
“걱정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해 봐야죠 뭐.”
케일라 노바는 ‘너 퇴물 된 거 아니야? 괜찮겠어?’를 완곡히 말했고, 나는 ‘응. 신경 꺼.’라고 에둘러 대답했다.
왠지 모를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는데, 옆에 있던 제이미 피셔가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