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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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7
도출식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7권
차례
Chapter 01. 이 판은 실력이 전부라고 - 2
Chapter 02. 잘 하던 거
Chapter 03. 필력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 1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7권
Chapter 01. 이 판은 실력이 전부라고 - 2
아침.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신 터여서, 잠은 서울에서 잤다.
“으으…….”
“우우욹…….”
“…….”
주변에서 무슨 좀비 목에서 피가래 끓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는 이길춘 감독의 작업실이었다.
어제, 계속 술을 안 마시던 기지태 편집 감독을 결국 꼬드기더니, 술판이 먹고 죽자 판이 돼 버렸다.
결국 다같이 근처에 있던 이길춘 감독의 작업실에 와서 잠에 든 것.
……무슨 새내기 대학생들이냐?
술 먹고 근처 사는 애 집에 가서 자게?
하여간 예술 하는 사람은 그런가 보다.
나잇값 하게 되는 순간 재밌는 작품이 안 나오는…… 뭐, 그런 게 있는 듯했다.
‘나는 숙취가 하나도 없지만.’
왜냐고?
술 먹는 척하면서 다 버렸으니까.
오늘은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충청도에 있는 할아버지 집. 그곳 서재에 있는 나의 작업실에 가야 한다.
어제 술을 먹다가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다.
〔한국 영화 최고 기록을 달성할 시,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에 대한 이야기.
대체 어떤 보상이 주어진다는 거지?
그게 신경 쓰여서 도저히 술을 마실 수가 없더라고.
좀 마셔도 술이 확 깨고 말이지.
나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이길춘 감독님의 작업실 문을 열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디가아아…….”
“…….”
이 감독님이었다.
반쯤 뜨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어차피 다시 자고 일어나면 기억도 못 할 테니까, 나는 대충 대답했다.
“잠깐 제 작업실에 좀 가야 할 일이 생겨서요.”
“으으…….”
어차피 듣지도 못할 거면서 왜 물어보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이길춘 감독님의 작업실에서 나왔다.
* * *
차를 타고 빠르게 충청도로 내려왔다.
할아버지 집.
아니, 솔직히 이젠 내 작업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곳.
이번에 『장례식장에서 부활했는데 관뚜껑 열기가 너무 민망하다』의 각본을 쓴 뒤 잘 내려오지 않았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보상을 준다니까 이렇게 바로 내려오는 걸 보면 말이다.
끼이익―
아무튼, 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 할아버지 서재에 들어온 뒤, 책장의 책 배열을 맞춰 「시간과 평론의 방」안으로 들어왔다.
“…….”
혹시 보상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들어온 건데……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미 완성된 영화 각본을 평론 상자 안에 넣어봤다.
눈앞에 점수가 떠오른다.
그런데.
[점수 합계: 9.99(+0.05)]
“어…?”
9.99라는 얄미운 점수.
딱 0.01점이 모자라서 10점을 채우지 못한. 그래서 사슴 가면 평론가를 성불시키지 못한 저 점수.
저 점수 옆에 0.05라는 숫자가 있었다.
아니, 잠깐만.
이거 설마…….
‘한국 관객 기록을 갈아치우면 주는 보상이라는 게….’
추가 점수였냐?
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영화라는 것 또한 그렇다.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기본적인 원리는 자본주의.
아무리 작품을 잘 만들었어도, 상업성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려워진다.
물론, 평론가나 영화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은 쌓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투자 회사가 돈을 대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요즘 예술에서 대중성과 상업성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걸까?
‘상업성에 점수를 더 주는 것 같군…….’
내 영화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한 것에 추가 점수를 주는 듯한 느낌.
끼익― 탁.
「시간과 평론의 방」을 다시 나오며 생각했다.
이렇게 된다면…….
‘흥행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겠는데?’
* * *
제이엠 엔터테인먼트 배급 본부에는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이제는 조금 안정화가 된 상태.
서강현 영화에 상영관을 좀 더 많이 배정하고, 시간대도 꽤 프라임 타임에 맞게 바꿔줬다.
서수일 차장이 10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로 옥상에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옆에 있던 떠벌이 조 대리도 요즘은 통 말을 붙이지 않았다.
서 차장이 무슨 기분일지 대충 아니까.
조 대리가 슬쩍 다가와 서 차장의 담배에 불을 붙여줬다.
“……괜찮으십니까?”
“하…… 괜찮겠냐?”
서수일 차장은 담배 연기를 뻐끔 내뱉었다.
“후우…… 그래도 서강현이 호구라서 다행이야.”
“호구요?”
조 대리가 자기 담배에도 불을 붙이며 말했다.
서수일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호구. 솔직히 연예계에서 지들이 갑이다 싶으면 별말도 안 되는 요구하는 것들이 한둘이냐? 근데 서강현은 안 그런단 말이지. 좀 뭐랄까… 자연인 같애, 자연인. 진짜 흥행이고 뭐고 작품만 중요한 거지.”
“아아…….”
조 대리가 담배를 피우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서 차장님.”
“왜.”
“근데… 그건 호구가 아니라 그냥 인격자인 거 아니에요?”
“인격자?”
서수일 차장이 하! 웃으며 대답했다.
“얌마. 사회에서 인격자 같은 게 어딨어. 갑인데도 어물쩡 사람 좋게 넘어가는 건 그냥 호구지, 호구. 어휴… 서강현이 호구라 망정이지.”
“하하! 그렇군요! 새겨듣겠습니다!”
조 대리는 서수일 차장의 비위를 맞춰주며 생각했다.
그냥… 서수일 차장님 인성이 좀 빻은 거 아닌가, 하고.
그때.
― 띠리리링!
어디선가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진원지는 서수일 차장의 주머니였다.
뭐지?
서 차장이 입에 담배를 물고 호주머니를 뒤적거린다. 휴대폰을 꺼내고 화면을 보더니, 이내 질린 표정이 됐다.
조 대리가 옆에서 슬쩍 곁눈질을 하며 휴대폰을 봤는데…….
[서강현 작가(감독)]
서강현이었다.
방금 전까지 서강현 얘기하고 있었는데…… 뭐지? 귀신인가? 혹시 도청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분명 서강현과의 대화는 잘 끝났다고 했다.
상영관과 시간대를 대충 옮겨주고, 사람 좋게 끝났다고 했는데… 무슨 할 말이라도 더 남은 걸까?
서수일 차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네에~ 서 감독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
그 모습을 옆에서 쳐다보던 조 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서강현이 호구니 뭐니 하더니, 저렇게 공손하고 비굴하게 전화를 받는 꼴이라니.
아무리 사회생활 더럽고 치사하다지만,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데…… 어라? 서수일 차장님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서서히 표정이 굳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