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4권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4권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4
도출식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4권
차례
Chapter 01. 시간 여행자 (Time Traveller) - 2
Chapter 02. 천재 위의 천재
Chapter 03. 두 번째 애미상
Chapter 04. 출판사는 항상 좋은 원고를 찾는다
Chapter 05. 뜰 글은 뜬다
Chapter 06. 좋은 작품은 노리는 사람이 많다 - 1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4권
Chapter 01. 시간 여행자 (Time Traveller) - 2
빅토리 픽처스 대표실.
강승리 대표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치로 메일함을 확인한다.
그곳에는 전 세계 1티어 영화 음악가, 한스 란다의 답장이 와 있었다.
[젠장! 할 테니까 다음 대본이나 빨리 보내세요! 그래야 곡 작업을 하든 말든 하지!]
바로, 그 깐깐한 한스 란다에게 대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것.
옆에 있던 이종태 CP도 눈을 치켜뜨며 메일을 읽어봤다.
“……와. 그냥 해본 말인데, 진짜 바로 오케이 할 줄은 몰랐수.”
“확실히 서강현 작가 대본이 마도서이긴 한가보다. 읽은 사람들 다 홀리는 거 보면.”
“그런 것 같수. 일단 우리부터가 홀렸잖수.”
그렇게 메일함을 확인하고 있는데…… 어라? 메일이 한 통 더 날아들었다.
누구지?
이번에는 서강현 작가에게 온 메일이었다.
아. 9부 대본을 작성한다더니, 금방 완성된 모양이다.
그런 생각으로, 강승리 대표가 메일을 확인했는데…….
“……뭐야, 이거.”
9부 대본부터 14부 대본까지.
서강현 작가가 총 6부의 대본을 보내온 것.
……뭐지? 잘못 보낸 건가?
강승리 대표가 모든 파일을 하나씩 열어보며 확인해봤다.
맞다.
9부부터 14부까지의 대본 완성본이었다.
1시간, 2시간…… 그렇게 거의 4시간 가까이 대본을 읽었다.
그 흔한 오탈자 하나 없고, 대본의 품질도 균일한…… 말 그대로 완성본 그 자체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9부 대본 작성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6부의 대본을 완성하는 게 말이 돼?
무슨 시간을 멈추고 글 쓰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같이 대본을 검수하던 이종태 CP도 혀를 내둘렀다.
“……형님. 이게 말이 되는 거요? 아니, 그냥 막 쓴 거면 몰라. 대본 퀄리티도 다 균일한데, 이거 새끼 작가들 쥐어짜서 했다 쳐도 말이 안 되는 속도인데…….”
“아서라. 서강현 작가 보조 작가라곤 여동생 한 명밖에 없다. 그마저도 자료조사 조금 시키는 정도고, 본문은 혼자 쓴다고 그랬어.”
“그럼…… 혼자 썼는데 이 정도 속도가 나왔다고요? 말이 돼?”
“…….”
강승리 대표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단출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뭐, 서강현이니까.”
아무튼, 대본을 받고 다 읽기까지 했으니…… 이제 서강현 작가에게 전화를 해야 할 차례였다.
이 대본, 그대로 가도 될 것 같다고.
강승리 대표가 휴대폰을 꺼내들고 단축키 1번을 눌렀다.
원래는 자기 와이프가 1번이었지만, 서강현이 빅토리 픽처스를 구한 이후 2번으로 밀려났다.
아무튼, 1번을 누르자 곧 신호음이 갔다.
뚜르르, 하는 연결음이 몇 차례나 울렸지만, 서강현 작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뭐지? 바쁜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남은 15부 16부 대본 작업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일단 문자만 남겨두자.
강승리 대표가 휴대폰 자판을 꾹꾹 누르며 문자를 한 통 남겼다.
[작가님. 이번 대본도 퀄리티가 말도 안 되게 좋네요.]
[이 정도면 제이미 피셔에게 절대 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 사고 한번 쳐 보죠!]
* * *
[저희 사고 한번 쳐 보죠!]
강승리 대표에게 문자가 한 통 왔다.
“후우…….”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한숨을 길게 뺐다.
아까 강승리 대표에게 전화가 온 것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무시했다.
그도 그럴 게, 난 방금 전까지 「시간과 평론의 방」에서 거의 8,000시간을 보내고 온 참이니까.
정신력이 완전히 고갈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8,000시간이면 대충 어느 정도지?
아. 한 1년 정도를 그 안에서 보낸 거구나.
그 시간 동안 9부부터 14부 대본까지 완성했다.
물론, 10점 대본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전부 9.7에서 9.8정도의 대본들.
그 이상은 무슨 수를 써도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강아지 가면과 산책을 통해, 한스 란다가 내 작품 OST를 만들어주는 미래를 봤는데도 불구하고.
대본 최고 점수는 9.89였다.
대체…….
“뭐가 부족한 거냐고…….”
이쯤 되니 정신이 멍해진다.
나, 드라마 왜 쓰고 있었더라?
이 직업을 왜 가졌고, 어떤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지 희미해져 간다.
아. 15부랑 16부는 뭘 쓰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또 책 읽어요?”
“음? 우리 강후 왔구나. 허허. 강후도 책 많이 읽어야 한다.”
공원에 어떤 할아버지와 손주가 보였다.
손주는 앞니 빠진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책 안 읽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책을 좋아하니까, 책 쓰는 사람 돼야지!”
“껄껄. 그럼 이 할애비는 너를 위해 커다란 서점을 차려줄까?”
“정말요?!”
“정말이지.”
멍하니 그 대화를 듣다가, 머릿속에서 뭔가 스파크가 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나 드라마 작가 저렇게 시작했었지.
할아버지가 매일 시골에서 드라마만 봐서.
그래서, 할아버지를 위해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어주겠다며……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뭔가 정신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다.
『시간 여행자』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바로잡고 싶은 과거는…….
‘이걸로 하자.’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마지막 대본을 작성하기 위해서.
* * *
할아버지 서재에 다시 들어왔다.
다시 「시간과 평론의 방」에 들어가기 전, 책상 앞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직 8,000시간 동안 그 안에서 대본을 작성한 후유증이 남은 것 같아서.
“…….”
문득, 할아버지 책상 서랍을 열어봤다.
저번에 책장의 책 배열을 하다가 편지가 하나 툭 떨어졌었지.
그것처럼 우연히 편지를 한 통 더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
그렇게 드륵― 하고 서랍을 열어봤지만…… 그럼 그렇지. 뭐가 나올 리가 있나.
당연한 듯 서랍 안은 비어있었다.
김빠지네.
한숨을 쉬며 다시 서랍을 닫았는데.
덜컥, 덜컥―
“……음?”
아래에 뭐가 걸린 것처럼 서랍이 잘 닫히지 않는다.
무릎을 꿇고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고개를 들어 위를 확인해 보니, 책상 서랍 아래에 테이프로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설마…… 할아버지의 편지인가?
종이를 떼서 확인해보니, 할아버지 글씨체로 무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시간과 평론의 방」에서 읽은 편지 말고, 자필로 적은 편지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나는 종이에 묻은 먼지를 털고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삶의 불꽃이 타들어간다. 바람 앞 촛불 같다.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게 있다.
내 손주, 강현이.
나 때문에 드라마 작가의 꿈을 시작했는데……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공무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부끄러운 건지, 내게 괜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건지.
도통 찾아오질 않는다.
나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괜히 그런 꿈을 꿔서 좌절할 일이 없었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