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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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3
도출식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3권
차례
Chapter 01. 연예계는 하루 앞일을 모른다 - 2
Chapter 02. 치타는 웃고 있다
Chapter 03. 시간 여행자 (Time Traveller) - 1
SSS급 평론가들이 자꾸 내 글을 읽음 03권
Chapter 01. 연예계는 하루 앞일을 모른다 - 2
나는 지금 「집필의 방」이라는 곳에 들어와 있다.
뭐지? 이 독방같이 생긴 곳은?
영화에서 본 적 있다.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은 공간. 벽면은 온통 하얀색이고, 심지어 책상과 의자도 하얀색이다.
마치, 작업만 하라는 듯이.
어떤 강압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
「집필의 방」이라고 해서, 혹시 몰라 노트북을 들고 오길 잘했다.
그럼…… 여기서 작업을 하면 되는 건가?
근데 여기서 한다고 뭐 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어어……?”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화수분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앞에 어떤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집필의 방에 들어왔습니다.〕
〔집필과 관련된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시야가 좁아진다. 호흡은 조금 빨라진다. 들숨과 날숨의 감각이 점점 희미해진다.
머리가 점점 팽팽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노트북에 올려둔 내 손가락이 나도 모르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신데렐라의 12시 1분』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아까 7점 후반대였던 1회 대본을 수정한다.
평론가들이 했던 지적들이 순식간에 이해되며, 그걸 내 글에 녹여낸다.
플롯, 캐릭터, 연출…… 모든 부분을 손봤을 때.
“……어라?”
눈을 깜빡하니, 나는 다시 「시간과 평론의 방」에 있었다.
눈앞에 다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대본 한 부를 완전히 수정했습니다.〕
〔집필의 방 체험권이 소멸합니다.〕
“…….”
이래서 체험권이었냐?
아무래도 한 부의 대본을 수정하면, 자연스럽게 방에서 나오게 되는 구조인가 보다.
아무튼.
‘이거… 평론 상자에 넣으면 몇 점이 나올까?’
노트북을 들고 천천히 평론 상자 쪽으로 들어갔다.
한두 번 해보는 게 아닌데도, 항상 점수를 평가받을 때는 떨린다.
상자 안에 노트북을 집어넣자, 언제나처럼 평론가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응은 평소랑 좀 다르다.
<사자 가면 평론가의 입이 벌어집니다>
【사자 가면: 이건…… 아주 대단하군. 정석적이지만 감각적인 플롯의 1회였어. 여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가, 사실 남주와 친구 사이인 걸로 엮어서 자연스럽게 플롯을 진행시키는 건 환상적이군.】
<여우 가면 평론가가 손으로 입을 가립니다>
【여우 가면: 어머나…? 다음 날 아침, 다시 인간으로 변한 여주가 남주 집 현관문을 열 때 소리 나서 화들짝 놀라는 디테일…? 이런 곳에서 여주의 소심한 성격을 보여준다고? 디테일의 수준이 달라졌구나, 너.】
<사슴 가면 평론가의 목소리가 떨립니다>
【여우 가면: 고양이로 변한 여주의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 스핀컷 기법을 활용한다고……요? 이런 아이디어는 대체……】
<강아지 가면 평론가의 입이 찢어질 듯 올라갑니다>
【강아지 가면: 진심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음 ㄹㅇ】
극찬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뭐지? 내가 알던 평론가들이 맞는 건가?
점수가 높아질수록 지적이 사라지는 건 알지만…… 이렇게 극찬만 튀어나온 적은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최종 평점이 떠올랐다.
「평점 합계: 8.87/10」
“미친.”
육성으로 미친이라는 말이 나왔다.
서바이벌 장르도 아니고, 로코에서 내가 8.87이라는 평점을 받았다고?
이거…….
‘집필의 방 개꿀이잖아?!’
이번 시청률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그나저나…….
‘이거, 정락이 형한테 한번 보내볼까?’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 * *
MBS 드라마국 회의실.
그곳에 두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배정락과 김수영 PD였다.
배정락이 앞에 놓인 『신데렐라의 12시 1분』 대본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말이 되나?’
서강현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그랬다.
아, 이제 끝이구나. 더 성장은 없겠구나.
그도 그럴 게, 이전에 봤던 『도플갱어』 8회 대본이 너무 훌륭했으니까.
이것보다 더 나은 대본을 뽑을 수 있을까?
그렇게 물어본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훌륭한 대본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대답이 바뀌었다.
『도플갱어』 8회 대본보다 더 나은 대본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듣는다면.
배정락은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신데렐라의 12시 1분』 1회 대본을 들이밀 것이리라.
옆에 있던 김수영 PD가 침묵을 깼다.
“……야. 이거 대본 수정 됐으니까 1회 다시 찍어야 할 씬 생긴 거 아니야?”
“……그치.”
“다시 찍을 거냐?”
“시발. 그럼 이걸 봐놓고 안 찍냐?”
“…인정.”
특히, 남주와 여주의 첫 조우.
가로등 아래서 고양이로 변한 여주를 만나는 씬이 훨씬 감각적으로 변해 있었다.
불안한 듯 깜빡거리는 가로등. 옆에 있는 풀잎에 떨어진 빗방울.
고양이로 변한 여주의 불안감이 엿보인다.
그런데, 우산을 들고 남주가 다가온다. 무릎을 꿇고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패딩 안에 여주를 넣고 집으로 데려간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주변 사물을 이용한 사소한 연출 변화일 뿐인데, 맛이 훨씬 살았다.
배정락 PD가 생각했다.
이거…… 카메라 감독이 보면 침 질질 흘리겠―
“뭐 하냐, 니들.”
“아이 씨, 깜짝이야. 기척 좀 내고 다니세요!”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
이번에 『신데렐라의 12시 1분』의 카메라를 잡은 하철민 카감이었다.
곰 같은 덩치의 하철민 카감이 전등 스위치를 켰다.
“니들이 어둠의 자식이냐? 불 좀 켜고 뭘 하든가. 아님 뭐 연애하냐? 사내연애 그런 거야?”
“아 재미없어요 진짜.”
“큭큭. 아니, 불 꺼진 곳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무슨 작당모의 하는 것 같잖아.”
“…….”
배정락 PD와 김수영 PD의 시선이 순간 맞닿았다.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하철민 카감한테 보여줄까?
정락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을 집어들었다.
“저, 이거 한번 보실래요?”
“엉? 뭔데.”
“신데렐라의 12시 1분 1회 대본이에요.”
“아, 봤어 봤어. 촬영도 다 끝났는데 뭐. 아님 수정 있어?”
“……그냥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 뭔데 그렇게 분위기 잡아? 일단 한번 줘 봐.”
하철민 카감이 대본을 건네받았다.
열어서 훑어본다.
어라? 첫 조우 씬부터 변화가 있네?
어디 보자…… 평소처럼 카메라 어떻게 돌릴지도 적어놨…… 어라? 오늘따라 더 디테일하네?
하철민은 그런 생각으로 대본을 한 장씩 넘겼다.
“…….”
그리고, 곰 같은 덩치의 철민이 그 자리에 30분은 우두커니 서서 대본을 독파했다.
하철민은 카메라 감독이다.
대충 씬만 봐도 어떻게 카메라를 잡을지, 어떤 장면이 나올지 그려졌다.
그런데 이건…….
“……정락아.”
“예.”
“지금 그냥 현장 가자. 나 이거 지금 바로 찍어야 할 것 같아.”
“아니, 형. 지금 배우도 없는데 현장 가면 뭐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