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교
8권
평과소저 장편소설
224. 산적에게 당한 북연의 사신단
삼화당의 비밀은 알고 싶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삼화당이 16년 동안이나 강호에서 끄떡없이 버티진 못했을 테니까.
양갈비살을 발라내 먹으며 소청이 용항을 쳐다봤다. 맑디맑은 그 눈동자를 보자, 용항은 저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헛기침했다.
“들었소.”
‘들어?’
소청은 심문하는 눈길을 던졌다. 쥐고 있던 양갈비를 천천히 내려놓고, 수건을 집어 손을 닦으면서 용항을 응시했다.
“그래? 누구한테 들었는데?”
태연한 목소리였다. 용항은 약간 긴장해서 일단 씨익 웃었지만, 차마 그녀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그건 잊었군.”
“잊어? 그럼 내가 기억나게 해 줄까?”
소청은 웃을락 말락 하는 얼굴로 용항을 보더니, 그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용항이 보기엔 웃음 속에 칼을 숨긴 듯한 표정이었다.
“참, 북연의 옥 광산 말이오, 대강 방법이 떠올랐는데 의논 좀 하겠소?”
화제를 돌려 보려 했지만, 소청은 그의 뺨을 쿡 찌르며 대답했다.
“아니. 난 당신이 어떻게 진소의 의술을 알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
‘제발! 말할 수 있으면 진작 말했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런, 국이 다 식었군. 데워 오겠소.”
그 말과 함께 냄비를 집어 들고 재빨리 돌아서려는데, 소청이 턱 잡았다.
“안 돼. 대답부터 해.”
“…….”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용항은 머릿속에도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다… 당신이 놀리는 바람에, 놀라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거요!”
“정신이 오락가락하면, 진소가 의술을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소청은 영 안 믿는 기색이었다.
“당신도 삼화당 출신이잖소. 당신이 이만큼 대단한 걸 보면, 소방주인 진소는 더 대단하겠거니 하고 생각했지!”
‘오! 이 기지!’
말을 마친 용항은 자신 있는 눈빛으로 소청을 봤다. 속으로 그 변명을 다섯 번쯤 중얼거리면서.
‘맞아, 바로 이거야! 남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여야지!’
소청이 눈썹을 찌푸리고 의아한 눈으로 용항을 봤다.
“정말이야?”
용항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아니면 뭐겠소?”
“아무리 봐도 뭔가 숨기는 거 같은데.”
소청은 용항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
“내 눈을 보고 말해 봐. ‘난 절대 소청을 속이지 않는다’ 라고.”
“…….”
‘그건 좀….’
머리 가죽이 쭈뼛했지만, 용항은 순순히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말했다.
“나, 용항은 절대로 소청을 속이지 않는다.”
소청은 치켜든 그의 세 손가락을 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잘 맞췄네. 진소는 신의가 맞아.”
그리곤 용항을 놔주고, 자리에 앉아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용항은 속으로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고비를 넘겼나? 간 떨어져 죽을 뻔했네!’
하지만 용항이 다시 자리에 앉는 순간, 소청이 불쑥 말했다.
“아깐 남에게 들었다며? 이번엔 왜 추측한 걸로 바뀌었지? 어느 쪽이 진짜야?”
그렇게 말한 소청이 용항을 봤다. 기름 묻은 입술이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방금 맹세했으니까 거짓말하면 안 돼.”
“…….”
그는 왼손으로 맹세할 때 들었던 오른쪽 세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뭐라고 하지? 둘 다 거짓말이라고 해? 그럼 당장에라도 날 목 졸라 죽일지도 몰라. 하… 도대체 뭐라고 한담!’
용항이 진퇴양난에 처한 순간, 갑자기 장청이 나타났다.
“전하, 큰일이에요. 사고가 생겼어요.”
용항의 귀에는 장청의 초조한 목소리가 꼭 천상의 노래 같았다.
“무슨 일이냐?”
그는 재빨리 장청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청은 당황했다.
‘어째 전하 목소리에 기쁨이 흘러넘치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래?’
장청 뒤로 넝마가 다 된 옷을 입은 사내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봉두난발에 몸은 피투성이였는데, 입은 옷이 금군의 복장이라는 건 그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털썩 엎드렸다.
“전하, 소관은 명령에 따라 북연의 사신을 영접하러 도성 교외의 십리포에 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십리포에 이르자마자, 부근에 매복해 있던 산적 떼가 나타나 온 힘을 다해 물리쳐야 했습니다. 지금 북연의 사신단은 십리포 역참에서 상황을 수습하고 있는데, 사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모릅니다.”
‘산적?’
용항은 놀라고 화가 나 의아한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도성 부근에 산적이 있단 말이냐?”
사내가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만, 이번엔 어찌 된 셈인지 그곳에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북연의 사신단을 약탈하려고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그는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북연의 사신단이 헌상하려고 가져온 물건은 전부 빼앗겼습니다.”
‘황제는 북연의 옥 광산을 빼앗을 마음을 품고 있건만… 황제가 손을 쓰기도 전에 산적이 먼저 그들을 털었다고?’
소청은 살짝 어두워진 눈빛으로 매운 양 내장 요리를 응시했다. 어딘가 이상했다.
‘산적들에게 그만한 실력과 담력이 있을까 하는 문제는 둘째 치고, 감히 금군이 호송하는 북연의 사신단을 약탈하다니.’
십리포라는 장소 또한 매복하고 싶다고 아무나 매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소청의 부하들도 그곳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정말 산적이 나타났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내보다는 빨리 소식을 전해 왔을 터.
소청이 생각에 잠긴 사이, 복성이 바람같이 달려들어 왔다.
“주인님, 설천이 급히 보고할 게 있대요. 십….”
소청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재빨리 복성의 말을 끊었다.
“갈게.”
그리곤 용항에게 한 번 시선을 던진 후 일어났다. 넝마를 걸친 금군을 슬쩍 훑어본 그녀가 밖으로 나가면서 복성에게 분부했다.
“이따가 전하께서 외출하시려고 하면, 핑계를 대서 막고 저 금군을 잘 지켜보라고 전해.”
복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을 바짝 뒤따르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더니 팔짱을 끼고 문가에 떡 버티고 섰다.
***
화청(花廳, 꽃밭에 있는 응접실).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던 설천은 소청이 나타나자, 그녀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말했다.
“장군, 십리포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북연의 사신단이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
으악!
‘정말 약탈당한 거야?’
“산적이 매복할 때쯤, 그곳에 있던 형제들은 그들이 진국공이 보낸 가짜 산적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북연의 사신단이 장군과 원한이 있고, 진국공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기에 끼어들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차를 마시던 소청은 사레가 들려 캑캑댔다.
‘진짜 훌륭한 형제들이군! 대체 그게 무슨 기괴한 논리람?!’
설천은 불안하게 소청의 표정을 흘끔거리면서 계속 말했다.
“전하러 온 형제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수상쩍어 보이고 장군께 유용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나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
소청은 있지도 않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유용?’
용항이 처음 맡게 된 사신 접객 업무였다. 그런데 진국공이 도중에 그 사신을 약탈했다. 비록 ‘산적’의 짓이라곤 해도 잘못을 논의하다 보면, 그들에게 죄를 묻진 않을 것이다. 진노한 황제가 벌을 내릴 사람은 용항과 새로 부임한 예부상서 두량일 터. 이번엔 제대로 등 뒤에서 칼을 찌른 셈이었다.
‘그래, 좋아!’
전장에서나 보일 법한 잔혹한 냉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소청이 말했다.
“북연의 사신단은 어디 있지?”
“십리포의 역참에서 쉬고 있습니다. 정찰병 말로는 북연도 그쪽 조정에 소식을 알리면서, 우리 조정에 따져야 한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친히 영접하러 나와 성으로 안내하지 않으면 절대로 입성하지 않겠다고도 했답니다.”
설천이 말을 이었다.
“장군, 저희가 끼어들어야 할까요?”
본래라면 외국의 사신단을 맞이할 때는 먼저 금군이 앞장서서 성문까지 안내하고, 그다음에 외교를 맡은 사람이 성문 앞에서 그들을 마중해 함께 도성으로 들어가 묵을 곳을 정해 주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런데 망령되게 황제더러 직접 나와서 맞이하라니!’
북연의 국력을 따져 볼 때 당연히 황당무계한 요구였다.
‘대하가 북연의 속국도 아닌데!’
산적에게 혼 좀 났다고 이렇게 몰상식한 망상을 품다니,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정말 산적의 짓이라면 차라리 좋으련만….’
그들이 이렇게 요구한 목적은 단 하나, 황제를 격노하게 만드는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황제가 격노하면 북연에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는 몰라도, 분노에 휩싸인 황제가 용항과 두량에게 모진 벌을 내릴 순 있었다. 이번엔 주판을 잘 튕겨 본 모양이었다.
“형제들에게 전해, 똑같이 산적으로 변장해서 북연의 사신단을 털라고. 하나도 남겨 놓지 말고 다 털어!”
설천은 얼이 빠져 놀란 얼굴로 소청을 봤다.
“장군, 상대는 외국의 사신입니다!”
소청은 냉소를 지었다.
“내 눈엔 다 돈이야!”
황제는 북연의 사신단을 속여 옥 광산 다섯 곳을 빼앗으라는 지엄한 명을 내렸다. 그러잖아도 어떤 식으로 착수할까 고민이었는데, 스스로 갖다 바치는 걸 거부하는 건 소청의 방식이 아니었다.
‘역시 참 좋은 형제들이야. 박수 짝짝!’
“깔끔하게 해치운 다음 그자들을 잡아다가….”
잠시 생각하던 소청이 음흉하게 웃었다.
“대불사 뒷산에 있는 동굴에 넣어.”
설천은 잠시 말이 없었다.
‘당당한 평양군이 도적질을 한다? 좋은데! 도적질한 다음에 인질을 절 뒷산에 가둔다? 더 좋잖아!’
“예!”
명령을 받은 설천이 돌아섰다. 소청은 그의 등에 대고 덧붙였다.
“산적 노릇은 진짜같이 해야 해. 너무 부드럽게 굴지 말고.”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말했다.
“됐어, 내가 직접 갈 테니까, 그때까지 십리포에서 기다리라고 해. 산적 옷이나 잘 준비해 둬.”
말을 마친 소청은 눈에서 황금빛을 번뜩이며 떠나갔다. 설천은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앞으론 북연이 더는 사신을 못 보내겠군!’
소청이 용항에게로 돌아갔을 때, 복성은 몹시 따분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문설주에 기대 눈을 흘기고 있었다. 소청이 나타나자 그녀가 재빨리 달려왔다.
“주인님, 한 발짝도 안 나갔어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
그녀는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넝마 차림의 금군이 여전히 꿇어앉은 채, 초조하고 다급하게 말하고 있었다.
“전하, 북연의 사신단이 도성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또다시 산적이 나타나면 어떡합니까? 어서 그들을 도성으로 불러들일 방법을 생각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