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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시터는 그만 죽고 싶다 6권
지은이 : 정훤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정훤, 2025
※ ISBN : 979-11-7408-647-1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11월 3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46. 델피의 이력 (2)
“왜?”
막 발을 떼려던 델피가 뒤를 돌았다.
더 할 말 있냐는 눈빛.
있다. 있지.
정확히는 묻고 싶은 게. 아니, 물어야 할 게.
마고가 있었다면 왠지 부담감에 선뜻 질문하기 힘들었겠지만, 마침 그 깐깐한 인사는 먼저 자리를 떴다.
“뭐 먹을 것 좀 가져다줄까? 아니면 컨디션이 안 좋아?”
불러 놓고 별말이 없자 그녀는 나름의 추측으로 제 등 뒤를 가리켰다. 식당이 있는 방향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컨디션은 이미 충분히 회복되었다.
지금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다.
‘당신이 렘블 학생회장이었다며!’
조금 전 들었던 벼락이나 다름없는 소리. 이건 무슨 ‘예전에 학급 반장 했었다’ 정도로 슥 지나가기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과거잖나!
“대체 뭔데 그래? 아하. 역시 로티가 걱정돼서? 괜찮대도, 둘이 아주 쿵짝이 제대로더라니까?”
델피는 알겠다며 손뼉을 짝 치더니 곧 손을 내저으며 다시 몸을 돌리려 했다.
아, 안 돼!
어떻게 보면 조금 실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궁금하다.
그럼 어차피 할 거 빨리 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델피 씨는 왜 기사단에 들어왔습니까?”
해 버렸다.
정말 순전한 궁금증.
렘블 출신에다, 학생회장이었다는 델피.
아스타바에서 그보다 더 사기적인 이력이 또 있을까.
렘블의 요직은 그대로 사회와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거기서 상류층이었으면 앞으로도 상류층으로 사는 거고, 하류층이었으면 뭐…….
그래도 렘블을 나왔으니 밑바닥은 아니겠지만, 이능력자들 사이에서는 취급이 그리 좋지 못했다. 랭킹이라는 게 있는 세상이니 서열을 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어쨌든, 아스타바 최고의 교육 기관에서 학생회장이라는 이력은 졸업 후 탄탄대로만 달릴 것이라는 보증서.
그런데 왜 기사단이 된 걸까.
사명감? 아니면 랭커에 대한 선망?
델피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지만, 특출난 사명감 비슷한 건 보이지 않았다.
아, 물론 로데오 기사단이 별로라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설립된 지 고작 몇 년. 하지만 기사단의 업적을 뛰어넘는 랭커나 연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스타바 전역에서 영웅이라 칭송받는 이들이 바로 로데오 기사단.
그치만 여긴 로메로 외에는 개인의 이름을 알릴 수도 없는, 노출 지양이라는 괴상한 모토까지 달고 있는 비상식인들의 집합체다.
솔직히, 델피처럼 완벽한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현장직 쪽 진로를 택하는 일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렘블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다들 처음엔 거창한 포부를 가졌다가 점차 바뀌어 간다.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위선적인 명예를, 누군가는 진정한 정의를 좇으며 각자의 진로를 개척해 나갔다.
그렇다 보니 렘블의 상류층, 즉 학생회는 대부분이 협회 수뇌부나 정치 쪽으로 발길을 트는 게 당연지사.
“…….”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역시 괜히 물었던 걸까. 개인의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건데 과한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답하기 곤란하면 안 하셔도 저는 괜찮…….”
“흠. 왜 들어왔냐고.”
굳건히 닫혀 있던 입술이 움직였다. 꽤 오랫동안 느릿느릿 눈을 깜박이던 델피는 멀거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꿀꺽.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괜히 두근거리며 기다리는데.
“그러게.”
“……예?”
“내가 왜 여길 들어왔을까.”
던져진 반문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반응해야……?’
방금까지 빛이 돌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진짜 내가 왜 기사단이 됐지?”
홱 올라가는 목소리에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하얀 얼굴이 구겨지며 그 위로 금이 쩍쩍 갈라진다.
이까지 드러내며 헛웃음과 체념, 그 어드메의 표정을 짓는 델피.
“델피 씨, 괜찮아요?”
“돈 많이 주고, 그 유명한 칠흑의 기사와 등을 맞댈 수 있다길래 냉큼 물었더니!”
하!
코웃음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는 건지는 처음 알았다.
“이런 콩가루 집단인 줄 알았으면 쳐다도 안 봤지!”
왈칵 터진 분노에 절로 내 어깨가 올라갔다. 이미 델피는 자신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듯 보였다.
‘뭐냐. 저 심연 같은 눈빛은.’
내가 뭔가 그녀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깨우면 안 될 것을 깨운 것 같은 느낌이…….
“들이미는 좋은 자리 다 걷어차고 왔더니, 동료라고 있는 인간들이 하나는 분노조절장애, 하나는 바보, 하나는 멍청이라니.”
탄식처럼 중얼거린 델피가 이마를 짚는다.
뚝 끊겨 버린 대화. 마음 아픈 정적이 복도에 가득 찼다.
‘사기…… 당했구나.’
영웅과 함께하는 심장 뛰는 모험.
아마 그런 것을 기대하고 들어왔을 게 뻔했다.
현타 가득한 얼굴을 보니 그간 꽤 고단했으리라. 솔직히 내 눈에는 델피 소르체 씨도 그렇게 막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분노조절장애는 마시모일 테고, 바보와 멍청이는 필립과 로메로가 하나씩 맡고 있는 거겠지.’
과연 누가 바보고, 누가 멍청이일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렘블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여행 좀 하면서 진로를 고르고 있었어.”
델피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는지 자연스럽게 열린 방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알아서 방 안 테이블 의자에 기댄 그녀가 들어오라며 눈짓했다.
‘다들 스스럼없는 건 좋은 일이지만, 역시 너무 스스럼없긴 해.’
하지만 입 밖으로 낼 자신은 없었기에 그냥 고개나 끄덕이며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고 델피는 마저 말을 이었다.
“그 텀이 너무 길어지니까 험버트 총장까지 전보 붙이고 아주 별…… 맞다, 지금 총장 험버트 아니라던데 진짜야?”
“네. 저 때 브란트 총장으로 바뀌었어요.”
“뭐어? 브란트!? 그게 말이 돼?”
험버트라면 브란트 총장의 동생을 말하는 거겠지.
내가 아스타바의 떨어지기 전의 아르센 네로로는 험버트가 총장일 때 입학했지만, 1년 반 전쯤인가 브란트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도 브란트 총장에서 졸업장을 받았고.
“아니, 험버트한테 밀려서 한직으로 쫓겨났던 인간이 어떻게 총장 자리에 앉았대?”
“협회에서 관여했다는 말이 돌긴 했던 걸로 압니다.”
“그럼 그렇지. 동생 재끼려고 생쇼를 했나 보네.”
혀를 차며 렘블의 브란트 델피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출 때였다.
……잠깐, 1년 반?
시기가 그쯤이라면 카밀라가 말했던 회귀 주기랑 엇비슷한 거 아닌가?
‘설마 이것도 뭔가 관련이 있나?’
델피의 반응도 그렇고, 협회가 관련 있는 거면 카밀라가 그 뒤에 있는 걸 수도 있는 일.
브란트라는 새로운 말이 필요해서 그녀가 꽂은 것은 아닐까.
요것도 조만간 카밀라를 만나면 이야기해 볼 리스트에 올려놔야겠다.
“아무튼 난 렘블에서 했던 생활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현장으로 가야겠다 싶긴 했어.”
“……렘블이 지루했다고요?”
대뜸 떨어진 신박한 감상평에 지난 내 6개월가량을 되새김질해 봤다.
하루하루 조용히 넘어가지 못하다 못해, 유혈이 낭자했던 시간.
음. 역시 우리 둘은 다른 곳을 다닌 건 아닐까.
“그러다가 잉그람 교수님을 만났어.”
델피가 테이블의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와삭와삭 소리와 함께 카밀라가 얼마나 달콤한 제안을 했는지가 들려왔다.
“……카밀라 씨 말 잘하시네요.”
“원래 배운 사람은 못 이기는 법이지. 교수님이 좀 똑똑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생각보다 별로 거창하지 않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이상에 부풀었다가 결국 현실을 마주하는 거지.”
‘결론은 사기당했다는 건가요.’
기대했던 것보다 서글픈 사연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 보이지.
과자 하나를 더 까먹은 델피는 쭈욱 기지개를 켜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진짜 끝. 나도 이제 자러 갈래.”
“저, 하나만 더요!”
“……기운 넘치는걸. 멀쩡해서 다행이야.”
델피는 걱정했던 게 무색하다며 웃더니 고개를 살짝 까닥거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별생각 없이 넘어갈 뻔했다. 이걸 물어봐야지.
“이스트본에 있는 베히멜 씨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팰리스에 온 지도 며칠인데, 르블랑에 대해서 쥐뿔도 알아낸 게 없었다.
“맞다. 그게 요점이었지? 여태 딴소리만 잔뜩 했잖아?”
베히멜의 이름에 델피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