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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시터는 그만 죽고 싶다 5권
지은이 : 정훤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정훤, 2025
※ ISBN : 979-11-7408-646-4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11월 3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31. 할머니가 남긴 보물 (2)
“우리 가게의 자랑이오!”
사장은 그렇게 답했다.
“자랑?”
진열장 앞을 가로막은 중년 아저씨의 얼굴은 한껏 진지해져 있었다.
“적어도 개당 10만 큐리는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도 비할 수 없는 녀석들……! 후, 깜짝이야.”
사장은 탕탕 진열장 유리를 두드리다 너무 세게 쳤는지 흠칫하며 병들이 잘 있는 걸 확인했다.
근데, 뭐?
10만 큐리?
겨우 저 조그만 것들이?
안에 들어 있는 액체를 셋 다 마신다고 해도 한 모금이나 될까.
“저것들이 10만 큐리라고요?”
“아니, 한 개에 10만 큐리요!”
썩 믿을 만하지 않은 소리였지만, 그게 또 허풍은 아닌 듯했다. 진열장을 향한 사장의 눈은 귀하다 못해, 보는 것도 닳을까 아까워하는 빛이었으니까.
귀염둥이 병들을 지키던 사장은 나를 돌아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안 믿는 얼굴이로군! 내 특별히 보여 주겠소.”
“예? 뭐 그렇게까지는…….”
사장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냅다 유리막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장의 등짝이 신나 보였다. 음.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뭐지.’
그냥 처음부터 자랑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저게 뭔지 궁금하긴 했으니 그냥 두자.
“손님은 정말 운이 좋다는 걸 알아 두쇼. 내가 원래 절대 안 꺼내거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를 돈 사장. 그의 두꺼운 손바닥 위로 작은 병 세 개가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자, 이것 좀 보십쇼.”
확실히 밖으로 꺼내니 안에 든 액체의 색감은 더욱 굉장했다. 사장이 들이밀며 보여 주는 병들에 절로 시선을 빼앗겼다.
들어 있는 양이라 봤자 손톱만큼이었는데, 품고 있는 영롱함이 보통이 아니다.
“난 언제나 이 녀석들의 주인을 찾고 있지요. 값만 치른다면 얼마든지 넘겨줄 텐데 참, 그게 쉽지 않소.”
사장이 안타깝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그럴 만해요. 개당 10만 큐리라며? 그걸 누가 사?
무엇보다 이게 뭐 하는 건데.
“이게 뭔지 두 번은 물은 것 같습니다만.”
“아! 내가 무엇인지 말을 안 했나.”
눈을 동그랗게 뜬 사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걸 준 분이 그랬소. 초기화 물약이라고.”
“초기화요?”
괴상한 이름이다. 초기화 물약은 또 뭐야.
내 뒤틀리는 미간을 봤는지 사장이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거 나도 알지. 하지만 믿어 보십쇼. 그걸 준 사람은 수상한 이가 아니라 코네바를 구해 줬던 영웅이었거든.”
사장은 장담한다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런데 잠깐만. 코네바를 구해 줬던 영웅이라고?
‘샴 이야기잖아?’
“이 세 물약을 한 번에 깨뜨려 내용물이 섞이면, 눈앞의 것들을 모두 초기화시킬 수 있다고 하셨지. 어떻소. 좀 흥미가 돋소?”
흥미?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안 들겠어.
심지어 샴이 준 거면, 절대 좋은 쪽은 아닐 것이다. 코네바를 구했다지만 나는 그 아래에 놈의 다른 목적이 있었을 거라 확신하니까.
“우…….”
로티도 뚫어지라 그 병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아서 눈길이 가는, 광채까지 흐르는 초기화 물약.
초기화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냐는 질문을 삼키고, 먼저 샴에 관해 물으려 할 때였다.
“이걸 줬다는 사람 이름이…….”
“아버지! 거 여행자 눈탱이 치려 하지 말고 마저 하려던 거나 해요! 말린 알카로스 도마뱀은 저쪽에 있으니까!”
성난 외침에 말이 뚝 잘렸다.
“뭐, 인마? 눈탱이? 이게 무슨 눈탱이야!?”
사장 또한 씩씩거리더니 옆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자연스럽게 나도 시선을 그리로 향했다.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물건이면서 말은…….”
“모르긴 왜 몰라? 그분이 말했잖냐. 아주 귀한 거니 정말 화나고 슬플 때 쓰라고!”
사장과 거의 복사해 둔 듯한 생김새의 젊은 남자가 쯧쯧 혀를 차며 걸어왔다.
얼굴은 물론, 머리카락 색에 골격도 비슷. 딱 봐도 아들이었다.
“제이크가 한 말 잊었어요?”
다가온 아들이 삐딱하게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전부 그놈이 꾸민 짓이었다고요. 그러니까 제발 그것들 좀 버려. 기분 나쁘다고!”
다시금 샴에 관해 끼어들려던 나는 멈칫 입을 닫았다.
남자가 하는 말이 흥미로웠다. 샴을 아는 눈치였다.
“제프, 헛소리하지 마라. 너희가 아무리 뭐래도 샴 님이 영웅이신 건 바뀌지 않아.”
“와. 진짜 답답하네.”
아들 제프가 제 가슴을 퍽퍽 치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대체 이걸 몇 번 말하는 거야.”
“됐다! 하여간에 좀만 수틀리면 이렇게 돌아서고. 너희가 얼마나 그분을 따랐었는지는 기억도 안 나는 거냐!”
사장이 말하기 싫다는 듯 버럭 소리치곤 홱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귀여운 물약들도 가져간 채로.
‘뭐여.’
별안간 버려졌다.
“하…….”
제프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쿵쿵 걸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다 이내 내 쪽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저걸 손님한테 팔려고 할까 봐 끼어들었네요.”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던 모습과는 달리 제프는 꽤 점잖은 사람이었다.
타이밍이 딱이다. 지금 물어보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샴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대체 누굽니까?”
상대는 샴에게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섣불리 아는 척하기보단 처음부터 들어 보는 편이 좋을 듯했다.
“샴이요…….”
제프는 눈을 깜박이더니 말이 없었다. 알려 주기 싫은 기색은 아니었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걸로 보였다.
나는 참을성 있게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샴은 몇 년 전에 코네바에 나타났던 한 남자였습니다. 아마 이름을 숨긴 랭커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마침내 제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아!”
다만 로티는 이제 재미가 없었나 보다.
“쩰리는! 쩰리이이!”
“로티, 잠깐만, 좀!”
언제 저 앞의 젤리 더미를 보았는지 얌전히 있던 애가 미친 듯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쩰리 줘어어어! 빤니이이이!”
“아니, 얘가 왜 이래.”
앞치마에 치르치르 뿌리도 넣어 놔 안 그래도 목이 묵직한데, 이젠 로티까지 내 모가지를 붙잡고 바둥거렸다.
“쩌기 쩰리!”
“하하. 마저 둘러보시고 계산하실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별로 긴 이야기는 아니에요.”
광분하는 로티를 본 제프가 계산대를 가리켰다. 그러고선 잡화점 안의 다른 손님에게로 사라졌다.
안 돼. 마저 말해 주고 가!
“로티, 왜 그래. 형 지금 대화 중이었잖아.”
막 샴에 대해 들어 볼 수 있었는데 우리 예쁜 꼬마가 이렇게 잘라 버리다니.
“쩰리!”
새파란 눈동자는 아예 내 말을 들어 먹질 않고 있었다.
어딜 그렇게 보고 난리인지 살피자 우리 앞편에 젤리 더미가 가득 쌓여 있었다.
“어쩐지 단내가 나더니.”
그래. 점원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계산할 때 들으면 되지. 살 것부터 사자.
“젤리 사 주면 조용히 하는 거야. 알겠지?”
“응!”
명랑하게 답한 로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얌전하고 조용한 애라도, 아기는 아기. 당장 손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코앞에 젤리를 두고 먹지 못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옆에 놓인 봉지에 젤리를 담아 포장하는 사이 로티가 손을 뻗어 왔다.
“스읍. 아직은 먹으면 안…… 되지만 이거부터 계산하자.”
침을 질질 흘리며 젤리를 담는 걸 쳐다보는 눈이 애처롭다 못해 짠했다.
얼른 기다란 딸기 맛 젤리 한 줄을 들고 계산대로 가려고 하니, 좀 떨어진 곳의 제프가 그냥 먹여도 좋다는 대답을 해 왔다.
“좋은 사람이네.”
로티의 입에 젤리를 물려 주자 쇼핑은 한껏 더 편안해졌다.
샴은 잠시 잊고, 또 얼마 만에 잡화점에 들를지 모를 일이니 필요한 건 미리미리 사는 게 좋을 테지.
“도마뱀 가루는 계산할 때 말하고…… 그럼 옷부터 좀 볼까.”
사실 애들 옷은 전문점으로 가는 게 좋긴 하지만 귀찮았다. 어차피 이런 곳도 어지간해서 기본은 하니까.
잡화점 내부 이곳저곳에 놓인 바구니 하나를 들고 다른 손님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정말 큰 곳이었다. 잔뜩 쌓여 있는 정리하지 못한 투박한 나무 상자들은 전부 묵직함을 자랑했다.
“……과일도 사 놓으면 먹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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