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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시터는 그만 죽고 싶다 3권
지은이 : 정훤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정훤, 2025
※ ISBN : 979-11-7408-641-9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11월 3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19. 죽음의 선상 파티 (2)
지옥이라도 열린 듯 난장판이 된 선상.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밤바다를 밝히던 취객들의 노랫소리가 꿈이었던 것처럼 사방에는 비명과 고함만이 난무했다.
도망치는 사람들끼리 서로 밀치기 바빴고, 넘어진 사람 위에는 또 사람이 넘어져 겹치기를 반복했다. 무리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미니 로비 안으로 미친 듯이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아무 전조 없이 나타난 정체불명의 마물.
놈은 물고 있던 흉터 사내를 두 손으로 잡더니, 자세라도 고쳐 잡듯 매만졌다. 그러고는,
우지직!
적어도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깔린 입을 쩍 벌렸다가 다시 콱 다물었다.
끼르르르륵!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지자 돌고래 같은 마물의 대가리가 만족스러운 듯 울부짖었다.
완전히 숨이 끊긴, 이마 윗부분이 텅 빈 시체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멀리서도 갑판을 흥건히 적시는 핏물이 적나라했다.
‘윽…….’
여태 어지간한 못 볼 꼴은 많이 봤다고 자부하지만, 이 아비규환에 잘만 잠들어 있는 로티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 저, 저게 뭐야!”
“승무원! 승무원들 어딨어!”
“으아악! 이 새끼들아, 비켜!”
안나마리아호는 밀항선.
범죄자나 여러 이유로 떳떳지 못한 사람들이 탄 배.
즉, 높은 확률로 테디 같은 이능력자들도 다수일 터였으나 모두 제각기 도망치기 바빴다.
흠뻑 취해 있었기도 했거니와, 다들 느끼고 있었다.
저건 보통 마물이 아니라는 걸.
절대 함부로 덤비면 안 된다는 걸.
이 모든 게 불과 30초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일어나!”
멍하니 관망하던 것도 잠시, 나는 로티를 묶은 아기 띠를 꽉 조이고 축 늘어져 있는 잭의 머리통을 강하게 내리쳤다. 손이 욱신거릴 정도의 타격이 일자 잭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뭐, 뭐, 뭐, 뭐야!”
펄떡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홱홱 움직이는 잭. 하지만 곧 난리 통을 인지하자마자 술이 싹 달아난 얼굴로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좀 일어나, 새꺄!”
마물까지 보고서는 잔뜩 사색이 되어 제 용병을 개 패듯 깨워댔다. 프로펠러처럼 사정없이 때려대는 잭에게 뺨을 수십 대쯤 얻어맞은 거대한 몸뚱이는 다행히 느릿하나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럴 땐 승무원들이 대응하는 거 맞습니까?”
대충 도망갈 상황이 만들어지자 그나마 믿음직한 벤에게 물었다. 그도 자리 정리를 끝낸 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안나마리아는 승무원이 이럴 때를 대비해 전부 이능력자니까.”
“그럼 어서 갑시다. 우리도 빠져나가야죠.”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는 갑판의 인파.
있던 자리가 한쪽 구석이라 사람들에게 치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남아 있다가는 승무원들이 오기도 전 마물의 다음 표적이 될지도 몰랐다.
“난 안 가! 이 멍청한 새끼들! 다 도망가면 어쩌자는 거야? 애새끼들처럼 깩깩 소리나 질러대고!”
여전히 술에 떡이 된 테디가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마물을 향해 달려 나갈 기세에 벤이 덥석 동료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자네야말로 멍청하게 굴지 마. 저건 이길 수 없어. 승무원들이 해결하게 두게.”
“지금 저 괴물을 두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건 안 되지! 나는 렌자의 스톤……!”
“저건 네 머리째 뽑아 먹을 거다, 테디.”
“벤! 설마 겁이라도 먹은 거냐!?”
“테디 씨! 가자고요, 그냥!”
취객의 쥐뿔도 쓸데없는 오기에 나까지 나서던 그때.
“죽여!”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도망치는 사람들을 뚫고 승무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수십 명의 남자.
여태 보이던 멀끔한 이들이 아닌, 복장만 승무원 흉내를 내고 있는 거의 유사 산적들이었다. 개중에는 새파란 작업복을 입은 남자도 몇 섞여 있었다.
“이거 놔 봐! 이러다 저놈들이 처리하겠다고!”
버둥거리는 테디 너머로 뛰어가는 그들은 하나같이 살갗이 온통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어떤 유형의 마물인지 모른다! 무작정 덤비지 마라!”
승무원 무리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치자 다른 인원들이 속도를 줄이며 몰이하듯 둥글게 대형을 이룬다.
‘······저게, 승무원?’
당황스러운 생김새에 벙쪄 있는 와중,
촤촤촤-!
누군가 능력을 발동시켰는지, 실내에 물기둥이 몰아쳤다.
규모를 보아하니 맨 앞에 선 대여섯 명의 합작. 물방울을 여기까지 튀기던 물기둥은 이내 서서히 거대한 공 모양을 이뤄 가고 있었다.
‘그대로 쏘아낼 생각인가.’
상황을 지켜보는데 마물의 반응은 의외로 얌전했다.
끼륵- 끼르륵-?
마물은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며 둥그러져 가는 물의 흐름을 응시하더니 이내 느릿하게 승무원들을 향해 움직였다.
잠깐만.
‘우리 쪽이랑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잖아.’
마물을 상대할 승무원들은 꽤 강해 보였으나, 방심은 금물. 여전히 자신도 싸우겠다고 허우적대는 테디 때문에 발이 묶일 순 없었다.
‘일단 나가자.’
아직까지도 실랑이 중인 벤과 테디는 손절이 필요했다. 로티를 챙겨 빠져나가는 승객들 쪽으로 향하기로 마음먹고 걸음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끼르르르르륵-!
“크아아악!”
자리의 모두가 귀를 감싸 쥐었다. 당연히 나도 피해 갈 순 없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어마어마한 고주파. 뇌까지 흔들리는 감각에 겨우 앞을 보는데 마물이 그 징그러운 입을 쩍 벌리고는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끼와아아악!
그러고는 펄쩍.
“쫓아!”
승무원 리더의 고함이 선상을 쩌렁쩌렁 울렸지만 이미 늦었다. 자리에서 뛰어오른 마물은 그대로 갑판 너머로 사라졌다.
바다로 다이빙하듯 눈 깜짝할 사이였다.
“당장 쫓아라! 낮의 살인 사건도 저 괴물이 벌인 짓일 수 있다!”
승무원들이 제각기 방법으로 놈이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어느새 선상에는 침묵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기뻐 보였다.’
마물이 분명 웃었던 것만 같았다.
***
“이거, 어후. 무슨 뚜껑 따듯이 뜯어 먹었네요.”
나는 미간을 좁힌 채 시체를 둘러보았다.
승무원들이 마물을 쫓아 사라지고 엉망진창이나 다름없는 파티장.
다음을 기약하며 용병을 데리고 돌아가는 잭을 뒤로하고 나는 벤과 함께 죽은 흉터 사내, 갈론에게 와 있었다. 테디는 상황이 진화되자 언제 난리를 쳤냐는 듯 테이블에서 까무룩 잠든 채였다.
혹여나 로티가 깨서 난잡한 현장을 볼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자는 애의 눈을 가린 채로 심각히 주변을 살폈다.
“이 사람 이름이 갈론이라고 했죠.”
“그래. 배달부 갈론. 질은 당연히 나쁘고 뒷세계에서 꽤 유명한 놈이었지. 온갖 걸 다 배달해 준다고 해서 배달부라고 불렸어.”
벤은 연초를 입에 물다 로티를 보고는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시체를 들여다보던 벤이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런데 애도 있는데 그만 방으로 가지 그러나.”
“……그래야죠.”
하지만 발걸음이 떼지질 않았다. 일행인 로메로 때문에 다쳤던 사람이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걸리는 게 있는 건지 속에서 자꾸만 뭔가 거슬렸다.
내가 끙끙거리며 갈론을 보고 있자 벤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놈이 여기 있다는 건 또 뭐 구린 걸 3대륙으로 가져가는 중이었거나, 가지러 가는 중이라는 건데……. 잠깐!”
“왜 그러십니까?”
“이 새끼, 설마 아까 그 마물을 실은 거 아닌가?”
“예에?”
그럴싸했다.
마물은 암시장에서 값비싼 거래 품목이었으니까. 특히나 강한 마물일수록 더더욱.
“갈론은 상대를 재우는 능력을 가졌지. 유지 시간이 아주 길진 않았지만 그런 능력 덕에 배달부로는 천직이었어. 마물을 재워서 실었는데 여차해서 깨어난 거라면, 충분히 말이 되지 않나?”
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자기가 팔려던 마물한테 당했다라. 지능이 높은 상급 마물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 마물이 앙심을 품고 죽인 거라면 앞뒤가 맞았다.
‘잠깐만. 설마 로메로한테 맞고 기절해서 마물을 재울 시간을 놓친 건가?’
순간 뇌리를 스친 생각까지 벤의 말과 합치니 딱 들어맞는다.
‘아아. 로메로 씨.’
왜 그리 넘치도록 강해서 사람을 한 방에 녹다운시켰나요…….
흉터 사내가 불쌍한 것 아녔지만, 괜히 로메로를 한번 원망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그녀 덕분에 여객선에 마물이 돌아다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보통 주변에 있는 인간들도 일단 죽이고 보는 게 마물인데 왜 그냥 도망쳤을까요?”
이제 와 쓸데없는 상념은 치우고 다시 앞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상급 마물이라도 이런 경우는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물론 열세라고 느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마물에게선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그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네. 근데 아까 마물이 뭔가를 챙기는 것 같이 보이지 않았나?”
“챙겨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챙겨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확실히 마물은 갈론을 더듬듯 만졌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뚜껑을 따 먹어 버렸지만.
“벤 씨는 이전에 그렇게 생긴 마물 보신 적 있습니까?”
“전혀.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건 처음 본다네. 완전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었나.”
그랬다. 흡사 사람의 외형에 반들반들한 피부, 돌고래 같은 기괴한 머리.
골똘히 눈매를 늘이던 벤은 이제 질렸는지 손을 휘저었다.
“하, 됐네. 우리끼리 고민해 봤자 뭐 있겠나. 그만 가지. 저자들도 이제 치우고 싶은 눈치니까.”
“……그래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