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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시터는 그만 죽고 싶다 2권
지은이 : 정훤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정훤, 2025
※ ISBN : 979-11-7408-640-2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11월 3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9. 얼렁뚱땅 임시 직원
랭커는 오직 S급과 A급만이 존재했다.
즉, 랭커라는 자리는 A급을 부여받은 이능력자들만이 도전할 수 있었다.
흔히 부르길 랭커 지망생.
대부분의 A급들은 랭커가 되길 바라며 아스타바 전역에서 활약한다. 토벌대나 구조 활동, 호위 등 일정 이상의 업적과 명성이 쌓이면 랭커 데뷔전에 참가할 수 있는 초청장이 랭킹관리국에서 날아왔다.
하지만 S급은 그런 거 없다.
등급을 부여받은 순간부터 이미 랭커였으며 최고, 초일류의 대접이 따라왔다.
그만큼 S급은 흔치 않았고, 개개의 존재 자체가 아스타바의 힘이며 질서였다.
‘그런데 S급이 죽었다고?’
심지어 9위면 그들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절대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일단 끼어들 만한 대화는 아닌 듯해, 나는 잠자코 상황을 지켜봤다.
삽시간에 말을 잃은 기사단원들의 시선이 모두 카밀라에게로 꽂혔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듯, 그건 방금까지 눈동자를 굴리던 로메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 로메로에서 기묘한 희열을 느낀 것 같았으나, 또 저런 모습을 보니 아마 잘못 본 듯싶었다.
하지만 충격에 빠진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제 손으로 입을 가린 카밀라는 멍하니 폐허나 다름없는 저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읽어 보시겠습니까.”
교수를 깨운 건 마고였다. 카밀라가 굳은 얼굴로 새로운 공문을 받아 들었다.
“……협회는 마물 토벌 때문에 기사단을 부르는 게 아니군.”
한참 종이를 들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카브리스의 죽음이 기괴하다, 라…….”
종이가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내 반으로 죽 찢어 버리는 카밀라.
“교수님?”
그 흉흉한 기세에 델피가 흠칫하며 그녀를 불렀으나 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 보랏빛 눈동자는 나를 찾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네요. 카브리스는 죽은 적이 없었는데.”
내게 가까이 다가온 카밀라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주르륵 달려든다.
‘카브리스는 죽은 적이 없다?’
교수가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은 이제 좀 익숙했으나 여전히 심장은 빠르게 쿵쾅댔다.
사람들이 바라봄에도 나는 침착히 카밀라를 내려 보며 물었다.
“그게 혹시 저와 관련 있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죠?”
“센터에서부터 계속 제게 이상한 말씀을 하고 계시니까요.”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카밀라에 나는 내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지고 있던 어떠한 의문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카밀라는 저주와 관련이 있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메인 퀘스트.
주인공을 도와 아스타바에 내려진 저주를 푸는 것.
얼마나,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저주의 열쇠 중 하나다. 단지 주인공을 찾는 데 필요한 단서 따위가 아님이 분명했다.
카밀라 잉그람이라는 존재를 단지 괴짜 천재 사이코로 치부하기에는 수상한 기척이 너무 많다.
그녀를 만나면서 얻게 된 알림창.
[핵심 단서를 획득하였습니다!]
[주인공의 두 번째로 소중한 사람에게 선택받았습니다!]
[‘이름의 힘’은 강력합니다!]
<제3단서>
단장과 가까워지십시오. 그녀가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몰아치는 사건에 차분히 뭔가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상이었지만, 카밀라와의 접촉이 적어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일이란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정말 만일이지만, 카밀라는 그 ‘저주’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섣불리 물을 수도 없다. 그럼 내 정체를 의심하게 될 테니까.
딱 봐도 세상은 저주인지 뭔지에 걸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카밀라가 내게 어떻게 저주가 내려진 줄 알았냐 물으면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나는 사실 플레이어라고?
여기가 게임 속 세상이라고 말해서 믿어 주면 희망편이지만, 만약에 악마숭배자라고 몰리기라도 하면 절망편이 펼쳐질 것이었다.
악마숭배자들이 항상 주장하는 바가, 이 세상은 대악마들의 놀이터이며 우리는 그에 복종하며 안위를 누리는 게 최선의 선택이자 영광이라 지껄였으니까.
혹시라도 악마숭배자로 몰리는 순간, 나처럼 빽도 없고 약해빠진 시민은 바로 그 유명한 마녀재판에 넘겨질 것이었다. 센터장이 말했던 대로 카밀라가 진짜 그쪽이라서 날 믿어 준다면 모를까.
‘하지만 카밀라 잉그람은 악마숭배자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주인공과의 관련도를 제외하고, 로티가 잘 따르는 것만 보더라도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기가 막히게 사람을 가리는 녀석이 나 못지않게 덥석덥석 잘도 안기니까.
물론 광기에 가까운 업무 집착은 좀 소름 끼치지만.
“오늘 본 저런 등급의 마물들은 여태 이스트본에 나타난 적이 없었어요. 내가 고안한 게이트 탐지기도 반응이 없었으니, 놈들은 어디선가 나타나 여기까지 온 거겠죠. 굳이.”
카밀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내렸다. 로티가 눈을 끔벅이며 그녀를 마주했다. 꽤 오래 아이를 응시한 그녀가 천천히 로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침 내가 당신 때문에 기사단을 이곳에 부르지 않았다면, 이스트본은 더 험한 꼴을 봤을 겁니다. 3구역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이 죽었겠죠.”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혹시 당신이 열쇠일까?”
“……예?”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뇌를 쥐어짜듯 한 욱신거림에, 나를 봐 오는 그녀의 시선에.
영롱하게 빛나는 카밀라의 눈동자는 공허했다.
마치 이 모든 것에서 아득히 초월한 사람의 것처럼.
“네로로 씨 말대로 정말 관련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제 아주 지긋지긋하거든.”
뭐라 더 묻기도 전, 로티의 머리에서 손을 뗀 카밀라가 힐끗 로메로를 바라본다. 찰나 둘의 시선이 맞붙었으나 교수는 곧바로 나를 지나치며 말했다.
“로데오 기사단은 3대륙으로 갈 겁니다. 임무는 랭커 카브리스의 죽음에 대한 조사.”
단원들에게 뒤돌은 모양새로 그녀는 단호히 내뱉었다. 숨죽인 채 나와 카밀라의 대화를 기다리던 델피와 필립이 격하게 반응했다.
“네에? 교수님! 말도 안 돼요!”
“싫습니다! 또 출장이라니!”
하지만 그들의 의견 따위는 애초에 고려 대상도 아니었는지 카밀라는 이어 다음을 덧붙였다.
“떠나는 인원은 로메로 부단장, 델피, 필립. 그리고 아르센 네로로 씨와 로티입니다. 마고는 그렇게 보고 올리세요.”
“교, 교수님. 아르센 네로로가 정말 기사단에 들어가는 겁니까?”
마고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카밀라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처음 보는 기사단원들이 이상한 상황이 아닌가.
그들은 나와 로티가 함께한다는 말에도 단지 ‘출장 싫다, 진짜.’만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이미 다 계획되어 있었던 것처럼.
“잠깐만요. 기사단이라니…… 제가 말입니까?”
얼핏 카밀라가 기사단 소속이라는 건 알아챘다. 로티의 예지로 내가 들어가는 곳이 ‘기사단’이라는 것도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합류?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정식 서임은 이번 일이 끝나고 치르죠. 부디 모두가 인정할 만한 역량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로로 씨.”
다른 분들도 임무 완벽하게 마치시고요.
카밀라는 멋대로 제 할만 마치고 어느새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하여간 자기 마음대로라니까. 대체 왜 저렇게 변하신 거야?”
벅벅 머리를 긁은 델피가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쨌든 축하해. 우리 꽤 괜찮은 연합이니까 나쁘진 않을 거야. 음, 뭘 기대하고 있는 거에 따라 다르겠지만.”
멀거니 그녀를 바라보다 퍼뜩 손을 맞잡았다. 꽉 쥐어 오는 악력이 예사롭지 않다.
“와! 잠깐만, 잠깐만. 출장은 싫지만 이제 나 막내 아닌 거야? 뭐야, 최고잖아!?”
이어 그 뒤에서 쾌재를 부르는 필립.
정말,
이게 맞나?
‘정말?’
***
그렇게.
“아, 좁아! 선배 옆으로 좀 가 봐요!”
“닥쳐. 필립.”
“거기 자리 있잖아!”
“혹시 저 흙바닥을 말하는 거라면 네가 또 쥐어 터지고 싶은 거구나?”
나는 웬 짐마차에 실려 이스트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로티. 형 좀 볼까?”
아까부터 가슴팍에 찰싹 붙어 있는 꼬마를 툭툭 건드려 보았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상의만 꽉 쥔 채 고개를 들지 않는 로티.
‘흠. 뭐가 많이 마음에 안 드나 보네.’
마차에 탑승한 이후, 기사단은 한참이나 로티와 친해져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심통이라도 났는지 얼굴을 파묻은 대답 없는 아이에 하나둘 포기하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선 델피와 필립이 싸워대고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건 전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애들이 낯가리는 게 심각한 일도 아니고.
진짜 피곤한 건,
‘힘들다.’
지푸라기와 퀴퀴한 가축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른 넷에 아이 하나로 가득 찬 짐칸.
우리는 도심을 벗어나며 만난 비포장도로가 선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 몸에 받아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엉덩이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게, 뭐지…….’
멍하니 천막에 가로막힌 허공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내내 쉬지 않고 불평을 늘어놓던 필립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단원도 더 늘었는데 지원 좀 팍팍 해 주라고 부단장이 말해 봤어야죠, 좀! 왜 맨날 짐마차야! 우리도 자동차 태워 줘!”
“이 정도면 편하구먼, 뭘. 짚 더미에 잘 기대봐 봐.”
“편하긴 뭐가 편해! 그놈의 수칙도 좀 바뀔 때가 됐다고요! 교수님한테 말 좀 해 봐요!”
로메로 본인도 내내 사지를 비틀며 끙끙거렸으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짚 더미에 등을 기대 보였다.
“저, 원래 이렇게 이동하나요?”
필립의 발광에 영향을 받았는지 다물고 있으려 했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건 납득하려 해도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이동 수단이었다.
아스타바는 확실히 그 토대가 게임 속이어서 그런지 여러 요소에서 괴상한 혼종이 존재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이런 거였다.
시속 60km까지 달릴 수 있는 자동차와 말이 끄는 마차의 공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