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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천재 사냥개 6권
이야기상인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빙하기 (2)
능력
제조업자
그린라이트 (1)
1
빙하기 (2)
그로부터 약 2주가 흐르고.
수도 제1 대학. 윌터스 그레고리 교수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바이올렛.
그녀가 마시던 커피가 비자 윌터스 교수는 새로운 커피를 타 주었다. 바이올렛은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이를 받았다.
“최근 공화국의 ‘신무기’로 대륙 전체가 소란스럽습니다.”
바이올렛은 커피잔을 든 채 손에 온기를 전하며 말했다.
47지구에 떨어진 가공할 만한 위력의 급속 냉각 폭탄.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얼어붙은 47지구는 외부에서의 진입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마나의 불안정성을 이용했다고 하던가요. 섣불리 다가가면 불안정한 마나가 내뿜는 극한의 냉기에 전신이 얼어붙는다죠.”
현대 마도공학의 정점.
마나가 가진 불안성을 한순간에 극대화한 재앙에 가까운 무기.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왔는지 ‘공식적으론’ 발표되진 않았다.
다만 추측하기로 반경 500m 이내의 건물은 모두 증발.
3km 이내의 생물체는 폭발 충격으로 인해 모두 사망.
15km 이내의 건물은 반파, 생명체는 사망 혹은 냉각화되었다.
냉각화된 생명체의 생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상황.
결국, 47지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사망했다고 여겨진다.
“…….”
바이올렛은 좀처럼 펴지지 않는 인상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이 분명 쓸 텐데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말을 않자 이번엔 윌터스가 이었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47지구를 봉쇄했다더군. 그런다고 해서 쏟아지는 비난을 돌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규군과 특수대를 비롯한 공인들, 주요 인사들은 미리 47지구에서 벗어났다.
이 사실은 대중들에게도 알려졌고 그들의 직업의식을 의심하며 욕했다. 시민을 지켜야 하는 이들이 시민을 버리고 저들만 살겠다고 피한 꼴이니 말이다.
“…애꿎은 이들만 고달프게 되었지. 그들은 명령을 따랐을 뿐일 텐데.”
“…….”
침묵하는 바이올렛.
생각에 잠긴 그녀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위원회는 어째서 이런 선택을 한 걸까요?”
바이올렛의 자주색 눈동자가 윌터스에게 향했다.
의문과 의심을 담은 눈동자는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다.
“신무기에 대한 시민들의 충격. 그 반발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었을 테죠. 그럼에도 사용했다는 건 분명 이를 상회하는 이익이 있었을 거란 뜻일 텐데…. 안 그래도 커져 가고 있던 반기술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다니.”
반기술주의.
처음엔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의 연합으로 시작되었던 단체가, 이젠 인간의 완전한 해방을 외치는 이념 집단이 되었다.
이에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 윌터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임에도 한산해진 학교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가 말했다.
“운동권의 힘이 갈수록 세지니 이곳도 언제까지 운영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군. …미스 바이올렛, 자네는 이번 일을 한 단어로 어떻게 나타내는가?”
“한 단어…….”
“문장이어도 상관 없네. 다만 단순해질수록 의미가 심화되니 가능하면 단어가 좋겠군.”
윌터스의 물음에 턱을 집는 바이올렛.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입술을 열었다.
“참극…일까요.”
“참극이라.”
“위원회는 평화를 부르짖는 척하며 재앙을 터트렸죠. 그라이트가 일으킨 ‘쥐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다곤 하나, 제겐 합당한 사유로 보이지 않습니다.”
동인 출신 특수대, 한을 홍보대사로 앞세웠던 공화국.
그러나 그저 불운인지 동인 지구에서 문제가 생겼고, 최악을 면하기 위해 차악을 택했다.
이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동인들에게는 깊은 통감을 느끼며 사죄한다는 게 공화국의 입장.
하지만, 지천회의 주요 거점이 47지구에서 발견되었던 것.
지천회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그곳에서 잡혔다는 것.
47지구의 많은 시민들이 사실 뿌리 깊이 공화국을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저 우연일까.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소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봤을 땐 그만한 명목도 없죠.”
바이올렛이 다소 분노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원흉을 떠넘기기도 알맞지 않습니까. 쥐 사태를 일으킨 그라이트를 타겟 삼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니, 이후 피해가 커질수록 대중의 분노는 범죄자들에게 향하게 되겠죠.”
바이올렛은 화를 식히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뜨겁다 한들, 바이올렛의 속보다 뜨겁진 않았다.
“…발언을 조심할 필요가 있겠군.”
“죄송합니다. 공개된 자리가 아닌지라 지나치게 솔직했군요. 하지만, 교수님께선 제자와의 유대 관계를 값싼 입놀림에 끊어 버릴 분이 아니시잖아요?”
“그렇게 봐 주니 고맙네. 한 잔 더 마시겠는가?”
“아뇨. 이 이상 마시면 밤을 새울 것 같아 말씀은 감사하지만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바이올렛은 잠시 눈을 감은 채 옅은 숨을 몰아냈다.
도로 머리가 차가워지니 검은 나비 같은 속눈썹이 열린다. 안에 담긴 자주색 보석은 도로 윌러스에게 향한다.
“교수님께선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이십니까?”
“날 교수 자리에서 내쫓을 생각인 건가?”
“저 역시 외부에 발설은 않겠습니다. 브래딘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죠.”
바이올렛은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팬던트를 꺼내 보였다.
그녀에게 그 행위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음을 알지만, 윌터스는 답했다.
“신무기라 불리지만… 사실 해당 무기가 개발된 건 전쟁 시기네.”
윌터스는 해당 무기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
바이올렛은 이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으나, 우선은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굳이 이번 자리가 아니더라도 기회는 있을 터다.
“다만, 무기의 개발이 끝남과 동시에 공화국은 모든 국가의 항복을 받아냈고, 이후 무기는 세상에 공개될 날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윌터스의 표현에 의문이 든 바이올렛.
그녀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을 듯 머물러 있자, 윌터스의 입이 열린다.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억제력을 얻었다. 이 사실을 세상에 공표하고 싶었으니까.”
“…….”
“압도적인 무력은 외부를 공포에 빠지게 하고, 내부를 공고히 하는 것 아니겠나.”
“교수님. 그렇지만, 현 상황을 살펴보면 그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이올렛이 물었다.
반기술주의자들은 빠르게 세력이 커지고 있고.
이는 명백한 공화국 내부의 분란일 터.
이에 윌터스는 되레 묻는다.
“그건, 위원회가 정의하는 ‘내부’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겠나?”
“…….”
생각지 못한 답변에 얼어붙은 바이올렛.
그녀의 표정이 점차 심각해져 갔다.
외부의 적.
그 시작은 다른 국가였고.
현재는 범죄자이며.
이후는 반기술주의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또 그다음은?
“그리 심각해질 건 없네.”
바이올렛의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지자 윌터스가 말했다.
태연한 건지 초연한 건지. 그는 차분히 커피를 마셨다.
“적어도 브래딘 재벌의 여식인 자네는 최후순위일 테니.”
“…….”
“웃으라고 한 농담이었는데 웃기진 않았나 보군.”
바이올렛의 표정에 미동도 없자 윌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바이올렛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머리를 가볍게 하려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어거스터스에 관한 얘기가 세간에서 자주 오르내리더군.”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꺼낸 새로운 주제, 한 어거스터스.
바이올렛의 남자친구이기도 한 그의 언급에, 신기하게도 바이올렛은 환기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제일 검호라 불리게 된 탓도 있지만, 역시 공화국에서 밀고 있는 탓이 크죠.”
“쥐 사태의 최초 발견자라고 했던가. 전부터 사건을 끌고 다니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한 얘기를 하자 그제야 웃음 짓는 윌터스.
마치 자식 자랑을 하는 부모의 모습 같기도 하다.
“…혹시나 해서 여쭙습니다만, 친자식인 건 아니시죠?”
“친자식처럼은 여기고 있네. 그러니 자네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뻤지. 솔직히 말하면 그가 평생 여자 손도 못 잡아 볼 줄 알았거든.”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는 알 것도 같습니다.”
바이올렛에게도 번지는 웃음.
세상 심각한 얘기를 하다가도 그에 관한 말을 할 적이면 이리 된다.
참으로 신기할 노릇이다.
“남자친구가 바빠서 힘들겠어. 못 본 지 얼마나 됐지?”
“1달 조금 넘었군요. 그래도 오늘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잘하면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을 테죠.”
“나한텐 어떤 연락도 없었는데?”
“아… 그렇습니까?”
“…….”
“…어찌 됐든 이렇게라도 전하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약간의 찝찝함이 남긴 하지만, 이내 넘기는 윌터스.
곧 바이올렛이 떠날 때가 되자 첨언했다.
“앞으로도 잘 지내 주게.”
많은 생각이 담겨 천천히 바닥에 깔리는 목소리로.
부탁하듯이.
“그는 외로운 사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