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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천재 사냥개 4권
이야기상인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수조
지천회
쓰레기 마을
최강 무력
어떤 아이
지하 통로 (1)
1
수조
브래딘 재벌가의 가주, 브래딘 이안.
그는 아주 독특한 사람이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칭한다.
대륙 제일의 재벌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라고.
훤칠한 키와 칼로 깎은 듯한 이목구비는 그만의 아우라를 만들어 내는 듯하지만, 실은 신비스러운 말투와 신사다운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숙성된 와인 같은 이 중년의 남자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치 바이올렛이 의도하지 않아도 뭇 남성들의 마음을 휘어잡듯이. 그 역시 매력적인 사람이라 비쳐졌다.
그러나, 와인에서 한 가지 맛만 나지 않듯.
이안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인품, 언변, 돈에 이끌린 수많은 사람들. 이들 중 조금이라도 이안과 대화를 제대로 해 본 이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이안, 그는 어딘가 독특한 사람이다.’
그 의미가 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를 차치하면서 말이다.
* * *
바이올렛이 저택에 들기 전.
대략적인 내부의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한이 움직였다.
정보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았다.
특수대 경력을 살려 잠입이나 도청은 자주 해 봤으니까.
결과, 레아가 당한 수모를 알게 되었고 바이올렛은 분노했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자신이 레아를 두고 왔기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니, 그렇다하더라도 이럴 순 없다.
어떻게 10년을 함께한 이를 온몸에 피멍이 날 때까지 팰 수가 있는가.
“레아를 때리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곳은 가주의 서재. 내부엔 빽빽이 꽂힌 책들이 가득하다.
곳곳에는 각종 사이즈의 어항도 있다. 금붕어, 철갑상어… 다양한 곳에서 온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친다.
그곳에서 바이올렛은 그녀의 아버지, 이안과 마주했다.
의자에 앉은 이안의 시선은 차갑게 내려앉았고. 바이올렛은 반대다.
“다른 고용인들도 홧김에 때리셨습니까?”
“…….”
“말씀해 보십시오 아버님.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했지.”
순순히 인정하는 브래딘 이안.
명쾌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이런 태도가 어이없는 바이올렛.
오죽했으면 그 아버님 앞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째서 그리도 당당하십니까? 손찌검을 하실 거였다면 그들이 아니라 제게 하셨어야지요.”
“…….”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는 바이올렛.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는 이안.
처음 보는 반항적인 태도에 당황해 버럭 성질을 낼 것만 같지만, 이상하리만큼 담담하다.
홧김에 고용인들을 때렸다는 사람치고는 모순되듯이.
…그렇게 한다는 말이.
“딸아, 아빠가 어떻게 너를 때릴 수 있겠니.”
마치 좋은 부모이기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고 차분하다.
“넌 어릴 때부터 아빠 말을 잘 따라 준, 착한 아이인데.”
“뭐라고요…?”
“그런 것보다, 약혼식을 망치고 나갔다 돌아왔는데. 먼저 해야 하는 말이 있지 않을까?”
“…….”
되레 사과를 요구하는 태도에 말문이 막히는 바이올렛.
원래부터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피가 이어진 부모라고 해도,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짐작 가지 않을 때가 많은 사람이니까.
특히 이런 쪽에서는 더욱 대화가 안 된다.
그에게 레아든 다른 고용인들이든, 이안에게 그들의 가치란 고작 이 정도다.
잠시 언급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존재.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노동 인력. 딱 그 정도 말이다.
바이올렛은 그들에 관한 얘기를 가벼이 넘겨 버린 것에 화가 났지만, 이미 이안은 그들 따위 안중에도 없다.
아무리 주제를 도로 돌리려 한다고 해도 무의미하겠지.
“…그래. 이제 너도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니 이런 방식은 유치하겠지. 그만하도록 하마.”
바이올렛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이안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바이올렛과 닮은 자주색, 그러나 결정적으론 무언가 다른 눈동자가 지그시 바라본다.
“그러나, 딸아. 네가 바람맞힌 상대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또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너는 모른단다. 그랬으면 이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 리가 없지. 아빠 딸인데.”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는 이안.
약혼 상대의 배경이나 인품, 잘난 얼굴 따위를 얘기하려는데.
바이올렛은 그의 말이 이어지게 놔두지 않았다.
“저를 설득하려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아버님의 뜻대로 약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단호하게 잘라 낸 바이올렛.
그녀의 의지만큼이나 강단 있고 날카로운 눈빛은 브래딘이라는 이름과 어울린다.
이미 마음을 주고받은 이가 생겼다. 이 틈에 다른 남자를 끼울 생각은 티끌만큼도 들지 않았다.
잠시 마주하는 시선.
이윽고 이안은 그의 이름을 꺼내 보인다.
“한 어거스터스…. 그 때문에?”
이미 한과 바이올렛의 관계를 수상하다 여기는 이들도 있으니, 이안이 한을 알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는 바이올렛. 이미 아버님과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이건 준비 과정이다. 한과 약속했던, 레아에게 말했던 다짐을 이뤄 내기 위해.
“예. 아버님.”
그렇게 말해 낸다.
“전 더할 나위 없이, 그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
입을 다무는 이안. 충격을 받은 건지 바이올렛을 살피는 건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셋째 딸 바이올렛의 첫 반항.
오랫동안 묵혀 온 만큼 반항의 스케일이 남다르다. 저리도 완고하게 말하니 후회나 물러섬 따위는 전무하겠지.
결코 변하지 않을 뜻을 펼칠 때는 언제나 브래딘의 이름에 걸맞게 당당하라 했으니.
바이올렛을 어린 시절부터 직접 교육시켜 온 이안.
그는 그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말한다. 그녀를 흔들어 보기 위해서.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그 드레스. 일반 시민들은 평생을 살면서 쥐어 보기 힘든 액수의 돈이 들어갔단다.”
“…….”
“식사, 교육, 고용인, 저택…. 네가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 또, 네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알고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거니?”
“…….”
“네 손위 형제들 중 자유연애를 할 수 있었던 애는 없어. 아빠 역시 그랬지. 브래딘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났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야. 그 정도는 해야 가문과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거고.”
“…….”
“바이올렛. 우리 똑똑한 딸아. 브래딘의 피가 흐르는 너라면 이미 계산이 끝났을 거라고 본단다. 한 어거스터스, 그는 너와 우리 가문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그를 맞이하는 건 브래딘에 크나큰 손해가 될 테니까. …그래도 넌 그를 마음에 두고 있다 말할 거니?”
진위를 살피기 위한 이안의 눈동자.
마냥 상냥하게만 보이진 않는 시선과 마주한 채 그녀는 답한다. 몇 번을 묻더라도 답은 같다.
“죄송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그로 가득 차 다른 것을 들일 여유는 없습니다. 지금껏 아버님의 말에 따라 고분고분 살아왔고 앞으로도 평생을 그렇게 할 테니, 저와 이어질 사람 정도는… 제가 고를 수 있게 해 주세요. 처음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
흔들림 없는 바이올렛의 말투와 태도.
오랜 정적이 유지되다, 이윽고 이안은 그렇게 답할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딸아이의 의지가 저렇게도 확고하니 그 역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꽤 각별한 사이인 것 같긴 하더구나. 의식을 잃은 여동생의 병문안을 가는 것도 모자라, 원수를 대신 찾아 주기 위해 수소문 할 정도로.”
툭 던진 말이지만, 바이올렛은 적지 않게 놀랐다.
“…거기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아빠가 딸에 대해 모르는 게 어디 있겠니. 그저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고 있던 거지.”
“알고 계셨다면 왜…….”
바이올렛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부드러운 말투에 속기 쉽지만, 상냥한 척하는 건 어디까지나 행세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안이라면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어느 정도라면 모를까.
배경이 그의 만족을 채우지 못하는 남자와 깊이 어울리는 걸 용납할 리가.
더군다나, 화를 내던 이안은 모두의 앞에서 레아를 팼지 않은가.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리 파티장에서 뛰쳐나간 바이올렛이 못마땅했다고 해도 짐작이야 가능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질 때쯤,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금붕어 사료를 집어 어항에 뿌렸다. 마침 시간이 되었던 걸까. 배고픈 금붕어들이 모여 사료를 쪼아 먹는다.
“물고기를 키울 때 크기를 고려해 적절한 수조를 선택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 물고기가 최소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서.”
“…….”
“그런데, 성장해 감에 따라 수조를 바꿔 줘야 하는 물고기들이 있단다. 몸집에 비해 너무 작은 수조를 쓸 경우, 스트레스를 받아 쉽사리 죽어 버릴 수 있지. …여기 이 녀석들처럼 평생을 같은 어항 속에서 사는 게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편하지만, 또 커 가는 재미를 보는 맛은 아무래도 떨어지지.”
어항을 툭툭 치며 작게 웃는 이안.
분명 부드러운 미소지만, 이를 보는 바이올렛은 이유 모를 거리낌을 받았다.
“……갑자기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아빠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태어났을 때,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성장함에 따라 갈수록 넓은 생활 반경을 가지게 되는 게. 그런 종류의 물고기들과 같다고.”
“…….”
“제때 수조를 옮기지 못해, 수조가 작은 물고기들은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단다. 그 전에는 하지 않던… 이를 테면 머리를 벽에 박거나 먹이를 먹지 않지. 하지만, 아빠는 그런 순간이 오히려 고맙기도 해. 말을 못 하는 물고기가 온몸으로 표현을 해 주는 셈이니까. ‘더 큰 세상에 가고 싶어요. 이곳은 너무 작아요.’ 이렇게.”
각자 제 몸집에 맞는 수조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