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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망겜 생존기 2권
박준호 게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1
#Chapter 1
괴물화는 이 게임의 주요 시스템.
즉,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고인물이라도 게임의 근간을 비틀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역이용할 수는 있다.
“다 왔으면 가죠.”
나와 영감, 가면까지.
이렇게 우리 셋은 지상으로 향하는 활짝 열린 복도를 걸어 올라갔다.
“그래서, 나를 데리고 가는 진짜 이유는 뭐냐.”
가면은 오랜만에 올라오는 지상의 태양을 느끼며 말했다.
“베리를 네 동료, 광녀에게 맡기고 갈 정도로 중요한 일인 거냐?”
“당연하지.”
째앵-.
나는 내 눈을 찌르는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대답했다.
가면은 영감을 힐끗 쳐다보곤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괴물화는 막을 수 없을 텐데.”
“하지만 늦추는 건 가능하지.”
“늦춰 봤자 4주밖에 살지 못하는 시한부…….”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니다.”
“이쪽으로 가죠.”
나는 우리가 가지 않았던 북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걸어갔다.
그리고 앞을 보고 걸어가며 가면에게 말했다.
“너, 포션의 원재료가 뭔지 아냐?”
“테라센터 아닌가?”
“맞아, No.646 테라센터의 피를 희석해서 만드는 거지.”
테라센터는 극단적인 재생력을 가진 괴물.
낙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늪지에 살며, 특징으로는.
“걔는 가만히 놔둬도 죽어.”
“어째서지? 재생하는 능력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본인이 주체하지 못하거든.”
영감의 몸에 가득 들어찬 포션.
그것은 영감에게 재생력을 주고, 또 줬다.
인간이라는 그릇에 넘칠 정도로 들이붓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포션 억제제는 과연 무슨 성분일까요?”
“…….”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답을 내놓았다.
“몸을 망가뜨리는 거군.”
“정답.”
그릇의 크기를 키울 수는 없으니, 그것에 구멍을 내서 넘치지 않게 하는 수밖에.
내용물이 넘친다면, 테라센터의 하위종 괴물이 되겠지만.
구멍이 난 그릇이라면 몸에 남은 포션의 효과로 금방 아물 테니까.
재생력을 파괴 쪽으로 돌려 괴물화를 막는 것.
이것이 포션과 포션 억제제의 사이다.
“허허, 그래서 내가 내 눈을 찌르지 않았던가.”
어느새 우리의 얘기를 듣던 영감이 불쑥 튀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눈은 특수한 부위라 재생이 엄청 오래 걸리거든. 물론 저 정도 중증이면 하루면 다 낫겠지만.”
나는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우리의 지금 목표는 몸의 수명을 늘리고, 괴물화를 막을 수 있는 걸 찾으러 가는 거야.”
“……그런 게 있나?”
“물론이지. 여기가 어떤 세상인데.”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슬슬 보이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숲을 가리켰다.
“계피나무 숲……?”
갑자기 뜬금없는 장소로 온 것 같자, 가면의 눈에 나에 대한 의심이 비쳐 보였다.
“얌마, 믿어.”
“그런 대단한 물질이 낙원 주위에 있다고?”
“그렇다니까.”
나는 속도를 높여 숲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한참을 쉬지 않고 걸어가도 가까워지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코앞에 숲이 있었다.
“……크군.”
한참을 조용하던 영감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스윽-.
나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뭐지? 이곳에 방문할 때 필요한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탐사대원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지상 탐색국에서 받은 바디캠.
나는 그것을 가슴팍에 찼다.
“나는 찍지 마라.”
“어차피 가면 쓰고 있으면서. 근데 안 덥냐?”
“……괜찮다.”
게임 시작하고 첫 계절은 봄이긴 한데.
그래도 가면을 쓰고 움직이면 더울 텐데.
“괜찮다고.”
“알겠어.”
우리 셋은 천천히 계피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닿지 않는 숲.
그 서늘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 * *
“몬스터 웨이브 때문인가?”
“뭐가?”
“여기에 괴물이 단 한 마리도 없는 것 말이다.”
“아, 그거?”
씨익-.
나는 신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그야 뉴비를 위한 공략을 쓰면, 기분이 좋거든요.
“기분 나쁘게 웃지 말고 설명해라.”
“넵.”
스르릉-.
칼을 뽑아 든 나는 옆에 서 있는 나무를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는 지상의 다른 곳과 판정이 달라.”
“그게 무슨 말이지?”
“구역이 다르다고 해야 되나?”
이해하지 못하는 가면.
뭔가 현실의 용어를 섞어서 설명하기는 좀 그렇고.
나는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낸 내용을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곳의 괴물들은 총 세 종류. 그놈들은 전부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리지 않아.”
“어째서?”
“이곳을 총괄하는 괴물이 있으니까.”
네임드 필드 보스.
지상의 왕에 도달하지 못한 괴물이 이곳, 계피나무 숲을 관리하고 있었다.
“음…….”
고개를 갸웃거리던 가면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만한 강한 괴물의 공포를 여기에 있는 놈에게서 이미 느끼고, 탈출을 못 하는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이 학생, 하나를 가르치면 셋 정도는 아는구나.
그리고 다른 학생.
영감이 내게 질문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괴물은 뭔가?”
“여기 처음 와 보세요?”
“물론이네. 광부 생활은 1년 정도 되었고, 그전에는 온종일 낙원에 있었으니.”
“아하.”
딱- 딱-.
나는 뽑아 든 검으로 나무를 두드렸다.
“일단 현재 저희의 위치, 숲의 초입부.”
딱-.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여기는 No. 22 ‘숲지기’가 사는 곳입니다.”
“숲지기?”
“예, 말 그대로 숲을 지키는 놈이죠.”
숲지기.
보통 외국인 뉴비들을 가르칠 땐, 트리가드라고 설명하는 괴물.
네 글자인 이름을 줄여서 트리, 트가, 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