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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공작가의 망나니가 회귀했다 4권
로직k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1
Chapter 1
“아, 그 이야기라면 저도 들은 것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그게 그렇게 별미라고 하더군요, 하하!”
“오오, 그렇습니까? 제가 이래 봬도 미식가로 소문나지 않았습니까? 저도 흥미가 동하는군요.”
도우널 자작을 시작으로, 다른 귀족들까지 한마디씩 거든다.
이자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지금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다.
일단, 에드문트가 글렌을 본격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또 한편으로는, 자극을 받는 글렌이 혹시나 돌발 상황을 일으키지 않을까 ? 하는 불안감.
현재 자신은 표면적으로 에드문트와 동맹이지만, 실제로는 글렌과 동맹이라는 복잡한 위치이다. 아마 그래서 이렇게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걸까.
실컷 떠들어대던 도우널이 다시 한번 글렌에게 묻는다.
“공자님, 혹시 저희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거 직접 드셔본 분에게 그 소감을 들을 수 있다면 ? 참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간신 같은 인상의 도우널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글렌은 순간적으로, 저놈의 혓바닥을 뽑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물론 실행하지는 않았다.
“?글쎄요.”
그저 떨떠름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누가 봐도 대답하기 싫다는 말투.
“어허. 이 사람들아, 이게 무슨 실례인가? 죄송합니다, 공자님. 혹시 기분 나쁘시면 제가 따끔하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이번에도 에드문트가 선수를 친다.
지금 저들이 건네는 결례는, 표면적으로는 농담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거기다 에드문트 후작은 중재하는 척하면서, 글렌이 화를 내기 애매한 상황을 만든다.
아주 능숙하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꺼낼 주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도우널 자작 들었겠지? 적당히 하도록. 그런데…. 자네는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인가?”
주의를 주면서도 대화 주제를 바꾸지 않는다. 이건 계속하라는 의미다. 도우널을 에드문트의 미소를 보면서 그렇게 확신했다.
“아아 ? 저와 거래하는 상인 중 하나가 레펜 출신이라서 말입니다. 그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들은 것입니다.”
“오, 북부인에게서 직접 들었단 말인가? 그럼 완전히 낭설 같은 것은 아니겠군?”
그러면서 다시 글렌에게 시선을 보낸다.
‘확실히 기분 나쁜 놈이긴 해.’
은근슬쩍, 자신이 안 한 척, 아주 음침하기 짝이 없다. 아까부터 도우널인지 뭔지 하는 들러리만 앞세우는 것 같은데 ? 일단 에드문트를 경기장으로 끌어내야 할 것 같다.
“궁금하십니까? 그런데 사실 오크 고기라는 것이, 사내들이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말입니다. 아마 제 생각에? 여기 계신 분들 입맛에는 안 맞을 것 같습니다. 특히 -.”
글렌이 쥐고 있던 포크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에드문트 후작 방향으로 일부러 돌려서. 그리고 살짝 미소 지으며 그를 마주 본다.
“에드문트 후작님에게는 더 그럴 것 같습니다만….”
예상외의 일격에 후작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린다.
“?무슨 의미 신지?”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이지요.”
“하하, 이걸 제가 스스로 말할 줄은 몰랐는데. 저도 일단 사내이긴 합니다만?”
마치 아무렇지 않은 웃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 저는 단순한 성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내답지도 않은 놈을 사내라 부르는 것도 웃기지 않습니까? 무늬만 그럴듯하고, 실제로는 계집 같은 놈들도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
이번엔 좀 더 노골적인 비꼼.
그러자 이번에는 후작의 눈썹이 더 강하게 꿈틀거린다. ‘계집같다’라는 말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레펜에서, 사내는 모두 전사입니다. 비겁자나 겁쟁이도 아닌 전사. 그런데? 후작님은 딱히 전사 같은 타입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린 겁니다.”
에드문트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봤다.
동시에 듣고 있던 다른 귀족들도 반응한다.
“말씀이 지나치시오!”
“지금 후작님을 모욕하는 거요?!”
타앙-!
글렌은 갑작스럽게 탁자를 내려쳤다.
“모욕이라? 누가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싸늘한 녹안이 좌중을 훑자 마주친 자들이 움찔거린다. 하지만 에드문트는 눈빛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도전적으로 덤벼들었다.
“모욕이라니요? 저희가 언제 공자님을 모욕했다는 말입니까?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하하.”
“흐음, ‘음식’이라…. 제법 재밌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오크 고기가 뭔지는 아십니까?”
레펜 공국은 척박하다.
식량이 나는 토지는 적고, 그나마도 땅을 일굴 사람은 항상 모자란다. 당장 성벽을 넘어오는 오크 놈들을 막을 병사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펜에서 음식은 귀하다.
혐오스러운 숙적의 살을 취해야 할 만큼, 귀하다.
오크는 식인을 한다.
그들에게 인간은 주 식량원이며, 동시에 군침 도는 별미이다.
하지만 반대는 아니다.
오크는 본디 인간이 식량으로 삼을 만한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오크 고기는 질기고, 냄새가 고약하며, 맛 자체도 최악이다. 거기다 약한 독성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식량으로서는 최악이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차디찬 북부의 대지는 쉽사리 인간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질 않는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기에, 최후의 최후에 고를 수밖에 없는 선택지.
그렇게, 토악질 나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구워 삼키던 것이 오크 고기다. 어제 내 동료를 씹어 삼켰던 괴물의 살을 취한다는 것.
과연 어떤 심정일지,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글렌의 설명은 짧고 투박했다.
그렇기에 더 효과적으로 분노가 와닿는다.
“?당신 같은 작자들이, 식사 자리에서 함부로 농담처럼 던질 이야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으르렁거리듯이 내뱉어지는 경고.
귀족들은 여전히 시선을 피하고, 방 안의 호위 기사들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공자님.”
“?.”
이자벨 역시 안절부절못하는 듯했으나, 글렌이 살짝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잠잠해졌다. 지금 그가 화를 내는 것 자체는 계획상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화를 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홧김에 에드문트를 비롯한 귀족들을 죽이면 안 되기 때문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에드문트는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글쎄요, 딱히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 것을? 무얼 그리 거창하게 말하십니까?”
“자랑이라, 지금 내가 자랑하는 것으로 보이나?”
가까스로 이어지던 존대까지 끊어진다. 만찬장의 분위기는 이제 파국으로 치닫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방 안의 모두가 기대했던 일이기도 하고.
에드문트 역시,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을 심산으로 입을 열었다.
“하, 이거 드디어 본성이 나오시는군. 역시 출신답게 오래 참기는 힘든가 봅니다?”
그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망나니 녀석에게, 아리안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심어줄 절호의 기회 말이다.
“후작은 역시 내게 불만이 있나 보군? 그런데 나불나불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것이 아리안의 방식인가?”
“이거, 발상이 너무 유치해서 상대하기도 어렵군. 식사 자리에서 시비 좀 걸렸다고 주먹다짐이라도 하자는 말이오, 지금?”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역시 야만스럽군. 아니, 그냥 귀국답다고 해야 할까?”
덜컹-.
글렌이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시에 싸늘한 눈빛으로 후작을 쏘아본다.
“?말 다 했나?”
“아니, 더 남아있소. 당신 같은 야만인과의 식사 자리는 더 이상 사양이오. 당장 이 방에서 나가시오.”
“후우…. 이런 인간이 아리안의 후작이라니, 실망스럽군.”
“장담하는데, 이 아리안에서 당신 같은 인간을 환영해 줄 이는 단 한 명도 없을게요. 당장 꺼지시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판단한 이자벨이 혈마법을 통해 미세하게 신호를 보낸다. 글렌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출입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려는 순간, 바깥에서 먼저 열린다.
“잠깐 실례하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타났다.
“응?”
“?국왕님?”
콘트라트가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글렌에게 시선을 건넨다.
“아, 글렌 공자. 이거, 내가 어쩌다 보니 엿듣게 되었다오. 그래서 -.”
“국왕님!”
“이게 무슨?.”
콘트라트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먼저 사과드리지. 아리안의 국왕으로서, 거느리는 귀족의 무례에 대해 말이오. 이건 어디까지나 내 불찰이라고 할 수 있소.”
“?고개를 드십시오. 부담스럽습니다.”
파격적인 일이다.
한 나라의 국왕이, 타국의 ? 그것도 얼마 전까지 원수나 마찬가지였던 레펜의 새파란 애송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평소 그의 권위적인 성격을 생각해 보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내 사과를 받아주는 건가?”
“물론입니다.”
거기다 별다른 잡음 없이 사과를 받아버린다.
이게 대체 무슨…?
잠시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에드문트의 표정이 다급해진다.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 잠깐 ? 이게 무슨…!”
“에드문트 후작. 이번 일은 정말로 실망이네.”
싸늘한 눈빛이 에드문트를 노려본다.
“레펜은 중요한 동맹이라고 내가 직접 그렇게 말했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례를 저지른 거지?”
“그, 그것이….”
뭔가 이상하다.
시기 좋게 갑자기 등장한 콘트라트는 물론이고, 조금 전까지 누구 하나 죽일 것 같던 저 망나니는 왜 갑자기 침착해진 거지?
이것은 마치 ? 그래, 하나의 연극 같다.
‘…설마?’
발작적으로 고개를 돌려 이자벨을 찾는다.
그녀는 어느새 글렌 옆에 서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살포시 미소 짓는다. 이 미소에, 에드문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을 느꼈다.
‘속았다.’
허망하게 중얼거리면서도, 순간적으로 두뇌를 회전시킨다. 이자벨 공주는 글렌 녀석과 한패다. 그리고 콘트라트의 역시 마찬가지.
이들의 목적은 뭘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자벨의 접근 자체가 계획적이었다. 애초에 첫 만남 자체가 함정이었겠지. 아니, 어쩌면 이 무도회 자체가 하나의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
“후작, 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는 것이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