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목 차
145. 함정
146. 텐동
147. 원하는 게 뭐야
148. 사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표준국어대사전)
149. 혈관 내장 파괴 폭탄 버거
150. 추포탕
151. 식사의 가치
152. 해물라면
153. 성공의 기준
154. 연봉 협상
155. 월남에는 없는 월남쌈
156. 호주식 월남쌈
157. 레스토랑 팟츠
158. 메이슨 킴
159. The Box
160. 출연 셰프 명단 공개
161. 여섯 개의 요리상자
162. 포르케타
163. 필승 공략
164. 첫 번째 탈락자는
145. 함정
* * *
문기태가 나간 문을 바라보던 나유진이 조중석에게 다가왔다.
“셰프님.”
“네? 유진 씨.”
“이젠 사람도 살리시는 거예요? 음식으로?”
“에이. 제가 어떻게 사람을 살려요.”
“셰프님이 안 받아 주셨으면 저분 나가서 어떻게 되셨을지 모르잖아요.”
“다른 삼겹살집 가셨겠죠 뭐. 요 코너만 돌면 박 사장님 가게도 있고요.”
나유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가……? 어쨌든요. 어쨌든 셰프님이 구워 주시는 삼겹살 드시고 다시 시작하기로 하신 거 같은데요.”
모른다.
나유진이 간이 의자와 따뜻한 물을 대접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조중석이 커피를 대접하고 식사까지 하고 가도록 배려하지 않았다면.
2층 빽도포차에서 손쉽게 질 낮은 냉동 삼겹살을 빌려 올 수 없었다면.
문기태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양화대교로 발걸음을 옮겼을지, 지금처럼 다시 시작해 보자는 다짐을 했을지.
사람은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 * *
월요일.
“이래서 사람 앞날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의원님?”
“도청기가 발견됐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저 귀찮은 일이 생길 줄만 알았는데, 그 셰프가 이런 야망가였을 줄이야.”
“아, 네. 맞습니다. 젊은 친구가 욕심이 보통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런데 의원님.”
“응?”
“혹시 함정 같은 거면 어쩌죠? 그 셰프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서상택 의원이 피식 웃었다.
“함정? 요리사가? 나 서상택한테?”
“아. 죄송합니다, 의원님.”
“놈이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 감히 날 상대로 함정 같은 걸 팔 수 있을 리 없잖아. 요리나 하던 놈이 말이야.”
“네, 맞습니다. 의원님.”
“일단 가서 얘기를 좀 들어 보자고. 조금만 들어 보면 무슨 의중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으니.”
“네, 의원님 곧 도착합니다.”
“녹음기는 챙겼지?”
“네, 의원님.”
서상택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중석의 초대.
오늘 레스토랑 맛의 기억에 데려가는 건 7급 비서관 황두영뿐이다.
황두영을 특별히 믿거나 아껴서 동행하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운전기사가 필요했을 뿐이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녹음 정도는 해 두어야 할 뿐이었다.
식사와 대화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고 할 수도 있으나.
국회의원인 자신이 직접 녹음기 따위를 숨기고 레스토랑에 가는 건 위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황두영과의 동행을 택했다.
딸랑.
주방에 홀로 서 있던 조중석이 가볍게 목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반갑군, 조 셰프.”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래, 식사하면서 할 얘기가 있다고?”
“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상택 의원이 주방을 마주 보고 앉고.
그 건너편에 황두영이 앉았다.
쯧.
서상택 의원이 짧게 혀를 찼다.
“어이, 황두영이.”
“네?”
“너 여기 지금 나랑 밥 먹으러 왔냐?”
“네?”
“나랑 둘이 밥 먹으러 왔냐고.”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자기 옆자리 식탁을 탁탁 치며.
“이쪽으로 와. 네가 왜 거기 앉아 있어.”
“아……. 네.”
서상택과 황두영이 주방을 보고 나란히 앉았다.
맞은편은 조중석의 자리로 비워 두었다.
조중석이 그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은 조합이네.’
어리바리 상황 판단이 느린 사람 한 명에.
자기가 세상 잘난 줄 아는 사람 한 명.
이보다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쉬운 조합이 있을까.
CCTV를 워낙 여러 번 돌려 보느라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일부러 물었다.
“이쪽 분은……?”
“아, 내 비서관이네. 입이 무거운 친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 반갑습니다, 비서관님.”
황두영이 어색하게 목을 끄덕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황두영이라고 합니다.”
“그럼 식사로 어떤 걸 대접할지 먼저 정해 볼까요? 두 분 최근에 함께 드신 음식 중에 특히 맛있었던 게 있으신가요?”
조중석이 서상택과 황두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비밀 얘기를 많이 주고받는 수족인 게 분명해.’
도청기를 설치한 것도 황두영이고, 오늘도 함께 왔다.
품 안에는 녹음기 따위를 가지고 있겠지.
수행 비서이자 궂은일을 묵묵히 담당하는 보좌진이 확실해 보였다.
“기왕이면 두 분 다 맛있게 드신 걸로요.”
“이 친구와 함께 먹은 음식을 말하는 건가……? 뭐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네만.”
서상택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중석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굳이 왜 그런 건 묻지?”
날카로운 질문.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다.
조중석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연기다.
수천수만 명의 손님을 응대해 온 베테랑 셰프에게 이 정도 연기는 식은 죽 먹기다.
“기왕이면 두 분 다 맛있게 드셨던 음식을 내드리면 좋으니까요. 그래도 두 분께 식사 대접을 하는 건데 한 분만 만족하시고 한 분은 싫어하시는 음식을 내면 안 되잖습니까.”
“대충 뭐 아무 음식이나…….”
그때.
황두영이 입을 열었다.
“그 얼마 전에 드신 튀김 도시락이요. 일본식이라고 했던가? 그거 의원님께서 맛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튀김 도시락? 아, 그 텐동 말하는 건가?”
“아, 네. 그거요. 의원님께서 그거 직접 가서 바로 튀긴 거 먹었으면 훨씬 맛있었을 거라고……. 저는 그때 도시락으로도 충분히 맛있었지만요.”
“그랬지. 텐동은 도시락으로 받아 먹기 보다는 직접 가서 먹는 게 맛있긴 하지. 그런데 지금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야?”
“아, 조 셰프님이 둘 다 맛있게 먹은 음식을 물어봐서요.”
됐다!
조중식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심지어 도시락이라니.
둘이 같이 먹은 도시락이라면 의원실에서 먹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아, 텐동이요. 마침 텐동 재료 정도는 있는데 식사는 텐동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바로 튀겨 바로 밥 위에 얹어 낸 텐동만큼 매력적인 음식도 흔치 않죠.”
텐동.
일본식 튀김 덮밥.
새우, 생선 같은 해산물과 야채를 튀겨 밥 위에 올려 먹는 음식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 이제 주문을 유도할 시간이다.
“그럼 텐동으로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
둘 중 아무나 대답해도 된다.
누가 대답하든 어차피 공동 기억 감각 공간으로 조중석을 안내해 줄 거다.
서상택 의원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