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목 차
122. 선전 포고
123. 원내 대표 정혁민 의원
124. 사시미 오마카세
125. 여름휴가
126. 조중석의 백반기행
127. 오삼불고기
128. 케이터링
129. 누가 이길 것 같으냐
130. 서프 앤 터프
131. 정점에 서 본 사람
132. 곱창 파티
133. 최악의 스테이크
134. 엔초비 파스타
135. 추석
136. 차례
137. 프라임 립 로스트비프
138. CCTV
139. 가슴살이 촉촉하고 맛있으면서 살 덜 찌는 통치킨구이
140. 나비 통닭
141. 가을비
142. 냉삼
143. YLD YBD
144. 다시 시작
122. 선전 포고
* * *
‘입맛이 없다더니 어렸을 때부터 예민한 체질이었나 보구나.’
요즘도 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는지 입맛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제이슨, 갈치 바로 구워 줘.”
“지금?”
“응. 김치찌개랑 다 같이 한 상으로 나가자. 나는 냉채랑 샐러드 바로 마무리할게.”
“알았어.”
조중석이 냉장고를 열어 깨끗하게 손질해 둔 양파 하나를 꺼냈다.
탁.
김치찌개를 올린 화구에 불을 켠 후 양파를 넣었다.
“그걸 통째로?”
“좀 이따 건질 거야.”
“아하.”
조중석이 나유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진 씨, 가마솥 밥 뜸 다 들었을 거예요. 밥만 좀 퍼 주세요. 오늘 식사 한꺼번에 나갑니다.”
“예, 솊!”
예상보다 한식을 주문하는 손님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 얼마 전 크지 않은 가마솥 하나를 구매했다.
쌀은 식자재상 박준만을 통해 전날 도정된 걸로 소량 매입했다.
백반 전문점이 아닌 만큼 쉽지 않은 요구였지만, 박준만은 두말없이 전일 도정된 쌀을 구해왔다.
물론 그만큼 쌀을 비싸게 구입할 수밖에 없었으나, 매입가보다는 손님에게 맛있는 밥을 제공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한식 예약이 아닌 날도 쌀은 어김없이 매일 들어왔다.
브레이크타임에 찾아오는 급식카드 손님들을 위함이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최은정이 물었다.
“코스로 나오는 게 아니었네요?”
“원래 그렇게 내어 드리려고 했는데 정지선 기자님이 입맛이 없다고 하셔서 한 번에 내왔습니다. 첫입부터 김치찌개 국물이 필요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
최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찌개가 나오기 전까지 젓가락이나 깨작대고 있을 정지선이 신경 쓰이던 차였다.
사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니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한 건 거짓말이었다.
친구 정지선의 기사가 반려된 걸 알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을 게 뻔해 일부러 자신의 스트레스를 핑계로 식사 약속을 잡은 최은정이었다.
‘이런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할 텐데 셰프님 배려심이 깊네.’
최은정이 조중석의 센스에 감탄하는 사이, 정지선은 가벼운 눈인사로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해요, 셰프님.”
“아닙니다. 맛있게 드세요.”
예상대로 정지선의 숟가락은 가장 먼저 김치찌개로 향했다.
후룹.
“어?”
“왜 그래?”
“달아. 양파는 안 보이는데?”
“설탕 넣었나 보지. 식당 김치찌개에 원래 설탕 들어가.”
“아니야, 그런 맛이 아니야. 먹어 봐.”
냉채부터 한입 집어 먹어 보려던 최은정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어? 이거…….”
“그렇지?”
“응. 예전에 너희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찌개에서 나던 그 단맛이다!”
“그렇지?”
“응.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네.”
후룹.
최은정이 연거푸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국물은 어떻게 이렇게 진하면서 시원하지? 진짜 맛있다.”
정지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두 개가 공존할 수 있는 맛인가? 진한데 시원하다.”
“어때, 입맛이 좀 돌아?”
“응. 완전. 진짜 맛있는데 이거?”
“잘됐다. 밥 먹자.”
“응.”
준비된 반찬 하나하나를 먹을 때마다 두 사람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뭐지 여기.”
“장난 아닌데?”
최은정이 고개를 돌려 주방에서 후식을 준비하는 조중석을 바라보았다.
“아직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무슨 손맛이 이렇게 깊어?”
“인터넷이 괜히 떠들썩한 게 아니었구나…….”
“지선이 너도 식사하러는 처음 와 보는 거지?”
“응. 예약 한 번 하기가 얼마나 힘들다고.”
“여기 양식도 잘하지?”
“먹어 본 적은 없는데 리뷰가 대부분 양식이긴 하더라.”
“음…….”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싹싹 비운 최은정이 배를 토닥였다.
“뭐지, 밥까지 맛있어. 밥 다 먹어 본 거 오랜만이네. 반찬도 많이 먹었고.”
정지선이 밥과 찌개를 입에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나도.”
“야 너는 입맛 없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던 거 같은데?”
“아니야 진짜야. 오늘 점심도 다 남겼어.”
“음식이나 다 삼키고 말하시지? 입맛 없는 정지선 기자님.”
“어, 다 나았어.”
“여기 예약 어떻게 한다고?”
“홈페이지에서.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그날 일주일 치 예약이야?”
“왜, 또 오게?”
“자주 오고 싶어질 거 같은데 여기.”
정지선이 의외라는 듯 최은정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야?”
“응. 올해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어.”
“이야, 천하의 최은정 입맛을 다 사로잡았네. 이래서 맛의 기억 맛의 기억 하는구나.”
“이따가 조중석 셰프님 인터뷰 딸 거야?”
“여쭤보고. 왜? 너도 같이 있게? 금방 끝낼 테니까 커피숍에서 기다려.”
“인터뷰 나도 같이 할래. 나도 조명일보 직원이니까.”
“임원도 직원이라고 하냐?”
“직원은 직원이지. TV 광고에서 보고는 그냥 젊고 잘생긴 셰프인가 했는데, 오늘 음식 먹어 보니 관심이 생겼어.”
디저트까지 식사를 마친 후 정지선과 최은정은 잠시의 인터뷰 시간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이쪽은 조명일보 기획이…….”
최은정이 정지선의 팔을 툭 쳤다.
“직장 동료예요. 친구이기도 하고요.”
“아, 네.”
* * *
최근 있었던 광고촬영을 비롯한 소소한 일들부터, 제법 자극적인 소재인 최형돈 PD 얘기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라든가 포부 등.
정지선의 인터뷰는 부드럽고 능숙하게 진행되었다.
“얘기 감사합니다, 셰프님. 인물 특집 기사로 한번 작성해 볼게요. 기사 나오면 먼저 보여 드리고요.”
조중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한테까지 컨펌을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과 관련한 정지선의 기사를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조중석이었다.
일부러 조중석의 편에만 서려고 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객관적인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냉철한 기사를 작성했다.
어느새 조중석에게 정지선은 믿고 기사를 맡겨도 되는 기자가 되어 있었다.
‘회귀 전까지 통틀어 이 정도 사명감과 실력을 동시에 가진 기자는 몇 명 보지 못했어.’
정지선이 물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지금껏 써 주신 기사가 몇 개인데요. 글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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