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목 차
97. 새우계란죽
98. 스테이크
99. 대량 조리
100. 한우 등심 수비드 스테이크
101. 아저씨
102. 한국식 중화요리
103. 짜장면
104. 중화 볶음밥
105. 물김치
106. 그리움의 종류
107. 봄 소풍
108. 김밥
109. 선택과 집중
110. 동시 송출
111. 민트여신 한여진
112. 당근 라페
113. 연기가 아닌데?
114. 음식 평론가 박성호
115. 비프 부르기뇽
116. 편견
117.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
118. 토요 이슈 토론회
119. 도마 위의 푸드 X 파일
120. 축하 파티
121. 김치찌개
97. 새우계란죽
* * *
아버지 조광식은 전우애로, 누나 조회수는 사랑으로 어머니 음식을 먹어 왔다고 말했다.
조중석의 절대 미각이나 요리에 대한 재능은 어머니 김민숙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조중석의 절대 미각으로도 인정하는 어머니의 음식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건 새우계란죽이었다.
조중석에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음식이다.
조중석이 아플 때마다 어머니가 애정을 담아 만들어 주신 음식이며.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 중에 가장 맛이 좋았으며.
조중석의 첫 요리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제이슨을 위한 죽을 끓이려던 조중석이 요리를 처음 해 본 순간을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어머니 김민숙이 심한 몸살감기로 며칠째 앓아누워 있을 때였다.
* * *
“엄마! 괜찮아?”
“아이고, 아들. 학교 잘 갔다 왔어?”
“몸은 어때? 괜찮아?”
“괜찮지, 그럼.”
“앗 뜨거! 아직 열나는데?”
어머니 김민숙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직 다 낫지는 않았나 보네.”
“엄마! 내가 죽 끓여 줄까? 엄마가 나 아플 때마다 해 준 그거. 새우계란죽.”
“말만 들어도 고맙네요.”
“아니야 진짜 끓여 줄게. 나 엄마가 하는 거 많이 봐서 대충 알아.”
김민숙이 어린 조중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들 다 컸네? 엄마 위해서 죽도 끓여 준다고 하고.”
“기다려! 내가 죽 끓여 올게!”
“진짜 끓이려고?”
“응!”
“위험해, 다쳐.”
“안 위험해! 엄마가 하는 거 많이 봤어. 기다려!”
중학교 1학년 조중석이 주방으로 향했다.
조중석의 첫 요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직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깨끗이 씻은 쌀을 체에 걸러 물기를 뺀 후 냄비에 부었다.
어머니가 죽을 끓일 때마다 사용하는 그 냄비였다.
“참기름이 어딨더라…… 여기!”
참기름을 휘휘 두른 후 불을 켰다.
다음은 죽에 들어갈 채소를 준비할 차례.
냉동실 문을 열고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잘게 썰어진 냉동 야채 믹스를 찾았다.
쌀 위에 한 주먹 넣고 함께 볶았다.
재료가 타지 않게 주걱으로 열심히 젓다 보니 쌀알이 투명하게 잘 볶아졌다.
“와, 된다! 돼!”
보통 죽은 물에 충분히 불린 찹쌀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더 부드러운 목 넘김을 위해 찹쌀을 믹서에 넣어 약간 분쇄한 후 끓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 김민숙의 레시피는 훨씬 간단했다.
불리지 않은 멥쌀을 깨끗이 씻은 후 냉동 야채 믹스와 함께 참기름에 볶는 걸로 시작.
“물을…… 얼마만큼 부어야 하더라?”
다른 중학생 같았으면 대충 물을 붓고 말았겠지만.
조중석의 요리사로서의 소질은 이때부터 이미 갖춰져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충 해 버리면 요리를 망치기 십상이다.
신중하게 엄마가 넣던 물의 양을 떠올려 보는데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섯 배 넣어.”
“여섯 배?”
“그래. 쌀 양을 잘 보고 그 여섯 배만큼 물을 넣어. 엄마가 TV 보고 배운 거야. 그럼 딱 맞대.”
“응 알았어! 그런데 엄마 왜 나왔어? 방에서 쉬고 있으면 내가 죽 끓여 갈 텐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나온 김민숙이었다.
식탁 의자를 하나 빼 앉았다.
“우리 아들 요리하는 거 구경하러 나왔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구경이라기보단, 어린 조중석이 걱정되어 나온 것이리라.
이제 막 어린이를 벗어난 조중석은 냄비 속 볶은 쌀의 양을 신중히 판단한 후 생수를 들이부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기 시작했다.
다음은 새우 준비.
“엄마! 새우 어딨어?”
“냉동실 두 번째 칸 잘 찾아봐.”
“여깄다!”
냉동 칵테일 새우를 꺼낸 후 도마 위에 올렸다.
“지금은 얼어서 딱딱해. 다친다.”
“그럼 어떡해?”
“물에 잠깐 넣어 놔. 그다음 썰어.”
“응!”
엄마 말대로 물에 잠깐 넣어 두자 칵테일 새우가 금방 녹았다.
조중석의 첫 칼질이 시작되었다.
식칼을 쓰려다가 아무래도 위험해 보여 옆에 있는 과도를 선택했다.
“손 조심해.”
“응!”
새우 대신 손가락을 자르지 않게 조심조심.
‘손가락계란죽을 끓일 순 없으니까.’
과도로 칵테일 새우를 적당히 잘랐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본능적으로 왼손 손가락을 살짝 오므려 과도에 잘려 나가는 걸 방지했다.
물론 과도 따위에 손가락이 잘리지는 않는다.
“아들, 간은 뭘로 할 거야?”
“국간장이랑 맛소금! 엄마가 하던 그대로.”
“이야, 우리 아들 요리사네 요리사야.”
국간장과 맛소금을 조금 넣고 맛을 봤다.
국간장 특유의 향이 미세하게 날 뿐 여전히 맹탕이었다.
조금 더 넣고.
맛보고.
조금 더 넣고.
맛보고.
그러기를 여섯 차례.
“됐다!”
“어디, 엄마도 간 좀 볼까?”
“아니야. 엄마는 그냥 거기 앉아 있어. 다 되면 가지고 갈게.”
그러는 사이 물이 제법 졸아들어 죽 같은 모양새를 갖춰 갔다.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낸 후.
탁!
깨서 밥그릇에 넣었다.
엄마가 항상 밥그릇에 넣고 휘젓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거품기를 꺼내 밥그릇 속 계란을 마구마구 저었다.
노른자와 흰자가 뒤엉켜 노란 계란물이 되는 모습이 신기했다.
“다 됐다.”
이제는 어머니 김민숙의 레시피에 조중석의 ‘킥’을 추가할 시간이다.
“아들, 계란은 왜 안 넣어? 방금 풀어 놓고 까먹었어?”
“이따 넣을 거야. 불 끄고.”
“엄마는 지금 넣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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