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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철의 서재.
굉장히 낯부끄러운 말을 내뱉어 버린 장현수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장도철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남자 둘이서 속에 있는 말을 편하게 주고받기는 아직 너무 어려웠다.
‘이럴 때가 아니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장현수는 마지막 질문을 생각했다.
22년 전,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
‘…아무래도 잘못 건드린 것 같아.’
뭔가를 잘못 건드린 것 같다는 그 말.
사실 그날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것 빼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그날의 일을 매우 생생하게 말해 줬었다.
그만큼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겠지.
분명 싫은 기억일 텐데도.
‘잘못 건드렸다….’
변호사인 어머니가 잘못 건드렸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면… 뭘 건드린 걸까.
그건 아마 당시 어머니가 맡고 계셨던 사건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 사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장현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당시에 맡고 계셨던 사건이 뭐예요.”
“…모른다.”
장도철이 면목이 없다는 듯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22년 전, 어머니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관련 자료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셨죠? 그래도 부부신데….”
“오히려 부부니까 서로 더 조심했지. 혹시나 모를 구설수를 막아야 했으니까.”
충분하기를 차고 넘치는 장도철의 설명에 장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도철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너는 네 애비한테 질문하는 것도 어째 취조 하는 것 같다?”
“설마요. …직업병인가.”
“뭐, 됐고.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다 물어봐. 내일 되면 또 올라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죠.”
“전화로 매번 묻는 것도 실례인 거 알지? 그리고… 이제는 네 애미를 죽인 그 녀석을 네 손으로 꼭 잡아라. 나는 이제 너무 늙은 것 같기도 해.”
장도철의 말에 장현수는 그의 위아래를 전체적으로 살펴봤다.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지만, 얼마나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는지 몸 전체가 탄탄하다.
자기 스스로를 늙었다며 낮출 만한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현수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 정도면 아직 정정하십니다. …늙었다고 뒷방으로 빠지기에는 양심이 없는 정도라고요.”
“…뭐 인마? 내가 곧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데… 뭐, 됐다.”
장도철이 도끼눈을 뜬 채로 장현수에게 뭐라 한마디 하려고 하다가.
이내, 장현수의 말이 자신을 위로하는 말임을 인지하고 피식 웃었다.
가벼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장현수는 오른손 검지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제대로 된 질문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여쭤볼게요.”
“오냐.”
“그날, 어머니의 사무실에 갔을 때 관련 자료가 모두 없어졌다고 하셨죠. …처음부터 없었을 가능성은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시작부터 날카롭구나.”
“확실하게 해야 할 문제니까요.”
장현수의 말에 장도철은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사무실을 정리한 게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평소 버릇을 답습하지는 못했어.”
“평소 버릇?”
“그래, 파일은 작 것부터 큰 것 순서대로 정리하는 버릇. 호치케스는 반드시 왼쪽 상단에. 아내는 왼손잡이였거든.”
장도철의 부연 설명에 장현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왼손잡이가 보기 편하게끔 왼쪽에 호치케스를 박는 게 버릇이 되었다는 거겠지.
일반 회사였다면 상사에게 보이는 자료인 만큼 그런 편의주의적인 방향 선택이 불가능했겠지만, 어머니는 변호사에 1인 사무실이었다.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또 있어요?”
“있지. 파쇄기를 쓸 때 웬만하면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넣는 버릇도. 다 엉망이었어.”
“엉망이라는 말은….”
“흉내 낸다고 했지만, 사무실을 깔끔하게 정리한 게 와이프가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단 말이지.”
장도철의 말을 끝으로 장현수는 살짝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덤덤하게 말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아내가 죽던 날.
누군가가 사무실에 먼저 도착해서 사무실을 정리했다는 것 아닌가.
“…확실히 아버지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어머니가 했던 말도 그렇고. 어머니가 맡은 사건에 문제가 생긴 듯한데… 그 사건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네요.”
장현수는 한숨과 함께 현 상황을 정리했다.
어머니의 사무실은 분명 누군가가 작업을 친 게 맞는 것 같고.
그 작업을 친 사람은 아무래도 어머니를 살해한 스마일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즉, 삼단논법으로 생각하면 어머니는 사건 관련해서 스마일과 엮이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뭔가, 녀석이 숨기고자 하는 역린을 잘 못 건드려서 스마일에 의해 살해된 것… 잠깐.
장현수는 자연스럽게 사고를 하다 걸리는 한 가지 가능성에 멈칫했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게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계획에 의한 살인이라는 거잖아.’
우발적 살인.
계획적 살인.
당연하지만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동안 우발적 살인을 일삼았다고 생각하던 스마일이.
실은 계획적 살인을 했던 것이라고 판단이 바뀌면, 수사가 배는 쉬워진다.
피해자들 사이의 연관점을 찾으면 그만이니까.
“…아버지는 스마일이 계획적 살인을 했을 거란 가능성도 알고 계셨죠.”
장도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애초에 네 엄마부터 철저히 계획된 살인이었어. 사무실에 찾아와 당시 아내가 맡았던 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모조리 없앤 그 녀석 역시 스마일을 돕는 놈이겠지. 타이밍이 딱 맞잖아.”
“만약… 어머니처럼 다른 사람들도 밝혀지지 않은 이유 때문에 살해당한 거라면요. 그러면….”
“그 이유만 찾아서 연결하면 스마일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겠지.”
사실 모순이다.
스마일이 단순 쾌락형 살인마로 분류된 이유는.
녀석의 살인 행각에서 그럴듯한 연관점이나, 은원관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살인 사건들에서 다시 연관점을 찾아서 연결해야 하는 작업은 기본 전제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가능성을 알고 있느냐와 모르고 있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가령, ‘얘는 뭔 생각으로 이 사람을 죽인 거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수사를 하는 것보다.
스마일은 ‘모종의 목적으로 이 사람을 죽였을 거다’라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과거의 자료들을 다시 조사하는 게 뭔가를 발견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
“근데, 왜 이걸….”
“이걸 경찰에 말하지 않았냐 이거지?”
“…예.”
장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도철이 예전부터 짐작하고 있던 이 가능성.
그러니까, 스마일이 뭔가 목적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이 가능성을 경찰이나 검찰에 알리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만 알렸어도 사건 수사가 배는 빨라졌을 텐데요.”
“그에 대한 이유는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장도철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제일 잘 안다고?’
그런 고민도 잠시.
이내 장현수는 장도철이 사건에 관련된 정보를 꼭꼭 숨기고, 자신만 알고 있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똑같은 행동이었으니까.
장현수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던 장도철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침착할 필요가 있겠는데.”
“인정합니다. …멍청한 질문이었네요. 당장 저조차도 내부에 있을 배신자 때문에 스마일 관련된 내용은 일절 입에도 안 담는 상황인데.”
장도철 역시, 일찌감치 검찰 내부에 스마일을 돕는 무리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에 입조심을 한 것이다.
그제야 장현수는 자신이 이전 생에 왜 죽은 건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스마일에 귀에 들어갔겠지.’
변호사 김한성이 스마일을 잡고자 이리저리 뛰어다닌다는 소리가.
그래서 녀석은 김한성이라는 잡초의 뿌리를 뽑은 것이다.
발본색원(拔本塞源).
장차 스마일 자신에게 화가 될지 모르는 변호사 김한성이라는 잡초를.
‘…멍청했어.’
지난날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스마일의 뒤를 쫓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던 거지.
아니, 스마일이 이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알맞겠다.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게 멍청한 거라면 멍청한 거겠지만, 솔직히 조금 억울한 마음도 있다.
‘누가 알았겠냐고. 스마일이 검찰에 고위 인사들을 휘어잡을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무슨, 영화도 아니고.
연쇄살인마가 그만한 높이에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를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스마일은 상류층이다.
검찰의 수사 방향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검찰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또한, 검찰의 몇몇 고위 인사는 가면을 쓰고 있는 스마일을 돕고 있다.
대통령인 이삼학 역시도 과거 서부지검의 지검장 시절, 그를 도왔던 전적이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스마일의 현재 나이는 최소 50대가 넘어갔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모든게 스마일을 가리키는 단서.
생각보다 꽤 정보가 많아졌음에도, 아직 스마일의 정체가 짐작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온다.
“…어머니 특기는요.”
변호사들도 다 자기들만의 특기가 있다.
어떤 변호사는 의과 과정을 준비하다가 변호사로 진로를 바꿔 의료법 관련 소송만 전문적으로 하기도 하고.
어떤 변호사는 형사사건을 전담하기도 한다.
장현수는 그러한 걸 물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