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과거라는 망령
기억은 가슴에 남는다
엇갈리는 화살표
파리지옥
과거라는 망령
“아버지···?”
그곳에는 장도철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었다.
즉, 애초에 장도철은 2001년 미제 사건의 관계자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장도철이 20년이나 지난 사건에 아직까지 미련을 품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장도철(32)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
볼드체로 쓰여 있는 글씨.
장도철은 20년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의 부장검사였고.
실종자인 이하연은 장도철이 부장검사로 있는 형사 2부의 검사다.
즉, 상사와 부하의 관계.
‘미련이 남을 수밖에.’
장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검사가 실종됐다.
20년 동안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은 장도철에게는 크나큰 미련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문득, 장도철 같은 유능한 검사가 지방지검의 지검장을 하고 있는 이유를 납득했다.
부하 검사의 실종은, 이유야 어찌 됐든 분명 장도철에게도 책임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실종이 장도철과의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사 평가에는 분명 반영이 됐을 것이고.
그렇기에 검사 생활의 끝을 달리고 있는 장도철은, 여태껏 지방만을 전전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고위직까지 당당히 승진한 장도철의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장현수는 장도철이 어째서 자신에게 사건을 부탁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
‘이제 알겠어.’
실종자가 실종된 지역은 서울.
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지방을 전전하던 장도철은 미련이 남았더라도 현실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한 전제 조건 자체가 근무지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마침, 자기 아들이 서울로 가게 된다면 장도철 입장에게선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겠지.
그렇게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린 뒤, 장현수는 본격적으로 사건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료를 토대로 이하연이 실종되던 당시를 머릿속으로 재현해 보는 것이다.
‘실종 전날은 금요일.’
장현수는 눈을 감고, 20년 전 있었을 그날을 떠올렸다.
***
직장인의 일주일은 금요일에서 끝난다.
무탈하게 한 주를 보낸 형사2부 팀원들은 부장검사인 장도철의 주도하에 회식을 하게 된다.
회식 장소는 서부지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에 위치한 자그마한 호프집.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술에 적당히 취해 얼굴이 빨개졌다.
이하연은 컨디션이 안 좋다고 말한 뒤, 제일 먼저 회식 자리를 떠난다.
그것이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를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날.
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
이하연과 쇼핑을 가기로 했던, 이하연의 친구는 이하연이 약속 시간이 지났음에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입구는 굳게 잠겨 있었다.
평소 이하연이 열쇠를 어디에 두는지 알았던 친구는 제집처럼 열쇠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집안은 고요했다.
이하연 역시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년이 약속 파투 내고 어디를 간 거야?
이하연의 친구는 투덜대면서도, 지저분한 집 상태를 보고 청소를 시작했다.
서로의 집 열쇠를 어디에 두는지 알 정도로 둘의 친분은 컸기에, 청소를 해주는 것 역시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렇게 모든 청소를 마치기까지 1시간.
그럼에도, 이하연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 봤지만, 받지 않는다.
무슨 일 있나?
이하연의 친구는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됐다.
이하연은 출근하지 않았다.
평소 지각을 일절 하지 않는 그녀였기에, 부장검사인 장도철은 이상함을 느끼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하연의 친구를 만난다.
그녀 역시 계속해서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를 걱정해 집으로 찾아온 것.
이하연의 친구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장도철은 급히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이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2001년 서울 여검사 실종사건의 타임라인.
장현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거짓말처럼 생생히 그려진, 당시의 상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시리도록 차가운 사무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에 장현수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음을 자각했다.
특별한 점은 없다.
역시,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한 이유는 현장 증거가 훼손됐기 때문일까.
그러한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책상에 앉아서 머리만 굴린다고 해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일단 찾아가 볼까.”
때문에, 장현수는 혼잣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주섬주섬 겉옷을 챙기는 장현수를 확인한 실무관이 묻는다.
장현수는 평소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외근 좀 다녀오죠.”
장현수는 버건디 코트를 걸치고, 성큼성큼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
서울 마포구 아현동.
지금은 대기업의 프리미엄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이곳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원룸들이 빽빽이 들어찬 일반 주택가였다.
즉,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괜히 왔나?”
장현수는 하늘을 뚫을 듯이 솟아오른 아파트를 바라보며 황망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장현수는 한숨을 내쉬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는 스마트폰의 지도상으로 약 500m가량이 남았다.
제발, 조금이라도 그 모습이 남아 있기를.
장현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하연이 살던 빌라로 향했다.
그렇게 5분 정도 더 걸었을까.
좌측으로 보이는 학교를 기점으로, 높이가 낮은 주택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도도 이 앞을 가리키고 있었다.
때문에, 장현수는 자그마한 희망을 품고 발걸음을 서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세상에.”
장현수는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던 메신저 백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사건 자료였다.
그곳에는 당시 현장 사진을 비롯해 이하연이 살던 집 주변의 풍경을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연신 자료의 사진과 교차하며 비교해 봐도, 사진 속 모습과 일치했다.
즉, 피해자가 살던 빌라는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와 보길 잘했네.”
장현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때마침 빌라에서 나오는 아주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가타부타한 사담은 필요 없다.
장현수는 곧장 묻고자 하는 것을 물었다.
“혹시, 여기 빌라 사세요?”
“그건 왜···?”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가 경계 섞인 표정으로 장현수를 바라봤다.
다짜고짜 여기 사냐고 물어보는 건 이상하잖아.
‘나도 참.’
매번 이렇게 생각 없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장현수의 성격이 남아 있기 때문인 건지.
“아,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중앙지검의 장현수 검사입니다.”
장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코트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명찰을 꺼내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장현수 검사.
자신의 신분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아, 검사셨구나.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다행히 곧장 경계심을 풀고 이전의 표정으로 돌아간 아주머니.
장현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설명을 시작했다.
자초지종 모든 것을 설명할 이유는 없었기에, 사건 수사 때문에 그런다고만 말해 뒀다.
“여기 상원 빌라 말하는 거죠?”
“···네.”
“네, 여기 살아요. 그런데 무슨 사건을 말하시는 거죠?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검사가 찾아올 만한 사건은 최근에 없었기에.
물론 장현수도 최근 사건이 아닌, 무려 20년 전 사건의 조사 때문에 왔기 때문에 아주머니가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장현수는 대답을 회피한 뒤, 말을 돌렸다.
“여기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건가요?”
“글쎄요··· 한 10년 좀 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