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끝의 탑스타 10권
내 손끝의 탑스타 10권
내 손끝의 탑스타
10
박굘
내 손끝의 탑스타 10권
차례
Chapter 01. 좋았던 기억만
Chapter 02. 무모한 기획사
Chapter 03. 소녀들의 전쟁
Chapter 04. 진격의 김현우 - 1
내 손끝의 탑스타 10권
Chapter 01. 좋았던 기억만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듯한 물에 현우는 몸을 맡기고 있었다. 백룡영화제에 참석하느라 쌓였던 긴장과, 뒤풀이 장소에서 쌓였던 피로가 싹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엘시가 센스 있게 샴푸며, 비누며, 칫솔이며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둔 덕분에 씻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게스트 전용 화장실이라고 했었지?’
그래도 기분이 묘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샤워하고 있는 꼴이라니. 샤워를 마치고 두툼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다음 현우는 살짝 화장실 문을 열었다.
‘없네.’
워낙 장난기가 많은 엘시였다. 방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현우는 그래도 혹시 몰라 방문을 잠갔다. 그리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옷매무새를 만지던 현우가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오빠, 나예요.”
송지유였다. 조금 전 팔베개 사건이 떠올라 현우는 괜스레 말문이 막혔다.
탁탁. 문이 잠겨 있었다. 문고리를 돌리던 송지유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송지유도 얼굴을 붉혔다.
“지금 문 잠그고 있는 거예요?”
“어? 으, 응.”
“왜요?”
“그냥, 너 때문에? 또 잘못 들어올 수도 있잖아.”
현우는 슬쩍 장난을 쳤다. 송지유의 눈동자가 커졌다.
“미쳤어요? 말이 앞뒤가 조금 바뀐 것 같지 않아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예요? 오빠가 남자잖아요.”
“내가 남자이긴 한데, 아까 전 같은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냐?”
“네, 네?”
송지유가 빨개진 얼굴로 당황해했다. 그러다 쾅! 방문을 걷어찼다.
현우가 화들짝 놀랐다.
“놀랐잖아!”
“놀라라고 찬 거예요.”
“어제부터 왜 이렇게 억지를 부려?”
“내가 언제 억지 부렸어요?”
방문을 사이로 두고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귀엽게들 노네.”
엘시가 팔짱을 낀 채 송지유 뒤편으로 나타났다. 똑똑. 엘시가 노크했다.
“왜 또 노크해? 옷 거의 다 입었어.”
“저예요, 조선의 국모.”
엘시의 농담에 현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셔츠 손목 단추를 마저 채우고는 방문을 열었다.
송지유도, 엘시도 이미 외출 준비를 다 마쳐놓은 상태였다. 둘이 똑같이 선글라스도 쓰고 있었다.
송지유가 현우에게 다가왔다. 현우가 움찔했다.
“때, 때리게?”
“내가 깡패예요? 이거나 써요.”
“선글라스? 나도?”
선글라스를 든 채로 현우가 물었다. 엘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장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오빠 오늘도 회사로 출근할 건 아니죠? 오늘 일요일이에요. 쉬는 날, 빨간 날.”
“음……. 잠깐만.”
현우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야! 지금 오전 11시가 넘었는데 이제 전화를 하냐?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명 오빠네요, 언니.”
“손 부인?”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우를 보며 엘시와 송지유가 웃었다. 수화기 너머 손태명은 꼭 밤새 남편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부인 같았다.
―김현우! 너 이 시간까지 뭐 했냐?
“이 시간까지 매니지먼트 했다.”
―매니지먼트? 너, 설마 어제 2차 갔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바꿔줄게.”
현우가 얼른 스피커 모드로 전환했다.
“태명 오빠, 저예요. 지유.”
―응, 지유구나.
“손 실장님! 저도 있어요. 조선의 국모!”
―뭐야? 셋이 밤새 같이 있었어요?
“어? 서운하게 반응이 그게 뭐예요? 지유랑 단둘이 있는 건 괜찮고 저랑 셋이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핸드폰 너머로 잠시 말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 아니, 뭐 아무튼 지금 거기 어디예요?
“저희 집이에요. 지유와 현우 오빠는 제가 밤새 잘 감시했어요.”
―하아, 다연 씨가 제일 위험한 사람 아닙니까? 기자들 못 봤죠?
“네, 기자님들 있었으면 벌써 기사 떴겠죠?”
―그렇긴 하네요. 다연 씨, 현우 좀 바꿔주세요.
“네!”
다시 핸드폰이 현우에게로 돌아왔다.
“응, 나다.”
―오늘 미팅 스케줄 문자 확인했지?
“했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문자 보니까 제법 진지하던데?”
―모르겠어. 일단 미팅 잘하고 나한테도 알려줘.
“오케이, 철용이는?
―걱정할 것 없어. 오늘은 내가 철용이 대신에 유희 데리고 다닐 거니까.
“알았다, 고생해라.”
―그래.
툭. 전화가 끊겼다. 쏟아지는 시선에 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오빠, 미팅 잡혔어요? 오늘 일요일인데.”
송지유가 서운한 표정을 했다. 엘시도 마찬가지였다. 외출 준비를 단단히 해놓았는데 현우는 역시나 오늘도 바빴다.
현우는 괜스레 미안했다. 둘이 스케줄도 없었는데 한껏 꾸민 상태였다. 송지유는 평소 잘 하지도 않는 화장까지 했다.
“날씨도 좋겠다, 오늘은 너희끼리 놀래?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해. 미팅 빨리 끝나면 저녁쯤에 나도 합류하지, 뭐. 맥주 한잔 콜?”
“…….”
“…….”
영 반응이 시원치가 않았다. 송지유도 엘시도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하아, 곤란하네.’
어른스럽던 송지유까지 어제부터 묘하게 어리광을 부렸다. 아니, 요즘 확실히 어리광이 잦았다. 그렇지만 오히려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 그럼 우리도 미팅 따라갈게요!”
엘시가 아이디어를 냈다. 송지유가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누구 만나는 거예요? 우리도 만나도 되는 사람이면 따라가도 괜찮을까요?”
“음.”
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상관은 없는데 백룡영화제 참석도 했고, 술도 마셨고, 피곤하지 않아? 너희들만 괜찮다면 상관은 없어.”
“그럼, 콜!”
“저도, 콜!”
둘이 일제히 ‘콜’을 외쳤다. 현우가 피식 웃었다.
* * *
부르릉! 가로수 길에 빨간색 스포츠카 한 대가 세워졌다. 철컥. 문이 열리며 운전석에서 선글라스를 쓴 현우가 먼저 내렸다. 그리고 뒤이어 송지유와 엘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송지유와 엘시가 내뿜고 있는 연예인 포스에 한가롭게 가로수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까닭에 다들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들어가자.”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얼른 카페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카페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선이 쏠렸다.
“송지유 아니야? 엘시랑?”
“에이. 송지유랑 엘시가 여길 왜 와?”
“맞네! 맞네! 저기 김현우 대표님도 있잖아!”
“지, 진짜다! 김태식이다!”
카페가 점차 소란스러워졌다. 손님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울림 엔터테인먼트 손태명 실장 이름으로 룸 하나 예약되어 있을 겁니다. 확인해 주시겠어요?”
“기, 김현우 대표님이시죠? 맞죠?”
알바를 하던 아가씨가 말까지 더듬었다.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카페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알바 아가씨가 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해 준 꼴이었다.
한가로운 일요일에 귀찮을 법도 했지만, 송지유와 엘시는 벌써 선글라스를 벗고 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사인 요청도, 셀카 요청도 웃는 얼굴로 모두 받아주었다.
* * *
“휴우. 사인 해드리고 셀카 찍어주니까 시간 벌써 다 갔네. 지유 너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언니 피곤하게?”
“언니는 피곤해요? 저는 팬들 만나서 기분 좋은데요?”
“어? 이런 식이라 이거지? 얍!”
“어, 어딜 만져요!”
사이좋은 송지유와 엘시를 보며 현우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음료들을 내려놓았다.
“벌써 1시 30분이 넘었어?”
현우가 시계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미팅 시간이 2시였다. 사인만 대충 3, 40분 동안 해준 것 같았다. 현우도 놀라며 맞은편으로 앉았다.
창문에서 햇살이 새어 들어왔다. 일요일 낮에 송지유와 엘시와 함께 있는 게 현우는 조금 어색했다. 평소라면 대표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어색한 김에 현우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송지유의 팬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하아……. 이거 또.”
현우가 머리를 긁적이자 송지유와 엘시가 살짝 웃었다. 송지유가 조금 전 엘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밑에 적어놓은 글귀가 문제였다.
‘일요일 가로수길에서 다연 언니랑. 그리고 오늘도 열심히 매니지먼트 중인 현우 오빠랑.’
커피를 가지러 내려가는 현우의 뒷모습까지 사진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댓글이 문제였다.
―김발놈 [말년병장지유]
―일요일에 한가하게 저 두 분이랑 커피를 마신다? [지유야]
―김발놈 ㅋㅋ [지유여왕]
―여러분 김발놈입니다. [얼굴천재지유]
―김발놈아! [지유야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