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끝의 탑스타 02권
내 손끝의 탑스타 02권
내 손끝의 탑스타
02
박굘
내 손끝의 탑스타 02권
차례
Chapter 01. 이제는 진가를 보여줄 차례 - 2
Chapter 02. 빛을 발하다
Chapter 03. 닭볶음탕 두 개 계란찜 하나
Chapter 04. 어울림 라이징
Chapter 05. 당연히 첫 잔은 원샷이겠죠
Chapter 06. 인생 그거 진짜 모르는 거다 - 1
내 손끝의 탑스타 02권
Chapter 01. 이제는 진가를 보여줄 차례 - 2
‘무모한 형제들’의 2회분 촬영은 멤버마다 야외촬영의 비중이 컸다. 평일 오후 1시 무렵, 홍인대학교의 정문으로 어울림의 봉고차가 들어섰다. 드르륵. 봉고차 문이 열리며 정훈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훈민은 9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힙합 바지에 노란색 워커, 하얀색 라운드 티셔츠 그리고 젤을 발라 더듬이를 길게 내린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작가들과 VJ들이 우르르 봉고차에서 내렸다. 마지막으로 현우가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정문을 지나던 대학생들이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이한 옷차림을 한 정훈민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무모한 형제들 촬영이다! 송지유 찍으러 온 건가?”
“오빠, 사인 좀 해주세요!”
“송지유는 어디에 있어요?!”
대학생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다행히도 촬영에 들어가자 뒤로 물러서 일정 거리를 유지해 주었다.
“저거 그 송지유가 타고 다니는 봉고차 아냐?”
“진짜네? 사진 찍자!”
몇몇 대학생들이 신기한 물건을 보듯 사진들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현우가 헛웃음을 삼켰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리 오래된 연식의 차도 아니었는데 조금 억울했다.
정훈민이 그런 현우의 어깨를 툭 쳤다.
“왜, 창피하냐?”
“제 차보다는 형이 더 창피한데요?”
“와아! 이거 나 고등학교 다녔을 때는 최신 패션이었다고! 너도 알잖아?”
정훈민이 발끈했다. 현우는 피식 웃으며 슬슬 VJ들 쪽으로 빠져주었다. 어쨌든 주인공은 정훈민과 송지유였다.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대학생들이 정훈민을 반겨 주었다. 달려드는 팬들을 일일이 안아주는 정훈민의 텐션은 보통이 아니었다.
‘지난 방송 이후로 확실히 훈민이 형도 달라졌어.’
충고 탓이었을까. 정훈민이 드디어 길고 길었던 슬럼프를 벗어났다. 소속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현우는 기분이 좋았다. 정훈민의 활약에 따라 송지유의 가치도 올라갈 것이다.
현우는 이진이와 함께 뒤쪽에서 정훈민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훈민을 향한 환호성이 잦아들며 대학생들이 조금씩 옆으로 물러났다.
“지유가 온 모양이네요.”
현우의 예상대로였다. 청색 스키니 진에 하얀색 운동화 그리고 분홍색 후드 차림의 송지유가 김은정과 함께 나타났다. 패션디자인 학과답게 에코백에는 커다란 곡자나 S모드 자가 삐죽 나와 있었다. 얼굴을 살펴보니 김은정이 수수하게 메이크업까지 시켜놓은 상태였다. 지금의 송지유는 완벽한 여대생이었다.
“내가 왔다, 소녀여! 오늘도 소녀는 예쁘다!”
정훈민이 반갑다고 난리를 쳤다.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송지유의 시선이 정훈민이 아닌 현우에게로 먼저 향했다. 고작 하루를 보지 못했는데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작가들과 VJ들이 순간의 공백에 당황하려는 찰나 송지유가 입을 열었다.
“정문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송지유가 차분한 표정으로 정훈민을 조금 나무랐다.
“너도 내가 창피해?”
정훈민이 버럭 하며 더듬이 머리를 뒤로 넘겼다. 주변에서 또 웃음이 터졌다. 송지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짝 웃는데도 그 모습이 예뻐서 VJ들이 앞다투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캠퍼스에서 정문까지 내려오면서 정훈민과 송지유는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특히 정훈민이 아무리 도발해도 송지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정훈민이 안달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럴 때마다 송지유가 적절하게 분위기를 리드하며 때로는 달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저 아이 보통이 아니에요. 정말 20살 맞아요?”
이진이가 송지유를 보며 혀를 찼다. 이진이의 나이는 현우와 동갑인 26살이었다. 나름 연애 경험도 있고 남자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송지유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훈민이 이번 트로트 특집에서 상남자 콘셉트를 잡을 수 있었던 까닭에는 송지유의 역할이 가장 컸다.
“같은 또래의 연예인이었다면 절대 저런 드립들 못 받아줬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현우 씨?”
“그랬을 겁니다.”
현우도 같은 생각이었다. 같은 또래의 아이돌이었거나 여배우였다면 정훈민이 연신 뱉어내는 거친 아재 개그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당황했을 것이다.
캠퍼스에서 정문까지 내려오는 데 정확하게 20분이 걸렸다. VJ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작가들과 함께 찍었던 영상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제법 포근한 날씨에 정훈민은 메이크업을 고치고 있었고, 송지유는 어느새 현우와 함께였다.
“어땠어요?”
“잘했어. 봐봐, 다들 만족스러워하잖아.”
정말이었다. VJ들과 작가들의 표정이 유난히도 밝았다. 영상 확인을 마친 이진이가 현우에게로 다가왔다.
“추가 촬영 들어가는 겁니까?”
“아니에요. 지유 씨가 너무 잘해줘서 야외촬영은 여기까지예요.”
“지유, 수고했어. 혹시 기분 상했던 말들 있었어?”
메이크업을 고치고 돌아온 정훈민이 송지유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훈민 선배님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휴우, 그럼 다행이다. 내가 이상하게 너만 만나면 방언이 터진다, 터져. 하하.”
정훈민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다 현우의 어깨에 척 손을 올려놓았다.
“다음 촬영까지 시간 많이 남았잖아? 밥 살 테니까 가자.”
“형님이 또 사시게요?”
“어차피 돈 쓸 데도 없어. 소고기 먹으러 가자!”
“나이스!”
정훈민이 호기롭게 소리쳤고 김은정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급히 방송국으로 돌아가서 편집해야 하는 작가들이나 VJ들은 다음을 기약했다.
* * *
저녁 6시가 넘어서 2차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 장소는 트로트 특집과 잘 어울리는 나이트클럽이었다. 인천 부평에 위치한 목련 나이트였는데 현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무대 위에 걸린 ‘도전 트로트 가수!’라는 간판이 휘황찬란한 불빛을 발했다. 제작진에 의해 꾸며진 무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현우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이준영이 이승훈과 함께 현우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합니까?”
“별거 아닙니다. 그냥 옛 기억들이 조금 떠올라서요.”
“그래요? 혹시 여기 와본 적 있습니까?”
“네, 뭐.”
현우는 말끝을 흐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세트가 멋있네요. 꼭 50년대 무도회관을 보는 것 같아요.”
“하하. 역시 안목이 있으시네. 그때가 트로트 전성기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애들 시켜서 그때 분위기 좀 나게 해봤습니다. 그건 그렇고 송지유 씨 반응이 뜨겁던데요? 여러모로 힘 좀 들 겁니다. 각오는 되어 있죠?”
이준영이 여러 의미를 담아 말하고 있었다.
“각오는 항상 되어 있습니다, 피디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세요.”
“피디님도 우리 지유한테 관심이 좀 생기신 것 같은데, 아닙니까?”
현우가 넌지시 떡밥을 던졌다. 여유롭던 이준영이 순간 진지한 얼굴을 했다.
“뭐, 관심보다는 그냥 매니저님이나 송지유 씨나 좀 흥미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촬영 준비 잘하시고 오늘 열심히 해봐요. 귀찮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매니저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번 촬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죠?”
“물론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 지유의 진가를 보여줄 생각으로 왔습니다.”
“하하. 좋아요. 그 진가만 제대로 보여주세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럼 수고해요. 촬영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죠.”
애매모호한 말을 남기고 이준영이 제작진 쪽으로 합류했다. 어느덧 촬영 시간이 가까워지자 ‘무모한 형제들’ 멤버들과 게스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현우는 분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송지유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준비해 주세요! 곧 촬영 들어갑니다!”
세트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촬영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5분 정도. 현우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지유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거예요? 내가 촬영 10분만 늦춰달라고 부탁해 볼까요? 매니저님?”
주란미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닙니다, 선생님. 지유 곧 나올 겁니다. 신경 쓰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호호, 아니에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사이 분장실 쪽에서 누군가가 현우를 불렀다. 김은정이었다. 그 옆에 송지유가 있었는데 현우는 물론이고 제작진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송지유에게로 고정되었다.
‘은정이가 또 한 건 했구나.’
현우가 씩 웃으며 김은정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1950년대 스타일로 꾸며진 세트에 걸맞게 송지유도 1950년대의 뉴룩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블랙 A라인 스커트에 상의는 순백의 코튼 블라우스를 입혔다. 그리고 새하얀 목에는 체크무늬 손수건을 묶어놓았다. 헤어스타일은 볼륨감 있게 레이어드 컷 웨이브를 넣어 양어깨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완벽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에 도도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송지유가 세트로 걸어오자 마치 1950년대로 되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블랙 차이나 원피스에 만두 머리를 하고 나온 조윤지가 급히 코디들을 부르느라 촬영은 20분이 더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은정아, 오늘 고생했다. 미리 생각해 놓은 거야?”
“헤헤. 지유와 밤새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생각해 낸 건데 괜찮죠? 오드리 헵번이 유행시켰던 뉴룩 스타일이에요!”
“잘했다.”
현우가 김은정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장지석이 노련하게 진행하며 파트너들끼리의 친밀도를 체크했다. 정훈민이 직접 대학교까지 찾아갔었다며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많이 친해졌냐는 장지석의 질문에 송지유는 또 미소를 짓기만 했다. 결국 정훈민이 분통을 터뜨렸고 세트는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촬영이 계속되었고, 이번 2회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무모한 형제들’의 게스트들이 무대 위에 올라 직접 트로트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는 멤버들은 게스트 교환 신청이 가능하다.
제일 먼저 성대식이 무대 위로 나와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했다. 하준호와 김철도 연이어 히트곡들을 불렀고 무대는 춤을 추고 있는 멤버들로 인해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야.’
조윤지와 주란미가 남아 있었다. 조윤지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대세답게 히트곡인 ‘사랑해 주세요’를 완창하며 뜨거워진 무대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조윤지의 무대가 끝나자 장지석이 거창한 멘트와 함께 주란미를 무대로 불렀다.
전설적인 가수답게 주란미가 무대 위에서 풍기는 압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현우도 주란미가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생전 처음 보는지라 팔짱을 낀 채 무대에 집중했다.
주란미가 선택한 곡은 수많은 히트곡 중 하나인 ‘비 내리는 오작교’였다. 구슬픈 음성에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던 세트가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무대는 끝이 났다. 무대가 끝이 나자 감동한 표정으로 멤버들이 박수를 쳤다.
‘전설은 전설이야. 노래를 부르는 내내 사람들을 압도했어.’
현우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오빠, 근데 왜 지유는 항상 마지막이에요?”
김은정이 툴툴거렸다.
그사이 송지유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정훈민이 휘파람을 불며 송지유를 응원했고, 송지유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무대 위에 오른 송지유의 눈동자가 현우에게로 향했다.
“녀석, 긴장했어.”
현우 역시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무대를 통해서 들끓고 있는 여론을 역전시켜야 했다.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은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오빠?”
“그래, 월량대표아적심이다. 립싱크라고 떠드는 인간들한테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와, 대박!”
비명을 지르려던 김은정이 얼른 입을 막았다. 잔잔하고 애절한 전주가 흘러가고 마침내 송지유가 분홍빛 입술을 떼었다.
청아하고 부드러운 저음에 쓸쓸하고 아련한 감정이 세트를 휘감았다. 촬영에 집중하고 있던 카메라 감독들이나 제작진들이 하나둘 쓰고 있던 헤드폰을 벗고 묘한 표정들을 했다. 어느새 노래가 끝이 나고 송지유가 스탠딩 마이크에서 손을 떼었다.
“…….”
세트 일대가 침묵으로 물들었다. 5초가 지나고 10초가 지나도 좀처럼 침묵은 깨지질 않았다. 결국 어느 작가의 사인에 정신을 차린 장지석이 급히 오디오를 메우기 시작했다.
“어, 음. 막 가슴 한구석이 찌릿한데요? 와아, 정말…….”
장지석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좀처럼 여운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지시를 내려야 할 제작진들이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축제 때 진짜 라이브로 노래 부른 거였었네. 하여간 의심들은! 그러니까 어린애를 가지고 뭘 그렇게 의심들을 해?”
김민수가 무의식적으로 멘트를 쳤다.
* * *
“빌어먹을 진짜!”
쾅! 책상을 내려치며 김기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에 모여 있던 작가들과 조연출들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김기태의 눈치를 살폈다. 회의실 벽에 붙어 있는 TV에서는 ‘무모한 형제들’이 끝나고 토요일 8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응 살펴봐! 빨리!”
김기태가 작가들을 채근했다. 작가들이 급히 노트북으로 포털 기사들과 대형 커뮤니티들을 확인했다.
“어떤데? 다들 왜 말이 없어?!”
김기태가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작가들이 서둘러 김기태의 책상 위로 노트북들을 일렬로 펼쳐놓았다.
[무모한 형제들 트로트 특집 2회는 송지유의 독무대!?]
[무모한 형제들 또 대형 신인 탄생시키나?]
[미친 예능, 미친 음색, 미친 미모. 송지유 3박자 다 갖췄다!]
[송지유 논란 있었던 가창력 증명! 아련한 음색과 음악성이 빛을 발해]
[무모한 형제들 트로트 특집 ‘도전! 트로트 가수’ 2회 전국 평균 시청률 25% 기록. 최고 시청률이었던 작년 여름 가요제와 동률 기록! 마지막 3회분에서 기록 뛰어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