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내공을 포식하다 04권
천년 내공을 포식하다 04권
천년 내공을 포식하다
04
우진하
천년 내공을 포식하다 04권
차례
제19장. 자격을 증명하라 - 2
제20장. 의표(意表)
제21장. 충고(衝尻)
제22장. 삼종삼금(三縱三擒)
제23장. 심검(心劍)의 발끝
제24장. 태양은 뜨고, 진다 - 1
천년 내공을 포식하다 04권
제19장. 자격을 증명하라 - 2
죽은 듯 지면에 쓰러져 있는 백서하.
다행히, 숨이 붙어 있었다.
너무 늦지는 않은 모양.
나는 한동안 가냘픈 여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으면 했다.
그런데 자꾸 욕심이 난다.
이래선 안 되지.
나는 애써 마음을 떨쳐 내고는 고개를 돌렸다.
“청수 도인, 오랜만입니다.”
청수 도인이 시간을 끌어준 덕분일 것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지금쯤 큰 변을 당했겠지.
“화, 화진 공자께서 어찌…!”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이지만, 안부를 물으며 회포를 풀 시간은 없다.
“일단, 여기는 내게 맡기고 백 소저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세요. 아직 산 곳곳에 혈사귀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동공이 잠깐 흔들렸지만, 나를 믿는 눈빛이다.
“저자는 강철같은 육체를 지니고 있소. 만만히 볼 수 없는 인물이오.”
“그래 보입니다.”
진기를 온전히 갈무리할 실력의 경지. 화경의 고수다.
수라혈교 사혈마의 일인이자, 미쳐 버린 파계승, 천겁마승.
“허허, 이렇게 만나다니, 뜻밖일세. 그대가 생불혈존께서 말씀하신 천 년의 내공을 포식한 괴물이로고.”
천겁마승은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뜻밖이라고?’
나를 알아본 것과는 별개로, 저자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런데, 웬 생불혈존? 만독존자를 말하는 건가?”
“속세의 인물들은 그를 그렇게 부르더이다.”
“놀고 자빠졌네. 어디서 심득을 얻은 고승 흉내는 내고 지랄이야, 이 미친놈이.”
그야말로 광기가 느껴졌다.
“만독존자, 그 미친 노인네는 대체 어디서 이렇게 광인들만 골라서 끌어모은 거지?”
“이런… 딱한지고. 생불혈존께 하해와 같은 은덕을 입은 자가 어찌 제 부모와 같은 이를 폄훼하냔 말이더냐.”
미친놈.
이런 광인과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어차피 사혈마, 네놈들 하나, 하나 다 목을 따주려고 했는데, 마침 첫 번째 제물이 눈앞에 나타났구나.”
나는 슬쩍 청수를 돌아봤다.
그도 내 의중을 알아차렸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백 소저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내가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
금세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청수는 구태여 이유를 묻지 않았다.
‘백 소저와는 최대한 얽히지 않아야 해.’
만독존자에게 있어, 백서하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매력적인 패이다.
그러니, 그녀를 위해서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만 한다.
“가긴 어딜 가느냐. 내 중생들을 모두 극락으로 인도하리….”
“지랄하지 말랬지?”
청수를 향해 뻗어나가는 일곱 흑주.
난 곧장 천겁마승의 목을 노렸다.
세 자루의 검이 제 몸으로 짓쳐 드니, 천겁마승도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일곱 개의 흑주가 곧장 방향을 틀어 허공 중에서 원을 그리고 맹렬히 돌았다.
그러자, 내가 날린 세 자루 검이 힘없이 튕겨 나갔다.
“이야, 그건 또 뭐야? 이기어주술이야?”
꽤 신박했다.
활용하는 무구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리고 조종이 쉬울수록 진기의 낭비가 적다.
그런 면에서 천겁마승이 부리는 일곱 개의 구슬은 효율적인 측면에서 무척이나 뛰어났다.
오 갑자에 이른 내공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허공 중에서 조종할 수 있을 거다.
뭐, 그래봤자지만.
“감히, 흉내 낼 수 있는 걸 흉내 내야지.”
난 공간 전체로 진기의 그물을 펼쳤다.
천겁마승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격을 보여주며.
“끄으으…!”
내게 지배된 공간.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저 괴승의 일곱 흑주는 무용지물이다.
저 괴승에게 나는 그야말로 상극이라 할 수 있다.
‘만독존자가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데 저자를 내게 보냈다?
역시나 말이 되지 않는다.
화경에 이른 수하를 내게 그저 먹잇감으로 던져줄 리가 없다.
염왕궁주 때와는 다르다.
일부러 만인 앞에 나를 드러내기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었다.
‘수하로 부리는 초절정 고수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텐데?’
의문은 잠시.
일단 청수에게 눈짓하자, 그는 백서하를 데리고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천겁마승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제 본격적인 심문 시간이다.
“만독존자는 잘 계시나? 맨날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허어, 불경한지고. 본 미륵은 생불혈존의 명을 하사받을 뿐 감히 존엄한 그분의 강림에 관여하지 않는다네. 그대 또한….”
됐고.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달받으면 움직인다는 거잖아.”
“그것이 바로, 위대하고 존엄하신 생불혈존을 따르는 자의 도리인 것을.”
광기가 뇌수까지 침범해 사리 분별이 아예 안 되는 인간인 건 확실하다.
오히려 좋아.
“그래서? 백서하를 활용해 나를 여기까지 유인한 건가?”
“안타까운 중생이로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극락을 선사하는 건 본 미륵의 본분이거늘.”
“내가 여기 올 줄 몰랐다는 거네?”
“안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 모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윤회의 바퀴에 운명을 맡기면 되는 것을.”
이 시x놈이.
알았다는 거야, 몰랐다는 거야?
저 광증으로 뇌수를 가득 채운 파계승 같으니.
“괴물이여, 그대와의 만남은 생불께서 천명한 덕분일 것. 본 미륵을 도와 혈천하를 만들어 보세나.”
“미친놈을 봤나.”
분명한 건, 여러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따로 명령받은 건 확실히 아닌 걸로 보인다.
애초에 이 아무도 없는 산속에 사혈마 중 하나를 내게 먹잇감으로 던져주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
‘역시, 내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어.’
나는 의도적으로 만독존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인적을 피해 움직였다.
그게 통한 듯 보인다.
‘백서하에게 눈이 돌아간 건, 저자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을 테고.’
뒤틀린 욕망이 발현된 듯.
상황이 선명해졌다.
“미친놈이라니. 본 미륵의 정신은 지극히 또렷하다네. 아직도 그대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대만 동의한다면, 우리는 함께 도래할 혈천하를…!”
“내가 왜 당신 같은 광인과 같이 혈천하를 꿈꿔. 꿈 깨 인간아.”
그리고.
“어차피 조금 뒤에 뒈질 놈이 뭔 혈천하는 혈천하야, 자꾸. 얼른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괴물이여, 미륵의 현신인 나를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더냐!”
기습적으로 신형을 튕기는 천겁마승.
칠흑주가 무용지물이니, 근접전으로 승부를 볼 요량이다.
“글쎄다. 과연 내 몸에 닿을 수나 있겠어?”
세 자루의 장검이 날아들고.
카앙― 캉― 캉―!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상대의 발길을 멈추는 데는 성공했다.
“음? 몸이 강철인가?”
청수가 말한 그대로다.
비유적 표현인 줄 알았는데, 진짜 강철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시험해 본다.
슬쩍 보니, 팔뚝에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청수의 한 수는 통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인간의 피부가 진짜 강철일 리는 없으니.
세 자루 검에 주입하는 공력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고 다시 쏘아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