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당문 08권
천하당문 08권
천하당문
08
독딥륙
천하당문 08권
차례
제36장. - 2
제37장.
제38장.
제39장.
제40장.
제41장.
천하당문 08권
제36장. - 2
키에에엑―!!!!
거대한 괴조가 중원 연합의 위를 위협적으로 날아다녔다. 녀석은 금방이라도 거대한 날개로 진영을 쓸어버릴 것처럼 굴다가, 하늘 위로 쏜살같이 솟구쳤다. 새와 박쥐의 형태를 융합해 놓은 듯한 모습을 넋 나간 듯이 바라보던 당연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당연오의 물음에 눈살을 찌푸린 당명이 답했다.
“벽이 너무 높아.”
당연오 또한 눈이 있었으므로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아니, 절벽은 잘만 탔잖아!!!!”
당연오의 억울한 외침에 당명이 황당한 듯 쳐다봤다.
“그때는 위쪽을 점령한 게 우리였고!!”
이런 싸움에서는 누가 고지를 잡고 있느냐가 중요했다.
벽을 타고 올라가려고 하면 위에서 부어지는 끓는 기름에, 요수들의 습격에….
수성적 기능만큼은 압도적이라는 평이 왜 생겼는지 알 것만 같았다. 당연오가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안 될까요, 청풍검선?”
그 물음에 서하가 한숨을 쉬었다. 이어 나오는 말은 부정적이었다.
“그렇게 기분 띄워주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백번 양보해서 나 혼자 위에 올라갔다고 치자. 안에 무슨 요수들이 있을 줄 알고?”
“야수궁 내부에서도 마교에 대항하고 있는 세력이 있을 거라고 한 건 서하 대협이잖아요.”
“바로 그 지점이 문제라는 거야.”
서하가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야수궁도들한테 요수는 특별한 생명체야. 괜히 들어갔다가 내가 요수를 잘못 죽이기라도 한다면 반감을 산다고. 요수들이 대놓고 덤벼도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차라리 죽이는 게 훨씬 쉽지.”
당연오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이거 어째, 결국 또 나밖에 길이 없는 것 같네.’
자신이라면 요수를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 내내 당연오 일행을 쫓았던 아구이랑에게도 살독이 아닌 다른 독으로 주의를 돌리지 않았나.
당연오는 몸을 풀었다. 괴조들이 무리를 지어 멀리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돌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소요되리라.
당연오가 목을 이리저리 꺾고, 체조를 하듯 몸을 움직이자 서하가 쳐다봤다.
“뭐 하는 거지?”
“들어가 보려고요.”
“어떻게? 협곡이야 밟을 수 있는 턱이 많아서 손쉽게 오를 수 있지만, 야수궁을 두른 저 석벽을 보라고.”
야수궁의 건물은 자연 그 자체였다. 판판한 석벽을 감싼 이끼와 넝쿨들이 득시글했다. 촉촉하게 수분기를 머금은 풀들은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미끄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발을 디디면 그대로 미끄러지겠는데.”
당연오가 중얼거리자 당명이 끼어들었다.
“그것만 문제면 다행이게. 기름이나 화살, 요수들의 공격도 모두 피해야 해. 역시 바로 성벽을 뛰어넘기보다는 문을 뚫는 게 정공법이겠지.”
당명의 말에 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마저도 여의찮아 보이긴 하지만.”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성벽을 보호하듯 요수들이 움직이는 것을 가리키듯 서하가 턱짓했다.
어느새 몸을 다 푼 당연오가 서하를 툭툭 쳤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 가야죠. 아 왜, 밀림에서 한 거 있잖아요.”
“아, 그거?”
서하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오가자 당명이 불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뭔데요?”
“재미있는 거.”
애매모호하게 말한 서하가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풀었다.
만약 이 자리에 약선이 있었다면 당명의 불안감을 해소, 아니 더더욱 증폭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약선은 부상자 치료를 위해 후방으로 빠져 있었다.
“그래. 독존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가졌으면 이 정도는 한 번 해볼 만도 하지.”
서하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당명이 당연오를 쳐다봤다. 뭔가를 물어보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당연오가 선수를 쳤다.
“지켜나 보셔.”
손을 휘휘 저어 보인 당연오가 서하에게 말했다.
“최대한 앞으로 근접해서 해보죠?”
“좋아. 이쯤 됐다 싶으면 서로 신호를 주자고.”
당연오와 서하는 상체를 낮췄다.
“잠깐만,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문주님께라도 먼저 알려야….”
당명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두 사람이 땅을 박찼다.
“말하고 가라니까!!!!!!”
당명의 외침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서하와 당연오는 중원 연합이 구축하고 있는 전지를 지나쳤다.
두 사람이 야수궁에 가까워지려고 하자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당연오는 피할 수 없는 궤적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는 팔을 들었다. 자색금강체로 변한 팔에 화살이 캉, 하고 부딪히며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그거참 보면 볼수록 편하네.”
검으로 화살을 쳐낸 서하가 한 번 툴툴댔고, 당연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 정도 야수궁이 가까워지자 당연오가 자색금강체를 풀었다. 더 접근하고 싶어도 야수궁 문을 지키는 요수들 탓에 힘들었다.
‘바로 지금, 여기가 최적의 선이란 말이지.’
서하도 비슷하게 생각한 모양인지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서하와 당연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뻗었다. 서로의 팔목을 단단히 잡은 채 서하가 빙글빙글 돌았다.
강한 힘에 당연오의 발이 허공에 떴다.
붕, 부웅―!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몇 바퀴 정도 돌던 서하가 입을 열었다.
“자, 독존 받아라―!!”
서하가 손을 놓자 투포환을 쏘아 올리듯 당연오의 몸이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그 빠른 속도에 따라오는 화살이 없었다.
찰나의 순간, 당연오는 생각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목 부러졌겠는데? 그 전보다 강도가 훨씬 달라졌어.’
애당초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던져질 일도 없다는 것을 간과한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뿐한 몸짓으로 성벽의 위에 당연오가 착지했다. 몸을 낮춰 쭈그려 앉은 당연오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아한 푸른 색을 염색한 천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색이 어찌나 시원한지, 남만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일순 잊힐 정도였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자, 아래로 땋아 내린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흰빛으로 샌 머리카락은 은색으로 반짝이며, 마치 화려한 곤충의 등딱지처럼 빛났다.
척 보기에도 인상적인 모습의 남자였다. 당연오는 선뜩한 감각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은청이다.’
보현이 말했던 그 남자다. 무감한 표정의 얼굴을 본 당연오가 본능적으로 녹색 소매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은청은 두 손을 올려 보이며, 자신이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피력했다.
“당장 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 허락되지 않았거든.”
은청은 고개를 밖으로 조금 빼내었다. 홀로 남은 서하를 보는 은청의 낯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보고를 받았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검날로 끊어내지 못할 몸을 가졌다면 충분히 해볼 법한 짓이군.”
“던져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당연오는 손을 빼지 않은 채 답하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보고를 해 줄 사람은 없었을 텐데.”
당연오와 서하 일행을 따라온 흑의인들 중 살아남은 이는 없었다.
더러는 서하의 손에, 적우의 손에, 여러 강호인의 손에 죽었고, 절반 이상은 당연오의 손에 죽었다.
“아구이랑은 죽이지 않았으니까. 야수궁도들은 요수와 교감할 수 있거든. 편리한 재능이지.”
은청이 성벽에 기댔다.
“혈신부는 죽고, 오독문은 강탈. 대부분의 마교도들은 사망했다라.”
은청 앞으로 여러 세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색색들이 다른 깃발들이 하늘을 찌를 듯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오의 눈에도 들어왔다.
당연오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면 협상하기 수월할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내가 마교도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도 알고 있겠지.”
당연오는 이전 혈신부에게 제안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항복한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긴 했지.”
은청이 당연오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랫것들의 독을 파훼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미산에서 그 독에 가장 많이 당한 것이 당문이니까 말이지.”
은청이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그러고는 바로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홍랑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광녀였으니 그대가 잘 아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두 개의 펼쳐진 손가락 중 중지가 접혔다.
“혈신부를 알고 있다는 건 조금 이상해. 야망이나 충성심으로 그를 따라갈 이가 없기는 하지만, 그는 제 꼴이 끔찍하다는 걸 알고 있거든. 그러니 대부분 얼굴을 가리고 다니고, 대외적으로 나타나는 걸 싫어한다고.”
은청이 마지막 남은 검지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마지막 남은 것은 나인데….”
“…….”
“이건 후차적인 문제로 두더라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지. 불신자들은 어떻게 이곳, 남만에 왔나. 그것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연합까지 끌고서.”
은청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럼 역시 보현밖에 없지.”
당연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은청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정확히는 들어 올리려고 했다. 인형이 살아있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을 볼 때처럼 기묘한 불쾌감이 불쑥 터져 나왔다.
그런 불쾌감은 다행히도 오래 가지 않았다. 죽은 가죽들을 견인하듯 부자연스러운 떨림이 그의 입가에 머물렀다가, 잦아들었다.
마치 힘든 일을 했다는 듯 입가를 매만진 은청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오가 입을 열었다.
“그 정보의 출처가 그렇게 중요한가?”
“내부에 배신자가 더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도 중요하고.”
“그래서, 어때? 우리 쪽에서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면, 판세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적다는 뜻이잖아.”
당연오가 한 번 더 항복을 종용했다.
그러자 은청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뜨거운 빛을 받아 금속처럼 반짝이는 머리카락이 후드득 흘러내렸다.
“홍랑과 혈신부를 겪었는데 아직도 우리를 모르겠나?”
성상로(城上路)에 줄지어 모인 흑의인들이 당연오를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다. 당연오는 독기를 끌어올릴 준비를 했다.
흑의인들이 하나같이 당연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혈신부와 싸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연오가 그들의 독기를 헤집어 터뜨리려던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