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당문 07권
천하당문 07권
천하당문
07
독딥륙
천하당문 07권
차례
제31장.
제32장.
제33장.
제34장.
제35장.
제36장. - 1
천하당문 07권
제31장.
그 말을 끝으로 당연오가 운백실을 빠져나갔다. 연결점에 불과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적련은 보이지 않았다.
준비된 사공의 안내에 따라 당연오는 화국루를 떠났다. 화국루가 내뿜는 붉은 빛이 수면 위에 일렁일렁 비치며 당연오를 배웅했다.
숙소로 돌아오자 당명과 당려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혼자 어디 다녀와?”
당연오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대답을 회피했다.
‘괜히 보현 이야기를 했다가 또 금제가 발동되는 건 사양하고 싶네.’
어떤 이야기든 보현이 금제를 풀어주기 전에는 할 수 있는 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당문에게 보현을 찾는 일을 멈추라거나, 더 이상 후기지수들의 죽음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에도 위험 요소가 존재했다.
‘괜히 마교 쪽에서 뭔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채게 하기도 싫고.’
근래 당연오는 항상 주사 독 기운을 퍼뜨리고 다니며 날짐승을 쫓는 데에 집중했었다. 그런 집착적인 모습에 당희림도 무슨 이유인지 물어봤었더랬다. 당연오는 그것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는 여전히 천마가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화국루에는 별 어그로가 안 끌리길 바라는 수밖에.’
당연오는 다소 뻑뻑한 눈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가 침묵을 선택하자 당명과 당려도 더 캐묻지는 않았다. 다만 근래 당연오의 낯빛이 시시각각 극도로 나빠지면서, 당 남매 또한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원체 표정 갈무리를 잘하는 둘인데도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마다의 불안함과 걱정거리를 가지고, 당문 행렬은 다음 날 사천에 도착했다.
* * *
“네 속에 있는 걸 조금씩 끌어올리는 방법?”
난의 잎을 천천히 닦아주던 당희림이 손놀림을 멈추고 당연오를 봤다.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당연오도 수련을 잠깐 내려놓고 쉬는 중이었다.
사천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연오는 현무동으로 달려갔다. 현무동에서 제 주인을 기다리던 북북이가 동굴이 떠나가라 끼잉거렸다는 이야기는 당희림도 익히 들어 알았다.
그 뱀거북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당연오는 기어코 육귀당주의 방에 북북이를 안고 들어와 복갑을 벅벅 긁고 있었다.
“뱀 거북 독액이라도 떨어지면 네가 다 책임지거라.”
“잘 치우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튼, 조금씩 끌어올릴 수는 없는 걸까요? 한창 초반에는 그게 새어 나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보니 다른 독들이 너무….”
“꽉 들어차 있지?”
당희림의 말에 당연오가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당희림은 난을 손질하는 손길을 다시 시작했다.
“애당초 연오 네가 만독을 품고 있는 이유는, 가장 밑에 깔린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서지 않느냐. 물샐틈없이 막아놓고 있으니 네가 막상 끌어올리기도 힘든 게 당연하다. 꽉 채워 놓은 함의 가장 밑에 있는 물건을 찾아내는 게 어려운 것처럼 말이지.”
당연오는 북북이의 이마를 살살 긁어주었다.
“그럼 독기를 조금 비워야 한다는 거네요?”
“뭐, 그렇긴 하지만.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냐? 아직 다루기 어려울 텐데.”
“독기를 좀 비우려면…. 가령, 태청단을 복용하는 식으로요?”
당희림이 다시 손을 멈췄다.
“넌 그러면 죽는다니까.”
“그러니까 이론적으로요?”
“기어코 끄집어내고 싶다면 그게 맞기는 하지. 그렇게 되면 너뿐만이 아니라 주변이 초토화가 될 게다.”
“그건 알죠.”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
당희림이 천을 내려놓고 당연오에게로 몸을 돌렸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물어보는 게냐?”
“별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당연오는 새삼 당희림을 봤다. 짐독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당가타에서 멀리 떨어질 필요성이 있었다.
‘잘못했다가 터지면 전방위 민폐니까.’
금제 탓에 알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근데 금제가 아니어도 말 안 했을 듯? 이 아저씨는 당종 트라우마 때문에 나를 너무 과보호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지.’
당연오가 북북이를 들어 올려 보였다.
“그건 이제 됐고, 스승님. 북북이 많이 컸죠. 귀엽죠?”
“꾸응.”
‘귀…. 엽?’
당희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북북이를 뜯어보았다.
북북이는 이제 한 손으로는 절대 들 수 없는 크기로 성장하여, 귀엽다기보다는 슬슬 패왕적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모든 뱀거북이 그러하듯 특히 주둥이 부분이 발달하여, 잘못했다가 깨물리기라도 한다면 손 하나는 그대로 으스러질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눈동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했다. 무해함을 입증하려는 것처럼 맑은 눈동자에 패악스러운 주둥이가 합쳐지니 조금 웃기기도 했다.
“…그래. 귀엽구나.”
당희림은 주인인 당연오에 대한 예의로 입에 발린 말을 해주었다.
“그렇죠? 나중에 시간 되실 때 가끔 좀 챙겨 주세요. 북북이는 특히 수박을 좋아해요.”
수박? 당희림은 수박 한 통을 그대로 씹어 먹을 것 같은 북북이의 주둥이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네가 주면 되지 않느냐?”
“전 좀 부지런히 쏘다니잖아요. 그때마다 북북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스승님은 육귀당주님이기도 하고요?”
“육귀(育龜)당이라고 해서 진짜 거북이를 키운다는 건 아니다만.”
“아무튼. 제가 믿고 맡길 분이 스승님밖에 없네요. 명 형이나 려 누나는 뭔가 못 미덥달까. 잘 좀 챙겨 주세요.”
이쯤 되니 당희림은 스멀스멀 불안함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꾸 이상한 말 하지 마라.”
“네에. 알겠습니다아.”
당연오는 장난처럼 말을 늘렸다. 그러니까 이런 분위기는…. 당연오에게 매우 쥐약이었다.
‘난 왜 이렇게 걱정시키는 게 싫지. 너무 많이 받아봐서 그런가.’
당희림의 반응을 보니 당명과 당려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희림이 뭔가 말을 할 기색이 보이자 당연오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스승님! 좋은 하루 되세요!”
“연오야!”
도망치듯 육귀당주실에서 빠져나간 당연오는 북북이를 고쳐 안아 들었다.
“아오, 무거워.”
“꿍!!”
“너 욕한 거 아니야! 나 떠날 때까지 계속 붙어 있자. 북북아.”
“끼웅.”
달라붙는 북북이의 복갑을 한 번 더 삭삭 긁어준 당연오가 걸음을 옮겼다.
‘일단 궁금한 건 끝냈고. 이제 필요한 걸 준비하러 가야지.’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곳은 당주실이었다. 총관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자 당진이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당연오를 봤다. 걱정이 한 톨도 묻어나지 않는 얼굴에 당연오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새끼일 때 호되게 혼난 탓인지 북북이는 귀갑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 당진은 일견 탐탁지 않아 보였으나 크게 지적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지? 당명도 끼지 않고 독대를 요청하다니.”
‘노발대발 말리면서 초 치는 거 봐줄 일 있나.’
당연오는 최대한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돌려 말하지 않고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저, 산이 하나 필요합니다.”
“산?”
“예. 짱 박혀 있어서 누가 찾아오기도 힘들고, 살아있는 건 거의 없는 황무지 같은 산이요. 주변에 절대 인가가 없어야 하고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조용한 산이 필요해요.”
당연오의 조건을 들은 당진은 들고 있던 죽간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그런 산은 왜?”
“거기서 따로 수련을 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가능하다면 제가 들어간 이후에도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시면 더 좋고요.”
“여태껏 만독연 근처에서 수련하던 것 아니었나?”
“그랬었죠. 그렇지만 이제 만독연에서 제가 얻을 배움은 많지 않아서요.”
“내가 그것을 도와줘야 하는 이유는?”
“제가 이 정도의 요청은 충분히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연오의 당당한 태도에 당진이 죽간을 내려놓았다.
확실히, 당연오는 당문에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용봉지회의 우승까지 거머쥐었고, 새로운 독의 쓰임새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연오가 제독당으로 소속을 옮기게 된다면 더 큰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당진은 새삼 당연오를 천천히 뜯어 보았다. 죽음이 완연히 드리워진 낯은 당이수의 사망 전과 비슷했다.
“수련 장소가 아니라 무덤 자리가 될 수도 있다. 당문에 있는다면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겠지만, 홀로 산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네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말하는 것이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당연오의 대답에 당진은 깨달았다.
‘죽음 이후까지 상정하고 그런 장소를 요구하는 거군.’
당연오가 말을 이었다.
“그 때문에 여태껏 당문의 별가를 내어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
그 또한 맞았다.
당연오는 천마가 보여줬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당진도 당연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그것이 터졌을 때의 파급력을 짐작하고는 있단 생각이 들었다.
당진은 가주로서 당연오를 완전히 배제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연오를 별가에만 보내놓은 것이 당진답지 않았다.
‘알고는 있어도 끝끝내 하진 못한 건가? 이렇게 보여도 부정이 있기는 하다고?’
당연오는 여전히 당진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인간적인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말이 그렇다는 거고, 죽을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요. 좀 더 마음 편하게 수련할 장소가 필요하다 정도로 받아들여 주세요. 제가 최근에 뭐 실망하시게 한 적이 있나요. 아버지.”
그리하여 당연오는 편안한 어투로 말했다. 아버지란 호칭에 당진의 볼이 딱 한 번 움찔 떨렸다.
잠시 생각에 빠진 당진은 이내 붓을 들어 빈 죽간에 글을 썼다. 그 죽간을 말아 묶고는 당연오에게 건네며 당진이 말했다.
“총관에게 전달하면 처리해 줄 게다. 이제 나가 봐라.”
“감사합니다. 음.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뭐지?”
“명 형이랑 려 누나, 육귀당주님…. 아니, 그냥 다른 사람 모두한테는 어떤 산인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해요.”
“어째서?”
“괜히 온다고 하면 골치 아픕니다. 그으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볼게요.”
죽간을 챙긴 당연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오가 가주실을 미련 없이 떠나려고 몸을 돌리던 찰나였다.
“연오야. 죽지 마라.”
당진의 무뚝뚝한 음성에 당연오가 한 번 미소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으로 나온 그는 죽간을 총관에게 전달하고, 별가로 천천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