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6권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6권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6
절충이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6권
차례
Chapter 01. 뉴 페이스
Chapter 02. 트롤
Chapter 03. 복귀
Chapter 04. 역전 - 1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6권
Chapter 01. 뉴 페이스
“흔들지 마! 떠, 떨어진다!!”
“당겨!”
“끄으으아아, 평소에 대체 얼마나 처먹고 다닌 거야?!”
“뭐? 방금 그거 브렉이지?!”
“잔말 말고 밧줄이나 당겨-!!!”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다가가니 세 명의 남자가 줄다리기하듯 밧줄을 쥐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파티, 동료가 크레바스에 빠진 것 같군.”
크레바스는 낙하 함정이다.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까지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아주 얇디얇은 얼음으로 절벽 아래를 가리고 있는 흔한 함정이다.
“구해줄 건가?”
더리드로의 말에 하이칸이 나를 보며 물었다.
‘바깥이면 몰라도 던전 안이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포탈 밖 세상이라면 당연히 구해줬을 거다. 다만, 이곳은 포탈 속 던전이고, 여기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쇼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뭐, 구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저기서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채로 밧줄과 씨름을 하는 저들이 위기에 처한 탐험가인 척하는 약탈자들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하이칸이나 더리드로도 그렇게 뒤통수 맞은 적이 있다고 했지.’
사람 좋은 하이칸이 곧바로 저들을 구하지 않고, 내게 먼저 의견을 물은 것도 그 때문일 거다.
‘무엇보다 병신도 아니고.’
빙하지대로 들어오면서 크레바스 함정에 당하는 머저리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크레바스는 알아보기 쉬우니까.’
다른 함정들과는 다르게 걸리는 순간 100% 확률로 추락사 확정인 함정이 ‘크레바스’다. 다만, 이미 사전탐사하면서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크레바스는 맨눈으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분하는 방법이 게임이랑 똑같더라.
‘멍청하게 신나서 앞뒤 안 가리고 뛰어가는 게 아닌 이상 티가 나는데.’
빙하 지대는 얼음 천장 때문에 바깥의 눈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눈으로 덮여서 못 알아보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크레바스 위를 덮은 얼음은 성에가 끼어서 주변에 두텁고 투명한 얼음과 구분됐다.
“도와줘야 할 것 같긴 한데. 하는 모양새가 영….”
내 말에 동의하듯이 하이칸과 더리드로가 고개를 끄덕인다.
“눈 폭풍이 치지도 않는 이곳에서 밧줄을 사용하는 것도 이상하군.”
더리드로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머저리들 같은데.”
그렇게 말한 이오는 방패를 들고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같이 가.”
앞서가는 이오를 따라 크레바스 아래로 연결된 밧줄을 끌어당기지도, 그렇다고 끊어내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까 그놈들 같은데.’
눈치채는 게 늦었는데, 저기서 머저리 짓을 하는 건 아까 사냥제 본부 앞에서 저들끼리 머리를 맞댄 채로 수익이 적다고 하소연하던 그 패거리였다.
“캬앙?”
추운 곳에 와서인지, 부쩍 수면시간이 늘어났던 담비가 목 가리개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훌쩍.
내 품에서 벗어난 담비가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세 남자의 얼굴을 구경했다.
“뭐야, 이 족제비는.”
브렉이라고 불렸던 모히칸 머리 스타일의 남자가 자신을 구경하는 담비에게 말했다.
“위험하니까, 저리―끄윽, 비켜!”
생긴 거랑 다르게 동물한테 다정하네. 표정은 금방이라도 발로 찰 것 같았는데.
“캬하아앙.”
“뭐, 뭐야!”
모히칸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생긴 게 웃겼는지 담비는 그의 몸을 타고 오르더니 밧줄 위를 내달렸다.
“담비, 이 녀석이! 이오!!”
“알겠다.”
담비의 돌발행동에 놀라기도 잠시 이오의 방패에서 빠져나온 남색 촉수가 밧줄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에 따라 밧줄 위를 내달리려던 담비가, 허공을 날아 내 품에 안겼다.
휘릭.
거대한 촉수의 끌어당김 한 번에 굴비 엮듯이 묶여있던 네 명의 사람들이 얼음 절벽 아래에서 끌어올려졌다.
“우와아아-!”
“뭐, 뭐야?!”
* * *
“같이 다니자고?”
“예, 그렇습니다. 사냥제에 참석한 다른 파티도 기본적으로 10명 이상으로 다닙니다. 아무리 기사시더라도 머릿수가 많은 게 낫지 않겠습니까? 헤헤.”
이오의 촉수에 구사일생 된 용병들은 자신들을 타이론 탐험대라고 소개했다.
생긴 건 그냥 ‘패거리’ 수준이구만, 탐험대는 무슨.
“왕자의 기사 중 하나인 빌헬름 경의 명성은 예전부터 들어왔고, 항상 그 무용(武勇)을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앞에서 샤바샤바하고 있는 타이론 뒤로 웃으며 철퇴를 휘두르는 이오를 봤다.
‘미믹이네.’
“파도, 아니 내가 너를 부수리라!”
이오는 보물 상자처럼 보이는 것에 기다란 팔다리가 달린 몬스터인 미믹과 싸우고 있다.
‘지금 좀 날뛰면 탱커 역할에 집중하려나.’
타이론 패거리는 약탈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머저리나 멍청이도 아니었다. 이들도 크레바스 위 성에 낀 얼음을 보고 그게 함정인 걸 아는 머리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믹을 보물 상자로 봤다고?”
“…예.”
다만, 미믹과 보물상자를 구분할 경험이 없었을 뿐이다. 이 녀석들은 크레바스 위에 있는 보물 상자를 보고, 그걸 주우려고 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함정이지 않나? 그 얼음 위에 상자가 있으면.”
“그게 저희도 당연히 함정인 줄 알고 무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뚜껑이 열리면서 안에 든 금은보화가 보여서…….”
타이론은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었다.
‘나름 머리를 쓰긴 했네.’
타이론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들어보자면, 그들은 명백한 함정인 걸 알면서도 금은보화에 혹해서 보물 상자를 줍기로 했다.
안전을 위해 제일 가볍고, 보물 상자를 주워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여자 탐험가인 마리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도 불안했던 이들은 모형 정원의 중반부에 랜덤으로 작동하는 필드 효과인 ‘설원 폭풍’, 일명 블리자드에서 동료들끼리 헤어지는 걸 막기 위해 가지고 왔던 밧줄을 그녀의 허리에 감았다고 한다.
“분명 마리가 보물 상자를 잡을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갑자기 상자 속에서 혓바닥이랑 기다란 팔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보물 상자로 위장하고 있던 미믹은 마리가 접근해서 뚜껑 속 보물을 손으로 집는 순간 본색을 드러냈다고 한다.
혓바닥으로 여자를 잡아채고 그녀의 뒤에 있던 동료들을 두 개의 팔과 손처럼 생긴 두 발을 꺼내어 붙잡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얼음이 깨지며 방금 우리가 봤던 상황이 연출됐다고 한다.
“다시 한번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타이론의 말을 대충 받아주고는 이오를 살폈다.
‘그냥 흔한 npc 파티였네.’
게임 하다 보면 자주 만나던 욕심에 눈이 먼 멍청한 NPC 파티 중 하나였다.
뻐걱-!
“키에에에-!!!”
2미터는 되어 보이던 얇지만, 기다란 다리가 이오의 철퇴에 역방향으로 꺾인다. 비명을 지르는 것에 자못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은 이오의 방패에서 튀어나온 남색 촉수가 미믹을 옭아맨다.
“어서 뱉어라.”
뿌득. 뿌득.
“키에에에.”
촉수질 몇 번에 미믹을 박살 내놓을 수 있는 이오였지만, 얼음 구덩이에서 구출되며 미믹의 혀에 묶여있던 마리를 반쯤 집어삼킨 놈 때문에, 이오는 마리를 뱉어내라고 미믹을 어르고(?) 달래고(?) 있었다.
‘전직 해적 아니랄까 봐. 폭력으로 해결하네.’
보통은 미믹한테 동전 하나를 던져주면 알아서 집어삼킨 NPC를 뱉어낸다.
“케에에엥.”
이내 이오의 철퇴에 옆구리와 머리를 한 대씩 맞은 미믹이 자신이 반쯤 집어삼켰던 마리를 뱉어냈다.
“야, 가서 너희 동료나 챙겨.”
“가, 감사합니다.”
“마리!”
미믹이 이오를 피해 반대편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막고 있던 타이론 패거리들이 미믹의 위액과 침 범벅이 된 마리에게 다가갔다.
“윽, 미친.”
“내 생전에 이렇게 고약한 냄새는 처음 맡아보네.”
“끄응. 빨리 치료제나 먹여.”
타이론은 품에서 포션은 아니고, 드루이드들이 만들어서 파는 치료제가 든 나무 수통을 꺼내 눈이 핑핑 돌고 있는 마리에게 먹였다.
“죽어라!”
콰직.
볼일을 끝낸 이오는 그대로 방패를 내리찍어서 사지가 역으로 꺾인 미믹의 숨통을 거뒀다.
툭.
그리고 떨어지는 건 주황색 마석이었다.
‘마석 등급이 무지개 색깔 순서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세한 등급과 점수는 모르지만, 대충 마석은 등급에 따라 빨주노초파남보로 무지개 색깔순으로 등급이 높아진다고 했다.
‘크기도 주먹만 하고.’
마석을 챙겨서 하이칸에게 던지고는, 나디의 품으로 자리를 옮긴 담비를 바라봤다.
“자식이, 사람 간 떨어지게 해놓고서는 혼났다고 삐지기는.”
담비의 돌발행동에 가슴이 철렁하고서 몇 마디 하며 혼냈더니, 놈은 내 손 위에 있다가 나디한테로 도망쳤다.
‘꼴을 보아하니, 당분간 삐져서 전투도 안 도와주겠네.’
딱히 담비의 백만 볼트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담비의 전류 방출 스킬은 데미지뿐만 아니라 스턴 효과로 시간을 벌어주기에 꽤 훌륭한 전투 조력자였다.
‘드루이드인 리온이나 담비 집사였던 바타르가 있었으면 삐져도 어떻게든 써먹었을 텐데.’
전류방출을 쓴 직후 담비의 털로 감전 항아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담비는 자기 털을 뽑아 가는 걸 진짜, 엄청나게 싫어한다. 그래서 전투 직후 털을 뽑고 나면 육포를 열 조각은 줘야 한다.
‘기분 풀어준다고 처음에 육포를 너무 많이 줬어.’
내가 털을 뽑고 나서 기분이 상한 담비를 달랜다고 바타르가 갖고 있던 간식을 마구 준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우레가 상성도 안 타고, 스턴 효과까지 제일 좋은데.’
실제로 ‘우레’를 만들 감전 항아리는 10개 밖에 없었다. 그중에 ‘우레’로 만든 항아리는 5개, 나머지는 감전 항아리로 놔뒀다.
‘생각보다 감전 항아리가 제압용으로 쓸만하단 말이지. 후속타 먹이기도 좋고. 우레는 잘못 썼다가는 주변 동료들까지 같이 죽어버릴지도 모를 만큼 위력이 강하니까.’
남은 5개의 감전 항아리 중 3개는 써버려서 이제 남은 게 2개 밖에 없다. 슬슬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쉬움에 쩝하고 입맛을 다시고는 파티원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