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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에이스는 힐링하러 갑니다 10권
mensol 스포츠 장편소설
목차
명암 (2)
십 보 전진을 위한 오 보 후퇴
사이클
불가능의 미학
외줄타기
멘탈 싸움
북벌
각성
만날 약속
극강의 전력
반란
우승 DNA (1)
1
명암 (2)
요한의 60이닝 연속 무실점 신기록은 센세이션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메이저리그도 발아래 뒀다! 이요한의 몬스터 시즌!]
[허샤이저는 해당 시즌 사이영+월드 시리즈까지 품었는데…. 이요한도 우승 가능할까?]
[트레이드 평가 C. 보스턴의 제프 사마자. 팀의 반전 가져올까?]
그렇게 이때까지는 분위기가 괜찮았다.
보스턴은 요한의 완봉에 힘입어 텍사스를 2-0으로 꺾고 20승 21패를 기록.
다시 승률 5할 고지까지 1승만 남기게 됐으니까.
그러나.
이어진 텍사스와의 2, 3차전을 7-4, 9-5로 박살 나며 팀 성적이 20승 23패로 처지며 템파베이의 뒤를 이은 지구 꼴찌로 추락하게 됐다.
그래도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전체 1위 팀이었으니 루징 시리즈를 기록한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범주였으나 이어진 LA 에인절스와의 홈 3연전 시리즈까지 스윕을 당하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이요한에게 휴식 부여하자마자 5연패! 보스턴의 마운드를 어찌할꼬]
[무너져 버린 벅홀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4이닝 5실점 데뷔전 치른 사마자. 보스턴 프런트의 손해 보는 도박]
이때 보스턴의 시즌 성적은 20승 26패.
이후 5일의 투구 휴식에서 돌아와 미네소타 원정에 등판한 요한이 5이닝 7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팀을 연패의 늪에서 구해냈다.
다만 요한도 기록 달성 이후 사이클이 내려온 건지, 그도 아니면 미네소타 타자들이 잘 때려낸 건지는 몰라도 경기 WHIP가 1.5가 넘으며 이번 시즌 가장 부진한 투구를 하고 말았다.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건 그저 병살이 2개나 나왔기 때문이지 내용은 썩 좋지 않았다.
[65이닝 무실점 신기록 세웠는데…. 피안타율 점점 높아지는 이요한. 비밀 무기인 스위치 투구 언제까지 숨길까?]
[지금은 전력을 발휘할 때!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하면 무슨 소용?]
[가까스로 연패 끊은 보스턴. 고비는 이제부터]
미네소타 원정 3연전을 2승 1패로 끝내며 분위기 전환의 위닝 시리즈를 가져간 보스턴.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텍사스 원정 4연전은 지옥이었다.
머리끝까지 약이 올라 있던 텍사스 팬들과 선수들은 포스트 시즌이라도 되는 듯 경기에 몰입했고, 보스턴의 마운드는 그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마침 프런트가 요한에게 8일이라는 투구 휴식을 부여함에 따라 이번엔 분위기 전환을 해줄 선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시리즈를 스윕당하며 보스턴은 5월이 끝나는 시기에 22승 31패를 기록.
지구 1위 토론토와의 승차가 12게임까지 벌어지고 만다.
요한이 폭주의 5월을 보냈음에도 팀 성적이 추락하며 명암이 갈려 버린 것이다.
* * *
50경기 이상을 치르며 1/3의 반환점을 돈 메이저리그.
6월 1일 하루의 휴식일을 가지게 된 나는 소파에 축 늘어진 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번 시즌은 힘들지도 몰라.’
벌써 포기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봐야 할 것은 냉정하게 봐야 했다.
보통 순위 경쟁에는 몇 가지 상황이라는 게 있다.
첫 번째는 모든 팀의 전력이 비등한 탓에 지구 1위부터 지구 5위까지 게임차가 2게임도 나지 않는 혼전.
이런 경우 다른 지구 팀들을 얼마나 잘 상대하느냐로 순위가 갈린다.
두 번째는 하향 평준화. 그 지구에 속한 팀들의 전력이 너무 구려서 5할 승률을 살짝 넘긴 팀이 1위를 하고 있는 케이스다.
이런 경우는 간단한 보강만으로도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며 쭉쭉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세 번째가 상향 평준화였다.
그 지구에 속한 팀들의 전력이 리그 평균을 크게 상회하며 다른 지구 팀들을 보이는 족족 두들겨 패는 상황이다.
이때는 반대로 지구 라이벌 간의 성적이 중요하다.
다른 지구 팀들과의 경기는 보통 먹고 들어가니까.
지금 AL 동부가 이 세 번째 경우에 속해 있었다.
아메리칸리그 전체 1위는 텍사스이지만, 이건 텍사스의 지구 경쟁이 쉬워서 그런 것이지 팀 전력 자체는 토론토나 양키스, 볼티모어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 보스턴이 미끄러진 건 이것 때문이었다.
지구 라이벌 간의 성적은 5할을 맞추고 있었지만 다른 지구 팀들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내주며 순위가 수직 하락해 버린 것.
이런 케이스가 문제인 건 아무리 보강을 해도 소용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상향 평준화가 돼 있는 탓에 보강을 한다고 해도 경쟁에서 치고 나갈 수가 없는 것.
‘이대로는 절대 포스트 시즌에 갈 수 없어.’
뭔가 어마어마한 모멘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연승+트레이드로 사기 치기+선수들의 스텝업이라는 삼박자가 필요하다.
‘과연 그게 될까가 문제인 거겠지. 이미 성장 가능성이 없는 베테랑 선수들도 많고.’
뭣보다 그런 반전 모멘텀이 근시일 내에 나와줘야 했다. 애매하게 6월, 7월이 지나가면 걷잡을 수 없어질 터.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숨이 나온다.
그때. 머리맡으로 익숙한 기척이 느껴지고. 다은이가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안아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곤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이거 봐라!?”
다은이가 내민 휴대폰 화면엔 이달의 선수 상, 이달의 투수 상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발표는 내일인데 무조건 만장일치로 자기가 될 거래! 이걸로 2연속 이달의 선수 상이랑 2연속 이달의 투수 상 수상인데 이게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라나 봐!”
“응, 이달의 선수 상은 원래 투수는 못 받는 거거든. 투수 상이 따로 있어서.”
“어? 근데 왜 자기는 둘 다 받은 거야?”
“투타겸업이니까. 이달의 선수 상은 타자로, 이달의 투수 상은 투수로 받은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런 의미에서 4월에 받았던 이달의 선수 상은 신인 버프가 많이 껴 있었다.
당시엔 나보다 타격 성적이 좋은 선수가 있었으니까.
다만 이번 5월에 받은 건 성적으로 받은 것이었다.
5월 한 달간 OPS 1.223으로 전체 1위를 했으니 말이다.
“자기야, 오늘 파티할까? 수상 기념으로.”
“…오늘은 그냥 쉴래.”
나는 고개를 돌려 다은이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다은이는 이해한다며 위로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내가 팀 성적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이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다은이는 곧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기 그거 알아? 지민이, 올해 8월에 학교 가기로 결심했어.”
“…정말?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왜 갑자기?”
“겁은 나는데 그래도 가보겠대. 자기 경기 보고 느끼는 게 있었나 봐.”
“…….”
“그런데 가서 어렵고 힘들면 바로 오빠한테 도망칠 거라고 말하는 거 있지? 후훗, 든든한 버팀목이 있으니까 그래도 그런 두려운 일도 도전해 볼 수 있었던 거야.”
다은이는 끙끙거리며 부푼 배 위로 얼굴을 내밀어 나와 눈을 마주한다.
“자기도 혼자가 아니야. 무섭고 힘들면 언제든지 우리한테 기대면 되잖아. 그러니까 뭐든 부담 없이 해도 돼!”
“하하…. 내 고민은 팀 상황 때문인데? 어떻게 기대야 되는 거야?”
“그건 나한테 맡겨둬! 자기 고민 상담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나 지금 메이저리그 전 구단 40인 로스터도 다 외우고 있다?”
“말도 안 돼. 나는 25인 로스터의 절반도 모르는데? 그 정도면 컴퓨터 수준이야 다은아.”
“진짜라니깐. 포지션별로 외우면 외울 만해. 정 못 믿겠으면 나한테 물어봐 봐. 다 대답해 줄게!”
“그러면…. 마이애미 히트의 주장은 누구야?”
다은이는 크게 당황해한다.
“마이애미의 주장? 마이애미에 주장이 있었어…? 누, 누구지?”
다은이는 선수 프로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스타성이 높으며 동시에 말린스의 프랜차이즈인 선수를 골라냈다.
“지안카를로 스탠튼! 맞지!?”
“땡!”
“그럼 톰 쾰러?”
“땡!”
“저스틴 바우어는 아닐 텐데…….”
“3, 2, 1…….”
“마르셀 오즈나!”
“땡! 정답은 드웨인 웨이드였습니다!”
“드웨인 웨이드? 그런 선수는 없는데……?”
“내가 마이애미 히트라고 했잖아. 말린스는 애초에 주장이 없어.”
다은이는 입술을 앙 깨문다.
“진짜!!”
“하하하!”
억울한지 내 머리를 헝클어 버리는 다은이.
이후엔 장난을 안 치고 구단 하나씩 40인 로스터를 들어보기로 했다.
역시나 전부 달달 외우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마다 30명 이상씩은 이름을 댔다.
…이게 생각지도 못한 도움이 됐다.
‘그 선수가 지금 40인 로스터에 있었구나.’
그걸 머릿속으로 정리하니 희미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한 가지의 길이.
“고마워 다은아.”
“읍……!?”
나는 진득하게 입맞춤을 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다은이는 몽롱한 듯한 눈으로.
“…자기야. 나 이제 안정기야. 그리고 어머님이랑 지민이도 저녁에나 들어온대.”
라는 얘기를 했지만 나는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미안해! 오늘은 밤늦게 올 것 같아.”
차에 시동을 건 나는 서둘러 프런트 오피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