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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에이스는 힐링하러 갑니다 9권
mensol 스포츠 장편소설
목차
졸업 (2)
포스팅
선전포고
최악의 데뷔전
역효과
전국구 스타
커리어 나이트
셀러브리티
폭주의 5월
선수 보강
명암 (1)
1
졸업 (2)
8회 초, 여전히 0-0의 상황.
7번부터 시작하는 라원의 타선은 기대를 받고 있지 못했다.
모두가 라원의 정규이닝 마지막 기회는 상위 타선이 다시 돌아오는 9회 초라 생각하고 있었지, 이 8회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선강고 출신 선수들이 한국 시리즈에 들어와서는 지독한 타격 부진을 겪고 있었기에 더더욱.
실제로 선수들은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한국 시리즈라는 압박감도 압박감이지만 이 시리즈가 승리로 끝나면 요한이 멀리 떠난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다. 자신들을 프로 무대에서 뛰게 해준 팀의 주장이. 주전으로 뛸 수 있게 해준 스승이.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다이노스 시리즈 때 보여준 끈질긴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7차전.
“가보자!”
“한 점만 내면 돼!”
다들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 외침은 공허했다.
그렇게 8회.
7번 선두타자 김준수는 대기 타석에 나와 덕아웃의 요한을 뒤돌아보았다.
“….”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타석으로 향하는 준수.
그는 상대 투수 정지만을 맞이하곤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야구란 거 정말 힘드네.’
타격 재능이 부족한 그가 느끼기에 프로 무대는 매 타석이 좌절, 절망과의 싸움이었다.
도무지 때려낼 수 없을 것 같은 공.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괴물 같은 투수들.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
고교 시절만 해도 야구는 재밌는 것이었고, 강한 투수와의 승부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 너무나도 바뀐 환경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요한은 말했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프로로서의 첫걸음이라고.
꾹! 준수는 방망이를 움켜쥐었다.
요한의 퍼펙트가 걸린 경기. 은인의 메이저 진출이 걸린 경기. 여기서 그 첫걸음을 떼지 못한다면 자신은 영원히 답보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팡! 초구는 148km짜리 포심.
그나마 선구안에 자신이 있던 준수는 빠지는 초구를 잘 골라내며 1-1의 카운트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3구째.
‘나한테 카운트가 몰리고 싶진 않을 거야.’
뚜렷한 근거가 없는 본능적인 예측이었으나 이게 들어맞았다.
만에 하나라도 볼넷을 내주고 싶지 않았던 배터리는 빠르게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아두고 싶었다.
이후 유인구를 연속해서 구사하면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계산.
그런 계산 속에서 149km짜리 포심이 몸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고.
“…!”
딱! 준수는 있는 힘껏 방망이를 당겼으나 타이밍이 늦으며 타구는 당겨지는 게 아니라 밀려 나가는 식으로 1루수와 2루수 사이로 완만한 드라이브를 형성했다.
이 타구에 1루수 김승엽은 베테랑다운 영리한 판단을 내렸다.
본인이 다이빙을 해서 캐치를 해볼 수도 있었지만 투수 정지만이 1루 커버 모션을 취하지 못한 점을 캐치.
더 확실하게 잡기 위해 2루수 나바로에게 타구를 넘기고 본인은 1루 베이스로 이동했다.
분명 이 타구는 2루수가 처음부터 반응하여 타구 경로로 이동했으면 무난하게 잡을 수 있었던 공.
그러나.
“엇….”
1루수가 처리할 거라 생각하고 낙관하던 나바로는 스플릿 스텝을 멈추고 발을 땅에 대고 있었다.
허겁지겁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타구를 향해 글러브를 뻗었으나 툭! 타구는 글러브 모서리에 맞으며 튀고 만다.
곧바로 잡아 송구를 해봣지만 준수는 여유롭게 1루에 들어가며 선두 타자 출루에 성공하게 된다.
[김준수가 1루에 들어갑니다! 이건 내야 안타로 기록이 될까요?]
[강습 타구는 아니었으니까요. 야마이코 나바로의 실책으로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참…. 나바로 선수가 가끔씩 수비 할 때 넋을 놓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게 이런 중요한 순간에 나오네요.]
[자, 이제 타석에는 8번 우익수 조현수가 들어섭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 성적은 13타석 2안타 2볼넷. 희생 번트를 시도할까요?]
[글쎄요, 이게 또 다음 타자가 정찬수 선수니까요. 차라리 정찬수 선수에게 1사 번트를 시도 하게 하고, 지금 타석에선 대타를 내보내 강공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도성환 선수가 있지 않습니까?]
정규 시즌 3할 타율, OPS 0.821의 도성환.
여기서 그 대타를 쓰지 않는다는 건 감독의 아집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포어맨 감독은 대타를 쓰지 않았다.
[대타를 내보내지 않습니다?]
[아하…. 이러면 이게 조현수 선수에게도 부담을 주게 돼요. 믿음의 야구가 그래서 어렵다는 겁니다. 감독이 믿음을 주는 건 좋아요. 그런데 그게 과하면 선수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되거든요. 내가 이만한 기회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하고요. 그건 자칫 선수를 더 심한 부진에 빠뜨려 버리고 말죠. 지금 조현수 선수가 그럴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현수는 포어맨 감독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요한이 형의 미래가 걸린 이 경기에서 하나 해달라는 거겠지.’
그건 믿음이 아니라 강요였다. 벼랑 끝에 내몰고 건너편 절벽으로 뛰라고 하는 협박.
말도 안 되는 요구.
그럼에도 현수는 그걸 해내야 한다고, 해낼 수 있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그건 이번 경기가 있기 전날, 안보현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보현은 친구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너네 만약 여기서 요한이 형 메이저 못 보내면 앞으로 떳떳하게 요한이 형을 볼 수 있을 것 같냐?
그 얘기에 몇몇은 부담감을 느끼고 좌절했지만, 또 몇몇은 강한 동기부여를 얻었다.
그중 하나가 현수였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계속 좋은 타구를 만들었었다. 2루수 직선타, 유격수 직선타.
그리고 이번엔.
탕!! 0-1에서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밀어내며 1-2간을 꿰뚫는 안타를 만들어 냈다.
“우오오오!”
“달려! 3루까지 가!”
1루 주자 김준수는 3루까지.
무사 1, 3루.
[안타! 안타입니다!! 조현수가 해줬습니다! 포어맨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빛을 봤습니다!]
[아….]
[이게 바로 야구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으, 음…. 좋네요, 예.]
해설을 입 다물게 하는 현수의 귀중한 안타.
라이온즈에겐 비상이 떨어졌다.
준비하고 있던 좌완 투수가 황급히 몸을 풀기 시작했고, 마무리도 어깨를 예열했다.
‘젠장! 왜 하필 이런 쓸데없는 곳에서 덜미를 잡힌 거야!’
최종일 감독은 속이 바짝 탔다.
타석에는 너무나도 쉬운 타자 정찬수가 들어왔지만 문제는 지금은 병살 수비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다고 해도 1점을 줘버리면 끝장이기 때문.
‘일단 정찬수는 잡고….’
다음 버나디나의 타석에 좌완 불펜을 올린다.
이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라이온즈는 병살은 반쯤 포기하고 내야 전진 수비를 걸어 땅볼 타점과 스퀴즈를 사전 차단하며 찬수를 잡아내려 했다.
그 태세에 찬수는 머리를 비워버렸다.
자신의 실력으론 의도해서 내야를 빠져나가는 타구를 만들려 해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터.
그러니 어떻게든 강습 타구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배터리도 그런 심리를 충분히 읽고 있던 만큼 초구로 하이 패스트볼을 구사했다.
내야 뜬공으로 잡아내겠다는 계산.
그 초구.
“흐읍!”
휙!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온 공에 찬수는 이를 악물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집념으로 불타고 있었다.
‘요한이 형이 메이저로 가는 건 둘째 치고!’
요한의 퍼펙트게임을 지키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최대한 덮어서…!’
뜬공이 되지 않게끔.
최대한 배트를 컨트롤 해 방망이 하단으로 공을 긁어내는 찬수.
이에 타구는 딱!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홈플레이트 앞에서 바운드 되어 크게 튀어 올랐다.
“큭…!”
질주하는 찬수.
여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홈으로 대쉬하는 3루 주자 준수가 포인트였다.
준수는 오직 홈플레이트만 바라본 채 홈으로 대쉬.
타구는 전진 수비를 하고 있던 1루수 김승엽이 폴짝 뛰어 잡아 홈으로 쏘았다.
촤르륵! 부웅!
간발의 차.
-세이프! 세이프!!
이 주심의 사인에 라이온즈 선수들이 펄쩍 뛰었다. 덕아웃에서도 선수들이 튀어나왔다.
“이게 어떻게 세이프에요!?”
“잡았잖아요!”
태그가 더 빨랐다며 거세게 항의하는 라이온즈 선수들.
[아…. 제가 봐도 태그가 빨랐는데요.]
[지금 주심의 제스처를 보면 태그가 안 닿았다고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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