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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에이스는 힐링하러 갑니다 4권
mensol 스포츠 장편소설
목차
아들 사랑
야구팬이란
흑염룡
교통정리
담금질
같은 길, 다른 길
발사각
WBC 본선 1라운드
그래서 뭐?
못할 것도 없지
한 경기면 충분
딜레마 (1)
1
아들 사랑
인터뷰를 비롯한 일정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그제야 귀가의 자유를 얻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선수들은 계속 트레이닝 센터에서 묵게 되겠지만 수도권에 사는 선수들은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게 허용이 됐다.
그렇게 4일 만의 귀갓길엔 보현이 아버님이 차를 태워 주셨다.
아버님은 얼마나 신이 났는지 오늘 경기 내용에 대해 입을 쉬지 않았다.
“이야아! 보현이에게 슬라이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그래서였구나! 슬라이더로 줄타기를 하니까 타자들이 말 그대로 손도 못 쓰더라!”
“그렇죠. 이건 좌완의 특권 같은 거예요.”
“좌완의 특권이라니?”
“백도어 슬라이더는 우완이 활용하기엔 어려움이 있거든요.”
왜냐면 전체적인 타자 비율은 우타자가 70%에 달하기 때문이다. 프로 기준으로도 그렇고, 아마추어 기준으로 보면 우타자 비율이 그보다도 높다.
이건 투수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완들은 백도어 슬라이더를 써 볼 기회가 많질 않아요. 쓴다고 해도 좌타자들은 우완 상대 경험이 너무 많아서 큰 효과를 보기가 어려워요. 그 반면 우타자들은 실전에서 좌완을 상대하는 일이 많을 수가 없죠. 정교한 백도어 슬라이더를 구사하는 좌완을 만나는 건 더더욱 힘들고요.”
그렇게 좌완이 백도어 슬라이더를 무기로 갈고닦으면 우타자에게 강한 심리전을 걸 수 있다.
백도어 슬라이더는 바깥쪽 구종의 끝판왕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통해 바깥쪽과 몸쪽. 이 양극의 심리전을 극대화할 수 있다.
보현이 아버님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데. 쓰리 피치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이제 포심, 슬라이더, 커브가 완전히 자리 잡았으니까. 포 피치도 천천히 익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빠! 좀 그만해!”
보현이가 핀잔을 줬지만 아버님은 개의치 않았다.
“그거라면 커터를 가르쳐 볼까 생각을 해 봤지만…….”
“요한이 네 커터를!? 명품! 마구! 구종가치 SSS급!?”
“구종가치는 등급제가 아닐 텐데요…. 어쨌든 보현이의 투구폼이나 몸에는 커터가 좀 안 맞을 것 같아서 투심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 어떻게 커터가 안 될까? 커터도 슬라이더처럼 횡 변화가 있는 구종이니까. 잘 조합되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하하하…….”
보현이는 부끄러운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렇게 얘기가 오가던 사이. 보현이 아버님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요한아, 오늘 기자회견 말인데. 잘했어.”
“예?”
“정직하게 사과한 거 말이야.”
“아…. 예.”
“다 그럴 수 있는 거지.”
이에 보현이가 즉답한다.
“우린 잘못 없어 아빠.”
“어?”
“그 감독이 엄청나게 욕을 했거든. 요한 선배님은 조곤조곤 요구를 했는데도 쌍욕을 얼마나 하던지…….”
“그래? 몰랐네. 아이 그러면 뭐 사과할 것도 없었네. 괜히 걱정했다.”
오해가 풀려 마음 편히 웃는 아버님.
뭔가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혹시 어머니도 그랬을까 생각하니 더더욱.
‘어머니한테는 설명을 해 놨는데…….’
걱정을 하지 않게 이번에 더 확실하게 얘기를 해 놔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도착한 아파트.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보현이에게 말했다.
“내일 미국전에선 보현이 네가 내 공을 받아 줘. 다른 애들한텐 부탁하기가 좀 그렇거든. 사인도 새로 맞춰야 하고.”
“제가 포수를 보라고요?”
“그래.”
“…저 왼손잡이인데요?”
“그래서 왼손잡이용 미트를 준비해 달라고 했어. 괜찮아, 왼손잡이 포수의 약점은 주자가 나갔을 때나 생기는 거니까. 내일은 주자가 나갈 일이 거의 없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도 성범이한테 부탁하는 게 낫지 않나요?”
“걔는 타격이 아예 안 되잖아. 그에 비해 너는 타격이 어느 정도 되고.”
“아….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예,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들어가라. 아버님도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린 나는 곧바로 집으로 올라갔다.
시간은 오후 9시 30분.
5분 전에 들어간다고 전화를 해 놓은 덕인지 삐삐삐삐! 현관 도어락을 누르자 우다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뚱한 표정의 지민이가 나를 반겨 주었다.
“오빠 어서 와!”
꾹! 웬일인지 나를 꽉 안았다.
어머니는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지민이를 보더니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서 오렴. 고생했어 요한아.”
“네. 별일은 없었죠?”
“응…….”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게 약속이 파토 나 버린 친아버지 쪽에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게 붙어 있는 지민이에게 나긋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민이 넌 이리 와. 엄마 얘기 다 안 끝났어.”
“…….”
“요한이는 얼른 씻어.”
지민이를 데리고 거실 소파로 향하는 어머니.
씻고 나오니 그 분위기가 더 험악해져 있었다.
왜 그런가 사정을 들어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지민이가 학교에서 친구랑 대판 싸웠다는 듯하다.
어머니는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지민이 너, 수현이랑 왜 싸웠어.”
“…그냥.”
“그냥이 뭐야.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야.”
“…….”
어머니는 계속된 도돌이표에 한숨을 쉰다.
“아무튼, 다음 주 월요일에 학교 가면 사과하는 거다?”
“싫어! 걔랑 다시는 안 놀 거야! 말도 안 할 거야!”
“강지민!!”
“…흑!”
눈망울에 급격하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지민이는 설움이 폭발했는지 눈물 젖은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치만 걔가 오빠 나쁜 사람이라고 그랬단 말이야! 우리 오빠 나쁜 사람 아닌데에─! 으어어어엉!”
“……!”
“……!?”
“다른 애들이 흑! 오빠 나쁜 사람 흑…! 이라고 해서 내가 아니라고 하니까…! 수현이가 나쁜 사람 맞다고…! 으어엉!”
어머니도 나도 말문을 잃었다.
내가 받은 충격은 훨씬 컸다.
‘내가 너무 바보같이 생각했구나.’
어차피 녹취록이 풀리면 전부 다 해결될 문제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동안 가족들이 걱정할 것도 모르고.
전생에야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 구설수가 흐르든 말든 결과로 입을 다물게 했지만 이제는 그래선 안 됐던 거였다.
아예 그런 얘기조차 나오지 않게 했어야 했다.
이번 일도 홍민기 그 작자가 나대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 놨어야 했던 것.
‘나도 오늘 괜한 짓을 하기도 했고…. 앞으로는 더 조심하는 게 좋겠어.’
더 철저하게 움직여서 구설수 자체가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나는 지민이의 옆에 앉아 그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미안해 지민아. 오빠가 다 해결해 놓을게. 다음 주에 학교 가면 오빠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을 거야.”
“정말……?”
“그래, 그 수현이라는 애도 잘못 알아서 그런 거니까. 걔가 먼저 사과하면 지민이도 사과하기로 하자. 어때?”
“…응. 그러면 사과할래.”
혹시 모르니 어머니에게 학교에 같이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와 달라 부탁을 했다.
그렇게 지민이가 울음을 그친 뒤엔 가지고 온 선물을 내놓았다.
“짜잔! 이거 봐라!?”
지민이는 내가 내민 야구공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게 왜?”
“왜긴! 이거 보현이 오빠한테 소중한 공이야. 국가대표 첫 경기에서 마지막 삼진을 잡은 공! 이거 보현이 오빠 주면 엄청 좋아할걸?”
“진짜로!?”
“진짜로.”
“그럼 지금 줄래!”
“지금은 보현이 오빠도 피곤하니까. 다음에 만났을 때 주자.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예쁘게 포장해서.”
“응!”
기분이 좋아졌는지 야구공을 쥐고 배시시 웃는 지민이.
나는 슬쩍 빠져나와 휴대폰을 들었다.
“…아, 예 단장님. 접니다. 다름이 아니라 녹취 말인데요. 최대한 빨리 공개해 주세요. 못해도 주말이 끝나기 전에는 해 주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본래는 그 녹취가 일찌감치 공개되면 무단이탈했던 선수들이 언플을 하며 구질구질하게 돌아오려 할까 봐 하지 않은 것이었다. 홍민기 그 작자가 제 무덤을 파는 꼴을 더 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가족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