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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에이스는 힐링하러 갑니다 3권
mensol 스포츠 장편소설
목차
또 하나의 후회
내가 업어 키웠지
오사카 침공
분탕 한 스푼
라이징 스타
고점
다음 무대로
허상과 진가
과거의 교훈
허상+진가
1
또 하나의 후회
결승전 시상식은 뭔가 좀 우스운 구도가 나왔다.
시상을 위해 양 학교의 선수들이 도열을 하게 됐는데. 우리 선강고는 코치들을 포함해도 20명이 되지 않았던 반면, 북안고는 무려 38명의 인원이 도열을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들러리가 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 한편으론 이걸 현 고교 야구의 실태를 꼬집는 한 장면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준우승 수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최태욱 코치가 말한다.
“너희들 그거 아냐? 쟤들 중에 이번 대회에 출전한 기록이 있는 선수는 16명밖에 안 된다는 거. 심지어 2학년 중에는 단 한 명밖에 없어.”
뭐, 3학년에게 출전 기회가 많이 돌아가는 거야 당연하니까 그렇다 쳐도.
선수가 이렇게 많은데 한민수 혼자 모든 경기 이닝의 80%를 먹는 건 분명 심각한 일이었다.
그걸 통해 좋은 성적은 거둘 수는 있을지언정 모든 짐을 떠안은 한민수는 망가지게 되고, 경험을 쌓지 못한 다른 투수들도 도태된다.
그야말로 감독만 좋은 야구.
그걸 감독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선수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 실태야말로 고교 야구의 민낯인 거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는 요한이 진짜 잘 만난 거야. 특히 투수들!”
“최 코치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저도 쟤들 덕분에 편하게 던질 수 있던 거니까요.”
“하하, 봤지? 너네 요한이한테 고마워해라!”
다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낌새를 보니 조금만 부추겨도 다시 나를 얼싸안고 헹가래라도 할 기세였다.
‘그건 좀 그만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우승 시상이 끝난 뒤엔 개인 시상이 이어졌다.
“최우수선수상. 이요한.”
나는 여기에 더불어 타격상, 홈런상, 타점상, 우수투수상까지 수상하며 5관왕을 차지했다.
‘투수상은 그렇다 쳐도….’
설마 내가 타격 쪽에서도 상을 휩쓸 줄이야.
미스터 사탄이 뭐가 됐든 세계 챔피언인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은근 기쁘네.’
사실 5관왕이 내게 별 감흥 있는 타이틀은 아니었다.
사이 영, MVP, 골드글러브, 승리, 탈삼진, 평자점. 클래식 스탯만으로 6관왕을 차지한 적도 있었고. 세부 스탯으로 넘어가면 훨씬 더 많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거에 비하면 이런 상은 별거 아닐 수 있었지만 이쪽은 뭔가 다른 느낌으로 기뻤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 그렇게 관중들의 박수 속에서 시상식이 끝나고.
학교 관계자들, 선수 관계자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와 함께 기쁨을 나눴다.
나는 황금사자 깃발을 든 교장 선생님의 포옹을 받아야 했다.
“정말 고생했다 요한아…! 우리 야구부를 존속시킨 게 내 교직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어!”
“이제 시작입니다. 계속 트로피를 가져올 테니 진열장을 마련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학생들이 다 지나가는 1층 로비에 떡하니 놓을 거다!”
이외에도 야구협회 관계자, 대회 관계자, 선수 부모님들 등등.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탓에 막상 어머니와 지민이는 눈치를 보며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방송사 인터뷰가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타이밍을 또 놓친다면 20분은 더 그러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내가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같이 있어도 괜찮아요.”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항상 이런 게 부러웠었다.
포스트 시즌 시리즈를 승리하고 그라운드에서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는 선수들의 모습이.
물론 나도 혼자는 아니었다. 에이전트도 있었고. 나를 동경하는 선수 자녀들이 날 졸졸 따라다녔으니까.
그래도 이건 특별했다.
“우, 우리가 같이 있어도 괜찮을까?”
“당연하죠. 자, 지민이도.”
지민이는 애초에 떠들썩한 주변이 부담스러웠는지 부리나케 달려와 내 손을 잡고 몸을 숨기듯 착 달라붙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며 내 옆에 섰다.
곧이어 이어진 방송사 인터뷰에선 어머니에게도 질문이 갔고.
어머니는 기계처럼 굳어져 버렸다.
“당연하죠! 우리 요한이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뻣뻣한 대답.
그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내 안을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 채워 주는 느낌을 주었다.
.
.
.
라커룸은 광란의 파티가 벌어졌다.
“이예에에에에!!”
애들은 챔피언스리그라도 우승한 것처럼 한 명씩 황금사자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며 펄쩍펄쩍 함성을 내질렀다.
여기에 성재 쌤까지 어깨동무를 한 채 뛰고 있었고, 포어맨 감독은 마음껏 즐기라며 팔짱을 끼고 있었기에 중재의 역할은 최태욱 코치가 맡아야 했다.
“자, 자! 기쁜 건 알겠는데! 잠깐만 주목해 봐.”
그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곧바로 주말리그 후반기 일정이 시작돼. 그래서 훈련이 없는 것도 수요일까지. 바로 일요일에 경기가 있으니까 목요일부턴 준비를 해야 해.”
선수들은 낙담하기보단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래서 성공이란 과실이 달콤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패는 선수를 강인하고 노련하게 만들어 주지만 더욱 위의 목표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실패했던 걸 만회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되니까.
반면 성공은 선수에게 만족과 자만을 주긴 해도 그다음 목표를 제시해 준다. 이게 올라가고 싶어 하는 선수들에겐 강력한 부스터가 된다.
“그리고 이건 지금 처음 말하는 건데, 너희들 이제 후배 생길 거야.”
-……?
“우리가 지금 1학년 전력이 없잖냐. 이러면 내년엔 2학년이 없어서 팀 전력에 공백이 생겨 버리니까. 라원 쪽에서 연고지 학교의 1학년 선수들 몇몇을 우리 쪽으로 전학시키기로 했어.”
-오오!
“이게 제법 뜨거웠다 하더라고. 다들 우리 쪽으로 오고 싶다고 난리였었나 봐. 부모들이 자기애를 선강고에 보내 달라고 난리를 피웠다더라. 심지어는 2학년 애들 중에도 이쪽으로 오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었어. 너네가 출전 기회를 받는 모습이 부러웠던 거지.”
그 새로 들어오는 1학년의 숫자는 9명.
이걸로 우리 로스터도 20명을 넘게 된 것이다.
‘슬슬 나는 뒤로 빠져야겠어.’
믿고 따를 선배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선도해야 할 후배가 생겼으니 이제 이 팀은 이 애들이 이끌어 나가는 게 맞았다.
곧 있을 주말리그 후반기와 청룡기는 전적으로 이 애들한테 맡기고 나는 타자와 투수 코치 역할에만 충실하며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를 준비하기로 했다.
‘성범이도 선발 기회를 줘야 될 때가 왔으니…. 내가 불펜으로 빠지면 되겠네.’
그걸 전하기 위해 후반기 일정을 얘기하는 최태욱 코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김선명 단장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이글스 쪽에서 주장하는 템퍼링 논란 탓에 함부로 우리 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뭔가 급한 용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최 코치에게 손짓을 하더니 뭔가를 속삭였다.
최 코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예!? 국제 친선경기라뇨?”
“아무튼, 주말리그 일정은 바뀔 가능성이 높으니까 보류해 둬.”
“예…. 알겠습니다.”
그는 우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승 정말 축하한다. 마음껏 즐겨라! …그리고 혜성이랑, 요한이랑, 보현이는 좀 이따 나 좀 보자.”
지금 라커룸 밖에는 취재진이 잔뜩 있었기에 우리는 10분 정도 텀을 둔 뒤 경기장 내 빈 사무실에서 그와 대면했다.
김 단장이 말한다.
“어, 별건 아니고. 저기, 협회 쪽에서 너희를 이번 U-18 야구 선수권 국가대표에 뽑을 생각을 하고 있나 봐.”
그 이야기가 드디어 나왔다.
본래는 내가 부모님과 동생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그 대회.
부모님을 찾은 지금에 와선 의미가 없는 대회이긴 했지만 이제는 또 다른 의미가 생겼다.
국가대표라는 상징성이다.
나는 딱히 국가대표에 미련도 없고, 오히려 안 좋은 기억이 더 많았지만. 그 국가대표라는 상징성 자체는 인정을 했다.
그게 우리 부모님과 지민이. 그리고 아직 만나지 않은 동생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랑이 될지도.
그러니 국가대표 경기는 되도록 뛸 생각이었다.
“일단 요한이는 확정이야. 안 뽑는 게 이상하지. 뭐, 요한이 네가 안 나가겠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는데….”
“나가겠습니다.”
“하하, 그래. 나도 기대가 되네. 어…. 너네 2학년들은 아직 확정은 아니야. 너희들이 싫다고 하면 뽑힐 일은 없을 거다.”
선택권을 쥔 혜성이와 보현이.
보현이는 즉답했다.
“나가겠습니다. 어떤 역할이라도 수행할 테니 꼭 뽑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 녀석의 일이니, 나랑 국가대표에서 같이 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혜성이도 잠시간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나가 보고 싶습니다.”
김 단장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들에게 할 얘기는 그게 다야. 나가 봐도 돼. 요한이는 조금만 더 얘기하자.”
애들이 나가고.
독대를 하게 된 김 단장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 간다.
“요한이 너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다 지금.”
“이글스 때문에요?”
“그래, 템퍼링 조사를 하라면서 얼마나 지랄을 해 대는지….”
“조사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래 봐야 벌금으로 끝날 텐데요.”
우리나라는 템퍼링에 대해 꽤 관대한 편이었다. 미국에 비하면 사실상 템퍼링 규정이 없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
“그건 그런데…. 그 탓에 좀 귀찮아졌어. 우리 입장에서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협회 쪽에 최대한 잘 보여야 되는 상황이 됐으니까.”
“뭐, 그거야 평소에 잘해 오셨잖아요.”
“그렇지. 이번 일도 우리가 순순히 응한다면 큰 탈은 없을 거야.”
“이번 일…?”
그러면서 김 단장은 일본 고교와의 국제 친선경기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나도 자세한 내막은 이제 들었는데, 협회가 평소에 일본 쪽에 쌓인 게 있었는지 아주 작정을 했나 봐. 매치 자체는 이미 잡혀 있었는데 너를 출전시키려고 지금까지 발표를 안 하고 있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