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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에이스는 힐링하러 갑니다 2권
mensol 스포츠 장편소설
목차
실마리를 따라서 (3)
무력시위
간이고 쓸개고
서프라이즈!
무대의 차이
Welcome to Hell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센세이셔널
타격 수련 (2)
사실상의 결승
클러치
전인미답
무결의 왕자
1
실마리를 따라서 (3)
4라운드까지 결과가 나온 주말리그 전반기.
우리는 첫 패배를 기록하긴 했지만 황금사자기 출전에 대해선 여전히 낙관적인 상황이었다.
내가 등판하는 5라운드 경기를 이기면 사실상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기에 첫 패배에도 불구하고 팀 분위기가 꺾이는 일은 없었다.
회식 자리는 시끌벅적했고, 이번에도 회식 이후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나머지 훈련을 진행했다.
선수들 모두 방망이를 휘두르며 타격 보충 수업을 하고 있던 것.
‘다들 문제가 뭔지 알고 있네.’
하지만 타격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
나도 첫 두 타석에서 멀티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후 3번의 타석에서 2루 땅볼, 우익수 파울플라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5타수 2안타로 만족을 해야 했다.
‘아직 히팅 타이밍이 맞질 않아.’
타격 폼이 몸에 익지 않은 탓일까. 눈으로 보는 것과 맞추는 것의 괴리감이 있었다.
‘이것만 극복하면 더 앞의 경지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 타석을 찍은 비디오를 계속 돌려보며 밤을 지새웠다.
…라기보단 잠이 오질 않아 그거라도 보고 있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내일은 드디어 부모님과 여동생을 만난다. 아니, 자정을 넘었으니 오늘이 됐다.
그걸 생각하니 등이 간지럽고 계속 입안이 말랐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월드시리즈 등판을 앞두고도 이렇진 않았는데.’
새벽 2시쯤엔 그래도 자야지 하면서 눈을 붙였지만 금세 3시, 4시, 5시가 됐다.
이쯤 됐으니 그냥 자는 건 포기하고 밖에 나가 러닝이라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씻고 침대에 앉으니 거짓말처럼 솔솔 잠이 몰려왔다.
‘오늘은 김한수 경정님이 여기까지 오기로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눈을 붙이기로 했다.
.
.
.
몸이 하늘 위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보이는 건 남자와 여자의 모습. 나이가 든 내가 여성에게 고개를 숙인 채 읍소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부탁이니 지금부터라도 기회를 달라고.
그 사과를 받은 여성. 미래의 여동생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울먹이며 내 머리를 끌어안아 주었다.
그것은 아마 내가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
미래의 내가 기어코 여동생을 찾아내 용서를 구한 것이다.
그쪽의 내가 고아가 된 진짜 이유까지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니까.
‘다행이야.’
이게 그저 내가 보고 싶었기에 나타난 꿈에 불과한 건지, 그도 아니면 내가 보지 못한 그 앞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고독하기 전인 지금의 나도. 고독했던 나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여동생도.
나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그 애의 얼굴을 다시 각인할 수 있었다. 그게 오늘 도움이 될지도.
아무튼 그렇게 용서를 빈 나는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거기서 이게 단순 꿈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하나의 가족. 남편과 부인. 그리고 세 명의 자식들.
미래의 나는 그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뭐지? 어머니는 돌아가신 것 아니었나?’
그렇담 이 가족은 대체?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의식을 더 집중해 얘기를 들어보려 했지만 왜인지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그 대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죄송합니다. 애가 자고 있었나 보네요. 이렇게 늦잠을 자는 녀석이 아닌데…. 잠을 좀 설쳤나 봅니다.”
“오늘은 그럴 만하죠.”
“민호야! 좀 깨워라.”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 꿈.
곧 의식이 각성하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흔들어 깨운 룸메이트 민호. 그리고 문 쪽에 서 있는 기숙사 당직 선생님과 경찰복 차림의 김한수 아저씨.
당직 선생님은 못 말린다며 말한다.
“얌마 벌써 10시야. 경찰분이랑 약속 잡은 게 9시 40분이라며.”
“아…! 죄송합니다! 금방 준비할게요!”
아침에 러닝을 하고 씻었으니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왁스로 머리만 살짝 정리했다.
김한수 경정님은 천천히 해도 된다며 웃었지만 약속 시간을 30분이나 늦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뒤엔 학교 주차장에 선 공무용 차량에 탑승했다.
“아저씨 차가 아니네요? 옷도 사복이 아니시고….”
“오늘은 그쪽 서에서 협조를 받을 일이 있거든.”
“협조요…?”
“그게….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호언장담한 입장에선 미안한 얘기인데. 제대로 된 주소를 알아내지를 못했어. 이름이랑 연락처는 알아냈는데 막상 연락을 해 보니 없는 번호라고 떠 가지고 말이야. 일단 그 지역 경찰서에 최대한 빨리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 놨어. 그래서 우선 그쪽 서에 가야 될 것 같다.”
“….”
“걱정 마. 탐문을 하든 뭘 하든. 오늘 안에는 결판이 날 거니까.”
“네, 믿고 있습니다.”
부우웅! 교문을 빠져나가는 차량.
아저씨는 천천히 얘기를 시작한다.
“그쪽 사건이 생각보다 복잡했어. 나는 뭐, 유괴로 인한 실종 사건으로 기록이 됐을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더라고.”
“유괴가 아니라 다른 걸로 기록이 됐다고요?”
“그래, 이게 당시에는 CCTV가 없어서 수사를 목격 증언에 의존해야 했거든. 근데 당시에 목격 증언이라고 나온 게 그 여자에 대한 게 아니라 들개 무리를 봤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나 봐.”
“…설마.”
“맞아, 그쪽 경찰은 들개가 아기를 물어 갔다고 판단하고 수색을 시작했던 거지.”
아저씨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한숨을 쉬었다.
“만약 유괴당한 걸로 수색의 초점이 맞춰졌으면 박주련 그 여자도 덜미가 잡혔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지 못했지. 경찰들은 애꿎은 골목이나 뒷산을 뒤지면서 널 찾았어.”
“당시엔 그렇게 들개로 인한 사고가 많았었나요?”
“가끔은. 내가 알기로 한 번뿐이지만 독수리가 아기를 물어 간 경우도 있었어.”
“허…!”
그렇게 경찰들은 무의미한 수색을 진행했으나, 의외로 의미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원래 마구잡이로 뒤지면 뭐라도 나오는 법이거든. 공교롭게도 당시 경찰들이 뒷산을 수색하다가 시신 두 구를 발견해 버린 거야.”
“네…?”
“단언컨대 네 사건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 근데 그거 때문에 수사 방향이 바뀌면서 기록이 엉망진창이 돼 버렸다 이거야. 너랑 너희 부모님에 대한 건 뒷전으로 밀려난 거지.”
그로 인해 부모님을 찾는 데 난항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도 찾기는 한 거죠?”
“어제 겨우 찾아낸 참이다. 어머니 쪽뿐이지만. 네 어머니는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필사적으로 널 찾으려 했어. 그래서 기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었지.”
“…!”
“이름은 최정연. 나이는…. 72년생이면 몇 살이었더라? 아무튼. 그게 네 어머니의 이름이야.”
내 착각일까? 무언가 울림이 있는 이름이었다.
우우웅! 고속화 도로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온 차량은 경찰서로 향했다.
‘상록수역….’
안산이었다.
그 경찰서에 도착한 뒤엔 나는 차에 남고 아저씨만 경찰서로 향했다.
이게 꽤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지만….
아저씨는 10분 만에 나타나 엄지를 치켜올려 보였다.
“네 어머니 주소 찾아냈다!”
* * *
그곳은 역에서 조금 떨어진 다가구 주택이었다.
연식이 꽤 오래됐는지 벽면이 어두운 회색으로 변색돼 있었고, 앞에는 무단투기된 쓰레기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곳에 막 쓰레기를 버리려던 사람이 경찰복의 아저씨를 보고 엉거주춤 도망갔을 정도.
“여기 3층 302호야. 올라가자.”
“네.”
그 302호의 앞에 멈춰선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벨을 눌렀다.
그러나 고장 났는지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전자 도어락도 설치되지 않은 오래된 집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 쿵쿵! 문을 두들겨 봤지만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부재중인가 보네요. 일단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긴, 일요일이니까. 어디 놀러 간 걸지도 모르겠네. 우리도 가서 점심이나 먹자.”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였다.
부스럭!
안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는 눈매를 좁혔다. 그러고는 쿵쿵쿵!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 계십니까!?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최정연 씨가 계시다면 잠깐만 나와 주십시오!”
부스럭! 안에서의 기척이 커졌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듯한 기색. 아저씨는 안에 사람이 있다고 확신을 하곤 강하게 보챘다.
“최정연 씨에게 꼭 전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탁이니 계시다면 나와 주십시오!”
그제야 안에서 제대로 된 반응이 돌아왔다. 부스럭 소리가 심해지더니 인기척이 가까이 다가온다.
“엄마 없어요….”
경계하며 불안에 떨고 있지만 목소리에서 앳됨을 숨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