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176-199화
176.
이건우가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김재하를 바라봤다.
바로 본론을 꺼내는 건 어떤 의도가 있을 터.
그런데, 자신이 프리메이슨이나 킹덤의 손을 잡고 그를 기다렸을 수도 있잖은가.
‘도대체 뭘 믿고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지?’
아니, 블랙뱅크를 찾아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건우의 눈빛에서 의문을 읽은 김재하가 답했다.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제 질문에 답을 해 주시면 저도 답을 해 드리겠습니다.”
“답과 답이라……. 어리셔서 그런지 치기가 넘치시는군요.”
김재하에게 응수하는 이건우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여기는 블랙뱅크입니다.”
“블랙뱅크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도 알고 있죠. 블랙뱅크 내에서 고객은 죽이지 않는다. 수장이 규칙을 어기진 않으시겠죠.”
김재하의 말에 이건우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는 정도를 지키려고는 하지만 때에 따라선 악당도 될 수 있었다.
“필요시에는 어떤 규칙도 어길 겁니다. 그 정도 융통성은 있거든요.”
“저를 죽이면 얻는 게 있겠죠. 프리메이슨이나 킹덤 측하고 손을 잡을 수도 있을 테고.”
김재하가 다시 핵심을 짚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면, 모든 문제가 끝나리라 생각하십니까?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믿으시진 않겠죠. 하긴. 그렇게 순진한 분이라면 블랙뱅크를 이끌지도 못하셨겠지.”
“…….”
이건우는 침묵을 지켰다.
김재하의 도발이 이어져도 마땅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리고 말을 잘못하면 김재하의 의도대로 넘어갈 수 있기에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 순 없다.
“인서야. 그리고 마더 사라. 죄송하지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김재하 씨하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이건우가 축객령을 내리자 마더 사라와 장인서가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김재하를 바라보는 마더 사라의 입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의도대로 이건우가 대화를 나눌 생각을 한 것이다.
만일 적대적인 상황이었다면 규칙이고 뭐고 수하들을 보냈을 터.
그런데 김재하가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했고, 그리고 자신도 있기 때문인지 적어도 대화만 나누려는 것이다.
‘다행이야.’
지금 김재하가 이건우를 포섭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이건우 입장에선 킹덤 아니면 프리메이슨의 손을 잡는 게 유리하니까.
킹덤이 프리메이슨에 대해 전력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더라도, 적어도 국내에선 살아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프리메이슨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다면, 그들을 등에 업어서 킹덤을 박살 내고 블랙뱅크가 대한민국 암흑가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재하와 이야기를 하려는 건, 작은 희밍이 있는 것이다.
‘승산 있는 도박이라고 생각하게 해야 해.’
마더 사라가 김재하에게 눈짓을 한 후, 사장실을 성큼 나섰다.
반면, 장인서는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이건우를 보다가 김재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재하를 바라보는 장인서의 눈빛에는 서늘함이 묻어났다.
만일 이건우에게 이상한 짓을 한다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김재하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고.
“…….”
불안감을 가진 채, 장인서는 사장실을 나섰다.
저벅저벅-!
탁-!!!
두 사람이 나서고, 사장실의 문이 닫혔다.
그러자 이건우가 소파를 권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혹시 목이 마르십니까?”
“괜찮습니다.”
고개를 저은 김재하가 소파에 앉았고.
이건우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
“…….”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보며 탐색전을 이어 갔다.
그리고.
침묵을 깬 건, 이번에도 김재하였다.
“변수가 생기지 않으면 블랙뱅크는 그저 그런 범죄 집단으로 전락할 겁니다.”
“그리고 전 죽겠죠.”
“예.”
“……왜 킹덤하고 싸우시는 겁니까? 개인적인 원한입니까?”
이건우의 물음에 김재하는 답을 망설였다.
시작은 개인적인 원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유가 달라졌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죽어도 그 사람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킹덤이 사라져야 합니다. 프리메이슨도 마찬가지죠. 인간의 악의들이 모여 만들어진 괴물입니다. 반드시 없애고 싶습니다.”
김재하의 답에선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
자신은 위선자며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킹덤, 그리고 프리메이슨이 계속 존재한다면 억울하게 가족을 잃는 자들이 계속 생길 것이다.
‘나처럼 억울하게 태어나서 킬러로 만들어지고 폐기당하는 아이들도 늘어나겠지.’
그런 연쇄의 사슬을 끊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저 같은 사람이 만들어지는 걸 견딜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건우는 지그시 김재하를 바라봤다.
많은 의문이 고개를 든다.
김재하는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저토록 분노하고, 슬퍼하며, 드높은 이상을 가지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김재하의 이상은 망상이다.
“범죄 세력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악은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이건우는 인간은 악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사람으로서의 선을 지키려고 해도, 블랙뱅크는 그 존재 자체가 악의가 만들어 낸 탐욕의 산물이었다.
프리메이슨, 혹은 킹덤이라는 집단이 사라질 순 있다.
그러나 악의를 가진 인간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은 그저 이름이 다른 새로운 범죄 단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 와중에는 쓸데없는 피도 계속 흘러내리리라.
차라리 지금의 프리메이슨과 킹덤이 계속 유지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
이건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의 눈빛에 담긴 상념을 짚어 낸 걸까.
침묵을 지키던 김재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프리메이슨, 또 다른 킹덤이 생겨나겠죠. 그런데 그건…… 또 다른 김재하가 막아 낼 겁니다.”
인간은 자신이 죽은 이후에 벌어질 일을 바꿀 순 없다.
‘나처럼 기적적으로 빙의를 하거나, 김무준 사장님처럼 회귀를 하는 일이 없다면 말이지.’
그런데 빙의나 회귀는 모두 기적이자 우연이다.
기적과 우연은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은 그 행동을 지켜보는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바꿀 수 있다.
“전, 제 일만 하고 나머지는 김재하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하하.”
그의 천연덕스런 반응에 이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 아닌 감탄의 웃음이었다.
만일 김재하가 아니라 다른 이가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비웃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킹덤과 싸워 온 김재하의 말이기에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실현 가능성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이건우가 조심스레 질문을 했다.
“블랙뱅크와 손을 잡으면 프리메이슨이나 킹덤을 이길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김재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세력과 세력의 싸움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죠. 다만 두 조직이 서로 싸우다 무너질 판을 깔아 줄 순 있습니다.”
“……!!”
* * *
어느 조직이든 내부의 불만과 서열 싸움은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태성은 불만도, 서열 싸움도 하지 않았다.
그는 1대 수장에게 거둬져 고아에서, 최고 추심원이 되었고.
2대 수장과 같이 오늘의 블랙뱅크의 기틀을 만들었다.
킹덤, 그리고 세계적인 범죄 조직도 넘볼 수 없는 전력을 가진 블랙뱅크를 말이다.
그는 평생을 블랙뱅크의 추심원이자 충신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3대 수장의 충신은 되지 못할 것 같아.”
지금의 수장은 너무 젊고 우유부단하며 위엄을 전혀 갖추지 않고 있다.
“야망도 판단력도 없어. 그러다가 이 꼴이 난 거야.”
하태성은 자신이 직접 부른 박지섭을 보며 불만을 터뜨렸다.
“싸우지도, 아니면 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그걸 또 자기가 판단하질 못하니 우리에게 맡기고…….”
간부회의에서 보여 준 이건우에 대해 불평하던 그를 보며 박지섭이 히죽거렸다.
“핑계 아닙니까?”
“뭐?”
“이미 그쪽하고 약속했다면서요. 그러면 야망이나 판단력이 있었어도 우리 이사님이 하셨을 행동은 똑같았을 테니까요.”
박지섭이 조소를 머금자 하태성이 고개를 돌렸다.
상급자를 보고도 안하무인인 박지섭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그와 자신은 공생관계.
이용하기 위해선 사소한 노기는 참아야 한다.
“그래. 똑같을 거야. 대신 일이 늘어났지.”
감정을 추스른 하태성이 눈살을 구겼다.
그는 프리메이슨과의 전쟁이 벌어지기 전, 이미 이철준과 손을 잡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