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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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관련된 이례적인 일이 한 가지 벌어졌다.
정확히는 현실의 ‘나’가 아닌 게임 속의 ‘나’에 대한 것인데 결국 풋볼 온라인에서의 내 능력치가 상향 조정된 것.
얼마 전 출시된 이 게임의 새로운 버전에서 나의 오버롤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게임사 측에서는 이번 시즌 리버풀로 이적한 나의 오버롤을 79로 책정했는데, 프리미어 리그에서 나의 심상치 않은 활약으로 종합 능력치를 +10이나 상향한 것.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에는 게임사에 대한 역대급 수준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시작은 리버풀 현지 팬들이었는데, 여기에 한국 게임 유저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EAA사 측에서 백기를 들었다는 것.
게임 업계에선 한국 시장의 파괴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번 불매 운동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니까.
- 종원이형: 이규보 진짜 대박이네.
- 나: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 종원이형: 그래. 정작 너는 아무 짓 안 했겠지. 하지만 본원은 누구?
- 나: 참나. 본원이라니. 내가 무슨 흑막도 아니고.
솔직히 게임 속의 내 오버롤이 79든 89든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능력치가 낮으면, 그 핸디캡을 극복하는 묘미가 있는 것이니까.
- 종원이형: 한판 할래?
- 나: 콜!
평소와 다름없이 나는 리버풀, 종원이 형은 페예노르트를 선택하였다.
사실 두 팀의 전력 차가 있기에 유리한 건 내 쪽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둘의 상대 전적은 거의 비슷한데, 나도 어디 나가서 축구 게임으로 밀리는 실력은 아니지만 종원이 형은 거의 신컨의 경지다.
- 종원이형: 조져주마 ㅋ
……흐음.
하지만 조져지는 건 종원이 형이었다.
이건 나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
선수 한 명 패치됐을 뿐인데 리버풀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버렸다.
- 나: 4 대 1! 수고하셨습니다 ㅋㅋ
결국 나는 3경기 연속으로 종원이 형을 내리 이겼다.
- 종원이형: 야! 너 게임사에 돈 먹였냐? 무슨 슈팅만 하면 다 들어가냐고!
- 나: 현실 반영 제대로 했네.
- 종원이형: 지랄
사실 내가 생각해도 게임 속 ‘나’는 좀 사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버롤 89로 설명되지 않는 고유 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세부 스탯이 훌륭하기도 하고.
- 나: 그럼 형이 한번 해 보던가.
잠시 후 종원이 형은 리버풀을 골라서 게임을 해 보더니,
- 종원이형: 야이 씨!
- 나: 왜.
- 종원이형: 밸런스 똥망이잖아! 네가 무슨 육각형 굴리트냐고! 이건 오버롤 문제가 아니라 완전 사기캐를 만들어 놨어.
혹시 나 혼자만의 기분 탓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형이 그렇다면 정말로 그럴 공산이 크다.
- 종원이형: 이거 패치 다시 해야 해. 게임사에서 실수로 뭔가 잘못 만져 놓은 거 같아.
- 나: 그랬다가는 폭동 나지 않을까? 이미 현질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 종원이형: 암튼 이대로는 안 돼!
그리고 오늘 종원이 형은 나에게 5전 전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 * *
프리미어 리그는 총 38라운드의 장기 레이스이며 우리 팀이 모든 경기에서 다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FC대전에서의 기록이 비정상적이었던 것이지, 이곳에서는 언제든 불의의 일격을 당할 수 있다.
프리미어 리그는 하위권 팀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높은 정산금을 분배받기에 재정적으로 탄탄한 편이며, 이는 팀 전력의 하방을 보장해 준다는 점.
그러니 만만하고 쉽게 볼 수 있는 팀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잡소리를 하면서 혀가 길어지는 이유는, 우리 팀이 정규 리그 시작 후 처음으로 패배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미 맨유, 토트넘, 아스날 같은 상위권 팀들을 모두 잡았지만, 정작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하위권에 있는 브렌트퍼드였다.
슈팅 수 14 대 2로 경기 내용은 우리의 압도적인 우세였지만, 결국 골을 넣은 것은 상대 팀이었다.
브렌트퍼드는 몇 번 없었던 좋은 찬스를 잘 살려서 우리의 골문을 갈랐고, 결국 스코어는 0 대 1로 마무리되었다.
<LIV>
└ 무슨 이런 경기가 다 있냐!
└ 뭔가에 홀린 기분이야! 이렇게 허무하게 골을 먹어서 우리가 졌다고?
└ 도저히 질 거 같지가 않은 경기 내용이었는데!
└ 상대 키퍼는 인생 경기를 했어! 슈퍼 세이브만 도대체 몇 번이었냐고!
하지만 축구에서 패배는 흔한 것이기에, 한 번 졌다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위안을 삼자면 이번 라운드에서 똑같이 패한 동지가 있었다.
맨시티가 맨유에게 덜미를 잡혀 이번 시즌 최초의 패배를 기록한 것이다.
맨시티는 맨유를 가둬 놓고 거의 반코트 경기를 했는데 결국 역습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덕분에 우리는 맨시티와의 승점 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런 것이 축구다.
약팀도 강팀을 잡을 수 있으며, 이변은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기에 더 큰 묘미가 있는 것이다.
<MUN>
└ 우리가 맨시티를 이긴 게 왜 이변이냐고!
└ 언론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삼가야 해!
└ 맞아! 유나이티드는 존중받아 마땅한 팀이야.
└ 프리미어 리그 최고 명문 구단은 어디?
└ 당연히 유나이티드지!
└ 오구오구! 잘했어요!
더비전 승리로 맨유 팬들은 오랜만에 살판나 있었다.
* * *
이번에 1군으로 콜업된 선수가 있었다.
잉글랜드 국적의 라이언 올린.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만 16세 선수로 우리나라로 치면 아직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였다.
“여러분들! 제가 드디어 왔습니다!!”
딱 봐도 앳된 외모. 목소리나 말투 또한 저 나이 특유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사실, 1군으로 콜업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한 후, 감독의 판단하에 부족해 보이면 다시 내려가는 일이 다반사니까.
이 녀석의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린포드 감독이 라이언 올린을 즉시 전력감으로 여기고 있을 리는 없다.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를 체크해 보고자 잠깐 부른 것일 터.
물론 그렇다고 해도 16세의 나이에 대단한 건 대단한 것이다.
“오랜만이야 라이언!”
“라이언, 너 진짜 많이 컸구나!”
라이언 올린은 유소년 때부터 이 팀에서 성장한 리버풀의 성골 중의 성골이었다.
유소년과 프로 선수들 간의 교류는 종종 있는 일이기에, 리버풀 1군에는 라이언 올린과 안면이 있는 선수들이 꽤 있었다.
“뱅크스! 저 꼬맹이한테 살갑게 인사 좀 해 줘. 네 열혈 팬이잖아.”
하지만 뱅크스는 그런 낯간지러운 상황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그냥 적당히 자신을 좋아해 주는 건 상관없는데, 예전에 유소년들과 교류했을 때 라이언이 어찌나 노골적인 팬심을 드러냈던지, 뱅크스는 그런 모습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저 녀석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 함께 뛰는 선수잖아. 선수끼리 열혈 팬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뱅크스. 너 너무 냉정한데?”
“냉정해도 어쩔 수 없어. 이건 저 녀석을 위한 일이기도 해. 어차피 1군에서 뛰다 보면 서로 주전 경쟁을 할 수도 있는 사이잖아?”
“너는 그냥 저 꼬맹이가 별로인 거지? 저 녀석은 공격수라서 너랑 주전 경쟁할 일은 평생 없을 텐데.”
“그건 모르는 일이야 슈미트!”
그러면서 뱅크스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저 라이언 올린이라는 꼬맹이가 방정맞게 굴지나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뱅크스의 생각과는 달리 올린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큐보……리.’
자신과 같은 공격수 포지션.
올린은 요즘 리버풀의 이규보를 보며 깊은 팬심에 빠져 있었다.
이규보는 올린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격수의 모습이었다.
빠른 순간 스피드에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 환상적인 볼 컨트롤, 거기에 놀라운 헤더 능력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꽉 찬 육각형의 모습에 올린은 매 경기 규보앓이를 하고 있었다.
사실, 지난 시즌까지 올린의 최애 선수는 뱅크스였지만, 팬심이란 건 움직이는 법.
그는 훈련 중에 나온 이규보의 슈팅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개 멋있잖아!”
그걸 들었는지 이규보는 라이언 올린 자신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까지 지어 주었다.
우상의 그런 모습에 올린은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성까지 완벽한 건가?’
그리고 어느덧 올린의 슈팅 순서.
그는 자신의 우상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심지어 어제저녁에는 오늘의 훈련을 위한 훈련까지 하고 온 터였다.
올린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힘차게 발등에 공을 얹었다.
퍼어어어엉-
임팩트 순간의 느낌은 좋았다.
강하게 날아간 볼은 키퍼의 손을 피해 골망을 세차게 흔들었다.
철썩-
올린은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안도했다.
혹시 긴장해서 삑사리가 나진 않을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슈팅이 나온 것.
그 슈팅을 보며 슈미트는 옆에 있는 뱅크스에게 속닥거렸다.
“뱅크스. 저 정도면 꼬맹이가 너보다 슈팅은 더 강한 게 아닐까?”
“미쳤어 슈미트? 내가 저 정도는 아니잖아!”
“당연히 저 정도는 아니지. 그래도 저 녀석의 슈팅은 소년슛이잖아.”
“그만해 슈미트!”
“안 그래도 그만하려고 하던 차야. 그런데 저 꼬맹이 말이야. 오늘 어째 뱅크스 너한테는 아는 척 한 번을 안 하네?”
“관심 없어.”
“너의 열혈 팬이었는데?”
그 열혈 팬, 올린은 자체 연습 경기가 시작되자 이규보의 플레이에만 연신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