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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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별 예선에서 가장 중요한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전생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지만, 경기 내용 자체가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한 골의 실점도 없이 네 골을 득점한 부분은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국대 데뷔 이후 4경기 연속골을 기록 중이었다.
- 엄마: 아들! 첫 경기 승리 축하해! 연속 득점도 축하하고!
- 나: 네 엄마. 감사해요. 한국은 늦은 밤이라 피곤하실 텐데 푹 주무세요.
- 엄마: 아들 골 장면 계속 돌려 보느라 하나도 한 피곤해.
- 나: 설마 계속 보고 계셨던 거예요?
- 엄마: 아직 83번밖에 안 돌려 봤어.
이거 진담이신가?
- 엄마: 아참! 음식이나 날씨는 입에 잘 맞는지 모르겠네. 우리 아들, 해외는 처음이잖아.
- 나: 호텔 음식이야 뭐 다 맛있죠. 해외 생활도 할 만해요.
- 엄마: 우리 아들 생애 첫 해외가 일하러 간 거라서 엄마가 미안하고 신경 쓰이네.
성인이 됐어도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도 그 마음, 조금은 안다.
* * *
dsae****
└ 이규보. 네 경기 연속골 실화임?
seti****
└ 이렇게 잘하는데 왜 유럽을 안 가는 거냐고. 대전에서 이규보 연봉 맞춰 줄 수는 있음?
eyui****
└ 이규보가 심성당 빵 매니아라서 대전을 안 떠난다는 소문이 있음. 여자 친구랑 여기 자주 출몰한다던데.
eiky****
└ 노잼드립 진짜 못 봐 주겠네. 차라리 류현진이 크보 오길 기다리느라 대전을 안 떠난다고 하지 그래?
taej****
└ 그나저나 바레인 4 대 0으로 이겼는데, 요르단은 더 쉬운 거 맞지?
dsae****
└ 더 쉬운 거 맞음. 내 예상으론 8 대 0 보고 있음.
첫 경기 대승으로 인해 낙관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건 알고 있다.
언론이나 여론뿐 아니라 선수단 역시 여전히 편안한 분위기였으며, 요르단전을 앞두고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내 기억대로라면, 전생에 우리는 이 대회에서만 요르단을 두 번 만났는데 한 번은 비기고 한 번은 참패를 당했었다.
특히 이 참패는 대한민국 축구사에서도 역대급으로 기억되는 참사.
객관적인 전력은 우리의 압도적 우세가 분명하며 내가 있으니 이번 생은 많이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이규보! 나도 이제 A매치 연속골 시동 걸 거다.”
“네. 응원할게요. 형.”
“하아! 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왠지 나를 놀리는 거 같다니깐.”
놀리는 거 절대 아님.
이 형은 내 진심을 모른다.
“선발 명단을 발표하겠다.”
종원이 형은 의욕은 넘쳤으나, 이번 시합에서도 역시 선발 명단에는 빠져 있었다.
정말 좋은 기량을 갖고 있지만, 현재 우리의 공격 멤버가 너무 화려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손상원 선배와 나는 대체 불가이며, 그 외에 다른 공격 자원들도 다들 유럽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인정받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 틈을 비집고 고작 약관의 나이로 경기에 출장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그리고 곧 주전으로 도약할 정도로 성장할 테니 너무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삐익-
어쨌든 나 혼자만의 우려 속에서 요르단전이 시작되었다.
“자자! 침착하게! 한 골 만들어 가자!”
회귀 이후 한 가지 알게 된 결론이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것.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라는 존재가 일으키는 나비 효과에 불구하고 가끔씩은 전생과 아주 유사하게 반복되는 일들이 있단 사실은 소름 끼치도록 놀랍기도 했다.
물론 대다수의 많은 일이 전생과는 다르게 흘러가곤 하지만, 아주 큰 임팩트가 있었던 사건들에 한해서는 그것이 축구든 축구가 아니든 전생과 유사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과연 오늘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오늘 경기에 대한 전생의 디테일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거의 질 뻔할 수준까지 끌려갔다는 사실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퍼어엉-
초반에 기세를 잡은 것은 우리 쪽이었다.
“고오오올!”
나의 패스를 받은 손상원 선배가 전반전 10분도 채 되기도 전에 선제골을 터뜨린 것.
‘이렇게 되면 달라지는 게 맞는 건가?’
초반에 기선을 제압했으니 대승으로도 갈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급반전되기까진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것.
요르단의 10번 공격수가 단독으로 우리 진영을 돌파하더니 수비수를 달고 때린 중거리 슛이 그대로 골문을 갈라 버렸다.
너무 잘 찬 슈팅이었기에 우리로선 손쓸 도리도 없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란 점이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요르단의 10번 공격수는 추가 골까지 터뜨리며 역전에 성공했다.
이번엔 프리킥 상황에서 절묘한 감아 차기로 골문의 사각지대를 노린 것이 주효했다.
우리 팀의 좋았던 기세에는 찬물이 끼얹어졌다.
‘뭔가 좀 불안한데.’
빨리 재동점골을 터뜨리지 못하면, 경기 내내 끌려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diee****
└ 와! 지금 요르단한테 지고 있는 게 말이 됨?
sirf****
└ 손상원이든 이규보든 빨리 동점부터 만들어 놓으라고!
eorr****
└ 분위기도 좋았는데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럽네.
opec****
└ 그나저나 요르단 10번 개 잘하네. 슈팅 정확도 뭐임?
축구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아무리 강팀이라 해도 때로는 선제골을 내주기도 한다.
문제는 그 이후의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으며, 진짜 강팀은 위기 시에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약 전생에 아무도 그걸 못했다면…….’
아마 그랬을 공산이 크다.
그러니 이번 생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
퍼엉-
나는 라인을 따라 달리고 성권이 형을 향해 롱 패스를 뿌렸다.
이 형, 대표팀에 발탁되더니 좀 더 자신감이 붙은 느낌이었다.
이라크와 했던 평가전 때부터 심상치 않더니 1차전 바레인전에서도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어쨌든, 성권이 형은 특유의 스피드와 피지컬로 요르단의 측면을 붕괴시키며 쭉쭉 치고 올라왔고,
투욱-
나란히 달리고 있던 내게 땅볼로 패스를 깔아 주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엔드라인 중앙 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스피드를 이용한 성권이 형의 침투력은 정말 놀라웠다.
나는 다시 리턴 패스를 건네며 빈 공간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공중으로 툭 찍혀서 날아온 공.
성권이 형이 감각적으로 크로스를 올린 것이다.
양옆으로는 요르단 수비수들이 나를 방해하기 위해 빠르게 접근해 왔지만,
나는 골키퍼를 등진 채로 달려가며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빠아악-
그대로 공중에서 오버헤드 킥.
자세가 무너지며 공의 이동 방향을 눈으로 직접 볼 순 없었지만,
경기장의 격한 함성만으로도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고오오오오올!!”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진 재동점골.
이제 역사를 바꿀 시간이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요르단을 한 번 더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전생의 복수는 무조건 이번 경기에서 할 생각이다.
* * *
오성권은 작년부터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믿기지가 않았다.
‘프로 데뷔도 신기한데 국대라니.’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축구 선수로서의 회의감과 고뇌가 가득했다.
뛰어난 신체 조건과 운동 신경으로 축구를 시작했고 어렸을 때부터 가장 화려한 포지션에서 뛰어 왔지만, 세상에는 뛰어난 공격수들이 너무 많이 있었다.
당연히 고교 졸업 후 프로 무대로는 직행할 수 없었고, 차선책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재능이란 벽은 너무나도 차갑고 높았다는 것.
축구 선수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매일매일 했고, 결국 감독님의 권유를 따라 풀백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축구 인생은 드라마틱하게 변해 버렸다.
새롭게 시작한 풀백은 역할이나 요하는 기술이 너무 다른 포지션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고 이대로라면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단 희망도 생겨났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빨리 찾아왔다.
풀백에 온전히 적응하기도 전에 프로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부담이 컸지만, 결국 대학을 자퇴하고 프로 무대로 뛰어들었다.
- 반가워요 성권이 형!
이 팀에는 신기한 동생이 하나 있었다.
고교를 졸업하자 프로를 씹어 먹고 있는 괴물 신인.
자신과는 달리 로열 로드만을 밟아 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 형. 사실 저도 축구 그만둘 뻔했어요.
녀석은 믿을 수 없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신의 프로 적응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나이로는 동생이지만, 형처럼 의지하고 싶은 신기한 녀석.
그리고 가장 의지할 수 있을 때는 바로 필드에서였다.
대학에서 손발을 맞춰 본 어떤 선수들보다 이 녀석과의 호흡은 좋았고,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패스가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해도 크로스를 진짜 잘 올렸다 싶을 때면, 녀석은 어김없이 골로 연결해 주어 도움 스탯을 쉽게 적립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런 기록들은 차츰차츰 쌓여 갔고, 결국 시즌이 끝난 후엔 울리슨 감독님의 인정을 받아 대표팀 승선이라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대표팀에서도 녀석의 덕은 계속 보게 되었다.
벌써 A매치에서만 세 번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