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 하 변호사 08권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8권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8
산경(山景)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8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8권
Chapter 01.
“직접 보니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테이블에 남은 와인을 단숨에 마신 상송은 순수한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넌 하데스의 진면목을 단 1%도 느끼지 못했어. 같은 수준이 돼야 진짜 모습을 아는 거라고. 어린이 축구단 선수가 프로선수의 기량을 보며 감탄은 하겠지. 하지만 직접 부딪히는 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야. 하데스가 전력을 다하면 나도 살 떨린다고.”
상송은 여전히 제우스가 자신의 진면목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언짢은 기분을 숨기기 위해 다른 말을 꺼냈다.
“적나라하게 적의를 드러냈는데, 어떻게 할까요?”
“뭘?”
“저대로 놔두실 겁니까?”
“안 놔두면? 찾아가서 죽이기라도 하게?”
“그건 둘째 문제고 퀴에네와 트라이던트는 회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좋은 방법 있나?”
상송이 웃었다.
“지난번에 감별사를 보냈을 때 상황을 보니까 경비가 좀 허술하더군요.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거친 이는 둘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데스는 여기 로마에 있지 않습니까? 타나토스와 케르베로스도 함께요.”
제우스는 조금 놀란 기색이다.
“오! 대단한데? 타나토스의 기척을 감지했어?”
“여기 옥상에서 머물렀죠. 감시하듯이 말입니다. 그 정도는 압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타나토스의 특기라면 특기인데…. 상당하군. 아무튼 그래서?”
“지금 한국으로 몇 명 보내면 하데스의 빌딩을 싹 뒤질 수 있습니다.”
“그 빌딩에 보관하지 않는다면?”
“욕심 없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트라이던트라면 몰라도 퀴에네까지 다른 곳에 보관할까요? 최소한 퀴에네는 침실에 뒀을 겁니다.”
“흠….”
제우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내가 가져갔다는 걸 알 테니까…. 뒷감당은 내가 해야겠네?”
“당분간 한 곳에 머무르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까? 케르베로스가 냄새 잘 맡는 사냥개라 해도 계속 이동하는 제우스님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됐어. 그 정도 뒷감당은 해. 대신 실패하지 마.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도 않은데….”
“네. 빈집에서 물건 챙겨오는 거니까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할까요?”
제우스는 여전히 상송이 하데스를 노린다는 걸 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하데스가 아무리 내게 날을 세워도 내버려두면 터지지 않을 불발탄이다. 괜히 자극해서 터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 계획도 일그러져. 가만히 둬. 혹시라도 내 말 무시하고 움직였다가는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그 단두대에 네 목을 집어넣을 테니까. 알아들었지!”
“명심하겠습니다.”
제우스의 호통에 상송이 찔끔하며 고개 숙였다. 하지만 계획을 완전히 지워버린 건 아니다. 제우스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조금 미뤘을 뿐이다.
“아,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보고할 생각이 없는 사안이었다. 좀 더 확인하고 혼자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이 사안으로 제우스가 하데스에 대한 우려가 조금은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하는 것이다.
“알레시오 오를레앙이 사라졌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 전부와 함께 말입니다.”
“응? 누구?”
“Apex 중 한 명입니다.”
“Apex는 그레고리언이 감시하지 않나?”
“그렇습니다만, 그레고리언마저 사라졌습니다.”
제우스의 표정이 변했다.
“누구야?”
“파악 중입니다.”
“혹시 하데스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천만에요. 일반적인 일이었다면 보고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레고리언을 상대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레고리언을 제거할 수 있는 놈이라면 대단한 놈이다. 찾아!”
“네.”
“찾아서 내 앞으로 데려와. 어렵다면 머리만 들고 와도 좋다.”
“네. 제우스님.”
상송은 머리를 숙였다. 하데스를 죽여도 될 명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혹시 제우스 역시 그레고리언을 제거한 놈이 하데스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억지는 아니었다.
* * *
“키메라를 데리고 있더군.”
“네? 좀 이상한 기운이 뒤섞여 있긴 했는데…. 다른 초월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키메라?”
나 비서가 깜짝 놀랐다.
“물론 다른 초월자 하나도 있었어. 그레고리언이 말한 상송이라는 놈이야. 투명한 피부, 반짝이는 은발. 참! 굉장한 미남이더라고. 영화배우나 모델을 직업으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
“어디 출신인지 짐작 가는 데는 없었어요?”
“모르겠어. 적어도 올림퍼스 출신은 아니야.”
궁금함을 참지 못한 김 기사가 입을 열었다.
“키메라가 그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를 둘을 달고 다니고 꼬리는 뱀이라고 한 그 신화의 동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염소 머리는 없어. 사자의 모습이긴 한데 큰 뿔이 나 있거든. 그것 때문에 염소 운운하는 거야. 자칫 잘못했다가는 큰 싸움이 날뻔했어.”
하 변호사는 희동이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김 기사의 쓸데없는 호기심이 폭발해 버렸다.
“누가 이깁니까?”
“뭐?”
“희동이랑 키메라요.”
나 비서와 하 변호사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웃음을 터트렸다.
“글쎄.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둘은 굉장히 잘 어울려 놀았거든.”
“네?”
“뭐, 우리도 정확히 모르지만 둘은 같은 곳에서 왔을 거야. 처음부터 잘 어울렸거든. 그러다 희동이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 곁에 머무르기 시작했고 키메라는 헤라를 따랐지. 그때 헤어지고 나서 오늘 처음 만난 거였어. 이상하지만 반가움보다는 서로 으르렁대더라고.”
하 변호사의 말에 나 비서도 놀랐다.
“응? 왜 그러지? 뒤엉켜서 서로 핥아줘도 모자랄 판에….”
“나도 놀랐지만 티 내지는 않았어.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제우스는 뭐라고 해요?”
“시치미 떼지도 않고 거짓말하지도 않더라고. 우리 추측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어. 인류 위에서 군림할 생각이더라고.”
나 비서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인류의 유일한 메시아가 되려면 꼭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유사한 메시아가 될 수 있는, 혹은 자신의 정체를 까발릴 수 있는 존재의 제거.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전쟁. 이것이 어깨를 눌렀기 때문이다.
“뭐….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제우스는 날 잘 아니까. 어쩌면 그가 우리를 피해갈지도 모르잖아?”
아무리 긍정적인 말을 해도 나 비서의 무거운 침묵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녀도 제우스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잘 알기 때문이다.
* * *
“그냥 싹 죽이면 편한데 왜 살인은 안 된다고 한 거야?”
“이 건물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피하기 위해서지. 작전 설명 안 들었어?”
“도대체 이건 물 주인이 누구길래 그래?”
“말하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지. 아무튼 엄청나게 위험한 놈이라고만 하더라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시작하자.”
하 변호사의 빌딩 밖에 서 있는 두 대의 승합차. 그 속의 사내들이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몇 명이나 있어?”
열감지기를 들여다보는 사내는 짜증 난 표정으로 말했다.
“좀 많아. 사전 정보랑 좀 틀린데? 두셋 정도라고 했는데….”
“비전투 일반인일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구분해? 건물 내의 사람들에게 트레이닝 거친 놈은 왼쪽, 아닌 놈들은 오른쪽. 이렇게?”
낄낄거리는 농담이 끊어지지 않을 때 묵직한 한 마디가 모두의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인간들 제압은 내가 한다. 너희는 물건이나 찾아. 만약 맡은 거 제대로 못 하면 이 건물에서 나오는 건 나뿐일 거다. 명심해. 내게 인간의 목숨은 파리 목숨과 다르지 않아.”
승합차의 인간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저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은 뱉은 말을 절대 주워 담는 놈이 아니다. 건물 안의 인간들은 살려두라고 했으니 시체가 되는 건 다름 아닌 자신들이다.
“아직 멀었나?”
“다 끝났습니다. 여기….”
열감지기 모니터는 무려 열 명이 넘는 인간이 건물 내에 있다고 말한다.
“물건은 어디 있어?”
“맨 위층 사무실과 거주용인 지하 2층이 가장 유력합니다.”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이 차 문을 열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인간들을 다 제압해 놓을 테니 그때 들어와.”
사내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자 용병들은 긴 한숨을 쉬며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놈 정체 아는 사람 없어?”
“낸들 알아? 현장에서는 무조건 저놈 명령을 따르라는 지시가 있었으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지. 게다가 지난번 작전에 투입된 스네이크 팀이 저놈에게 개기다가 전부 죽었다는 게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고 하더라고.”
회사 내의 가장 엘리트 팀이었던 스네이크가 전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 무거운 목소리의 주인을 상전처럼 모셔야 할 이유가 차고도 넘친다.
* * *
두 경비가 가장 먼저 눈을 떴다.
보안 경보가 울리지 않았지만 이미 누군가 건물 내로 들어왔다고 해도 충분한 소음이 들렸다.
권총과 소총을 챙긴 두 경비는 각자의 방에서 나왔을 때 마주쳤다.
“들었지?”
“그래. 보안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어. 한 놈이 아닌 팀이다.”
“혹시 초월자?”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두려움이 둘을 감쌌다. 하필이면 아무도 없을 때…. 아니, 어쩌면 아무도 없을 때를 노렸을지도 모른다.
“청소 아저씨들이랑 주방 아저씨들은 나오지 않도록 할게. 넌 그 애….”
차마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뜻이 통했다.
“나미타만 믿을밖에. 내가 전하고 아래로 내려갈게.”
“서두르지 말라고 해. 저놈들 목적은 알아내야 하니까.”
“그래야지.”
둘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땡! 하는 엘리베이터 도착 음이 울리고 로비에 두 경비가 모습을 드러내자 침입자는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