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 하 변호사 06권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6권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6
산경(山景)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6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6권
Chapter 01.
“설마 답 문자 보낸 분은 없으시겠죠?”
다시 모인 12명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안톤과 화상회의를 끝낸 후 즉시 휴대폰을 버렸고 일부는 하데스의 문자를 받자마자 휴대폰을 폐기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 하데스에게 자신들의 성과 가문이 노출됐다. 찾으려고 마음먹는다면 못 찾을 것도 없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남은 건 우리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느냐? 아니면…. 그를 제거하느냐입니다. 여기서 제거한다는 건 하데스뿐만이 아닙니다. 그를 비롯한 타나토스 그리고 케르베로스까지 포함해서 전력을 살펴야 합니다.”
모두 침울한 표정이었다.
그들 모두를 상대하려면 모든 자원을 전부 동원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자원을 동원한다고 해도 승산이 희박하다는 거다.
안톤 라실로가 입을 열었다.
“그가 원하는 걸 적당히 내어주고 우리의 기존 사업을 지키는 게 나을 겁니다. 이건 직접 겪어본 경험자의 의견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안톤을 향했다.
“하데스는 직접 접촉하지 않고 인간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의 손가락질 한 번으로 제 심장은 몇십 초간 멈췄어요. 우리가 동원할 자원이 ‘인간’이라면 그의 손짓 한 번에 전멸입니다.”
“사실입니까?”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 그런 뜻이 아니라 믿기 힘들어서….”
“제 조카 레오폴트는 폐의 반쪽이 날아가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제 눈앞에서 케르베로스가 삼켰고요. 제가 존경하는 여러분은 지금 초월자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시는 겁니다. 왜 고대인들은 그들이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당시 인간의 지능이 낮아서요? 과학이 발전하지 못해서요?”
안톤 라실로는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 않으나 고대인들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영역의 능력을 본 겁니다. 직접 확인한 그 능력을 그들의 이름 앞에 붙인 거고요. 그러니 하데스는 죽음이나 저승 세계의 상징이 아니라 너무나 쉽게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거란 말입니다.”
모두 안톤 라실로가 과장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러니 더 판단하기 어렵다. 손짓 한 번에 인간을 죽여버린다면 티폰을 동원한다 해도 그냥 쇳덩이를 앞에 내세우는 것뿐이다. 티폰의 파일럿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들의 고민 시간은 한없이 늘어졌다.
지켜야 할 것도 너무 많고 가져야 할 미래가치도 너무 크다.
“저의 마지막 제안입니다.”
안톤 라실로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연구소에 쌓인 물질을 적당히 내주고 하데스와의 악연을 끊는 게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입을 열었다.
“이 제안에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올라간 손은 네 개가 전부였다.
이들이 원칙인 만장일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몰랐다.
* * *
“다 빠져나갔어?”
“그래. 급히 철수하느라 흔적이 남았어. 그리고 게이트가 열렸던 장소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어. 바리케이드가 장난 아냐.”
스테로페스는 지도를 보며 게이트 지점과 마지막 발굴 현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2년 전 마지막 게이트를 확인했다고 했지?”
“그래.”
“그럼 발굴은 꽤 오래 했다는 말인데…. 남은 게 있으려나?”
“그건 PC 재단에서 확인해 줄 거야. 이놈들이 앙코르와트 보수 공사를 같이 진행하면서 보수 현황을 캄보디아 정부에 보고했거든.”
“그쪽하고는 어디까지 이야기가 됐어?”
“일단 미국 국방성에 보고했고 거기서 적극 지원한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받았어. 그래서 위치가 여기 앙코르와트라는 것도 알아.”
“그다음은?”
“PC 재단에서 여기 보수 공사를 이어받는 걸로 하고 Apex와 동일한 조건으로 진행할 거야.”
스테로페스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PC 재단이 발굴에 눈독 들이지는 않겠지? 우린 군사력이 없어서 그놈들이 치고 들어오면 도망가는 수밖에 없어.”
“그동안 본 바로는 목적이 달라. 물론 여기서 발굴하는 물질의 경제적 가치를 알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아직 그 정보는 모르니까. 그리고 딴생각을 한다면 내가 십여 년 전에 미국에서 벌린 소동 이상의 혼란을 미국이 맛보게 될 거라고 경고하지 뭐.”
스테로페스는 십여 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난리를 다시 치겠다는 말은 경고가 아니라 협박이지. 그래, 그 정도면 우리의 안전에 대한 충분한 보험은 되겠다.”
스테로페스의 얼굴에서 불안이 사라졌다.
“그럼 여기서 찾아낸 물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내게 맡긴다는 건 세상에 드러내지 않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 맞아?”
하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무한 에너지 자원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어? 인간의 탐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야.”
“당장 나부터 위험해지겠군.”
“혼자가 아냐. 모두가 위험해져. 다른 차원의 물질,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 모든 인간의 호기심 어린 눈이 우리를 향할걸? 무한 에너지를 넘어 무한 생명력이 그들의 더 큰 관심사라고.”
하 변호사는 KI 그룹 신일후 회장을 떠올렸다. 비록 그는 초월자의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이 지구에는 신 회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절대 권력을 가진 인간이 넘친다.
그들은 무한 에너지와 무한 생명, 둘 다를 원할 것이다.
“그럼 그 엄청난 가치의 자원을 찾아내서 뭘 하지?”
근본적인 질문에 하 변호사는 어깨만 으쓱했다.
“몰라. 거기서 크로스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걸 찾아낸다면 가장 좋고, 아니면 우리를 위한 뭔가가 나와도 좋겠지. 최소한 자네나 자네 회사가 큰돈을 벌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난 자네의 지성을 믿어.”
스테로페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지성보다 탐욕이 터 커. 발굴 자원을 이용해서 정말 지구를 씹어 삼킬만한 기업으로 성장해보지.”
“큰소리는 여전하구만. 참, 그건 어떻게 됐어?”
“그거라니?”
“프라임 티폰 말이야.”
“아, 완전히 재탄생했어. 한층 업그레이드했고 더 강력한 파워와 스피드가 나오도록 밸런스 튜닝까지 끝냈어.”
“그거 유럽으로 보낼 수 있나?”
“응? 잠깐만.”
스테로페스는 태블릿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으로 보낼 수 있어. 거기서 세계 로봇 전시회가 열리니까. 통관에 문제없을 거야. 베를린도 괜찮아?”
“물론. 거기서부터는 육상으로 옮기면 되니까.”
“오케이. 조치해 놓고 알려줄게. 그런데…. 왜 갑자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며 하 변호사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Apex 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그때 테스트도 해 보는 거지.”
“테스트? 아…. Mr. Kim이 공들여 가르치는 제자?”
“그래. 원래 파일럿이었으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지. Apex의 티폰을 그 애가 완전히 박살 내면 그쪽 놈들도 충격 좀 받을 거니까.”
전투가 벌어질 거라는 말에 스테로페스는 반가운 표정이었다.
“그럼 내가 블랙박스도 달아놔야겠네. 실전 데이터를 확보하니까.”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걱정은커녕 오히려 신나 하는 스테로페스를 보니 굉장한 업그레이를 했다는 믿음이 갔다.
* * *
“여기가 그 게이트가 열렸던 곳입니까?”
사지드 칸은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사라졌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 특별한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여긴 당신네들이 지켜. 언제 다시 게이트가 떡 하니 나타날지 모르니까.”
“네. 24시간 카메라 감시를 할 생각입니다.”
하 변호사는 사지드 칸과 함께 온 사내를 힐끔 봤다.
“아…. 이분은 미 국방성 소속입니다. 이번 일의 책임자죠.”
그는 고개만 조금 숙였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역시 군인은 입이 무거워야 군입답다.
“캄보디아 정부와는 잘 끝냈나?”
“네. 갑자기 변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우리 정부의 몇 가지 약속에 만족했습니다. 여긴 우리가 맡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
“각자 맡은 일에만 집중하자고. 쓸데없는 호기심은 싹 지우고.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이미 윗선과도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든 우린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겁니다. 우린 게이트를 지키는 일,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만 할 겁니다.”
“내가 인간을 그리 믿지 않아. 당신은 그렇게 알고 있을 수 있지만 윗선에서는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거든? 그래서 한 가지만 꼭 알아두고 윗선에도 전하라고.”
“네. 말씀하십시오.”
“만약 다른 일에 관심을 두거나, 여기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내가 십여 년 전에 미국에서 사고 친 것 이상이 사고를 칠지도 몰라. 그땐 내가 미국에서 도망친 걸로 끝났지만 다음엔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사지드 칸도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류로 확인했다.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난다는 건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다.
“너무 그렇게 겁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일에 불상사가 생기면 가장 먼저 위험에 빠지는 건 저라는 걸 잘 압니다. 가끔은 믿을만한 인간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만족할만한 대답이다.
하 변호사는 사지드 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번 일 깔끔히 끝내면 기대 해도 좋을 거다. 내가 아주 괜찮은 선물 하나 하지.”
사지드 칸은 그 선물이 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가장 큰 선물은 게이트가 다시 열리는 것뿐이다.
* * *
김 기사와 두 경비 그리고 프라임 티폰의 파일럿은 베를린에 내렸다. 스테로페스의 손길이 스친 작품을 인계받고 나서 다시 합류하기 위해서다.
하 변호사와 나 비서는 희동이와 나미타를 데리고 다시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나미타도 베를린에 두고 싶었다. 어차피 기다리는 게 전부인 베를린에서 함께 세상 구경이라는 새로운 경험이라도 하기를 바랐지만 나미타는 세상보다 희동이가 더 중요했다.
그렇다고 희동이도 내버려 둘 수 없다. 그 녀석이 발광하는 걸 제어할 수 있는 건 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잘츠부르크에 도착해 라실로 가문의 생브라스 성으로 향했다. 모두가 도망가고 텅 비었을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그들 앞에 라실로 가문의 수장인 안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오실 것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Apex 멤버들을 여기로 잡아와서 원하는 걸 얻어내고 죽여버리기에 최적화된, 텅 빈 이 성은 천연이 요새 아니겠습니까?”
나 비서가 웃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눈치 빠르니까 오래 살겠지만 지금은 가장 먼저 죽고 싶어 우릴 기다린 것 같은데?”
“아뇨. 완벽한 항복 선언이라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안톤 라실로도 희미하게 웃었다.
* * *
그가 말한 항복의 의미는 생브라스의 지하 창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꽤 큼지막한 상자들이 가득한 지하, 그곳에서 안톤 라실로는 작은 자석 키 하나를 내밀었다.
“비밀번호 누르고 이 키를 꽂으면 열립니다.”
“완벽한 항복이라는 게 앙코르와트에서 발굴한 모든 걸 넘기는 거다?”
“그렇게 요구하셨지 않았습니까? 우린 그 요구를 받아들인 겁니다.”
“우리의 요구 사항은 달랐어.”
“네?”
“지금껏 발굴하고 찾아낸 모든 걸 다 내놓으라고 했지. 이건 협상하려고 적당히 긁어모은 거 아냐?”
나 비서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적당히 떼 줄 테니 이거 먹고 떨어져라…. 이건 애초에 우리의 요구가 아니었어.”
“아닙니다. 그간 우리가 모은 거 전부입니다.”
당황한 안톤이 급히 입을 열었다.
“물론 빠진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실물이 아닌 우리의 연구 결과입니다. 학술이나 기술 자료까지 전부 드린다는 건 불가능하잖습니까? 이미 우리 연구원들의 머릿속에 든 거라서 말입니다. 설마 연구원들의 머릿속에 든 지식도 달라는 건 아니시죠? 그건 그들 전부를 죽여야 한다는 건데….”
“애쓴다.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