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부인이 되어버렸다 5권
지은이 : 새벽유리
펴낸곳 : 필연매니지먼트
E-mail : feelyeon2015@gmail.com
정가 : 3,000원
ISBN : 979-11-7294-6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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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부인이 되어버렸다
5권
새벽유리
목차
19장
20장
21장
22장
19장
경운종 덕에 십만대산 너머에 있는 마을에 도달하기까지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경운종을 배워가면서 왔기 때문에 반나절이나 걸린 것이지, 돌아가는 길은 아마 일다경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경운종에 능숙해지면 더 빨라지겠지.’
마을의 입구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글자가 새겨진 흔적이 있기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원랑’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지명인데….’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을 감싸듯이 펼쳐져 있는 드넓은 꽃밭이 인상적인,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아무래도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일까. 마을 사람들끼리 자급자족해야 하는 사정 탓에 가난해 보였다.
“원래 전쟁 전에는 이보다는 사정이 나았습니다만, 마교와의 전쟁으로 이주민이 대거 발생했습니다.”
나는 침음을 흘렸다. 외진 곳에 있는 마을에 사람까지 부족해지다니. 이후 상황은 안 봐도 훤했다.
마을은 더욱 가난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을 떠난 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교의 총본산이 바로 산 너머에 있는데 나 같아도 집이고 뭐고 다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싶겠다.’
사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들이 신기한 게 아닐까.
‘그나저나… 생각보다 경계심이 적은데?’
교류가 적은 마을은 대체로 폐쇄적인 분위기를 띠기 마련이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외지인에 경계를 곤두세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흘끔거리기만 할 뿐 딱히 경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야.’
흉흉한 시대에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긴… 십만대산 아래에서 살려면 보통의 담대함으로는 어림도 없겠지.’
그때였다.
지팡이가 땅을 짚는 소리가 들려와서 뒤를 돌아보니, 천마의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만큼 작은 노인이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듯한 안색의 노인은 굽은 등과 앙상한 다리를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과 달리,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는 동작만큼은 힘차고 재빨랐다.
“살아있었구만.”
노인이 말을 걸었다.
천마에게.
바로 그 천마에게!
마교도는 물론이고, 대마두인 12주교조차 쉽사리 눈조차 마주하지 못하는 마교의 주인에게 말이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은거 고수인가?’
천마의 옛 지인이라든가…?
하지만 노인은 아무리 살펴봐도 평범한 노인이었다. 무공을 훈련한 흔적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 주교들조차 두려워 마지않는 천마를 저렇게 막 대하다니!
‘대체 정체가….’
나도 모르게 긴장한 눈으로 천마와 노인을 번갈아 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천마는 무표정하게 듣고만 있다, 내 시선을 느끼고 노인을 간단히 소개했다.
“이 마을의 촌장입니다.”
“아….”
나는 포권을 취했다.
“조용히 둘러보다 가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저자와 달리 예를 아는 젊은이로구만.”
…진짜 은거 고수 아냐?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천마에게 말을 걸어댔다.
“그간 한참은 안 오길래 객사한 줄 알았지.”
“…….”
천마는 영 관심 없는 얼굴로 우뚝 서 있었다. 솔직히 듣고는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대놓고 무시하는데도 노인은 천마에게 말을 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맨날 우중충한 얼굴로 돌아다니던 게 웬일로 낯빛이 훤해져서 못 알아볼 뻔했지 뭐야. 다 이유가 있었구만.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야? 색시인가 보지?”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거.”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쯧쯧 혀를 차더니 제멋대로 천마에게 훈계를 해댔다.
“싸웠어? 응? 마누라 이기려 들어서 뭐 해? 응?”
노인은 천마에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설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천마는 갑자기 고분고분해져서는 잘도 대답했다.
“새겨듣겠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까마득해서 멀거니 보고만 있는데, 어느샌가 노인은 또 다른 표적을 발견하고는 다른 이에게 달려가더니 똑같이 참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
그 모습을 멀뚱히 보던 나는 가벼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면이 있어 보이네요. 누구에요?”
“마을에 올 때마다 종종 마주치는 자입니다.”
그럼 정말 안면만 있는 자였단 말인가.
‘저런 노인이 눈이라도 마주치면 바로 검을 뽑아 들 줄 알았는데….’
자신을 동네 청년처럼 막 대하는데도 딱히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을을 둘러보았다.
‘촌장뿐만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은 전부 천마를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야.’
아니. 천마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눈치다.
“이 마을은 왜 방문한 거예요? 딱히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천마는 살짝 웃더니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천마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낡고 협소한 객잔이었다.
창가 쪽 탁자에 멍하니 앉아있던 객잔 주인은 우리를 발견했는데도 몸을 일으킬 기미가 없었다.
황당해하고 있는데, 천마는 어쩐지 익숙한 표정으로 객잔주를 지나치며 말했다.
“두 명.”
“술은?”
“두강주. 만두도 같이.”
“알았소.”
객잔의 주인은 놀라울 정도로 무례했다. 만사가 귀찮은 얼굴로 건성건성 주문을 받더니 머리를 벅벅 긁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허어….’
객잔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점소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점소이가 필요할 만큼의 손님이 없구나.’
천마는 적당한 자리에 나를 앉혔다.
얼결에 앉게 된 낡은 나무 의자는 잠시 자리를 바꿀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무너지는 거 아니겠지?’
이상하게도, 나보다 세 배는 무게가 나갈 천마의 의자는 조용하기만 했다.
내 의자가 불량인가?
“…자리 바꿔요.”
“예.”
그러나 내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가 무섭게-
끼익. 끽.
“…….”
“…….”
아까 천마가 앉았을 때만 해도 얌전했던 의자가 또 요란을 떨었다.
‘…설마, 내가 천마보다 더 무겁다는….’
끔찍한 가설이 떠오르려던 찰나.
나는 뒤늦게 경신법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군.’
그저 의자에 앉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에서조차 천마는 내공을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
‘내공이 얼마나 남아돌면.’
웬만한 고수들도 엄두도 못 낼 짓이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지.’
나는 다른 무인들과 달리 내공으로 무공을 펼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의 선천지기를 운용하여 천마를 따라 경신법을 펼치자, 내 의자에서도 마침내 소음이 멎었다.
“훌륭하십니다.”
참된 스승이라도 흉내 내고 싶은지, 천마가 곧장 나를 칭찬했다.
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다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예요?”
“이 마을에서 무얼 하냐 물으시기에.”
천마는 탁자 위에 있는 나무통에서 꽤 신중하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고르더니 내게 건넸다.
그 덕분인지 내 수저는 유독 깨끗했다.
반면 자신의 몫은 대충 잡히는 대로 고른다.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직접 물까지 가져온다.
총본산에서, 무시무시한 마교도들을 손끝으로 부리던 그 천마가, 손수 물을 떠오다니!
‘…알면 알수록 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