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죽음의 행진
‘이거 아주 괴수 대잔치로구만. 허허.’
여포는 활짝 웃었다.
설날 세뱃돈 받은 아이처럼.
힘찬 상승 그래프를 그리는 증시를 바라보는 주식 투자자처럼.
혹은 짜장면과 치킨, 피자, 삼겹살에 수육과 육회, 초밥이 한 상에 가득 차려진 광경을 보는 식도락가의 기분을 만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즐겁게(?) 어우러져 싸울 상대가 아주 그냥 여름철 텐트를 치면 몰려드는 모기떼처럼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좋구나!’
비로소 드러난 지하 3층의 광경.
정말로 괴수 대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엔 슈테펠이 언급한 연구원 따위의 온화한 생물체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온갖 기괴한 형상의 짐승이 가득했다.
표범과 박쥐가 합쳐진 놈은 쉭쉭 대며 날아다녔다.
이쪽의 허점을 찾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침을 흘려댔다.
늑대와 황소가 합쳐진 듯한 놈은 커다란 덩치로 콧김을 뿜어냈다.
고릴라 같은 몸에 사자의 머리를 지닌 생물체는 바닥을 두드리며 포효했다.
그 옆에는 코끼리보다 큰 몸집의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워낙 큰 덩치의 놈이 으르렁대니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 낮고 묵직한 소리가 전신의 피부에 진동으로 전달되었다.
말 그대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모든 동물이 뒤섞인 형상의 괴수 대잔치.
놈들이 모조리 이쪽을 돌아보며 야성 가득한 눈동자를 번득이고 있었다.
‘슈테펠도 이건 몰랐다는 거로구만.’
여포는 쓴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 저렇게 아무런 방비도 못 하고 문을 열자마자 목이 뎅겅 날아간 거겠지.
‘그렇다는 뜻은 이 아래의 시설에 뭐가 더 있을지는 이제부터 아무도 모른다는 뜻.’
슈테펠은 2층의 주둔 병력을 지휘하던 책임자였다.
그런데 바로 아래층의 진면모를 모른다?
그도 결국 장기말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곳을 총괄하는 자가 무엇을 숨겨두었는지 알 수 없다는 뜻.
‘놈을 믿어도 될까.’
잠깐 칸첸중가를 쳐다보았다.
놈은 긴장한 얼굴로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것도 연기일지 모른다.
어쩌면 여기 들어온 자체가 놈의 함정일지도 몰랐다.
‘하니 일단은 강행 돌파다.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거기까지 가 봐야 아는 법.’
만약 정말로 서버 시설이 있다면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
반면 이 아래에서 서버 시설이 없다면?
그래서 정말로 칸첸중가의 함정이나 계략이 드러난다면?
‘그땐 죽이면 되지.’
적어도 별세계가 아닌 이곳 미래 세상에서는, 여기 모인 마신 중에는 자신을 능히 제압할 자는 없다 확신하는 여포였다.
‘놈들의 능력에는 제약이 많으니까.’
갑자기 한낱 비루한 인간의 몸을 얻은 터에 능력의 사용에 제한을 받는 놈들이었다.
반면 자신은?
‘이건 내 힘이지.’
손에 쥔 12단 봉.
그리고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무예의 힘.
이것은 얼치기로 얻거나 태생적으로 얻은 힘이 아닌, 순수한 단련과 경험으로 획득한 자신만의 힘이었다.
세상 누구와도 능히 겨룰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거기에 마신 전용 스킬이 생겼다.’
물론 스킬 또한 거저먹기로 얻지 않았다.
각고의 뼈를 깎는 노력과 난관, 대결을 이겨내며 하나씩 얻은 기예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 드러내어선 아니 되겠지.’
어쩌면 칸첸중가나 다른 놈들이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한배를 타고 있지만 미래는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모든 힘을 드러낼 필요는 없겠노라 여포는 판단하였다.
‘그럼,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시험해 볼까.’
어차피 육 형이 언급하였던 한 시간 이내에 이 시설을 파괴하고 탈출까지 하려면 남은 시간이 빠듯한 터.
이제부터는 좀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하니 일단은 짐승인지 괴물인지 모를 저것들부터 좀 치우고.’
꽈드득─!
여포의 손아귀가 12단 봉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등에 지렁이 같은 힘줄이 돋아났다.
그다음 순간, 그의 전신에서 마기가 스멀스멀 솟구쳤다.
‘불가역적 파멸.’
별세계에서 마칼루의 본체와 더불어 피 터지도록 힘 싸움을 벌이며 얻은 첫 번째 전용 스킬이었다.
띠링─!
[마신 전용 스킬 <불가역적 파멸>을 사용하였습니다.]
[스킬명 : 불가역적 파멸 (전용 / 액티브) : 초급 1레벨(00.00%) - 자신이 지닌 무기에 항거할 수 없는 마기를 깃들게 합니다.]
[특수효과 1. 원거리 - 무기를 사용할 때마다 마기의 일부가 20m 거리까지 부채꼴로 방출됩니다. 마기에 적중당한 대상은 지옥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매초 현재 생명력의 5%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특수효과 2. 근거리 - 마기가 덧씌워진 무기는 절대적 강도를 획득합니다. 마기가 유지되는 한 결코 부러지거나 휘지 않습니다. 충분한 힘만 있다면 어떤 물체라도 부수거나 꿰뚫을 수 있습니다.]
츠츠츠츠츠─!
시커먼 묵빛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솟구쳤다.
팔뚝을 따라 휘돌았다.
12단 봉에 깃들었다.
그 순간 여포가 땅을 박찼다.
‘한번 신명 나게 놀아보자꾸나!’
후우웅─!
정면으로 돌진했다.
12단 봉을 크게 휘둘렀다.
봉이 허공을 갈랐다.
마기가 방출되었다.
콰아아아아─!
“……!”
전투를 준비하던 마신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물론 쏟아져 나오는 마기를 정면으로 뒤집어쓴 괴수의 눈은 더욱 커다래졌다.
“크워억?”
제일 먼저 마기를 뒤집어쓴 괴물은 코끼리 사이즈의 호랑이였다.
놈은 그야말로 엉겁결에, 아무런 대비도 못 하고 마기에 적중당했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커르륵! 쿠와악!”
거대한 덩치가 고통으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포효했다.
순식간에 눈이 허옇게 뒤집혔다.
그리고 미쳐 버렸다.
“크워어어어억!”
피부부터 털끝까지.
근육부터 뼛속 골수까지 빠짐없이.
전신에 퍼진 모든 혈관의 말단까지.
고통의 감각이 스몄다.
매초 생명력이 칼로 썰리듯 뭉텅뭉텅 잘려 나갔다.
거대 호랑이가 충분히 미쳐 날뛸 상황이었다.
“캬우워억!”
콰작─!
거대 호랑이의 커다란 앞발이 마구잡이로 사방을 헤집었다.
그 범위에는 근처에 있던 다른 괴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푸확─!
앞발 휘두르기 한 방에 다른 괴수의 머리가 날아갔다.
찢긴 살점이 튀고 선혈이 솟구쳤다.
물론 그 날벼락을 얌전히 뒤집어쓰고만 있을 괴수들도 아니었다.
“커워우우!”
“캬르륵!”
졸지에 습격을 당한 다른 괴수들이 순식간에 눈짓을 교환했다.
놈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생명체였다.
그 과정에서 보통의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지능이라는 부수적인 이점도 얻었다.
비록 사람만큼은 아니었지만, 놈들은 어느 정도 계산적으로 행동할 줄 알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캬르륵?”
“캬악!”
순식간에 오가는 눈짓.
그 속에서 결론이 도출되고 빠른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거대 호랑이를 향한 집중 공격이 시작되었다.
“캬아아아악!”
“쾌애액!”
푸확─! 콰작─! 뻐걱─!
수십 마리 괴수들이 일제히 거대 호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닌 모든 공격 수단을 퍼부었다.
그 집단 린치 속에서 거대 호랑이의 남은 생명력이 빠르게 사라졌다.
전신이 넝마처럼 갈라지고 찢겼다.
“크르륵!”
쿠웅─!
숨 끊긴 호랑이의 거구가 땅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포가 괴수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네놈들의 상대가 누군지 잊었느냐!”
콰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