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5권
서경 신무협 소설
1장. 복건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어느새 밤이 내렸다.
경천신공을 통해 준비를 단단히 마친 나는 연무장으로 수련하러 나가지 않고 일단 멈추었다.
‘안 오나?’
밖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올 때가 다 되어 가는데…….’
그때였다.
와다닥.
작고 경쾌한 발소리가 들렸다.
‘왔다.’
홍연이었다.
그때부터 내 심장이 기대감으로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량라-앙!”
“연매-애!”
즉시 내가 생각한 드라마가 펼쳐졌다.
“량랑. 표정이 왜 그래요?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그, 그게 말이야…….”
마량이 다 기어들어가는 침울한 목소리를 발했다.
안 봐도 표정이 선했다.
‘크큭. 입영 통지서 받은 얼굴이겠지 뭐.’
같은 과 동기 중 몇몇이 통지서 받은 후 지어보이곤 했던 표정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됐어.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 아침이면 주공 모시고 떠나야 해.”
“……!”
홍연은 대답이 없었다.
‘뭐하는 거지?’
상황 설명은 마량의 입을 통해 알게 됐다.
“울지 마-아. 연매가 울면 나도 슬퍼지잖아-아.”
아하, 울고 있구나.
홍연에겐 좀 미안하지만, 요사이 분노에 휩싸인 나날을 만들게 한 것에 대한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다.
와락.
서로 껴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곧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흐흐흑. 량라-앙.”
“크흑. 연매-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이별 드라마.
‘맛이 어떠냐? 하하하. 하하. 하……. 젠장.’
통쾌함도 잠시였다.
“흐흐흑.”
“크허-엉.”
두 사람의 통곡은 점점 더 심해졌다. 더불어 내 마음은 그만큼 불편해졌다.
‘에이, 이게 아닌데…….’
저렇게까지 대성통곡할 줄은 미처 몰랐다.
어쩐지 내가 악당이 되어 버린 생각마저 들어, 웃고 싶은 마음도 훅 날아갔다.
“량라-앙. 꼭 살아 돌아와야 해. 알았지?”
“당연하지, 연매. 나는 죽어도 안 죽어.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야.”
“죽는다는 말조차 입에 담지 마!”
찰싹.
“아, 알았어. 미안. 하여튼 살아 돌아올 거야. 연매에게. 무사히. 알았지?”
“흐허-엉. 흑흑흑.”
불현듯 찾아왔던 내 미안한 마음은 뒤이어진 홍연의 말에 급격히 뒤바뀌었다.
“량랑! 우리, 별 보러 가.”
“오늘 밤?”
“응. 오늘 밤. 포양호변, 그날 밤, 그 자리로.”
“그래, 좋아. 가자, 포양호변. 그날 밤. 그 자리로.”
울컥.
‘염병. 멍석만 깔아준 셈이네.’
나는 깨달았다.
시련은 연인에게 그저 불쏘시개 재료일 뿐, 솔로에게는 결국 부러움만 남는다는 것을.
‘아오, 모르겠다. 나는 이제 저 두 사람에 대해서는 눈 감고 귀 막고 아무것도 안 보련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나는 더 이상은 지고 싶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새벽 연공 후 어머님께 찾아가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나는 패왕단을 찾았다.
“하아아!”
“차앗!”
패애액. 피쉬쉬쉿.
다들 전용 연무장에 한 자리씩 차지한 채 수련에 한창이었다.
‘다들 있네.’
안면이 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1조장 유성하, 2조장 사도운, 3조장 연사흔에 이어 평무사 아강까지…….
‘반갑네.’
저들은 나와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지만, 나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내가 영웅전에서 장기체류 비자를 받기 전, 그러니까 패왕단이 섬절귀 장로에게 먹혔던 때에 소양홍 부단주와 생사투를 벌였다.
어디 그 뿐인가?
‘11회였었지?’
섬절귀 장로에 포섭되기 전으로 찾아들어간 나는 패왕단 전원과 날이면 날마다 싸웠다. 결국 그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융합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내 조언을 받아들인 소패왕 형님께서 차지하셨지만…….’
그래도 반가운 것은 반가운 것이다.
“4공자님!”
저만큼 뒤에서 수하들의 수련을 돌보아 주고 있던 패왕단주 진청운이 나를 먼저 발견했다. 부리나케 달려와 내 앞에 섰다.
“어인 일이십니까, 이곳까지?”
11회에 들어가 부딪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패왕율을 통해 거듭난 나와, 연거푸 큰일들을 해낸 내 발자취에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이리라.
“진 단주님! 오랜만이에요.”
내가 먼저 포권을 취해보였다.
“예? 아, 예. 저 또한 반갑습니다, 공자님.”
오래 만나온 사이처럼 살갑게 먼저 포권을 취하는 내 모습에 진청운 단주가 당황하며 마주 인사를 했다.
“어인 일이신지요?”
“아! 아직 소패왕께 연락을 받지 않으셨나요?”
“받긴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출정까지 준비할 시간이 이틀 정도 남은 것으로…….”
“그래서 왔어요.”
“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진청운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4공자랍시고 대 패왕단의 무인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있나요?”
“……!”
진청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하니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올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믿음과 신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왔네요.”
“공자님…….”
감동을 한 사발 들이켠 표정이다.
내처 의중을 밝혔다.
“소패왕을 대신할 뿐이지만, 여러분 생각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사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왔어요.”
“하하하. 환영합니다, 공자님.”
진청운이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게다.
이렇듯 자신들을 인정해주니.
“어떻게 보여주고 싶으십니까, 4공자님.”
“뭐, 있나요?”
의미심장한 미소로 답했다.
“한 판씩 붙어야죠.”
“실전 비무?!”
“바로 그거죠!”
진청운 단주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답하기가 무섭게 내공을 모아 소리쳤다.
“모두 주모-옥!”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 힐끗거리던 패왕단의 무인들 시선이 한꺼번에 달려왔다.
“오늘 귀한 분께서 우리를 찾아주셨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4공자님께서는 패왕율을 통해 장로원에서의 입지를 높이셨고 패왕성의 재정난을 해소하셨으며 그 와중에 일신의 몸으로 살막을 무너뜨린 분이시다!”
대놓고 얼굴에 금칠이다.
‘야, 이게 좀 낯부끄러운 일이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청운 단주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천화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출정 전에 우리 패왕단원들의 신뢰를 쌓고 싶다고 하셨다.”
신뢰?
어떻게?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거야?
소리 없이 퍼지는 질문들을 한데 모아 진청운 단주가 답을 내렸다.
“실전비무다. 4공자님과 실전비무를 나눠보고 싶은 패왕단의 무인들은 나서라!”
외침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1조장 유성하가 먼저 나섰다.
‘역시 호기롭네.’